드라이브여행 ③정선 만항재

‘하늘 아래’ 첫 고갯길

만항재는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혈동, 영월군 상동읍이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우리나라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곳으로, 정상이 무려 1330m에 이른다. 남한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 턱밑까지 올라, 정상에 서면 첩첩이 이어진 백두대간의 고산 준봉이 어깨쯤에서 물결친다.

만항재의 이런 풍경 속을 뱀장어처럼 매끈하게 지나는 길이 414번 지방도다. 고한의 상갈래교차로와 태백의 화방재(어평재)를 잇는 414번 지방도는 만항재의 또 다른 이름으로, ‘하늘 아래 첫 고갯길’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고원 드라이브 코스의 정수로 꼽힌다. 만항재가 보여주는 풍경이 그만큼 장쾌하고 근사하다.
 

사계절 풍광 감탄

길은 고갯마루를 기준으로 고한과 태백으로 약 8km씩 이어진다. 가끔 180°로 휘도는 구절양장에 탄성이 나온다. 이왕이면 고한서 올라 화방재 방면으로 내려가자. 올라갈 때는 정상 부근의 낙엽송 군락이 군중처럼 환호하고, 내려갈 때는 태백산 봉우리가 눈앞을 가득 채워 황홀하다. 마치 겹겹이 이어진 산 물결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다.

만항재는 사계절 풍광이 아름답다.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고, 겨울이면 눈꽃이 만발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으로도 유명하다. 어디 사계절뿐이랴, 만항재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이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는다.

별을 좋아하는 이는 야밤에 이곳을 찾아 은하수를 만나고, 호젓한 드라이브를 꿈꾸는 이는 새벽에 이곳을 찾아 선물 같은 아침을 맞는다. 고도가 높은 만항재는 이른 아침에 안개가 자주 몰려와 몽환적이다. 
 


만항재 드라이브의 또 다른 매력은 풍성한 볼거리에 있다. 길이 시작되는 상갈래교차로부터 삼탄아트마인과 정암사, 만항야생화마을, 만항야생화공원 등이 줄을 잇는다. 모두 도로변에 있어 오래 걷지 않아도 된다.
 

상갈래교차로서 2km 정도 거리에 있는 삼탄아트마인은 1964년부터 38년간 운영하다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를 활용한 문화 공간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천상의 화원’
선물 같은 드라이브 코스의 정수

만항재가 20여년 전까지 석탄을 실어 나른 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곳으로, 길목에서 산 중턱에 우뚝 솟은 수갱 타워(권양기)가 보인다. 수갱 타워는 광부와 석탄을 지상과 지하 갱도로 옮기던 삼척탄좌의 승강 시설로, 삼탄아트마인의 심장 같은 곳이다.

본래 있던 짙은 회색 레일 위에 붉은 꽃 세 송이를 설치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드라마 〈태앙의 후예〉를 촬영한 마인갤러리4와 석탄 산업의 현장인 야외 공간도 눈에 띈다. 광차와 인차, 버스 등을 전시하는 야외 공간에서는 경석(폐탄)이 언덕을 이룬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광부들의 고단한 삶이 구불구불한 만항재를 따라 이야기로 흐르는 느낌이다. 
 

정암사는 삼탄아트마인 맞은편에 있다. 국내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신라 시대(64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찾는 이가 적고 규모가 작아, 경내가 고요 속에 잠긴 듯 풍경 소리가 크게 들린다. 눈여겨볼 곳은 적멸궁과 수마노탑이다.

개울 건너에 있는 적멸궁은 수마노탑에 예배드리는 공간이다. 수마노탑은 적멸궁 위 산 중턱에 있다. 정교한 장식이나 화려한 돋을새김은 없지만 훤칠하니 잘생겼다. 탑의 지붕돌 네 귀퉁이에 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듣기 좋은 자리다.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일품이다. 
 


정암사 위는 만항재다. 정상 아래 만항야생화마을이 있고, 정상 좌우 언저리에 만항야생화공원이 조성되었다. 만항야생화마을은 인근 광업소서 채탄을 시작하면서 규모가 커진 곳이다. 도로변 담마다 야생화가 그려졌고, 마을 한쪽서 야생화를 전시·판매한다. 
 

마을에서 차로 한 굽이 크게 돌면 만항재가 나온다. 정상 푯돌을 기준으로 왼쪽에 ‘하늘숲공원’이, 오른쪽 아래 ‘천상의 화원’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피고 지는 곳으로, 해발 1000m 이상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야생화가 많다.

이른 봄 눈 속에서 노란 복수초가 피고, 봄에는 얼레지, 여름엔 노루오줌이나 둥근이질풀 등이 흐드러진다. 드물게 4월 하순까지 눈이 내려, 만항재의 꽃은 7~8월에 절정을 이룬다. 고한함백산야생화축제가 한여름에 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햇살이 좋은 5월 한낮, 짬을 내 낙엽송이 우거진 숲을 걸어보자. 겨우내 솜털 같은 눈이 소복이 쌓인 자리에서 큰앵초가 피고, 꿩의바람꽃이며 한계령풀이 핀다. 다만 봄철 야생화는 송이가 큰 것이 적어 자세히 봐야 만날 수 있다.
 

