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뜨고 진’ 먹거리 아이템 백태

‘줄’ 보고 들어갔다 한방에 ‘훅’ 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만 대왕카스테라 논란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만서 건너온 달콤한 빵은 입소문을 타고 카스텔라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전국 각지에 매장이 들어서는 등 인기를 누리던 것도 잠시, 방송 한 번에 말 그대로 ‘훅’ 갔다. 기존 점주, 신입 점주, 예비 점주 모두 멘탈 붕괴 상태. ‘줄’ 보고 들어갔다 연기처럼 사라진 먹거리 아이템을 <일요시사>가 조명해봤다.

최근 창업시장은 취업시장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었다. 은퇴한 직장인이나 취업에 실패한 구직자들이 창업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성공까지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10여년 전 커피전문점 창업이 큰 인기를 끌었던 때와 비교해보면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붐’에 가까웠던 창업 열기는 이제 더 이상 느낄 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유행 따라 창업
실패 확률 높아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영업 현황분석’에 따르면, 전체 자영업체 4곳 중 1곳은 사업 기간이 2년 미만인 신생업체다. 음식점업의 경우 10곳 중 4곳이 창업한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5곳 중 1곳은 연 매출이 1200만원 이하로 월 매출이 100만원도 안 됐다.

정부 당국서 발표한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를 보면 업계 분위기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지난달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의 현재경기지수는 65.04로 직전 분기보다 2.47포인트 떨어졌다. 현재경기지수는 1년 전 상황을 100으로 가정할 때 최근 3개월 동안 성장과 위축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진입장벽이 낮아 경쟁이 격화된 데다 소비심리까지 위축되면서 경기가 크게 악화된 점을 부진의 이유로 분석했다.

최근 채널A 시사프로그램 <먹거리X파일>에 방송된 이후 빠른 속도로 하락세를 타고 있는 대만 대왕카스테라는 현재 우리나라 자영업 실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먹거리X파일>은 지난 12일 대만 대왕카스테라가 제조 과정서 식용유를 과다하게 사용한다는 비판적인 내용의 방송을 보도했다. 방송 직후 대만 대왕카스테라가 포털 사이트서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관심은 즉시 매출 하락으로 나타났다.

SNS,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으로 피해를 봤다는 대만 대왕카스테라 업주들의 글이 이어졌다. 대만 대왕카스테라 매장의 아르바이트생이 제조과정에 대해 말하며 <먹거리X파일>이 지나친 일반화를 하고 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한 업주는 “폐업하게 됐다. ‘대부분 업체가 이렇게 만든다’는 무책임한 한 줄 때문에 억대의 빚이 생겼다”며 “이틀 전부터 문 닫은 카스텔라 가게가 수두룩한데 왜 당신들 때문에 죄 없는 우리가 파산해야 하냐”고 토로했다. 해당 글은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나갔고 누리꾼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일각에선 대만 대왕카스테라의 몰락에 <먹거리X파일>이 치명타를 입힌 건 맞지만 이미 인기가 떨어지는 중이었다고 분석했다. 방송이 속도를 가속했을 뿐 유행이 끝나가던 시점이었다는 것.

대만서 건너와 입소문을 탄 대왕카스테라의 초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30분 넘게 매장 앞에 줄을 섰고, 일부 매장에선 판매 개수를 1인당 1개로 제한하기까지 했다.


대왕카스테라 방송 보도 이후 ‘휘청’
대유행 좇아 매장 차린 업자들 ‘울상’

이달 초까지만 해도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역사 내 매장 앞에 세워놓은 입간판에는 시간별로 ‘매진’ 딱지가 붙어 있었다.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돌자 순식간에 매장이 늘어났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사이 입소문을 탔던 속도와 엇비슷하게 유행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매 시간 입간판에 붙어 있던 매진 딱지가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주재료인 달걀값 폭등으로 1차 충격, 방송보도로 카운터를 맞고 결국 주저앉았다. 매장 앞에 서 있는 줄을 보고 사업에 뛰어들었던 점주들은 허탈한 상황에 처했다.

트렌드 변화 주기가 빠른 국내서 유행에 따라 흥했다가 한순간에 몰락한 먹거리 아이템은 발에 차일 정도도 수두룩하다. 2015년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신규 자영업자의 사업 준비기간은 ‘1∼3개월 미만’이 절반 이상이다. 은행 대출 등을 통해 사업 자금을 마련하는 경우는 10명 중 3명꼴이었다.

준비가 부족한 상황서 빚을 내 유행하는 업종을 좇다 망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자영업 창업이 과밀업종에 집중되다 보니 그로 인한 자영업의 수익 구조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준비부족-사업부진-부채증가-폐업-유행하는 자영업 재진입-공급과잉-폐업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찜닭’이다. 우리나라 치킨 소비량은 지난해 기준 연간 8억마리, 1인당 14마리, 성인 기준 20마리 이상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2만4453개로,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동네 치킨집까지 더하면 현재 4만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수(3만6000여개)보다 국내 치킨 매장이 많다.

