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아직도 잘못 모르는 박근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4.03 09:37:56
  • 호수 1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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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평 독방행’ 칠순도 감옥서 지낼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서 그간의 ‘정치 인생’이 막을 내리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뇌물 혐의로 구속되면서 ‘인생’까지 막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범죄자 신세로 전락했다. 파란만장한 박 전 대통령의 인생사를 돌아봤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가 삼성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청구한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지난달 31일 법원서 발부됐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지난달 30일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다음 날 오전 3시3분에 발부했다. 강 판사는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사유를 설명했다.

주요 혐의 소명
증거인멸 우려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검찰은 최장 20일 동안 박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할 수 있지만,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공식 선거일이 시작되는 오는 달 17일 전에는 수사를 마무리하고 재판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구속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된 지 21일 만이다. 대통령에서 범죄자로 전락하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사였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2일 경북 대구시 삼덕동(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서 당시 육군본부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학교 교사 출신 육영수 여사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서울서 자랐다.

아홉 살이 되던 해인 1961년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박정희 소장이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2년 뒤인 1963년 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큰 영애’로 불리며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시기부터 각종 외교행사에 참석했다. 1966년 존슨 미국대통령 방한 당시 ‘한국의 밤’ 행사에 등장했고, 1968년 9월에는 대통령 부부의 호주 방문에 동행했다. 1969년에는 일본 요코하마서 열린 당시 세계 최대 유조선인 ‘유니버스 코리아호’의 진수식에서 샴페인을 터트리기도 했다.

성심여중에 입학한 박 전 대통령은 성심여고 졸업까지 재학하는 동안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1974년 서강대 이공학부(전자공학 전공)를 4년 평균 학점 4점 만점에 3.82로 수석 졸업했다.

탄핵으로 사실상 ‘정치인생’ 막 내려
뇌물혐의 구속…‘인생’도 막 내릴 위기

대학 졸업 후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그해 8월15일, 어머니 육 여사가 광복절 기념식장서 문세광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하면서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생활도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가량 지나 서울 신당동 자택으로 들어가 18년간 칩거 생활을 했다. 당시 27세의 박 전 대통령은 두 동생들과 청와대를 나와 육영재단 운영 외 특별한 직업이나 대외활동 없이 18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최태민 목사와 그의 딸 최순실씨, 최씨의 남편 정윤회씨 등 일부 측근들에 의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칩거 기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이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 가치관이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세상으로 다시 걸어 나온 건 1997년이었다. 그해 대선을 불과 여드레 앞두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에 대한 지지선언으로 정치행보를 시작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정치권의 영입 제안을 여러 번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 후보는 대선서 패배했고 박 전 대통령은 대구 달성 재보선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천부적 재질을 타고난 듯했다. 사람들은 그의 정치 감각을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인 2002년 이 총재가 자신이 주장한 당개혁안(총재직 폐지, 당권.대권 분리)을 수용하지 않자 탈당하는 강수를 둬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가혹한 운명
역사에 오점

한나라당은 이후 이 총재의 대선패배와 이후 차떼기사건 수사,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등으로 사면초가에 내몰렸다. 박 전 대통령은 당을 살릴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판했다. 2004년 천막당사서 보여준 원칙과 개혁의 리더십은 명실상부 차기 대권주자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2006년 5월20일. 서울시장 선거 유세지원 현장서 괴한에게 커터칼 피습을 당해 오른쪽 뺨 11㎝가 찢겨 대수술을 받았음에도 깨어나자마자 선거 격전지인 대전 지역의 판세를 걱정하는 "대전은요?"라는 첫 마디로 단숨에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면모를 보였다.
 

2007년 당 경선에선 이명박 후보에게 밀렸으나 또다시 위기에 빠진 당의 구원투수로 전면에 나서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개혁에 착수, 2012년 4월 총선서 야권연대로 맞선 민주통합당을 누르고 과반 의석(152석) 확보에 성공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압도적 지지로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으며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개정했다. 이후 2012년 12월 치러진 대선에서 득표율 51.7%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꺾고 승리하며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2월25일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4대 국정기조로 제시하며 5년 임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대내외 악재에 크게 흔들렸고 이를 수습하느라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빚었다.

