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부리 여행 ①서대문 영천시장

고소한 냄새가 10리까지 퍼지는 주전부리의 향연

출출한 오후 4시 반, 입이 심심한데 뭐 먹을 게 없을까 고민이라면 서대문 영천시장으로 가보자. 시장의 명물 꽈배기와 떡볶이부터 참기름 바른 꼬마김밥, 든든한 팥죽, 고소한 인절미, 쫀득한 찹쌀순대, 시원한 식혜까지 입맛 돋우고 속 채워줄 간식거리가 모두 모였다. 저렴한 값은 덤이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인근의 영천시장에서는 그야말로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시장은 깔끔한 모습으로 정비됐지만, 그 역사는 60년 세월을 품고 있다. 심심풀이로 먹던 주전부리에 맛을 더하는 시장 인심이 살아 있는 곳, 한 번도 못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영천시장으로 맛있는 간식 여행을 떠나보자.
 

시장 인심 가득한 곳

시장 주전부리 가운데 선두주자는 꽈배기다. 밀가루 반죽이 170℃ 기름에 노릇노릇 익어 갈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뜨끈한 열기 품은 꽈배기가 설탕 통에 툭 떨어진다.

흰 안개꽃을 맷돌에 곱게 갈아놓은 듯한 설탕이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하고 바삭하게 씹히는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후드득 떨어지는 설탕을 털어내며 또 한 입, 멈출 수가 없다.
 

영천시장 대표 옛날 꽈배기 장사는 두 자매가 책임진다. 언니는 시장 안 ‘원조꽈배기’서, 동생은 시장 입구 ‘달인꽈배기’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자매가 서대문에 터를 잡았을 때만 해도 인근 아파트가 모두 판자촌이었다.


“1980년대에 영천시장이 꽈배기 골목으로 유명했어요. 꽈배기 집만 13곳이나 됐지요. 꽈배기 하나에 25원일 때니까요. 고무 대야에 물건 파는 아주머니들이 매일 아침 가게 앞에 늘어서서 받아 가곤 했어요.”

지금은 인근 사무실 직원이나 등산객이 출출할 때 간식으로 많이 찾는다. 1000원짜리 한 장에 어른 손바닥만 한 꽈배기를 네 개나 담아주니 고맙다. 비싼 물가에 빈 장바구니와 배 속을 넉넉하게 채워줄 고마운 먹거리다.

‘독립문영천도넛’의 쫀득한 찹쌀도넛도 인기다. 직접 불려 만든 찹쌀 반죽을 5분간 튀긴다. 찹쌀 반죽은 밀도가 높아 밀가루 반죽보다 기름에 오래 머물러야 제맛이 난다. 주문은 1번에서 6번까지 번호로 하면 된다. 못난이찹쌀꽈배기와 못난이찹쌀팥도넛은 천안남산중앙시장서 반죽을 가져오고, 나머지는 직접 개발했다. 휴일이 따로 없다.“

원래 수요일이 휴일인데 거의 쉬지 못해요. 모처럼 한 번 쉬면 다녀간 사람들이 ‘헛걸음했다. 이제 장사 그만하려고 그러냐’면서 한마디씩 하거든요.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고마워서 매일 나옵니다.” 주말에는 주인과 똑 닮은 딸아이가 일손을 돕는다.

이곳 시장 사람들은 손님이 모두 이웃이다. 영천시장 먹거리가 맛있는 까닭이다. 정겨움과 따스함이 비법 양념이 되고,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으로 정성을 더한다. 거래가 아니라 나눔인 것. 그래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이야기가 넘친다.
 

영천시장의 또 다른 먹거리인 매콤하고 달콤한 떡볶이는 대체 불가 메뉴다. 과거 인근에 떡 공장이 많아 자연스럽게 떡볶이 가게가 늘어났다고 한다.

손님은 잊히지 않는 맛을 기억해서 매번 찾아오고, 주인은 그 맛을 대접하려고 평생 떡볶이를 만든다. 떡볶이 장사만 40년. 독립문역 방향 초입에 있는 ‘원조떡볶이’가 방송을 타며 유명세를 얻었고, 덕분에 영천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꽈배기, 떡볶이, 팥죽… 정성 가득 주전부리
서대문독립공원, 개미마을 등 가족 나들이로 제격

“한 총각이 예쁜 처녀를 데리고 와서 ‘할머니, 아직 살아 계시네요!’ 하더라고요. 대전에 사는데 10년 만에 왔다면서요. 가는 길에는 ‘다시 올 때까지 꼭 건강하세요’라고 하는데, 내 나이 일흔다섯이니까 그 총각 때문에 백 살까지 살아야겠어요.” 정정한 주인 할머니의 모습에 기분이 좋다.


