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난파선 선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허창수호 4번째 출항 이대로 침몰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배가 침몰 직전에 놓였다. 몇몇 선원들은 이미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했다. 전임 선장이 놓은 키를 잡을 선원이 없다. 결국 전임 선장이 다시 키를 쥐었다. 배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다. 기름도 없어 얼마나 더 항해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키를 쥔 선장은 덮쳐오는 파도와 선원들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 다 망가진 전경련 회장직을 또다시 연임하게 된 허창수 GS 회장 이야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1961년 경제재건촉진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이래 재계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러왔다. ‘정권의 수금 창구’ ‘재계의 대변인’ 등 부정적인 시선에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숱하게 불거졌지만 전경련의 생명력은 질겼다. 쇄신과 혁신을 부르짖으며 따가운 눈길을 이겨냈던 전경련이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역사의 뒤안길로 불명예 퇴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한 지경에 이르렀다.

해체? 재건?
기로 선 전경련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의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불씨였다. 전경련은 회원사들을 압박해 두 재단의 출연금을 모금했다. 검찰 수사 결과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은 53개, 이들이 낸 출연금은 774억에 달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두 재단의 설립 과정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대통령의 정치 생명이 끝났고, 국내 최고 기업의 부회장은 감방 신세가 됐다.

지난달 수사 기간이 종료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이 두 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에 대해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했다. 삼성이 대가를 바라고 두 재단에 돈을 냈다고 본 것이다. 검찰서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출연금을 낸 다른 기업도 같은 혐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재계의 입장을 대변한다며 야심차게 출범한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본거지로 전락했다. 지난해 12월 재계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는 ‘별들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당시 청문회는 ‘전경련 성토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국조특위 위원들은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 총수들을 압박했다.


바른정당(당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삼성이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겠느냐. 앞으로 전경련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라”고 재촉했고 이 부회장은 “그러겠다”고 답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전경련 해체를 반대하면 손들어달라”고 요구하자 그 자리에 모인 9명의 총수 중 구본무 LG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허창수 GS 회장이 손을 들었다.

허 회장은 당시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삼성 이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손경식 CJ 회장 등 3명은 거수하지 않았다. 삼성 이 부회장은 ‘전경련 탈퇴’를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와 함께 쇄신 방안으로 내세웠다. 조부인 고 이병철 회장이 주축이 돼서 세운 단체가 손자 대에 이르러 쇄신 대상이 된 셈이다.

해를 넘기기도 전에 LG가 스타트를 끊었다. LG 측은 지난해 12월27일 “올해 말로 전경련서 탈퇴키로 하고 최근 전경련에 공식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내년부터 전경련 회원사로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회비도 내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잠잠해지나 싶더니 지난달 6일 삼성은 삼성전자를 비롯, 15개 전 계열사가 전경련을 탈퇴했고, 같은 달 16일에는 SK, 21일에는 현대차가 탈퇴원을 제출하면서 우리나라 4대 그룹이 전경련과 관계를 끊었다.

사람 없어 도로 회장님
2011년부터 네 번째 연임

숫자상으로는 4개 기업이지만 이들이 부담하고 있던 회비는 전경련 연간 회비의 77%가량이나 된다. 2015년 기준으로 4대 그룹은 492억원의 전경련 연간 회비 가운데 378억원을 부담했다. 주요 그룹이 줄줄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전경련의 위상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모금 사건,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 모금,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의혹 등에 연루되면서도 회원사 탈퇴는 없었던 전경련이었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전경련은 여전히 혁신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또다시 중책을 맡게 된 허창수 GS 회장이 있다.
 

청문회 당시 전경련 해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허 회장은 난파선서 내리지 못하고 또다시 키를 움켜쥐게 됐다. 2011년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던 허 회장은 이번에는 그만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벌써 4번째 연임이다.

허 회장은 2011년 처음 전경련 회장을 맡을 때도 삼성, LG, SK 등 상위재벌 회원사 측에서 회장을 맡을 차례였지만 모두 고사하는 바람에 떠밀리듯 직을 맡은 바 있다. 올해로 3번째 임기가 완료됐지만 4대 그룹 탈퇴 이후 아무도 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허 회장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물론 재계서 후임 회장을 인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재계 원로들은 차기 전경련 회장 추대를 위해 수차례 머리를 맞댔다. 그중에서도 허 회장은 직접 재계 인사들을 만나 의사를 묻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내부에선 현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인물로 허 회장을 지목했다. 허 회장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직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경련 내부서도 허 회장의 연임을 긍정적으로 본 사람은 몇 없었다.

그가 지난해 12월28일 연임 의사가 없다는 점을 밝히는 등 이번에야말로 회장직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4대 그룹 탈퇴
예산 대폭 감소

일각에선 대내외 상황상 허 회장이 계속 회장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허 회장은 세 번째 연임 때도 재계서 새 인물을 찾지 못해 직에서 내려오지 못했었다. 당시보다 상황이 더 악화된 지금, 회장직을 맡을 회원사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

차기 후보로 거론됐던 손경식 CJ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은 끝내 고사했다. 여기에 차기 회장이 인선되기 전 자리서 물러나면 ‘책임감 없는 기업인’으로 비칠 수 있다는 여론도 허 회장의 결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은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서 정기총회를 열고 허 회장을 36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부회장에는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을 선임했다. 이로써 허 회장은 회원사 이탈로 추락한 전경련의 위상을 제고하고 줄어든 회비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 중책을 짊어지게 됐다.