취임 첫 해부터 박 전 대통령은 인사난맥으로 위기를 맞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를 시작으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내정자 등이 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줄줄이 낙마했다.

특히 미국 순방 도중 벌어진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문 사태가 국제적 큰 화젯거리로 부상하며 박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장관 사퇴와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가 이어져 인사 실패 논란은 계속됐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은 인사수석실을 신설하는 등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을 개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인사 문제가 계속 지적돼 인사에 골머리를 앓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인사 실패와 더불어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논란도 구설수에 올랐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2014년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민간인 사찰 의혹 등으로 박 전 대통령은 국론분열과 민심악화를 겪은 것이다. 이는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집권 2년차인 2014년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비선 실세 문건 파동 등으로 또 한 번 국정운영에 위기를 맞았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2년차를 맞아 2014년 2월25일 취임 1주년 대국민담화를 통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제시하며 경제살리기 성과 창출에 대한 의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해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로 국정운영이 사실상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사고 현장을 방문하는 등 수색과정을 챙겼지만 ‘세월호 7시간 의혹’만이 남았다. 특히 수습과정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부조리,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청와대의 태도 등은 국민의 공분을 샀고 결국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은 참사 한 달여 만에 대국민담화를 통해 해양경찰청 해체를 선언하고 국가안전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사고 책임 차원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던 정홍원 전 총리를 유임시키는 등 진통이 계속 이어졌다.

최씨의 전 남편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박 전 대통령은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박 전 대통령은 비선 실세 의혹을 ‘지라시’ 수준으로 규정하며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하지만 문건 유출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최모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이 발생하며 파장이 확대됐다.

선거의 여왕
어쩌다 이 지경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갈등이 드러나며 청와대 내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받으며 국정운영이 순탄치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를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의 원년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는 사회 각 부문의 강력한 개혁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2015년이 구조개혁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측근들이 연루되는 등 국정 동력을 상실했다.

2015년 4월 자살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금품 리스트’ 메모가 정권에 악재로 작용했다. 메모에 이완구 전 총리와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도 20%대로 곤두박질쳤다.

당시 일각에선 ‘조기 레임덕’을 우려했다. 파문은 현직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로 연결됐고 이 전 총리는 결국 낙마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4·29 재보선 압승으로 국정동력을 회복하는 듯했다.
 

집권 4년차에 들어선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은 20대 총선서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레임덕에 빠지게 됐다. 지난 16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국정 동력도 크게 떨어진 것.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협치(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는 의미)’를 내세웠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둘러싼 야당과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청문회 개최 요건을 완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취임 후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와의 협치도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질곡의 65년 인생사 
굴곡의 18년 정치사

일각에선 지난해 7월 처가의 부동산 매매로부터 시작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박 전 대통령을 몰락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박 전 대통령은 우 전 수석의 자진사퇴를 주장하던 야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우 전 수석을 품고 놓지 않은 점이 큰 요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우 전 수석을 감싸는 동안 최씨가 현 정부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이 점차 불거졌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4일 국면 회복을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제시한 당일 최 씨의 태블릿PC와 관련한 JTBC의 보도가 나오면서 모든 것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JTBC는 2015년 10월 최씨에게 대통령 연설문과 각종 정부 문건들이 유출됐다는 보도를 시작으로 최씨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시·학사부정, K스포츠·미르재단 설립지원 등을 보도했다. 이는 ‘최순실 게이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JTBC 보도 다음날 대국민사과에 나서는 등 총 세 차례 대국민담화를 했다. 새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전권을 맡기고 자신은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며 여야가 자신의 진퇴 문제를 합의하면 그에 따르겠다고도 약속했다.

