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쏟아지는 여론조사 ‘제대로’ 보는 법

‘지지율’ 보이는 대로 다 믿지 마세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야말로 여론조사의 시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성된 조기 대선 국면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숫자 놀음’이 한창이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지지율에 민심도 요동치기 마련. 선거를 예측하는 도구서 어느새 선거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여론조사. 범람하고 있는 여론조사 물결 속에서 ‘진짜’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오는 5월9일이면 19대 대통령이 결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되면서 60일 안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국민들은 물론 정치권조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상황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여론조사의 범람. 쏟아지는 여론조사의 향연은 대선후보를 경마장의 경주마로 만들었다.

쏟아지는 조사
후보들은 민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A사의 B대표는 “웬만한 공약보다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더 크다”며 “후보 캠프서 여론조사 결과에 민감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공약보다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가 훨씬 더 파괴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지지율에 따라 지지자들의 마음은 물론 캠프 관계자들까지 긴장한다.

최근에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수직상승하면서 독주 체제였던 대선구도가 양강 체제로 바뀌었다. 일부 조사에선 안 후보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넘어서면서 다 결정된 듯 보였던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멀찌감치 타 후보들을 앞서 나갔던 문 후보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쫓아가는 입장인 안 후보 측은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여론조사를 두고 문·안 후보 양측의 기 싸움이 시작된 건 지난 3일 <내일신문>의 보도가 발표되면서 부터였다. <내일신문>에 따르면 문·안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간 5자 가상대결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줄고, 문·안 양자 가상대결에선 안 후보가 앞섰다.


조기 대선 국면에 접어든 이후 처음으로 안 후보가 양자대결서 문 후보를 이긴다는 결과가 발표되면서 정치적 파장이 일었다.

가상의 양자대결이지만 처음으로 우위를 빼앗긴 문 후보 측은 <내일신문>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질소 포장 과자” “의도가 불순하다” “신빙성이 떨어진다” 등의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내일신문> 측은 “더문캠이 문제 삼은 이번 조사는 특정 시점과 주제를 염두에 둔 특별조사가 아니라 매달 초 진행한 정례조사”라며 “수년째 조사방식이 그대로인데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공정성을 깎아내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문 후보 측이 <내일신문> 여론조사를 두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시한 근거는 조사방법과 시기 등이다.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내일신문>조사는) 여론조사의 기본인 무선전화 조사는 아예 없었다”며 “유선전화(40%)와 인터넷(모바일 활용 웹조사 60%)으로 단 하루 동안 조사가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성·연령·지역별 조사대상의 대표성도 취약했다. 조사가 이뤄진 4월2일은 전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경기지역 경선서 압승해 언론노출이 극대화된 날”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이나 조사일 등이 특정 후보에게 지나치게 유리했다는 설명이다.

박 대변인이 지적한 것처럼 여론조사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그 중에서도 최근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이 바로 유·무선 비율이다. 조사를 진행할 때 유선전화와 무선전화 이용자 비율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떠올랐다.

리서치 1등이 진짜 1등?
일부는 ‘숫자 장난’도


여론조사의 신뢰도 문제는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해묵은 주제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은 정확한 조사 방식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B대표는 “처음에는 집 전화(KT) 이용자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지만 신뢰도가 너무 낮아 유선 RDD(Random Digit Dialing, 무작위 전화걸기) 방식을 사용했다”며 “그마저도 결과를 맞히지 못하자 이제는 무선전화를 섞고 있다”고 말했다.

장덕현 한국갤럽 부장은 “무선 비율이 마냥 높다고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여론조사 관련 기사를 보면 ‘무선 100%가 아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댓글이 종종 있는데 장 부장은 “무선 비율을 100%로 할 경우 고령층, 여성, 주부의 표본을 잡아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B대표 역시 “우리 회사에선 유선과 무선의 비율을 25대 75 정도로 잡고 있다”며 “그 근거는 실제 집에서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비율”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유·무선 비율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9일과 10일 양일간 보도된 7종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자구도 기준으로 문 후보가 앞선 조사는 4종, 안 후보가 앞선 조사는 2종이었다. 하나는 문·안 후보의 지지율이 같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유‧무선 조합 비율에 따라 결과가 널을 뛰었다.
 

다자구도서 안 후보의 지지율이 문 후보와 같거나 앞선 3개 조사를 보면 유선 비율이 모두 40% 이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안 후보(34.4%)가 문 후보(32.2%)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칸타퍼블릭(<조선일보>) 조사에선 유선과 무선 비율이 44.9대 55.1이었다.

유선과 무선 비율을 4대6 비율로 섞어 조사한 코리아리서치(KBS·연합뉴스) 결과 역시 안 후보(36.8%)가 문 후보(32.7%)에 앞섰다. 문·안 후보가 나란히 37.7%를 기록한 리서치플러스(<한겨레신문>)의 조사에선 유선 비율이 54%, 무선 비율이 46%였다.

유·무선에 따라
결과 천차만별

반면 무선 비율이 높은 조사에선 문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유선 23.5%, 무선 76.5% 비율인 한국리서치(<한국일보>) 조사에서 문 후보는 37.7%로 안 후보(37.0%)에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유선과 무선의 비율이 19대81인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는 문 후보(41.8%)가 안 후보(37.9%)보다 높게 나타났다.

유선 14%, 무선 86%로 조사한 리서치앤리서치(MBC·<한국경제>)는 문 후보 35.2%, 안 후보 34.5% 결과였다. 무선 비율이 90%로 가장 높았던 리얼미터 조사에선 문 후보가 42.6%를 기록, 안 후보(37.2%)에 가장 우세한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유·무선 비율을 두고 “최적의 비율을 정하긴 어렵다”(장덕현 부장) “여론조사 기관마다 천차만별”(A사 B대표) 등 정답이 없다는 입장이다.