바로 옆 ‘영천떡볶이집’은 이곳 상인들도 인정하는 맛이다. 국산 쌀로 직접 뽑은 떡을 사용하고, 모든 튀김 재료는 직접 마련해 믿고 먹을 만하다. 도톰한 김말이도 매일 저녁 국산 당면으로 사장이 직접 만든다. 꼬마김밥은 우엉을 넣어 맛이 알차다. 식사 대용으로도 맞춤이라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몇 년 전 일본 관광 잡지에 소개돼 외국인 손님이 자주 찾는다. 특수 제작한 패널 의자가 엉덩이를 데우고, 먹기 전에 나오는 보리차가 입맛을 돋운다.

“좋은 재료를 쓰는 건 25년 장사에 변함없는 철학이에요. 2000원짜리 판다고 아무렇게나 만들면 안 되죠. 처음에는 적자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손님이 가득하니 기분이 좋아요.”

영천시장의 가게 이름은 직관적이다. 40년 전통의 일명 ‘갈떡’, 떡볶이 마니아 사이에 유명한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에 ‘둘째네’가 붙었다.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집의 둘째 아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국물떡볶이를 맛보고 싶다면 둘째네를 찾으면 된다. 말랑한 밀가루 떡과 떡볶이 국물에 푹 젖은 군만두가 잘 어울린다.
 

한 끼 식사로 손색없는 ‘맛나팥죽’의 팥죽과 호박죽도 일품이다. 붉은팥과 쌀 모두 국산을 쓴다. 푸근해 보이는 주인이 새알을 빚어 매일 아침 팥죽을 끓인다.

엄마가 끓여준 것처럼 달지 않고, 밥알이 부드럽게 씹히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팥죽 한 그릇에 건강을 담았다. 이 집의 또 다른 인기 품목은 식혜. 시원하고 깔끔한 단맛이 갈증을 풀어준다. 2ℓ생수병에 담긴 식혜 한 통에 4000원.
 

비 오는 날에 영천시장을 찾는다면 파전에 막걸리가 제격이다. 끼니와 끼니 사이, 구수한 막걸리 한 잔과 잘 구운 파전 한 점이면 쌓인 피로가 스르르 녹는다. 전집은 맑은 날에도 안산자락길 걷기를 마친 등산객으로 붐빈다. 쫄깃한 찹쌀순대 역시 허기를 채우는 간식으로 훌륭하다.

인절미와 흑임자인절미는 하루가 지나도 쫀득하다. 영천시장 골목 250m는 배가 불러도 먹고 싶은 먹거리로 가득하다. 가벼운 주머니로 허기를 채우고, 그저 한 입 먹어보라는 시장 인심이 있어 계속 가고 싶은 곳이다.
 

서대문구의 주전부리 여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빵 굽는 냄새 가득한 연희동 베이커리 골목이 있다. 서울 3대 빵집으로 꼽히는 ‘리치몬드’ 연희점, 역사가 50년이 훌쩍 넘은 ‘독일빵집’ 등 연희삼거리를 중심으로 빵집 여섯 곳이 모였다.

이 가운데 ‘피터팬제과(PETERPAN1978)’의 크로앙슈가 인기다. 부드러운 페이스트리와 달콤한 아몬드크림이 만나 여성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현미를 커피콩 로스팅하듯 갈아 차처럼 만든 오늘의차와 함께 먹으면 좋다.


역사의 발자취

영천시장 주변에는 볼거리도 많다. 길 건너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가족 나들이나 데이트 코스, 아이들의 체험 활동지 등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를 탄압·통제하기 위해 만든 전국 최대 규모의 근대 감옥이다.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건물에서 역사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자.


형무소 뒤편의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을 따라가면 혼자만 알고 싶은 도심의 쉼터, 안산자락길을 만난다. 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그리 높지 않고, 전국 최초로 조성된 순환형 무장애 산책로라 노약자나 장애인도 불편함 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연희숲속쉼터는 4월이면 벚꽃과 개나리, 목련이 흐드러져 봄을 만끽할 최고의 장소로 변한다. 안산 정상(295. 9m)의 봉수대는 서울시를 한눈에 담기 벅찰 만큼 탁 트인 시야로 도심 속 서울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인왕산을 품은 홍제동 개미마을도 놓치지 말자.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로,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에서 서대문 07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된다. 언덕길을 오르며 세월에 지워진 벽화를 바라보면 할머니의 분칠처럼 정겹다. 골목골목 연탄 냄새가 짙게 배었다.