4년 집권 내내
조용한 날 없어

하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2016년 12월9일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로 박 전 대통령은 직무정지상태를 맞았다. 그로부터 91일 만인 지난달 10일 헌재 탄핵심판으로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으로 물러난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cmp@ilyosisa.co.kr>

 

[최순실 게이트 일지]

<2016년>
▲10월24일 = 최순실 국정운영 개입 의혹 보도.
▲10월31일 = 최순실 피의자 소환조사. 긴급체포
▲11월4일 = 박 전 대통령 두 번째 대국민 담화. ‘검찰 조사·특검 수용’입장 발표
▲11월20일 = 최순실·안종범·정호성 구속기소
▲11월27일 = 차은택·송성각 전 원장 구속기소
▲11월29일 = 박 전 대통령, 세 번째 대국민 담화. “진퇴 문제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입장 표명
▲12월08일 = 장시호 구속기소
▲12월28일 = 문형표 조사 중 피의자 입건·긴급체포

<2017년>
▲1월22일 = 최순실 체포영장 청구. 최순실 체포영장 발부
▲1월29일 = 남궁곤 이대 전 입학처장 구속기소
▲2월07일 = 김기춘·조윤선 구속기소
▲2월15일 = 최경희 전 이대 총장 구속
▲2월17일 = 이재용 부회장 구속
▲2월22일 = 우병우 구속영장 기각. 박채윤 구속기소
▲3월10일 =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파면 결정.
▲3월21일 = 박 전 대통령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 조사
▲3월31일 =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서울구치소 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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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이른바 ‘통일교 특검’이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는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지원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법을 각자 발의한 뒤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1일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법의 국회 통과)을 설(내년 2월17일) 연휴 전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치인 줄줄이 특검 수사의 초점은 정치인 개개인의 비위 여부를 넘어, 통일교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접근해 정책·인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이다. 수사선상에는 통일교 지도부와 핵심 실무 라인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이 거론된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통일교 내부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수사의 출발점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과 관련된 자료다. 윤 전 본부장은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에게 현금과 고가 물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해 통일교 본부 및 산하 단체 회계, 자금 집행 내역, 내부 문건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의 불법 지시는 없었다”며 일부 인사의 개인적 일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특검은 지도부 보고·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특검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사의 외연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광역단체장,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의원, 강선우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언론 보도에서 거론됐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성동 의원, 김규환 전 의원 등이 수사 관련 기사에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통일교와의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이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진술과 물증을 대조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인물은 전 전 장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전후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 각자 특검법 발의 후 협의키로 여야 막론 정교 유착 전모 밝혀지나 해당 의혹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경찰과 특검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실제 금품 전달 여부와 함께, 당시 전 전 장관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전 전 장관은 관련 보도 직후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 오고 있다. 같은 당의 임 전 의원 역시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 명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이나 전달 시점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 측이 “여야 정치인 다수에게 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실명이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특검이 임 전 의원을 포함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쟁점은 통일교와의 관계가 단순한 접촉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품수수로 이어졌는지다. 임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강 의원은 금품수수보다는 ‘접촉·관리 대상’ 의혹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보도된 통일교 관계자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언급에서 강 의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해당 보도들은 통일교 측이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관리하며 접근 전략을 세웠다는 의혹을 전하는 맥락에서 강 의원을 언급했다. 현재까지 강 의원과 관련해 현금이나 물품 제공 정황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없다. 그는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노 전 실장 역시 통일교 인사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문건에서 이름이 언급됐다는 언론 보도로 연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통일교가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 인사’로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노 전 실장 측은 통일교와의 불법적 관계나 금품수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 의원이 통일교 특검 국면에서 가장 무겁게 거론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또는 현금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권력 과시 여야 통일? 쟁점은 자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정치자금으로 신고됐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권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통일교 측이 관리·접촉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인 명단 관련 보도에서 이름이 등장했다. 