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재계> 쪼개지는 중견기업 대해부

‘같이 못해’ 갈기갈기 찢어 경영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형제간 우애가 남다르더라도 자식 세대의 유대관계는 선대만 못한 법이다. 경영권을 쥔 오너 일가 역시 마찬가지다. 1세대와 2세대를 거쳐 3·4세대로 경영권이 승계될수록 끈끈했던 공조체제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 뿌리를 공유하던 몇몇 기업들이 각자 생존을 도모하고자 계열분리 카드를 꺼내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거 그룹사 계열분리는 ‘형제의 난’을 통해 주로 이뤄졌다. 창업주에게 선택받지 못한 다른 핏줄이 갈라져 나오거나 동업자 가문이 따로 떨어져 나오는 형태로 계열분리가 이뤄진 것이다. 후대로 갈수록 유대관계가 느슨해지는 특성상 재벌가에선 계열분리가 당연한 수순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사촌 체제서
각자 생존 모색

사촌경영 체제를 구축한 그룹사 가운데 계열분리 가능성이 점쳐지는 곳은 세아그룹과 삼보판지그룹이다.

형제경영 체제로 운영되던 세아그룹은 고 이운형 회장이 201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이태성 전무와 이주성 전무를 내세운 ‘3세 사촌경영 체제’로 탈바꿈했다.

아버지인 고 이운형 전 세아그룹 회장에게 세아제강 지분을 상속받은 2013년까지만 해도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의 세아제강 지분은 19.12%였다. 그러나 상속세 마련을 위해 이태성 전무는 세아제강 지분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세아제강 지분율은 지난해 말 15.44%까지 떨어졌다.


대신 세아홀딩스 지분을 32.05%서 35.12%로 늘렸다. 반대로 이주성 세아제강 전무는 같은 기간 세아제강 지분율을 10.77%서 11.2%로 늘렸다.

지분변화가 발생하자 이순형 회장과 이주성 전무가 세아제강과 해덕기업 등 계열사를 중심으로 계열분리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한층 커졌다. 고 이운형 회장의 아들인 이태성 전무는 세아홀딩스, 이순형 세아홀딩스 회장의 아들인 이주성 전무는 세아제강을 주축으로 계열분리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창업세대인 류종욱 회장과 류종우 부회장 형제의 긴밀한 협력관계로 유명한 삼보판지그룹은 오너 2세들이 공동 경영행보를 계속 이어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삼보판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삼보판지만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할 뿐 오너 2세로 승계가 이뤄지면서 각자 지분 정리가 끝난 양상이다.

류 회장 일가는 삼보판지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삼보판지는 류 회장의 차남인 류진호 사장이 21.87%(306만 1100주)로 최대주주다. 류 사장의 형인 류경호 이사가 13.68%, 류 회장도 10.99%를 보유해 류 회장 일가 지분율이 총 46.54%에 달한다.

류 부회장의 장남 류동원 사장은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삼보판지 지분 15.18%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지만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뒤쳐진다.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대림제지는 류 부회장 일가 소유다. 대림제지의 최대주주는 지분 22.47%를 가진 류 부회장의 차남 류창승 대표다. 2대 주주는 15.35%를 가진 류 부회장이며 류 회장은 지분 2.56%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경영권 때문에
갈라서는 형제


형제경영 체제를 띠고 있는 중흥건설, 대웅제약, 매일유업 역시 계열분리 가능성이 언급된다.

중흥건설 승계 과정서 주목할 회사는 중흥토건과 시티건설(옛 중흥종합건설)이다. 중흥토건과 시티건설은 정창선 회장의 장남인 정원주 사장과 차남인 정원철 사장이 각각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중흥건설은 중흥토건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정원주 사장이 중흥토건을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중흥토건은 중흥에스클래스의 지분 90%를 확보한 것을 비롯해 중봉건설, 다원개발, 새솔건설, 에코세종, 중흥엔지니어링, 청원개발, 청원산업개발 등의 지분을 과반 이상 보유한 상태다.

정원철 사장은 시티건설을 앞세워 독자 생존을 모색 중이다. 정 사장은 시티건설과 시티글로벌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시티글로벌은 시티주택건설, 시티개발, 아이시티건설 지분 100%를, 시티종합건설 지분 51.18%를 갖고 있다.
 

시티글로벌이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시티건설은 2005년 중흥건설의 본거지인 광주를 떠나 서울 강남으로 이전했다.

