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부리 여행 ①서대문 영천시장

고소한 냄새가 10리까지 퍼지는 주전부리의 향연

출출한 오후 4시 반, 입이 심심한데 뭐 먹을 게 없을까 고민이라면 서대문 영천시장으로 가보자. 시장의 명물 꽈배기와 떡볶이부터 참기름 바른 꼬마김밥, 든든한 팥죽, 고소한 인절미, 쫀득한 찹쌀순대, 시원한 식혜까지 입맛 돋우고 속 채워줄 간식거리가 모두 모였다. 저렴한 값은 덤이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인근의 영천시장에서는 그야말로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시장은 깔끔한 모습으로 정비됐지만, 그 역사는 60년 세월을 품고 있다. 심심풀이로 먹던 주전부리에 맛을 더하는 시장 인심이 살아 있는 곳, 한 번도 못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영천시장으로 맛있는 간식 여행을 떠나보자.
 

시장 인심 가득한 곳

시장 주전부리 가운데 선두주자는 꽈배기다. 밀가루 반죽이 170℃ 기름에 노릇노릇 익어 갈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뜨끈한 열기 품은 꽈배기가 설탕 통에 툭 떨어진다.

흰 안개꽃을 맷돌에 곱게 갈아놓은 듯한 설탕이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하고 바삭하게 씹히는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후드득 떨어지는 설탕을 털어내며 또 한 입, 멈출 수가 없다.
 

영천시장 대표 옛날 꽈배기 장사는 두 자매가 책임진다. 언니는 시장 안 ‘원조꽈배기’서, 동생은 시장 입구 ‘달인꽈배기’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자매가 서대문에 터를 잡았을 때만 해도 인근 아파트가 모두 판자촌이었다.


“1980년대에 영천시장이 꽈배기 골목으로 유명했어요. 꽈배기 집만 13곳이나 됐지요. 꽈배기 하나에 25원일 때니까요. 고무 대야에 물건 파는 아주머니들이 매일 아침 가게 앞에 늘어서서 받아 가곤 했어요.”

지금은 인근 사무실 직원이나 등산객이 출출할 때 간식으로 많이 찾는다. 1000원짜리 한 장에 어른 손바닥만 한 꽈배기를 네 개나 담아주니 고맙다. 비싼 물가에 빈 장바구니와 배 속을 넉넉하게 채워줄 고마운 먹거리다.

‘독립문영천도넛’의 쫀득한 찹쌀도넛도 인기다. 직접 불려 만든 찹쌀 반죽을 5분간 튀긴다. 찹쌀 반죽은 밀도가 높아 밀가루 반죽보다 기름에 오래 머물러야 제맛이 난다. 주문은 1번에서 6번까지 번호로 하면 된다. 못난이찹쌀꽈배기와 못난이찹쌀팥도넛은 천안남산중앙시장서 반죽을 가져오고, 나머지는 직접 개발했다. 휴일이 따로 없다.“

원래 수요일이 휴일인데 거의 쉬지 못해요. 모처럼 한 번 쉬면 다녀간 사람들이 ‘헛걸음했다. 이제 장사 그만하려고 그러냐’면서 한마디씩 하거든요.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고마워서 매일 나옵니다.” 주말에는 주인과 똑 닮은 딸아이가 일손을 돕는다.

이곳 시장 사람들은 손님이 모두 이웃이다. 영천시장 먹거리가 맛있는 까닭이다. 정겨움과 따스함이 비법 양념이 되고,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으로 정성을 더한다. 거래가 아니라 나눔인 것. 그래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이야기가 넘친다.
 

영천시장의 또 다른 먹거리인 매콤하고 달콤한 떡볶이는 대체 불가 메뉴다. 과거 인근에 떡 공장이 많아 자연스럽게 떡볶이 가게가 늘어났다고 한다.

