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쏟아지는 여론조사 ‘제대로’ 보는 법

‘지지율’ 보이는 대로 다 믿지 마세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야말로 여론조사의 시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성된 조기 대선 국면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숫자 놀음’이 한창이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지지율에 민심도 요동치기 마련. 선거를 예측하는 도구서 어느새 선거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여론조사. 범람하고 있는 여론조사 물결 속에서 ‘진짜’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오는 5월9일이면 19대 대통령이 결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되면서 60일 안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국민들은 물론 정치권조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상황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여론조사의 범람. 쏟아지는 여론조사의 향연은 대선후보를 경마장의 경주마로 만들었다.

쏟아지는 조사
후보들은 민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A사의 B대표는 “웬만한 공약보다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더 크다”며 “후보 캠프서 여론조사 결과에 민감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공약보다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가 훨씬 더 파괴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지지율에 따라 지지자들의 마음은 물론 캠프 관계자들까지 긴장한다.

최근에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수직상승하면서 독주 체제였던 대선구도가 양강 체제로 바뀌었다. 일부 조사에선 안 후보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넘어서면서 다 결정된 듯 보였던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멀찌감치 타 후보들을 앞서 나갔던 문 후보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쫓아가는 입장인 안 후보 측은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여론조사를 두고 문·안 후보 양측의 기 싸움이 시작된 건 지난 3일 <내일신문>의 보도가 발표되면서 부터였다. <내일신문>에 따르면 문·안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간 5자 가상대결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줄고, 문·안 양자 가상대결에선 안 후보가 앞섰다.


조기 대선 국면에 접어든 이후 처음으로 안 후보가 양자대결서 문 후보를 이긴다는 결과가 발표되면서 정치적 파장이 일었다.

가상의 양자대결이지만 처음으로 우위를 빼앗긴 문 후보 측은 <내일신문>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질소 포장 과자” “의도가 불순하다” “신빙성이 떨어진다” 등의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내일신문> 측은 “더문캠이 문제 삼은 이번 조사는 특정 시점과 주제를 염두에 둔 특별조사가 아니라 매달 초 진행한 정례조사”라며 “수년째 조사방식이 그대로인데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공정성을 깎아내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문 후보 측이 <내일신문> 여론조사를 두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시한 근거는 조사방법과 시기 등이다.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내일신문>조사는) 여론조사의 기본인 무선전화 조사는 아예 없었다”며 “유선전화(40%)와 인터넷(모바일 활용 웹조사 60%)으로 단 하루 동안 조사가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성·연령·지역별 조사대상의 대표성도 취약했다. 조사가 이뤄진 4월2일은 전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경기지역 경선서 압승해 언론노출이 극대화된 날”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이나 조사일 등이 특정 후보에게 지나치게 유리했다는 설명이다.

박 대변인이 지적한 것처럼 여론조사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그 중에서도 최근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이 바로 유·무선 비율이다. 조사를 진행할 때 유선전화와 무선전화 이용자 비율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떠올랐다.

리서치 1등이 진짜 1등?
일부는 ‘숫자 장난’도


여론조사의 신뢰도 문제는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해묵은 주제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은 정확한 조사 방식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B대표는 “처음에는 집 전화(KT) 이용자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지만 신뢰도가 너무 낮아 유선 RDD(Random Digit Dialing, 무작위 전화걸기) 방식을 사용했다”며 “그마저도 결과를 맞히지 못하자 이제는 무선전화를 섞고 있다”고 말했다.

장덕현 한국갤럽 부장은 “무선 비율이 마냥 높다고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여론조사 관련 기사를 보면 ‘무선 100%가 아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댓글이 종종 있는데 장 부장은 “무선 비율을 100%로 할 경우 고령층, 여성, 주부의 표본을 잡아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B대표 역시 “우리 회사에선 유선과 무선의 비율을 25대 75 정도로 잡고 있다”며 “그 근거는 실제 집에서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비율”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유·무선 비율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9일과 10일 양일간 보도된 7종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자구도 기준으로 문 후보가 앞선 조사는 4종, 안 후보가 앞선 조사는 2종이었다. 하나는 문·안 후보의 지지율이 같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유‧무선 조합 비율에 따라 결과가 널을 뛰었다.
 

다자구도서 안 후보의 지지율이 문 후보와 같거나 앞선 3개 조사를 보면 유선 비율이 모두 40% 이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안 후보(34.4%)가 문 후보(32.2%)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칸타퍼블릭(<조선일보>) 조사에선 유선과 무선 비율이 44.9대 55.1이었다.

유선과 무선 비율을 4대6 비율로 섞어 조사한 코리아리서치(KBS·연합뉴스) 결과 역시 안 후보(36.8%)가 문 후보(32.7%)에 앞섰다. 문·안 후보가 나란히 37.7%를 기록한 리서치플러스(<한겨레신문>)의 조사에선 유선 비율이 54%, 무선 비율이 46%였다.

유·무선에 따라
결과 천차만별

반면 무선 비율이 높은 조사에선 문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유선 23.5%, 무선 76.5% 비율인 한국리서치(<한국일보>) 조사에서 문 후보는 37.7%로 안 후보(37.0%)에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유선과 무선의 비율이 19대81인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는 문 후보(41.8%)가 안 후보(37.9%)보다 높게 나타났다.

유선 14%, 무선 86%로 조사한 리서치앤리서치(MBC·<한국경제>)는 문 후보 35.2%, 안 후보 34.5% 결과였다. 무선 비율이 90%로 가장 높았던 리얼미터 조사에선 문 후보가 42.6%를 기록, 안 후보(37.2%)에 가장 우세한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유·무선 비율을 두고 “최적의 비율을 정하긴 어렵다”(장덕현 부장) “여론조사 기관마다 천차만별”(A사 B대표) 등 정답이 없다는 입장이다.