살림살이 곳곳에 가난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이곳 사람들은 개미처럼 열심히 산다. 마을 중간에 위치한 ‘버드나무가게’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집이다. 오가며 우연히 만난 이에게 따뜻한 차 한잔 건네는, 사람 냄새 그득한 동네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영천시장→서대문독립공원(독립문-서재필 선생 동상-독립관-3·1독립선언기념탑-순국선열추념탑-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홍제천→개미마을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영천시장→서대문독립공원(독립문-서재필 선생 동상-독립관-3·1독립선언기념탑-순국선열추념탑-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홍제천→개미마을
- 둘째 날: 홍제역→인왕시장→연희숲속쉼터→안산자락길→서대문자연사박물관→연희동 베이커리 골목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영천시장 www.facebook.com/sijangyc
- 서대문구청 서대문여행 www.sdm.go.kr/educate/travel.do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www.sscmc.or.kr/newhistory/index_culture.asp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namu.sdm.go.kr

문의 전화
- 서대문구청 문화체육과 02-330-1410
- 서대문구청 지역활성화과 02-330-8106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02-360-8583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02-330-8899

대중교통 정보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도보 약 8분. 5호선 서대문역 2번 출구, 도보 약 14분.
(문의: 서울메트로 1577-1234, www.seoulmetro.co.kr)

자가운전 정보
경부고속도로 한남 IC→한남대교→소월로→후암로58길→서울역사거리에서 연신내역·서대문역·서울역 방면으로 좌측→통일로→의주로지하차도→독립문 앞 공영주차장
(독립문사거리 직전에 독립문 앞 공영주차장이 있다. 요금은 10분당 500원. 평일 오후 7시 이후, 토요일 오후 3시 이후, 일요일·공휴일에는 무료. 주말에는 영천시장 옆 대로 갓길에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 주차 가능.)

숙박 정보
- 그랜드힐튼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02-3216-5656, www.grandhiltonseoul.com
- Ever8레지던스: 서대문구 신촌역로, 02-6946-0808, ever8.co.kr
- 신라스테이 서대문: 서대문구 충정로, 02-6388-9000, www.shillastay.com/seodaemun/index.do

식당 정보
- 석교식당(순댓국): 서대문구 통일로, 02-363-2803
- 녹원쌈밥(쌈밥): 서대문구 연희로25길, 02-336-9483
- 대성집(도가니탕): 종로구 사직로, 02-735-4259, daesungjip.modoo.at

주변 볼거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독립공원, 딜쿠샤, 돈의문 터, 서울 경교장, 서울 홍파동 홍난파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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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위기설’ 보수 합종연횡 시동