허 회장은 취임사에서 전경련의 현 상황에 대한 사과와 혁신을 약속했다. 그는 “전경련이 여러 가지로 회원 여러분과 국민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훌륭한 분이 새 회장으로 추대돼 전경련을 거듭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이 여의치 않아 제가 이 상황을 수습하게 됐다”며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회장직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유임된 이유는?
궁여지책 선택?

허 회장이 내세운 전경련 혁신 방안에 관심이 쏠렸다. ‘환골탈태’ ‘재탄생’ 수준의 혁신을 예고한 그는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전경련은 ‘정경유착 근절’ ‘투명한 운영’ ‘싱크탱크 역할’ 등의 혁신안을 통해 국민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국민의 신뢰와 회원사의 지지를 회복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정치권서 전경련 해체 요구가 높은 상황을 정공법으로 맞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어디서든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지만 전경련은 일단 혁신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전경련은 지난 2일 외부 인사 3명을 영입해 혁신위원회를 꾸렸다고 밝혔다.

혁신위원회는 허 회장을 위원장으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장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장관, 김기영 전 광운대 총장 등 외부인사 3인과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권 신임 상근부회장(간사)으로 구성됐다.

혁신위원회는 전경련 현황과 혁신추진 경과, 혁신방향 및 추진계획 등을 논의하고 각계각층서 외부 의견을 수렴해 최종 혁신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전경련 임원진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지난 5일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임상혁 전무, 송원근 경제본부장, 이용우 사회본부장 등 임원 6명이 사의를 밝혔다. 혁신위원회는 임원진 사표 수리 여부를 신중히 검토한 뒤 혁신안과 함께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은 쇄신의 일환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고 나섰다. 지난 7일 전경련은 ‘전경련의 새 모습을 국민에게 듣겠다’며 온라인 창구를 개설했다. 온라인 창구를 통해 받은 의견을 혁신안과 향후 진행될 전경련 사업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0일에는 전경련 회관서 ‘전경련 역할 재정립과 혁신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도 개최했다. 온라인 창구, 토론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소통을 통해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외부인사 영입해 혁신위 구성
정치권·시민단체 반응 싸늘

하지만 여전히 반응은 싸늘하다. 경제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전경련 해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어떤 대안을 내놓더라도 국민을 기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전경련은 자발적 해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전사회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16곳으로 구성된 전경련해체시민연대도 “국정 농단과 정경유착의 공범으로 지목된 전경련이 해산을 거부하고 임원진을 선임한 것은 국민을 우롱한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허 회장이 내놓은 쇄신안은 재탕에 불과하다는 쓴소리도 이어졌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쇄신안을 내놓고 변화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정경유착 근절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경련이 매번 들고 나오는 쇄신안이라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시선도 있다. 전경련 회원사들이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낼 당시 회장직을 맡고 있던 허 회장이 다시 수장으로 추대된 것에서 이미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도 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언론과 인터뷰서 “전경련의 역할은 로비하는 것 말고는 없다”며 “반성을 한다면 해체를 통해서 개혁이 진행돼야 한다”며 해체론을 주장했다. 이어 “전경련 해체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해결의 시작이라고 본다. 사회에서 강자들이 모여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겠다고 이익단체를 만드는 것은 탐욕스럽고 뻔뻔스러운 짓”이라고 지적했다.

여야 대선주자들도 한목소리로 전경련 해체를 외쳤다. 경실련은 지난달 22일 대선주자 8명과 각 정당을 상대로 전경련 해체에 관한 공개질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6명은 즉각 해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해체 찬반 여부에는 즉답을 하지 않고 전경련에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게 우선이라고 답했다.

재탕 혁신안으로
쇄신? 의구심만

허 회장은 취임사 말미에서 “지금은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할 때”라며 “전경련이 진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기업에 활력을 주는, 국민생활에 도움이 되는,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며 “지금의 혼란과 어려움을 조속히 극복하고 새로운 지도부가 안정된 가운데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빈사상태에 빠진 전경련 ‘허창수호’가 다시 한 번 재계 중심 단체로 살아날 수 있을지 아니면 ‘좀비’ 상태로 유지되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여부는 허 회장의 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허창수는 누구?

또다시 ‘재계의 맏형’ 역할을 맡게 된 허창수 GS 회장은 GS그룹을 이끌고 있는 오너 일가 2세다.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5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7년 경남고, 1972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7년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이수했다. 1977년 LG그룹 기획조정실 인사과 과장으로 입사해 1979년 LG상사 해외기획실 부장을 맡는 등 LG그룹의 핵심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1995년 LG전선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특히 2004년 GS그룹이 LG그룹에서 분할되면서 GS홀딩스 회장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2009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단에 합류한 허 회장은 2011년부터 회장직을 맡아 활동 중이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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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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