초반 반짝 인기
지속 가능성↓

닭을 주재료로 하는 사업이지만 치킨이 사람들의 삶에 완전히 녹아든 것과 반대로 찜닭 열풍은 채 1년이 못돼 수그러들었다. 골목마다 찜닭집이 생길 정도로 특수를 누렸던 때가 거짓말 같을 정도다. 2002년 전국적으로 찜닭 체인업체만 20여개에 달했다. 경기 안양시의 한 먹거리촌에는 불과 1km 사이에 3∼4곳의 매장이 몰려 있었다.

찜닭과 함께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아이스크림 전문점 캔모아, 아이스베리, 레드망고도 추억의 이름이 됐다. 200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캔모아에 방문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1999년 한국 최초 생과일 전문점으로 문을 연 캔모아는 그네의자, 토스트, 과일빙수 등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학창시절의 경험담 정도로 회자된다. 요거트에 다양한 토핑으로 인기를 모았던 레드망고도 자취를 감췄다.

번(BUN)을 주력 메뉴로 밀었던 카페 로티보이의 몰락도 비슷한 예다. 번은 버터 필링이 돼있는 생지를 발효시켜 그 위에 커피크림을 토핑하고 구워내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부드럽고 짭조름한 맛이 특징이다. 2007년 3월 서울 이화여대점을 시작으로 국내에 도입된 카페 로티보이는 ‘번 열풍’을 주도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인기 끌면 몰려
매장 우후죽순

특히 2009년에는 백화점에 입점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칼로리가 낮고 식사대용으로 유용해 20∼30대 젊은 층의 관심을 받았던 카페 로티보이는 2012년 창업 5년 만에 최종부도 처리됐다. 이후 새로운 파트너와 부활의 날갯짓을 했지만 과거의 영광은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망치로 부숴 먹는 과자’ 슈니발렌도 한때 열풍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다. 번 열풍이 사라진 이후 그 자리를 차지한 독일과자 슈니발렌은 독일 로텐부르크 지방의 전통과자로, 동그란 공 모양처럼 생겨 기름에 튀겨낸 제품이다.

2012년 한창 슈니발렌 열풍이 불 당시에는 개당 3500원짜리 과자를 위해 사람들이 매장 앞에 줄 서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과자를 나무망치로 깨 먹는 색다른 방식에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큰 인기를 누렸다. 그것도 잠시, ‘강남과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팔던 슈니발렌의 인기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국민간식’ 떡볶이 열풍도 사그라지는 추세다. 학교 앞 포장마차서 팔던 떡볶이가 프랜차이즈화되면서 가맹점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가장 먼저 가맹점을 시작한 아딸(아버지 튀김 딸 떡볶이), 매운맛의 죠스떡볶이, 국물 떡볶이를 주력으로 하는 국대떡볶이 등이 빠르게 시장을 점령했다.

2013년 3000억원대까지 성장했던 떡볶이 프랜차이즈 시장은 점차 가맹점 수가 줄고 실적이 나빠지는 등 하향세를 타고 있다.


아딸의 경우 한때 가맹점이 1000개를 넘어섰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800개 선을 유지 중이다. 영업이익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죠스떡볶이도 초반에는 가맹점수가 400개 가까이 늘었다가 최근 300개 초반대로 줄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반 토막 수준으로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떡볶이 시장의 위축은 대체 상품의 증가, 편의점 상품의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2013년에는 ‘밥버거’가 대세였다. 김치, 참치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주먹밥 형태의 밥 버거는 당시 소자본 창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바쁜 현대인의 한 끼를 저렴한 가격으로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이었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의 특성상 창업자들이 몰렸고, 매장은 광범위하게 늘어났다.

시장이 커지자 비슷한 브랜드가 여럿 등장했고, 원조 여부를 놓고 전쟁이 벌어졌다. 최근 스몰창업이 인기를 끌면서 불거진 ‘베끼기 논란’의 시발점이다. 업계 1위와 후발주자는 이를 두고 소송전까지 치렀다.

전문가들은 비슷한 콘셉트의 브랜드가 늘어나고 작은 파이를 두고 경쟁을 치르다보면 그 열기가 과열될 수밖에 없고 결국 가맹점이나 본사가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팍팍해진 삶 속에서 한 끼라도 제대로 먹자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면서 밥버거 열풍은 한결 잠잠해졌다. 소자본창업의 대표주자인 ‘스몰비어’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과자 ‘허니버터칩’ 열풍도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한때 누리꾼 사이에서 구하기 어려운 과자로 소문이 나면서 허니버터칩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일부 누리꾼은 온라인 중고시장서 과자를 소비자가격보다 높게 책정해 거래하기도 했다. 이색 열풍은 아이스크림으로까지 번졌다.