‘2월 위기설’ 보수 합종연횡 시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일각에서 “장동혁 체제를 무너트린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장동혁 대표는 ‘중도 확장’을 언급하면서도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몰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친한계는 개혁신당과 갈등하면서도 친윤계와 일시적 휴전을 하고 있다. 장동혁·친윤·친한·개혁신당은 얽히고설킨 합종연횡을 시작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각각 지난 5일과 9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강경 보수 노선을 비판했다. 이후 국민의힘에선 장 대표가 물러난 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출범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장 다음은 신 비대위?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언더 찐윤 그룹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에 대해 ‘이 사람으로 되겠느냐’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면서 “장 대표가 물러나면 누구에게 비대위원장을 시키면 좋겠느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주장했다. 장 소장은 “그들이 국민의힘 신동욱 최고위원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려 한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신 최고위원에게 비대위원장직을 맡기려는 이유로 경북 상주·언론사 앵커 출신이란 점이 거론된다. 장 소장은 “급소에 침을 넣을 수 있는 핵심은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핵심인 이유는 “언더 찐윤의 구심점이자, 장동혁 체제를 만든 5인방 중 1명”이란 것이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 일원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지난 12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 대표에게 제시할 노선 변경 시한은 연말”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은 장 대표가 판단을 잘했다고 보긴 힘들다”며 “국민이 원하면 국민의 뜻을 따라야지, 국민을 이기려고 정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도부가 연말까지 노선 변경에 대한 전향적 의견을 밝히지 않으면, 상당한 혼선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상당한 혼선’은 장 대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과 함께 흔들림 없이 강경 보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 15일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을 당 국민소통위원장에 임명했다. 국민의힘 장예찬 전 청년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에 임명됐다. 김 최고위원은 그로부터 4일 전인 지난 11일 TV조선 유튜브 채널 ‘엄튜브’에 출연해 “지난해 12월3일 계엄군의 총구를 잡은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의 행동은 사실상 즉각 사살해도 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시 같은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게 집계되는 여론조사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장 대표를 엄호했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율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단 결과가 나온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 등이 발표한 여론조사를 제시했다. 이어 “한국갤럽 여론조사 외엔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른단 여론조사 결과가 대부분”이라며 “장 대표의 투쟁에 모두 단결했으면 더 올라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개 제시된 장동혁의 시간은 ‘연말’ ‘통일교 특검’ 매개로 손잡은 장·이 장 부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청년 참모 1호로 알려졌던 친윤계 일원으로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가족이 연루됐다”는 논란이 발생한 당원 게시판 의혹에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부산 수영구 공천을 받았다가 “과거에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은 장 부원장 공천을 취소했고, 이후 장 부원장은 친한(친 한동훈)계와 대립하고 있다. 장 부원장은 같은 날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김 의원은 지도부를 흔들기 위한 게 아니라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라며 “연말까지 고름 같은 당내 문제를 해결하면, 새해부터는 대여 투쟁·민생에 집중해서 중도·외연 확장을 할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고름 같은 당내 문제’는 당원 게시판 의혹을 말한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은 지난 9일 당원 게시판 의혹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한 전 대표와 가족 명의로 게시된 글들의 실제 작성자를 확인하고 있다”며 “한 전 대표 가족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3명은 서울 강남병 소속이고, 휴대전화 끝자리가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중 1명은 재외국민 당원으로 확인됐고, 거의 같은 시기에 탈당했다”면서 한 전 대표 가족 실명도 공개했다. 지난 16일엔 친한계 일원으로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2년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윤리위원회에 요청했다. 당무감사위는 지난달 26일부터 김 전 최고위원을 조사했다. 윤리위가 당무감사위의 의견대로 징계를 확정하면, 김 전 최고위원은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정당 활동이 멈춰 총선 공천에서도 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최고위원은 같은 날 “터무니없는 결정”이라며 “윤리위가 당원권 정지를 결정하면 가처분을 신청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위원장이 밝힌 김 전 최고위원 징계 사유는 “우리 당 운영을 파시스트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북한 노동당에 비유했다”는 것이었다. 이어 “당원을 망상에 빠진 정신질환자에 비유하는 등 모욕적 표현을 했고, 사이비 교주의 영향을 받아 입당했다는 특정 종교 비난·종교 차별 발언을 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영혼을 팔았다”는 등 장 대표를 비판한 것도 징계 사유로 제시됐다. 고름 같은 당내 문제 한편 장 대표는 통일교 특검법을 매개로 개혁신당에 연대를 제안했다. 장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중 “통일교 특검법 통과를 위해 개혁신당과 뜻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던 무자비·포악한 이재명 정권을 막기 위해선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곧바로 “16일부터 특검법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화답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와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만나 큰 틀에서 ‘통일교 특검 추진’에 합의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해 “장 대표는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와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 같다”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라는 등 장 대표의 강경 보수 노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가 용꿈을 꾼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강조하면서 “국민의힘 대표를 하면, 대권주자로서 약 20% 정도의 지지를 얻으니, 다른 주자가 사라지면 내가 유일한 대권후보란 착각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통일교 유착 의혹이 제기된 후 두 사람은 제한적으로라도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관계자들은 민주당 일부 정치인들에게도 후원금을 제공했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은 “교단의 지시를 어긴 관계자 개인의 일탈이었다”면서 기소하지 않았다. 