손님은 잊히지 않는 맛을 기억해서 매번 찾아오고, 주인은 그 맛을 대접하려고 평생 떡볶이를 만든다. 떡볶이 장사만 40년. 독립문역 방향 초입에 있는 ‘원조떡볶이’가 방송을 타며 유명세를 얻었고, 덕분에 영천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꽈배기, 떡볶이, 팥죽… 정성 가득 주전부리
서대문독립공원, 개미마을 등 가족 나들이로 제격

“한 총각이 예쁜 처녀를 데리고 와서 ‘할머니, 아직 살아 계시네요!’ 하더라고요. 대전에 사는데 10년 만에 왔다면서요. 가는 길에는 ‘다시 올 때까지 꼭 건강하세요’라고 하는데, 내 나이 일흔다섯이니까 그 총각 때문에 백 살까지 살아야겠어요.” 정정한 주인 할머니의 모습에 기분이 좋다.


바로 옆 ‘영천떡볶이집’은 이곳 상인들도 인정하는 맛이다. 국산 쌀로 직접 뽑은 떡을 사용하고, 모든 튀김 재료는 직접 마련해 믿고 먹을 만하다. 도톰한 김말이도 매일 저녁 국산 당면으로 사장이 직접 만든다. 꼬마김밥은 우엉을 넣어 맛이 알차다. 식사 대용으로도 맞춤이라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몇 년 전 일본 관광 잡지에 소개돼 외국인 손님이 자주 찾는다. 특수 제작한 패널 의자가 엉덩이를 데우고, 먹기 전에 나오는 보리차가 입맛을 돋운다.

“좋은 재료를 쓰는 건 25년 장사에 변함없는 철학이에요. 2000원짜리 판다고 아무렇게나 만들면 안 되죠. 처음에는 적자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손님이 가득하니 기분이 좋아요.”

영천시장의 가게 이름은 직관적이다. 40년 전통의 일명 ‘갈떡’, 떡볶이 마니아 사이에 유명한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에 ‘둘째네’가 붙었다.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집의 둘째 아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국물떡볶이를 맛보고 싶다면 둘째네를 찾으면 된다. 말랑한 밀가루 떡과 떡볶이 국물에 푹 젖은 군만두가 잘 어울린다.
 

한 끼 식사로 손색없는 ‘맛나팥죽’의 팥죽과 호박죽도 일품이다. 붉은팥과 쌀 모두 국산을 쓴다. 푸근해 보이는 주인이 새알을 빚어 매일 아침 팥죽을 끓인다.

엄마가 끓여준 것처럼 달지 않고, 밥알이 부드럽게 씹히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팥죽 한 그릇에 건강을 담았다. 이 집의 또 다른 인기 품목은 식혜. 시원하고 깔끔한 단맛이 갈증을 풀어준다. 2ℓ생수병에 담긴 식혜 한 통에 4000원.
 

비 오는 날에 영천시장을 찾는다면 파전에 막걸리가 제격이다. 끼니와 끼니 사이, 구수한 막걸리 한 잔과 잘 구운 파전 한 점이면 쌓인 피로가 스르르 녹는다. 전집은 맑은 날에도 안산자락길 걷기를 마친 등산객으로 붐빈다. 쫄깃한 찹쌀순대 역시 허기를 채우는 간식으로 훌륭하다.

인절미와 흑임자인절미는 하루가 지나도 쫀득하다. 영천시장 골목 250m는 배가 불러도 먹고 싶은 먹거리로 가득하다. 가벼운 주머니로 허기를 채우고, 그저 한 입 먹어보라는 시장 인심이 있어 계속 가고 싶은 곳이다.
 

서대문구의 주전부리 여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빵 굽는 냄새 가득한 연희동 베이커리 골목이 있다. 서울 3대 빵집으로 꼽히는 ‘리치몬드’ 연희점, 역사가 50년이 훌쩍 넘은 ‘독일빵집’ 등 연희삼거리를 중심으로 빵집 여섯 곳이 모였다.

