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아직도 잘못 모르는 박근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4.03 09:37:56
  • 호수 1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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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평 독방행’ 칠순도 감옥서 지낼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서 그간의 ‘정치 인생’이 막을 내리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뇌물 혐의로 구속되면서 ‘인생’까지 막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범죄자 신세로 전락했다. 파란만장한 박 전 대통령의 인생사를 돌아봤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가 삼성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청구한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지난달 31일 법원서 발부됐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지난달 30일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다음 날 오전 3시3분에 발부했다. 강 판사는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사유를 설명했다.

주요 혐의 소명
증거인멸 우려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검찰은 최장 20일 동안 박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할 수 있지만,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공식 선거일이 시작되는 오는 달 17일 전에는 수사를 마무리하고 재판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구속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된 지 21일 만이다. 대통령에서 범죄자로 전락하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사였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2일 경북 대구시 삼덕동(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서 당시 육군본부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학교 교사 출신 육영수 여사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서울서 자랐다.

아홉 살이 되던 해인 1961년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박정희 소장이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2년 뒤인 1963년 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큰 영애’로 불리며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시기부터 각종 외교행사에 참석했다. 1966년 존슨 미국대통령 방한 당시 ‘한국의 밤’ 행사에 등장했고, 1968년 9월에는 대통령 부부의 호주 방문에 동행했다. 1969년에는 일본 요코하마서 열린 당시 세계 최대 유조선인 ‘유니버스 코리아호’의 진수식에서 샴페인을 터트리기도 했다.

성심여중에 입학한 박 전 대통령은 성심여고 졸업까지 재학하는 동안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1974년 서강대 이공학부(전자공학 전공)를 4년 평균 학점 4점 만점에 3.82로 수석 졸업했다.

탄핵으로 사실상 ‘정치인생’ 막 내려
뇌물혐의 구속…‘인생’도 막 내릴 위기

대학 졸업 후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그해 8월15일, 어머니 육 여사가 광복절 기념식장서 문세광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하면서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생활도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가량 지나 서울 신당동 자택으로 들어가 18년간 칩거 생활을 했다. 당시 27세의 박 전 대통령은 두 동생들과 청와대를 나와 육영재단 운영 외 특별한 직업이나 대외활동 없이 18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최태민 목사와 그의 딸 최순실씨, 최씨의 남편 정윤회씨 등 일부 측근들에 의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칩거 기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이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 가치관이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세상으로 다시 걸어 나온 건 1997년이었다. 그해 대선을 불과 여드레 앞두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에 대한 지지선언으로 정치행보를 시작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정치권의 영입 제안을 여러 번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 후보는 대선서 패배했고 박 전 대통령은 대구 달성 재보선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천부적 재질을 타고난 듯했다. 사람들은 그의 정치 감각을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인 2002년 이 총재가 자신이 주장한 당개혁안(총재직 폐지, 당권.대권 분리)을 수용하지 않자 탈당하는 강수를 둬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가혹한 운명
역사에 오점

한나라당은 이후 이 총재의 대선패배와 이후 차떼기사건 수사,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등으로 사면초가에 내몰렸다. 박 전 대통령은 당을 살릴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판했다. 2004년 천막당사서 보여준 원칙과 개혁의 리더십은 명실상부 차기 대권주자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2006년 5월20일. 서울시장 선거 유세지원 현장서 괴한에게 커터칼 피습을 당해 오른쪽 뺨 11㎝가 찢겨 대수술을 받았음에도 깨어나자마자 선거 격전지인 대전 지역의 판세를 걱정하는 "대전은요?"라는 첫 마디로 단숨에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면모를 보였다.
 

2007년 당 경선에선 이명박 후보에게 밀렸으나 또다시 위기에 빠진 당의 구원투수로 전면에 나서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개혁에 착수, 2012년 4월 총선서 야권연대로 맞선 민주통합당을 누르고 과반 의석(152석) 확보에 성공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압도적 지지로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으며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개정했다. 이후 2012년 12월 치러진 대선에서 득표율 51.7%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꺾고 승리하며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2월25일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4대 국정기조로 제시하며 5년 임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대내외 악재에 크게 흔들렸고 이를 수습하느라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빚었다.

취임 첫 해부터 박 전 대통령은 인사난맥으로 위기를 맞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를 시작으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내정자 등이 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줄줄이 낙마했다.