만항재 정상서 함백산과 운탄고도가 지척이다. 함백산은 둥글둥글한 산세만큼이나 품이 넉넉하다. 우리나라서 여섯 번째로 높지만, 만항재와 고도차가 240여m에 불과해 정상까지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겨울철 눈꽃 산행지로 유명하고, 일몰과 일출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산행 기점은 태백선수촌 부근 도로 옆 주차장이다. 이곳에 차를 대고 임도를 따라 1km 남짓 오르면 된다(1시간~1시간30분 소요). 산불 방지와 자연 자원 보호 기간으로 5월15일까지 입산이 통제되니 참고하자.

걷기 좋은 ‘운탄고도’

함백산이 만항재 드라이브와 연계할 수 있는 산행 코스라면, 운탄고도는 연계해 걷기 좋은 길이다. 운탄고도는 ‘석탄을 나르던 옛길’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고원 길’이라는 뜻이다. 석탄 트럭이 왕래하던 길이라 대체로 넓고 완만해 걷기 좋은데, 전체 구간은 함백역서 만항재까지 40km다.

하늘마중길, 바람꽃길, 낙엽송길 등 난도가 다른 10여개 코스가 있다. 인기 코스는 하이원리조트 마운틴콘도서 출발해 하늘마중길과 도롱이연못, 낙엽송길을 지나 전망대와 하이원CC에 이르는 9.4km(약 3시간 소요)다. 이 길에서도 봄내 야생화가 피고 진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산행 연계 코스] 삼탄아트마인→정암사→만항재(만항야생화공원)→함백산 [걷기 연계 코스] 정암사→만항재(만항야생화공원)→운탄고도

1박2일 코스 [첫째 날] 삼탄아트마인→정암사→만항재(만항야생화공원)→함백산 [둘째 날] 운탄고도→사북석탄유물보존관(사북탄광문화관광촌)


2박3일 코스 [첫째 날] 삼탄아트마인→정암사→만항재(만항야생화공원)→함백산 [둘째 날] 운탄고도→사북석탄유물보존관(사북탄광문화관광촌)→몰운대 [셋째 날] 화암약수→화암동굴→정선5일장→병방치스카이워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정선여행(정선군청 관광 홈페이지) www.ariaritour.com
- 삼탄아트마인 samtanartmine.com
- 정암사 www.jungamsa.com
- 고한함백산야생화축제 www.gogohan.kr

문의 전화
- 정선군 종합관광안내소 1544-9053
-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033)560-2368
- 삼탄아트마인 033)591-3001
- 정암사 033)591-2469

대중교통 정보
[기차] 청량리역-사북역, 무궁화호 하루 6회(07:00~23:25)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신고한, 동서울종합터미널서 하루 30여 회(06:00~23:0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고한·사북공용버스터미널서 택시 이용.
*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고한·사북공용버스터미널 033)592-9951 정선콜택시 033)591-8767 아라리콜 033)592-5000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영월·제천 방면 우측→신동교차로서 단양·영월 방면 우측 38번 국도→증산터널 지나 상갈래교차로서 상동·정암사 방향 우측 414번 지방도→만항재 정상

숙박 정보
- 하이랜드호텔 : 고한읍 고한로, 033)591-3500, www.hi-landhotel.co.kr(굿스테이)
- 하이원리조트 : 고한읍 하이원길, 1588-7789, www.high1.com
- 삼탄아트마인 : 고한읍 함백산로, 033)591-3001, samtanartmine.com
- 엘스관광호텔 : 사북읍 사북1길, 033)591-7300, www.lshotel.co.kr
- 도사곡휴양림 : 사북읍 지장천로, 033)560-3456, dosa.jsimc.or.kr
- 버치우드펜션 : 고한읍 소두문동길, 033)592-5912, www.birchwoodp.co.kr
- 메이힐스리조트 : 고한읍 물한리길, 1666-1243, www.mayhillsresort.kr
- 장산콘도 : 영월군 상동읍 함백산로, 033)378-5550, www.jangsancondo.co.kr
- 오투리조트 : 태백시 서학로, 033)580-7000, www.o2resort.com


식당 정보
- 만항곤드레닭집(곤드레고등어찜): 고한읍 함백산로, 033)591-5002
- 만항할매닭집(토종닭볶음탕): 고한읍 함백산로, 033)591-3136
- 원조순대국밥(곤드레순대국밥): 사북읍 사북중앙로, 033)592-2129
- 밥상머리(한방토종닭백숙): 고한읍 함백산로, 033)591-2030
- 레스토랑 832L(광부도시락): 고한읍 함백산로(삼탄아트마인 내), 033)591-3001
- 용석집(만둣굿): 사북읍 사북2길, 033)592-6615
- 시골막국수(막국수): 남면 무릉3로, 033)591-9044

주변 볼거리 사북석탄유물보존관(사북탄광문화관광촌), 민둥산, 몰운대, 화암약수, 화암동굴, 병방치스카이워크, 정선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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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