이 가운데 ‘피터팬제과(PETERPAN1978)’의 크로앙슈가 인기다. 부드러운 페이스트리와 달콤한 아몬드크림이 만나 여성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현미를 커피콩 로스팅하듯 갈아 차처럼 만든 오늘의차와 함께 먹으면 좋다.


역사의 발자취

영천시장 주변에는 볼거리도 많다. 길 건너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가족 나들이나 데이트 코스, 아이들의 체험 활동지 등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를 탄압·통제하기 위해 만든 전국 최대 규모의 근대 감옥이다.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건물에서 역사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자.


형무소 뒤편의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을 따라가면 혼자만 알고 싶은 도심의 쉼터, 안산자락길을 만난다. 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그리 높지 않고, 전국 최초로 조성된 순환형 무장애 산책로라 노약자나 장애인도 불편함 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연희숲속쉼터는 4월이면 벚꽃과 개나리, 목련이 흐드러져 봄을 만끽할 최고의 장소로 변한다. 안산 정상(295. 9m)의 봉수대는 서울시를 한눈에 담기 벅찰 만큼 탁 트인 시야로 도심 속 서울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인왕산을 품은 홍제동 개미마을도 놓치지 말자.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로,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에서 서대문 07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된다. 언덕길을 오르며 세월에 지워진 벽화를 바라보면 할머니의 분칠처럼 정겹다. 골목골목 연탄 냄새가 짙게 배었다.

살림살이 곳곳에 가난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이곳 사람들은 개미처럼 열심히 산다. 마을 중간에 위치한 ‘버드나무가게’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집이다. 오가며 우연히 만난 이에게 따뜻한 차 한잔 건네는, 사람 냄새 그득한 동네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영천시장→서대문독립공원(독립문-서재필 선생 동상-독립관-3·1독립선언기념탑-순국선열추념탑-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홍제천→개미마을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영천시장→서대문독립공원(독립문-서재필 선생 동상-독립관-3·1독립선언기념탑-순국선열추념탑-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홍제천→개미마을
- 둘째 날: 홍제역→인왕시장→연희숲속쉼터→안산자락길→서대문자연사박물관→연희동 베이커리 골목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영천시장 www.facebook.com/sijangyc
- 서대문구청 서대문여행 www.sdm.go.kr/educate/travel.do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www.sscmc.or.kr/newhistory/index_culture.asp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namu.sdm.go.kr

문의 전화
- 서대문구청 문화체육과 02-330-1410
- 서대문구청 지역활성화과 02-330-8106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02-360-8583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02-330-8899

대중교통 정보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도보 약 8분. 5호선 서대문역 2번 출구, 도보 약 14분.
(문의: 서울메트로 1577-1234, www.seoulmetro.co.kr)

자가운전 정보
경부고속도로 한남 IC→한남대교→소월로→후암로58길→서울역사거리에서 연신내역·서대문역·서울역 방면으로 좌측→통일로→의주로지하차도→독립문 앞 공영주차장
(독립문사거리 직전에 독립문 앞 공영주차장이 있다. 요금은 10분당 500원. 평일 오후 7시 이후, 토요일 오후 3시 이후, 일요일·공휴일에는 무료. 주말에는 영천시장 옆 대로 갓길에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 주차 가능.)

숙박 정보
- 그랜드힐튼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02-3216-5656, www.grandhiltonseoul.com
- Ever8레지던스: 서대문구 신촌역로, 02-6946-0808, ever8.co.kr
- 신라스테이 서대문: 서대문구 충정로, 02-6388-9000, www.shillastay.com/seodaemun/index.do

식당 정보
- 석교식당(순댓국): 서대문구 통일로, 02-363-2803
- 녹원쌈밥(쌈밥): 서대문구 연희로25길, 02-336-9483
- 대성집(도가니탕): 종로구 사직로, 02-735-4259, daesungjip.modoo.at

주변 볼거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독립공원, 딜쿠샤, 돈의문 터, 서울 경교장, 서울 홍파동 홍난파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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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