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후폭풍> 좌불안석 친박기업 백태

헌재는 전방위 기업 수사를 암시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결정되자 재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특검팀으로부터 수사를 넘겨받은 검찰이 탄핵 인용을 기점으로 정권과 결탁한 재벌기업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친박(친 박근혜)기업으로 분류되는 몇몇 재벌기업들은 숨죽이며 사태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현실이 됐다.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열렸던 지난 10일 헌법재판소는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정치적 이슈로 그치는 사안이 아니다. 재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심상치 않은
탄핵 인용 역풍

재계에선 벌써부터 탄핵안 인용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당장 우려할 부분은 검찰의 칼끝이다. 야권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상황서 검찰이 전례 없이 강하게 재계를 압박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 경우 미르·K스포츠재단과 연루된 재벌기업들이 첫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총 53곳으로 출연금 규모는 774억원에 이른다. 삼성 204억원, 현대차 128억원, SK 111억원, LG 78억원, 포스코 49억원, 롯데 45억원, GS 42억원, 한화 25억원, KT 18억원, LS 16억원, CJ 13억원, 두산 11억원, 한진 10억원, 금호아시아나 7억원, 대림 6억원, 신세계 5억원, 아모레퍼시픽 3억원, 부영 3억원 등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의 총수들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 나오는 사상 초유의 사태마저 벌어졌다.


당시 청문회에 소환된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GS그룹 회장인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이었다.

정경유착 고리 드러날까 노심초사
칼날 세운 검찰 첫 타깃 ‘어디로?’

대기업에 대한 취조는 한층 강해졌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헌재에 제출한 탄핵의결서(탄핵소추안)에 삼성·SK·롯데가 출연한 360억원을 뇌물로 적시했다. 특히 삼성의 경우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 전액을 뇌물로 간주했다.
 

특검은 삼성에 대한 수사를 완료하면서 구속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 박상진 대외협력담당 사장, 최지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황성수 대외협력담당 전무 등 모두 5명을 기소했다. 이들에게는 뇌물공여 외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 수익 은닉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다른 기업들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헌재가 삼성과 최순실, 박 전 대통령 간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탄핵심판의 주요근거로 삼았던 만큼 재계 전체로 수사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헌재가 재판 과정서 ‘뇌물죄’ 혐의에 상당한 비중을 뒀다는 점은 이런 흐름을 방증하고 있다.

재계 전반으로
수사 확대되나

특검서 검찰 특수본으로 사건 일체가 이관된 점도 재계에는 악재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수사 마지막 날인 지난달 28일 대기업 수사를 검찰에 인계할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초기 수사를 맡았던 특수본이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특수본은 자금을 출연한 기업들 전부를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던 중 특검이 출범하면서 손을 뗀 바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면 첫 타깃은 SK그룹, 롯데그룹, CJ그룹 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미 출국이 금지된 상태다. 

SK그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대가로 최 회장이 사면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5년 8월 사면으로 출소한 최 회장이 6개월 뒤인 지난해 2월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한 점도 의심을 사고 있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사면 때문에 자금을 출연하고 정부 시책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재판이나 수감 중인 재계 총수들 중 유일하게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됐다. 

롯데그룹은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가 검찰 압수수색을 앞두고 돌려받은 점이 다시 들춰질 수 있다. 면세점 특허 관련,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얘기도 끊임없이 나온다.

검찰 칼끝에
초긴장 상태

‘낙하산’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포스코와 KT도 좌불안석인 건 마찬가지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최순실 관련 의혹이 불거진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특히 2013년 회장 임명 과정서 후보추천위원회는 두 달 만에 후보를 선정해 심사를 마치고 권 회장을 선임했는데, 이 때문에 회장 임명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또 권 회장은 2015년 포스코가 진행한 계열 광고회사 ‘포레카’ 매각과 관련해 최순실씨를 비롯한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 국정농단 핵심부의 ‘포레카 지분 강탈 시도’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샀다.

KT는 2002년 민영화된 이후에도 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해왔고 최근 황창규 회장이 연임되는 과정서 정치적 외풍 논란에 휩싸였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시점 또한 황 회장의 임기가 막바지로 향할 때였다는 점에서 황 회장이 연임을 의식해 정부가 원하는 단체에 후원금을 출연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계속됐다.

박 전 대통령의 해외 경제사절단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면서 ‘친박’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재벌기업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SM그룹, LS그룹, 대립산업 등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취임한 이후 같은 해 5월 미국을 시작으로 올해 9월 라오스까지 총 21차례 경제사절단을 운영했다.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급성장한 SM그룹은 경제사절단 운영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꽁무니 쫒더니…
독된 친박 꼬리표

우오현 SM그룹 회장과 그의 장녀인 우연아 대한해운 부사장은 모두 21차례 경제사절단 가운데 15차례 참석해 참석률이 71.4%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 회장이 11차례, 우 부사장이 4차례 참석했다.

우 회장이 참가한 경제사절단은 ▲2013년 미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유럽 ▲2014년 인도·스위스, 독일, 중앙아시아, 캐나다 ▲2015년 중남미 4개국 ▲2016년 이란, 몽골 등이다. 우 회장은 부실기업 M&A를 통해 그룹의 규모를 성장시키며 ‘M&A의 귀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활발한 M&A를 진행한 SM그룹은 자산 5조원대에 근접했다.

LS그룹 역시 경제사절단에 적극 참여한 친박기업으로 분류된다. 특히 구자열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경제인사절단 자격으로 국빈 만찬과 비즈니스 포럼 등에 참석해 유라시아 경제협력 강화에 힘을 보탠 바 있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5월 박 전 대통령이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이란을 방문했을 때 이해욱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전례가 있다. 공교롭게도 대림산업은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기업형 임대주택 ‘뉴스테이’ 1호를 건설한 것을 비롯해 대규모 국책사업에 빈번히 이름을 올리며 박근혜정부와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했다고 의혹을 받기도 했다.

정권과 결탁했다고 의심받는 재벌기업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건 대중들의 싸늘한 시선이다. 재벌기업들이 ‘돈을 뜯긴 연약한 피해자’가 아닌 ‘정권과 뒷거래를 한 명백한 공범’으로 비춰진 까닭이다.


너나 없이
모두가 공범

박 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과 신년 대국민담화 등을 통해 노동개혁법에 대한 빠른 처리를 주문했다. 일반 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제도 완화, 단체협약 시정명령, 임금피크제 시행, 성과연봉제 도입,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 제한 연장, 제조업 등 뿌리산업 파견 허용, 근로시간 주 60시간 허용 등 친기업적 정책이 도입됐다. 하나 같이 재벌기업들이 환영할만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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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