장 부장은 “표본의 대표성만 제대로 확보된다면 유·무선 비율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유·무선 비율이 5대5라 할지라도 표본만 잘 뽑으면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며 “누구든지 표본이 될 확률이 같아야 한다. 어떤 조건 때문에 누군가의 응답 확률이 낮아진다고 하면 대표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다만 “조사 방식에 있어서 유·무선을 혼합한 RDD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본 대표성이 중요
경마식 보도 대응해
비판적 시각 길러야


응답률도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이다.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ARS(자동응답시스템) 방식이 등장했다. ARS조사는 사람이 직접 전화를 걸어 조사하는 전화면접 방식과 비교해 시간과 비용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ARS조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낮은 응답률이다. 누리꾼은 지나치게 낮은 응답률의 조사를 신뢰할 수 있는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응답률을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ARS조사방식을 사용하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C사의 D대표는 “낮은 응답률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D대표 역시 ‘표본의 대표성’을 거론했는데, 다시 말해 표본만 정확하다면 응답률이 높고 낮은 것은 신뢰도에 큰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가 일정 수준의 표본을 가지고 민심을 예측하는 방법인 만큼 얼마나 응답하는지보다는 조사기관서 뽑은 표본이 얼마나 민심을 대변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전화면접 방식을 사용하는 장 부장의 입장은 다르다. 현재 수준서 응답률이 최소 10%서 15% 이상 나오는 조사의 신뢰도가 높다는 생각이다. ARS조사는 적극적 응답층만 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양 극단의 생각을 가진 지지층만 조사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ARS조사의 응답률이 2~3%에 머무는 만큼 정치에 관심이 정말 많거나 특정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의 참여 비율이 높아지면 결과가 비틀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장 부장은 “지난 대선 투표율은 75.8%로, 유권자의 4분의 3이 투표장에 나왔다. 정치에 관심이 높든 낮든 대다수의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이라며 “ARS조사로는 보편적인 여론을 잡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전화면접 방식은 사람이 직접 응대하기 때문에 응답자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낮다 해도 잡아둘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일부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ARS와 전화면접 방식을 혼용하기도 한다.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응답률이 낮은 것은 여론조사만의 문제는 아니고 광고성 전화나 일종의 전화 공해가 많아지면서 전화 거절률이 높아진 게 1차적 영향”이라며 “선거 시즌이 되면 여론조사가 굉장히 많이 진행되면서 그에 대한 피로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응답률이 높을수록 좋겠지만 낮은 응답률을 보완하기 위해 성‧연령‧지역 등 유권자들의 구성 비율을 맞출 수 있도록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며 “응답률이 높아서 나쁠 건 없지만 낮은 경우에도 보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응답률 낮으면
보완이 필요해

유·무선 비율이나 응답률, 조사방식 등에 있어서는 전문가별로 주장이 다르지만 ‘표본의 대표성’ 문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은 성·연령·지역별 유권자 비율에 맞춰 할당조사를 진행한다.

인구학적 특성에 따라 표본 수를 정한 후 그 숫자가 채워질 때까지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채 조사기간이 종료됐을 경우엔 가중치를 주는 방식으로 통계 보정에 들어간다.

여론조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에는 언론에 공표된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이 게재돼있다. 최근 진행된 여론조사를 보면 ‘3월 말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연령·지역별 가중치 부여’로 통계를 보정했다는 문구가 어김없이 기재돼있다.

일각에선 인구비례할당 방식으로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성·연령·지역별 투표율이 다르고 최근 선거가 세대·지역 대결 경향을 보이는 상황서 단순히 인구를 잣대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A사 B대표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성·연령·지역별 할당 조사를 직업·소득으로까지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며 “그보다 더 정확한 방법은 안심번호를 바탕으로 할당조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심번호는 이용자의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지 않도록 생성한 임의의 번호를 말한다. 기존에는 정당만 자체 조사를 위해 이동통신사에 안심번호를 요청할 수 있었지만 지난 2월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공표·보도 목적의 선거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은 가상번호를 요청해 조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승희 여론조사심의위 주무관은 “여론을 폭넓고 고르게 대변하는 샘플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는데 가상번호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안심번호 사용이 유·무선 RDD 방식보다 신뢰도가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B대표에 따르면 같은 표본을 가지고도 주말, 주말+평일, 평일 등 조사요일에 따라 결과가 각각 다를 수 있다. 시간대는 말할 것도 없다. 대선 지지율을 가지고 분석하면, 평일 낮 시간 조사에서는 문 후보의 지지율이 낮게 나타난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사무직 등의 직업군에서 응답률이 낮기 때문이다. 정당지지율도 영향을 끼친다. 정당지지율이 높은 당일수록 응답률이 높고 적극적으로 답한다. ‘샤이○○○’ 이라는 숨은 표가 이 지점서 발생할 수 있다.

장 부장은 질문지 역시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은 앞에 다른 이슈 질문을 하지 않고 묻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슈 질문을 한 이후에 지지도 조사를 할 경우 응답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숫자만 보지 말고
고려 대상도 분석

장 부장은 “조사방법이 전혀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추이나 추세를 분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언론이 많다. 유·무선 비율을 두고 과장하는 경우도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검증 없이 마구잡이로 인용하는 경우에도 왜곡된 정보가 전파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B대표는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만 보도하는 경향이 크다. 유권자 역시 숫자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대선 직전까지 쏟아지는 여론조사에서 진짜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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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