그의 경우도 구체적인 금품 전달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보다는,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접점 인사’로 분류됐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의 실질적 연결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공통적인 흐름이 드러난다. 2018년 전후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로비를 담당하는 실무·재정 라인이 가동됐다는 진술이 나오고, 2022년 이후 통일교 지도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정치권 접촉 내역이 재조명됐다. 2024~2025년에는 경찰 수사와 특검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 고위 인사 진술, 녹취, 내부 문건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며 정치인 실명 보도가 잇따랐다. 의혹의 유형을 나누면 세 가지로 첫째, 전재수·권성동처럼 현금 또는 정치자금 성격을 띤 자금 제공 의혹이 직접 제기된 경우다. 둘째, 임종성처럼 통일교 측 진술에서 ‘자금 전달 대상’으로 언급됐으나 구체성이 아직 부족한 경우다. 셋째, 강선우·노영민·김규환처럼 통일교 내부 녹취나 문건에서 ‘접촉·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경우다. 특검은 이 세 유형을 종합해 통일교의 정치권 접근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계획적·조직적이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특검의 법적 판단은 몇 가지 체크 리스트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자금 또는 물품이 실제로 정치인 또는 그 측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물증(계좌 흐름, 현금 출처, 구매 내역)이 확보되는지 여부다. 줬다는데 안 받았다 또 해당 정치인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나 편의 제공 요구가 있었는지, 즉 대가성이 입증되는지다. 이어 자금이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통일교 지도부 또는 조직의 승인·묵인 아래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 정치자금으로 볼 경우 신고 누락이 있었는지, 뇌물로 볼 경우, 공소시효와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통일교 특검에서 거론된 정치인들과 관련한 보도는 모두 ‘의혹 제기’ 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특검이 이 사안을 개별 정치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종교단체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장기적 로비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소환과 기소 여부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특검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고가 선물 수수 의혹이다. 통일교 측이 명품 가방과 귀금속 등을 전달하며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안은 정치인 대상 로비와는 별도의 트랙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동일한 자금·조직 라인을 활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며,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고 있다. 특검이 들여다보는 ‘로비 방식’은 전통적인 봉투 전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교 및 연계 단체들은 국제회의, 평화 포럼, ‘평화대사’ 위촉 행사 등을 통해 정치인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식 행사 뒤편에서 현금·물품 제공이나 정치적 대가성 요구가 있었는지다. 특검은 행사 전후 일정, 면담 기록, 수행 인력 동선, 통신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접촉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상 신고되지 않은 후원이거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여야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장 관리에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하나같이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 레퍼토리 반복···한 입서 나온 증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불법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은 힘을 잃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검의 성패가 ‘대가성 입증’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친분 관계나 종교 행사 참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금품 제공과 구체적 직무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 문제도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이 초기부터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교 특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돼온 ‘종교-정치 유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사가 개인 처벌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통일교 특검이 던진 질문은 “정치가 누구의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였느냐?”다. 특검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그 결과가 한국 정치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핵심 피고인·피의자로는 통일교 지도부(한학자 총재)와 통일교 고위 간부(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한 언론은 특별검사팀 발표를 인용해 한 총재가 통일교 자금의 유용 및 증거인멸 지시,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됐고, 김건희(전 영부인)씨 및 권 의원(국민의힘)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자금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 2022년 7월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기관 주장’으로 적시돼있으며, 당사자들은 부인 취지 입장을 밝혀왔다. 로비 자금의 ‘규모’ 논란을 키운 장면은 통일교 핵심 시설(가평 천정궁) 압수수색 과정에서 거액 현금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MBC>는 특검 압수수색 당시 한학자 총재 개인 금고에서 외화 포함 약 280억원 상당 현금이 확인됐다며, 이 돈이 통일교 회계와 별개로 관리된 자금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 로비 자금’ 의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전후 ‘정치 후원금’ 형태의 지원 의혹으로는, 법정 진술을 인용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백경현(경기 구리시장), 김진태(강원도지사) 등의 이름과 액수가 거론됐다고 알려졌다. 또 나온 김건희 통일교 로비 의혹의 ‘작동 방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산하·연계 조직의 외피를 통한 접점 확보다. 예컨대 UPF(천주평화연합) 같은 NGO 성격 단체가 각종 국제 행사(월드서밋 등)를 주최하고, ‘평화대사’ 위촉 등으로 정치인·지자체 관계자·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UPF가 권역을 나눠 주요 인사를 접촉·관리하는 구조였다는 의혹을 전하며, 자금 집행과 조직적 접촉이 실제 정치자금 제공이나 청탁과 연결됐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