특히 미국 순방 도중 벌어진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문 사태가 국제적 큰 화젯거리로 부상하며 박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장관 사퇴와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가 이어져 인사 실패 논란은 계속됐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은 인사수석실을 신설하는 등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을 개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인사 문제가 계속 지적돼 인사에 골머리를 앓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인사 실패와 더불어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논란도 구설수에 올랐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2014년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민간인 사찰 의혹 등으로 박 전 대통령은 국론분열과 민심악화를 겪은 것이다. 이는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집권 2년차인 2014년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비선 실세 문건 파동 등으로 또 한 번 국정운영에 위기를 맞았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2년차를 맞아 2014년 2월25일 취임 1주년 대국민담화를 통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제시하며 경제살리기 성과 창출에 대한 의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해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로 국정운영이 사실상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사고 현장을 방문하는 등 수색과정을 챙겼지만 ‘세월호 7시간 의혹’만이 남았다. 특히 수습과정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부조리,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청와대의 태도 등은 국민의 공분을 샀고 결국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은 참사 한 달여 만에 대국민담화를 통해 해양경찰청 해체를 선언하고 국가안전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사고 책임 차원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던 정홍원 전 총리를 유임시키는 등 진통이 계속 이어졌다.

최씨의 전 남편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박 전 대통령은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박 전 대통령은 비선 실세 의혹을 ‘지라시’ 수준으로 규정하며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하지만 문건 유출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최모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이 발생하며 파장이 확대됐다.

선거의 여왕
어쩌다 이 지경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갈등이 드러나며 청와대 내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받으며 국정운영이 순탄치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를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의 원년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는 사회 각 부문의 강력한 개혁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2015년이 구조개혁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측근들이 연루되는 등 국정 동력을 상실했다.

2015년 4월 자살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금품 리스트’ 메모가 정권에 악재로 작용했다. 메모에 이완구 전 총리와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도 20%대로 곤두박질쳤다.

당시 일각에선 ‘조기 레임덕’을 우려했다. 파문은 현직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로 연결됐고 이 전 총리는 결국 낙마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4·29 재보선 압승으로 국정동력을 회복하는 듯했다.
 

집권 4년차에 들어선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은 20대 총선서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레임덕에 빠지게 됐다. 지난 16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국정 동력도 크게 떨어진 것.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협치(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는 의미)’를 내세웠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둘러싼 야당과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청문회 개최 요건을 완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취임 후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와의 협치도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질곡의 65년 인생사 
굴곡의 18년 정치사

일각에선 지난해 7월 처가의 부동산 매매로부터 시작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박 전 대통령을 몰락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박 전 대통령은 우 전 수석의 자진사퇴를 주장하던 야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우 전 수석을 품고 놓지 않은 점이 큰 요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우 전 수석을 감싸는 동안 최씨가 현 정부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이 점차 불거졌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4일 국면 회복을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제시한 당일 최 씨의 태블릿PC와 관련한 JTBC의 보도가 나오면서 모든 것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JTBC는 2015년 10월 최씨에게 대통령 연설문과 각종 정부 문건들이 유출됐다는 보도를 시작으로 최씨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시·학사부정, K스포츠·미르재단 설립지원 등을 보도했다. 이는 ‘최순실 게이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JTBC 보도 다음날 대국민사과에 나서는 등 총 세 차례 대국민담화를 했다. 새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전권을 맡기고 자신은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며 여야가 자신의 진퇴 문제를 합의하면 그에 따르겠다고도 약속했다.

4년 집권 내내
조용한 날 없어

하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2016년 12월9일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로 박 전 대통령은 직무정지상태를 맞았다. 그로부터 91일 만인 지난달 10일 헌재 탄핵심판으로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으로 물러난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cmp@ilyosisa.co.kr>

 

[최순실 게이트 일지]

<2016년>
▲10월24일 = 최순실 국정운영 개입 의혹 보도.
▲10월31일 = 최순실 피의자 소환조사. 긴급체포
▲11월4일 = 박 전 대통령 두 번째 대국민 담화. ‘검찰 조사·특검 수용’입장 발표
▲11월20일 = 최순실·안종범·정호성 구속기소
▲11월27일 = 차은택·송성각 전 원장 구속기소
▲11월29일 = 박 전 대통령, 세 번째 대국민 담화. “진퇴 문제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입장 표명
▲12월08일 = 장시호 구속기소
▲12월28일 = 문형표 조사 중 피의자 입건·긴급체포

<2017년>
▲1월22일 = 최순실 체포영장 청구. 최순실 체포영장 발부
▲1월29일 = 남궁곤 이대 전 입학처장 구속기소
▲2월07일 = 김기춘·조윤선 구속기소
▲2월15일 = 최경희 전 이대 총장 구속
▲2월17일 = 이재용 부회장 구속
▲2월22일 = 우병우 구속영장 기각. 박채윤 구속기소
▲3월10일 =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파면 결정.
▲3월21일 = 박 전 대통령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 조사
▲3월31일 =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서울구치소 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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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