찜닭, 아이스크림, 디저트, 밥버거…
‘반짝 인기’ 바람 불다 사라진 업종들

디저트 소비가 극에 달했던 2014년 ‘벌집 아이스크림’은 그 중에서도 맨 앞에 있었다. 벌집 아이스크림의 판매량 폭발로 비슷한 콘셉트의 소프트아이스크림 전문 프랜차이즈까지 다수 등장했다. 대중화가 이뤄지나 했던 소프트 아이스크림 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처음 아이템이 대중에 공개됐을 때 줄을 서서 먹던 사람들의 지속적인 소비가 이뤄지지 않았다. 문제는 그 줄을 보고 창업했던 사람들이 시장에서 도태됐다는 점이다. 특히 벌집 아이스크림은 대만 대왕카스테라와 마찬가지로 방송 보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2014년 벌집 아이스크림을 집중 조명한 <먹거리X파일>이 제품 토핑 일부에 파라핀 성분이 첨가돼있다고 논란을 제기했다. 한바탕 불고 있던 유행 바람에 방송 보도가 끼얹어지면서 촛불 꺼지듯 인기가 식었다. 그 당시 벌집 아이스크림 사업에 뛰어들었던 업주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상황을 반전시키진 못했다. 파장은 업계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눈꽃빙수’도 디저트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세로 떠올랐던 아이템이다. 우유를 얼려 눈꽃처럼 곱게 갈아 만든 빙수는 부드러운 식감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때를 만난 빙수업계는 비슷한 유의 제품을 연이어 내놓으며 여름 특수를 누렸다.
 

설빙과 옥루몽은 한때 점포가 각각 500개, 70개에 이를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가 최근 구 수가 감소하고 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 당시에도 빙수 자체가 여름에 특화된 계절 아이템이라 겨울 비수기를 넘어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또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슷한 콘셉트의 프랜차이즈가 덩달아 세를 불렸고, 이는 또다시 베끼기 논란으로 이어졌다. 한 집 걸러 하나씩 있는 매장에 사람들이 싫증을 느낄 때쯤 이미 유행은 막을 내리고, 매장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츄러스, 딸기모찌, 도지마롤 등은 말 그대로 ‘반짝 인기’였다. 특히 일본 오사카의 명물인 크림 롤케이크 도지마롤은 판매 초기에는 사람이 너무 몰려 일부 매장서 물량을 2배로 늘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보통 롤케이크보다 크림양이 많은 도지마롤에 순식간에 빠져들었지만 인기는 길지 않았다.

열풍이라고 부를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가 사라진 먹거리 아이템은 대부분 디저트에 집중돼있다. 삼시세끼 챙겨 먹는 주식과 달리 디저트는 1회성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폐업하는 매장이 넘치고, 레드오션이라 불릴 정도로 포화 상태지만 여전히 커피전문점이 늘어나는 건 커피라는 아이템 자체가 생활 속에 완전히 뿌리내렸기에 가능하다. 그에 반해 디저트는 지속적인 소비를 보장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사람들의 기호나 호기심에 따라 ‘원 히트 원더’는 가능해도 ‘롱런’하는 아이템이 극소수인 이유다.

뜨고 지고 순식간
업계 재편 가시화

대만 대왕카스테라의 방송보도가 나간 직후 누리꾼은 몇 가지 아이템을 거론하며 곧 하향세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부산명물로 이름난 명랑핫도그가 첫손에 꼽혔다. 명랑핫도그는 일반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쌀가루와 밀가루의 적절한 배합으로 숙성시킨 반죽으로 만든다.

명랑핫도그는 1호점이 생긴 지 5개월 만에 340호점 출점(1월 기준)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출점 속도를 봐서는 올해 상반기 내 700호점까지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스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생과일주스전문점도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분분하다. 초저가 생과일주스의 등장은 무더웠던 지난해 여름 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2010년에 창업한 쥬시의 경우 가맹사업 시작 전인 2015년 4월까지 직영매장이 3개에 불과했다. 불과 1년 새 쥬씨 매장은 500여개로 늘어났고, 업계 선두주자로 과일주스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생과일주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올해 업계가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식품업계 ‘먹거리X파일‘ 주의보
‘먹거리 저승사자’ 뜨면 잡힌다?

종편 채널A의 <먹거리X파일>이 대만 대왕카스테라를 다룬 이후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먹거리X파일>은 사람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먹을거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 파급효과가 상당하다. 이번 사례나 벌집 아이스크림 파라핀 논란, 생과일주스 설탕 과다 첨가 논란 등 <먹거리X파일>로 촉발된 논란이 업계 전체를 뒤흔든 적도 있다.

업계 쥐락펴락 논란의 프로
아니면 말고 식? 업주 운도

일부 누리꾼들은 “<먹거리X파일>은 대기업은 절대 안 건드린다”며 “무책임한 과장보도로 영세사업자만 죽어난다”고 꼬집었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대왕카스테라 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먹거리X파일>에 대해 말들이 많다. 문제 있는 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가장 강력한 처벌은 안 보는 것이고, 그래서 나부터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