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결산> 올해도 반복된 논란의 이사들 막전막후

돈 많이 줄 테니 회사 좀 부탁해∼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이번 주총에선 ‘경영의 투명성과 불확실성’을 타개할 만한 이사진 구성 방식이 현안으로 부각된 가운데 곳곳서 격론이 일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들이 대거 기용되면서 이른바 ‘방패막이’ 논란도 재조명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주주총회 일정을 공시한 지난해 12월 결산 상장사 2052곳 중 45%에 달하는 924곳이 지난달 24일 주총을 진행했다. 이날을 포함해 금요일(3·10·17·24·31일) 주총을 진행한 상장사는 1317곳으로 64.2%에 달했다. ‘슈퍼주총데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주총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만큼 곳곳서 이사 선임 결정을 두고 잡음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면배치 기류
권력형 인사

지난달 17일 주총을 연 LG화학은 정동민 전 대전지검 검사장을 사외이사로 뽑았다. 하나금융지주도 마찬가지로 법조인 출신이 사외이사를 맡았다. 같은 날 주총을 개최한 하나금융지주는 윤종남 전 서울남부지검 검사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현대자동차는 최은수 전 대전고법원장을 사외이사로 뽑았다.

효성은 관료 출신 사외이사를 재선임했다.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과 이병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박태호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번에 다시 뽑혔다. GS그룹 지주사인 GS는 사외이사로 양승우 안진회계법인 회장을 영입하기로 해 논란을 낳았다.

3월 끝자락 어김없이 몰린 ‘슈퍼주총’
방패막이 거물급으로 만약 사태 대비


GS는 안진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맡기고 있지는 않지만 안진회계법인은 GS 자회사인 GS글로벌을 상대로 외감을 해왔다.
 

코스닥서도 바람막이 사외이사 논란은 계속됐다. 차바이오텍은 지난달 31일 정기주총서 정중원 전 공정위 상임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정 전 상임위원은 법무법인 태평양서 고문을 맡고 있다.

내부인 선임
유명무실 견제

앞서 차바이오텍은 최순실 게이트로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정부는 차바이오텍서 선도해 온 줄기세포 치료제 규제를 풀어줬고, 이 때문에 특혜 시비에 휘말렸다.

지난달 17일 바이로메드는 주총을 열어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 조사국 출신인 김병욱씨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CJ E&M은 사외이사로 박양우 전 문화관광부 차관을 뽑기로 했다. 같은 CJ그룹 계열사인 CJ오쇼핑은 강대형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달 18일 정기주총서 이사 선임 및 보수한도 증액 등을 모두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내부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계획이 알려지면서 독립성 논란을 겪은 사외이사 선임 안건도 이날 주총서 모두 승인됐다.

사외이사인 감사위원회 감사위원으로는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이우영 전 태평양제약 대표이사 사장, 이옥섭 바이오랜드 부회장이 신규 선임됐다.


흥미로운 점은 주총 안건을 두고 소액주주들의 적극적인 대응방식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일부 주주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고자 단체행동을 불사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이 같은 분위기를 신경 쓰는 기업도 많아졌다.

네오디안테크놀로지는 지난달 24일 주총 진행 과정서 편법을 동원해 졸속으로 진행했다는 주장과 함께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회사를 향한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일부 주주들은 다음 주총에선 의결권을 최대한 모아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네오디안테크는 주총서 감사 선임 의안이 모두 부결돼 현재 후임 감사가 공석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달 중 임시 주총을 다시 개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들은 임시주총이 열리는 날까지 의결권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더는 못 참아”
주주들의 반란

대한방직 기존 경영진은 표대결까지 치르면서 가까스로 경영권을 방어했다. 대한방직은 지난달 24일 정기주총 결과 회사 측 추천 후보인 설범, 김인호 현 대표이사가 재선임됐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측이 제안한 이남석, 신명철 등 6명의 사내·사외이사 선임 안건들은 모두 과반수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회사 측이 추천한 김성호 감사 후보 선임안도 득표수 미달로 부결됐다. 신명철 등 소액주주들은 주총 전 김성호 감사의 적격성, 설범 회장의 개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경영진 교체를 주장했었다.

사외이사 독립성 논란으로 정기주주총회를 연기한 LG디스플레이는 결국 사외이사를 교체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달 23일 경기도 파주공장서 제 32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장진 경희대 석학교수를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당초 권오경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를 신규 선임하려다 독립성 논란이 일자 임기만료로 물러나기로 했던 장진 교수로 후보를 급히 교체했다.

지난 7일 대신지배구조연구소가 "사외이사 후보인 권오경 한양대 교수가 3년여 간 LG디스플레이와 기술자문·지도 계약을 체결한 바 있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문제를 제기한 데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지난 16일 예정이었던 주총은 일주일 연기돼 이날 열렸다.

친기업 성향으로 선임 ‘독립성’ 논란
주주들의 반란…교묘해진 불만 달래기

효성도 주주총회서 사외이사 3명의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 부결됐다. 효성은 지난달 17일 열린 정기주총을 열고 김상희 ·한민구·손병두·이병주·박태호 사외이사를 재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김상희·한민구·이병주 이사의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안건은 과반인 50%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이들은 10년 안팎의 오랜기간 사외이사를 역임해 '독립성' 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 등 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김상희 이사는 지난 2007년부터, 한민구 이사는 2009년부터 효성 사외이사로 선임된 후 계속 이사직을 유지해왔다. 이병주 이사는 2013년부터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이처럼 주주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주총을 예의주시함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려는 기업들의 꼼수는 계속된다. 

게다가 일부 대기업은 일부 이사·감사 선임안에 대한 의결권 자문기관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도한 겸직이나 특수관계에 있는 임원 선임에 대한 독립성 훼손 우려가 제기됐지만 대다수 주총서 모두 원안대로 승인됐다.

주주 외면
꼼수 빈번

증권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는 예산 결정, 재무제표 승인, 대표이사 선임에 참여대주주 독단을 감시함으로써 주주이익을 보호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부적절한 로비 창구가 되거나 거수기 노릇을 하는 모습이 곳곳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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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