일반화되는 3·4세 경영승계 속도 
경영권·상속분쟁 계열분리로 해결

대웅제약그룹은 윤재훈 알피그룹 회장이 ㈜대웅 주식담보대출을 모두 상환하면서 사실상 계열분리가 끝났다. 윤 회장은 최근 삼성증권과 체결했던 주식담보대출(주담대)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해지로 주식 자본거래가 자유로워진 윤 회장이 대웅제약그룹과의 계열분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대웅 지분을 모두 처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윤 회장은 2015년 대웅제약그룹 후계자 자리를 놓고 동생인 윤재승 회장과 경합을 벌였지만 결국 계열사인 알피코프를 가져가는 형태로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마무리했다. 현재 윤 회장이 보유한 ㈜대웅 지분은 33만8823주(2.91%)까지 줄어든 상태다.

업계에선 대웅제약그룹과 선을 그은 윤 회장이 ㈜대웅 지분을 모두 처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에 나선 매일유업그룹은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과 동생인 김정민 제로투세븐 회장을 주축으로 계열분리 가능성이 점쳐진다. 매일유업은 오는 5월1일 투자회사 매일유업홀딩스(가칭)와 사업회사 매일유업으로 분할된다. 매일유업홀딩스가 지주회사로서 매일유업 등의 자회사를 거느리는 구조가 될 전망이다.

지주회사 전환은 형제간 계열분리 시나리오를 고려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계열분리의 대상으로 꼽히는 기업은 제로투세븐이다. 매일유업이 34.74%의 지분을 보유한 제로투세븐은 김정완 회장의 막냇동생인 김정민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김정민 회장은 원두커피 기업인 씨케이코퍼레이션, 커피전문점 루쏘랩 등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등 새 사업 발굴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희미해지는
선대의 유산

일동제약, 영풍, 삼천리 등 동업관계로 출발한 기업서도 계열분리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일동제약과 일동후디스라는 이분화된 체계로 운영되는 일동제약그룹은 지난해 지주사 출범을 공표한 이래 계열분리 가능성이 누차 언급된 곳이다. 일동후디스 경영권을 쥐고 있는 이금기 명예회장 일가서 그룹사를 떠날 거란 관측이다.

이금기 회장은 일동후디스 지분 21.47%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일가로 확대하면 42.84%로 늘어난다. 일동제약이 보유한 일동후디스 지분은 29.91%로 이금기 회장 일가에 훨씬 못 미친다. 이 회장은 1960년 일동제약에 입사한 평사원 출신으로 26년간 대표이사로 활동했고 일동제약 지분 5.47%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일동제약과 이 회장이 서로 보유한 주식을 스왑(주식 교환)하는 형태로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증권가서 나온다.

수면 아래서 치열해지는 합종연횡 
사촌·형제·동업…유대관계 옛말


영풍그룹은 오너2세인 장형진 영풍그룹 명예회장이 2015년 3월, 22년 만에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데 이어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도 지난해 3월 등기이사에서 사임했다. 두 사람은 영풍그룹 공동창업주인 최기호, 장병희씨의 장남이다.
 

장 명예회장의 장남인 장세준 영풍전자 부사장과 최 명예회장의 차남인 최윤범 고려아연 부사장도 영풍그룹 경영을 이끌 오너 3세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장세준 부사장은 2009년부터, 최윤범 부사장은 2007년부터 영풍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두 집안은 전자사업과 비철금속 제련사업을 각각 맡고 있다. 장씨 일가는 지주회사 격인 영풍을 중심으로 영풍전자, 영풍문고, 영풍개발 등을 거느리고 있다. 최씨 일가는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유미개발, 서린상사, 서린정보기술, 알란텀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지배구조 때문에 고려아연과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한 유미개발, 영풍정밀 등을 중심으로 계열분리 가능성이 떠오른다. 계열분리 수준을 밟는 것이 회사의 성장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삼천리그룹은 창업자인 고 이장균 회장과 고 유성연 회장이 공동 설립한 후 60년 넘게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세인 이만득 회장과 유상덕 회장도 동업 체제를 이어받았다. 두 사람은 삼천리와 삼탄의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갖고 동업체제를 유지한 바 있다. 서로 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이씨 집안은 삼천리 계열, 유씨 집안은 삼탄 계열을 독자 경영하기로 한 것이다.

삼천리그룹 오너 3세 가운데 경영에 참여한 사람은 이씨 집안의 이은백 부사장과 이은선 이사 둘 뿐이다. 유씨 일가 3세 중에는 아직 경영에 참여한 사람이 없다.

이해관계 얽힌
당연한 수순?

재계에선 60년간 이어져왔던 동업경영이 언제쯤 중단될지 주목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3세 경영시대가 갖춰지면 각자 생존을 모색하는 모양새로 오너 경영체제가 자리잡을 거란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증가하면 필연적으로 계열분리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며 “3·4세대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유대력이 약해지고 독자노선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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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