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26)김춘추의 결심

대야성 함락, 신라가 위험하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자네들은 군인이니까 어쩔 수 없다 해도 남아 있는 백성들은 어찌할 텐가?”

용석이 차마 답을 하기 힘든지 죽죽을 바라보았다.

“그 일은 형님과 검일이 해결해 주셔야지요.”

모척과 검일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저나 용석은 군인으로서 목숨을 바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수성이 아니라 저희가 성 밖으로 나가 일전을 벌일 생각입니다. 그래야 형님이나 검일이 명분이 서지요.”

항전의 대가

이제는 모척과 검일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참 어찌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검일이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술잔을 들어 한 번에 비워내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잔을 비웠다.

“형님과 검일에게 부탁 있습니다.”


“말해보게.”

“우리 신라 백성들 사람답게 대우 받을 수 있도록 잘 조처해 주십시오.”

모척이 답에 앞서 다시 잔들을 채웠다.

“반드시 그리 되도록 하겠네.”

“고맙습니다, 형님.”

“그리고.”

이번에는 용석이 나섰다.

“말해보게.”

검일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나도 힘든 부탁하려네.”

“뭔가?”

“내일, 일전을 벌일 때 기왕이면 우리 목은 형님과 자네가 베어주었으면 하네.”


“그게 무슨 말인가?”

“어차피 항복하지 않으면 목을 베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네. 어찌 인간으로서 그런 말을 하는가. 자네들은 자네들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경우이니 그에 따라 최상의 예우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갈 걸세.”

“암, 그래야지.”

힘겹게 대꾸한 모척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를 살피며 죽죽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척에게 큰 절을 올리려하자 모두가 일어나 서로서로를 바라보며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죽죽과 용석은 말했던 대로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와 백제 군사들과 일전을 벌였다.

그야말로 알로 바위치기식의 싱겁고도 허망한 전투였다.

결국 신라 병사 모두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뒤늦게 나타난 모척과 검일의 주도로 죽죽과 용석의 시체는 단정하게 치장하여 신라의 수도인 경주로 보내졌고 전사한 병사들의 시체는 땅에 안치되었다.

또한 성안에 남아 있던 백성들은 각자의 의사에 따라 고향으로 혹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으로 보내졌다.

의자왕은 사비성으로 보내진 백성들을 성 서쪽에 흩어져 살게 하였고 검일과 모척으로 하여금 대야성을 지키게 하였다. 

대야성의 소식을 접한 김유신이 걸음을 재촉하여 김춘추의 집에 도착했다.

춘추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마루 기둥에 기대어 먼 하늘만 응시하고 동생 문희는 그 곁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유신의 출현을 살핀 문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라버니, 이 일을.”

더 이상 말도 잇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쩌겠나, 그만들 진정하게.”

유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춘추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살피며 춘추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만 정신 차리고 차후를 논해야 할 거 아닌가.”

재차에 걸친 요구에도 전혀 미동을 보이지 않자 기어코 소매를 잡아끌었다.

“처남!”

죽죽‧용석, 죽음을 택하다
시름 잠긴 춘추…신라의 운명은?

춘추가 유신을 불러놓고는 막상 말을 할 수 없었던지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오라버니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문희가 춘추를 대신하듯 중얼거렸다.

“힘들겠지만 이제 다 지난 일 다시 이야기하면 무엇 하겠느냐.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꾸나.”

유신이 애써 춘추와 문희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 방금 여주를 만나고 오는 길이네.”

춘추와 문희가 동시에 유신을 바라보았다.

“뭐라 하시던가요?”

문희의 말에 답은 하지 않고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역시 여자로는 한계가 있더구나.”

“한계라니요?”

“즉각 병사들을 모집해서 대야성을 되찾자고 했더니. 참으로 답답하네.”

“그러면 모른 체하시더란 말입니까?”

잠자코 듣기만 하던 춘추가 목소리를 높였다.

“모른 체할 수는 없지.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지.”

“잘못되다니요?”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 않고.”

말을 하다 말고 춘추를 주시했다.

“그러면 또 당나라에!”

“그렇다네. 내 참.”

유신이 간략히 대답하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주시하던 춘추가 시선을 허공으로 돌리더니 어금니를 깨물었다.

“가시지요, 처남.”

“가다니, 어디를?”

“가서 여주를 만나야겠어요.”

순간 문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춘추의 팔을 잡았다.

“가기 전에 먼저 생각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어요?”

문희의 말에 마치 생각을 정리하는 듯 춘추가 물끄러미 유신을 바라보다가는 털퍼덕 주저앉았다.

“처남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찌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네.”

“무엇이 말입니까?”

“스스로 국방을 강화할 생각은 않고 그저 기대려고만 들고, 또 이상한 일에만 관심을 쏟으니.”

“여자라 그런가요?”

문희가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여자라는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한 국가의 군주라면 여자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일처리 해야 하건만 그저 남에게 의지하려고만 하니 더 큰 문제 아닌가.”

“그러면 지금 우리 힘으로는 백제를 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까?”

“고구려까지 백제군에 합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네.”

“고구려까지요?”

유신이 즉답을 피하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담판을 짓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근본적인 대책이라면 결국 우리도 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야 당연하지.”

“현재로는 전혀 방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일단은 작금의 불부터 끄고 봐야 하는데.”

말을 하다 말고 춘추가 다시 일어났다.

“또 왜 그러나?”

“가시지요. 가서 여주와 담판을 지읍시다.”

“어떻게 말인가?”

“현재 우리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면 고구려를 만나야지요.”

“고구려를!”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