장 부장은 “표본의 대표성만 제대로 확보된다면 유·무선 비율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유·무선 비율이 5대5라 할지라도 표본만 잘 뽑으면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며 “누구든지 표본이 될 확률이 같아야 한다. 어떤 조건 때문에 누군가의 응답 확률이 낮아진다고 하면 대표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다만 “조사 방식에 있어서 유·무선을 혼합한 RDD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본 대표성이 중요
경마식 보도 대응해
비판적 시각 길러야


응답률도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이다.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ARS(자동응답시스템) 방식이 등장했다. ARS조사는 사람이 직접 전화를 걸어 조사하는 전화면접 방식과 비교해 시간과 비용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ARS조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낮은 응답률이다. 누리꾼은 지나치게 낮은 응답률의 조사를 신뢰할 수 있는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응답률을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ARS조사방식을 사용하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C사의 D대표는 “낮은 응답률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D대표 역시 ‘표본의 대표성’을 거론했는데, 다시 말해 표본만 정확하다면 응답률이 높고 낮은 것은 신뢰도에 큰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가 일정 수준의 표본을 가지고 민심을 예측하는 방법인 만큼 얼마나 응답하는지보다는 조사기관서 뽑은 표본이 얼마나 민심을 대변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전화면접 방식을 사용하는 장 부장의 입장은 다르다. 현재 수준서 응답률이 최소 10%서 15% 이상 나오는 조사의 신뢰도가 높다는 생각이다. ARS조사는 적극적 응답층만 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양 극단의 생각을 가진 지지층만 조사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ARS조사의 응답률이 2~3%에 머무는 만큼 정치에 관심이 정말 많거나 특정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의 참여 비율이 높아지면 결과가 비틀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장 부장은 “지난 대선 투표율은 75.8%로, 유권자의 4분의 3이 투표장에 나왔다. 정치에 관심이 높든 낮든 대다수의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이라며 “ARS조사로는 보편적인 여론을 잡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전화면접 방식은 사람이 직접 응대하기 때문에 응답자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낮다 해도 잡아둘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일부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ARS와 전화면접 방식을 혼용하기도 한다.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응답률이 낮은 것은 여론조사만의 문제는 아니고 광고성 전화나 일종의 전화 공해가 많아지면서 전화 거절률이 높아진 게 1차적 영향”이라며 “선거 시즌이 되면 여론조사가 굉장히 많이 진행되면서 그에 대한 피로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응답률이 높을수록 좋겠지만 낮은 응답률을 보완하기 위해 성‧연령‧지역 등 유권자들의 구성 비율을 맞출 수 있도록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며 “응답률이 높아서 나쁠 건 없지만 낮은 경우에도 보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응답률 낮으면
보완이 필요해

유·무선 비율이나 응답률, 조사방식 등에 있어서는 전문가별로 주장이 다르지만 ‘표본의 대표성’ 문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은 성·연령·지역별 유권자 비율에 맞춰 할당조사를 진행한다.

인구학적 특성에 따라 표본 수를 정한 후 그 숫자가 채워질 때까지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채 조사기간이 종료됐을 경우엔 가중치를 주는 방식으로 통계 보정에 들어간다.

여론조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에는 언론에 공표된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이 게재돼있다. 최근 진행된 여론조사를 보면 ‘3월 말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연령·지역별 가중치 부여’로 통계를 보정했다는 문구가 어김없이 기재돼있다.

일각에선 인구비례할당 방식으로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성·연령·지역별 투표율이 다르고 최근 선거가 세대·지역 대결 경향을 보이는 상황서 단순히 인구를 잣대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A사 B대표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성·연령·지역별 할당 조사를 직업·소득으로까지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며 “그보다 더 정확한 방법은 안심번호를 바탕으로 할당조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심번호는 이용자의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지 않도록 생성한 임의의 번호를 말한다. 기존에는 정당만 자체 조사를 위해 이동통신사에 안심번호를 요청할 수 있었지만 지난 2월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공표·보도 목적의 선거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은 가상번호를 요청해 조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승희 여론조사심의위 주무관은 “여론을 폭넓고 고르게 대변하는 샘플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는데 가상번호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안심번호 사용이 유·무선 RDD 방식보다 신뢰도가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B대표에 따르면 같은 표본을 가지고도 주말, 주말+평일, 평일 등 조사요일에 따라 결과가 각각 다를 수 있다. 시간대는 말할 것도 없다. 대선 지지율을 가지고 분석하면, 평일 낮 시간 조사에서는 문 후보의 지지율이 낮게 나타난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사무직 등의 직업군에서 응답률이 낮기 때문이다. 정당지지율도 영향을 끼친다. 정당지지율이 높은 당일수록 응답률이 높고 적극적으로 답한다. ‘샤이○○○’ 이라는 숨은 표가 이 지점서 발생할 수 있다.

장 부장은 질문지 역시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은 앞에 다른 이슈 질문을 하지 않고 묻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슈 질문을 한 이후에 지지도 조사를 할 경우 응답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숫자만 보지 말고
고려 대상도 분석

장 부장은 “조사방법이 전혀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추이나 추세를 분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언론이 많다. 유·무선 비율을 두고 과장하는 경우도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검증 없이 마구잡이로 인용하는 경우에도 왜곡된 정보가 전파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B대표는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만 보도하는 경향이 크다. 유권자 역시 숫자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대선 직전까지 쏟아지는 여론조사에서 진짜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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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