보수 야권으로선 특검의 공정성 문제를 대대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의원 상당수가 특검의 수사 대상이었던 국민의힘으로선 “되돌려줄 기회가 온 것 아니냐”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2018년부터 3년 동안 현금·명품 시계 등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수사 대상이 된 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아울러 장 대표가 친한계 정리 작업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친한계와 개혁신당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단 사실도 주목받고 있다. 친한계와 개혁신당은 쿠팡 새벽 배송 논란 관련 토론회 개최를 놓고 크게 갈등했다. 국민의힘 김은혜·우재준 의원은 지난 15일 ‘새벽 배송 금지, 누구의 새벽을 위한 선택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개혁신당은 사흘 뒤인 지난 18일, 김성열 수석 최고위원이 주관하는 ‘새벽 배송 금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친윤·친한 여전한 갈등 김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김·우 의원이 토론회 개최를 예고했다가 취소해서, 개혁신당이 마음 다친 관계자들을 모시고 토론회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혁신당 주최 토론회가 개최될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 다시 토론회를 개최하는데, 눈치 보다가 남의 것을 빼앗아서 하는 토론회에 무슨 진정성이 있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토론회에도 ‘원조’ 표기를 하고, 상표권도 등록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우 의원은 곧바로 반박했다. 그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새벽 배송 논쟁은 국민의힘이 먼저 제기했고, 우리 토론회는 원래부터 15일 개최가 예정돼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토론회 개최 직전 발생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사회적 관심이 분산될 가능성을 우려해 일정 연기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론 흐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우 의원이 15일 개최를 중요시 여긴 이유 중 하나는 지난 16일 진행된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라고 한다. 구도를 정리하면, 장 대표는 당내 친윤계·친한계와 갈등하면서 개혁신당과 제한적 연대를 추진해 중도 확장·대여 공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으려고 한다. 개혁신당은 장 대표와의 제한적 연대를 통해 오랜 갈등 관계인 친한계와의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친한계는 장 대표·개혁신당과 갈등하면서 마찬가지로 오랜 갈등 관계인 친윤계와 중도 확장·지방선거 승리라는 대의 앞에서 일시적으로 휴전한 것 같은 구도를 만들었다. 이를 단순하게 볼 수만은 없다. 장 대표는 지난 17일 경기 고양에서 연탄 배달 봉사활동 이후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힘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선 방향·보수 가치 재정립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에 수반돼 많은 의원이 말씀하시는 당명 개정도 필요하다면 함께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명 개정’은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친윤계와의 갈등을 진화하기 위한 승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선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김민수·장예찬 내세워 한동훈 축출 작전? 개혁신당과 쿠팡 갈등…친윤과 일시 휴전? 개혁신당은 국민의힘 내 이준석계와 구 친윤계의 갈등 끝에 이준석계가 국민의힘을 이탈한 후 창당됐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 출마한 후 각계에서 언급했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끝까지 뿌리친 후 완주했다. 이는 구 친윤계와의 화학적 결합은 창당 배경·당 정체성이란 측면에서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진행된 흐름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통일교 게이트 연루 가능성이 제기되자, 천 원내대표가 특검 추진 합의를 위해 구 친윤계의 일원이었던 송 원내대표와 손을 맞잡는 그림을 연출했다. 제한적 빅텐트가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구도가 ‘화학적 결합’으로 해석된다면, 지난해 2월 이낙연 전 총리와 함께 빅텐트를 치려다가 당원의 강한 항의를 들은 후 무산됐던 것과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이 대표는 지난 1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 대표는 황 전 대표처럼 굉장히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장 대표가 주장한 ‘우리가 황교안’이란 구호대로라면, 황 전 대표의 좋은 점·나쁜 점·정치적 진로 및 결과까지 다 답습할 것”이라는 등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표가 지난 2022년 당원권 정지 6개월을 받은 후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은 개혁신당 구성원·지지자들에게 분명하게 각인돼있다. 이들은 국민의힘을 틈을 비집고 들어간 후 언젠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친한계는 김 전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가 현실이 될 위기에 처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징계가 막힘없이 흐르는 현 상황대로라면,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하는 방법이 막힐 위험이 있다. 이렇게 되면 친한계는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 개혁신당과의 갈등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유권자를 상대로 “한 전 대표와 이 전 대표 중 누가 보수의 젊은 적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한다. 이 전 대표를 제치고 ‘보수의 젊은 적자’라는 명분을 얻어야 장 대표·구 친윤계와의 당내 다툼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에 비상이 걸릴 수도 있는 여론조사 수치가 발표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는 지난 12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시장 선거 양자구도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만약 최근 주목받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양자구도를 이루면, 45.2%의 지지를 얻어 38.1%의 지지를 얻은 오 시장을 이길 수도 있단 결과가 확인됐다. 비상 걸린 지방선거 이는 민주당이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고 행정 경험이 풍부한 새로운 후보를 내세우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장 대표 ▲구 친윤계 ▲친한계 ▲개혁신당 등 보수 4자 합종연횡 구도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설킬 가능성도 함께 내포한다. 장 대표에게 사실상 주어진 시한은 연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 제1심 선고가 진행될 예정인 내년 2월까지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는 등 매듭 짓지 않으면, 지도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2월 위기설’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은 과연 어떤 연말·연초를 맞이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