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48)머슴살이한 고시원 총무

“하도 답답해서 외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느 누구든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마흔여덟 번째는 고시원 총무에 대한 편견에 맞서 1년째 사업주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A씨의 이야기입니다.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A씨는 지친 얼굴로 그렇게만 말하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난 7일 1년여간 이어온 법정 다툼 끝에 나온 결과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편견의 시선

서울중앙지법은 근로계약서 미작성, 최저시급 위반 등으로 검찰이 고시원 사업주 B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청구한 재판서 벌금 50만원 판결을 내렸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건은 유죄, 최저시급 위반 건은 무죄로 판단한 결과였다. 법원은 고시원 총무의 실제 근로시간이 애매하고, 근무를 했다 해도 상당 시간동안 공부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최저시급 위반 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A씨가 서울 서초구의 한 고시원서 총무로 일한 건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A씨는 말 그대로 돈이 없어 공부를 하기 어려운 취준생이었다.

처음 A씨는 고시원 총무 일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월 40만원이라는 적은 임금, 시도 때도 없는 B씨의 업무 지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원생들의 불만 등이었다.


고시원이나 독서실 총무 일은 선호도가 높은 아르바이트 중 하나다. 대다수 지원자들은 임금이 적은 대신 근무 부담 역시 적고, 남는 시간에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업주 역시 총무에게 공부할 공간을 내준 것을 빌미로 적은 임금에 대해 면피하려 든다. 업무 부담이 적고, 그 외 시간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에 근로시간은 길지 않다는 게 대부분 사업주의 논리다.

월 40만원에 온갖 잡무
공조기 청소·집안일도

실제 B씨는 A씨가 해당 사업장서 일하는 동안 근로시간은 1∼2시간이고, 그 외는 전부 휴게시간이라고 주장했다.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 감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지 않지만 조속한 시간 내에 근무에 임할 것을 예상하고 있거나 사용자로부터 언제 요구가 있을지 불분명한 상태에 있는 대기시간과 구별된다.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은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해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 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는 지난 2014년 9월부터 2015년 9월까지 1년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고시원 총무실서 일했다. B씨의 주장대로라면 A씨는 1∼2시간의 근로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6∼7시간은 아무 제재 없이 사용할 수 있던 셈이다.

하지만 A씨는 정해진 8시간 동안 외출을 할 수 없었고, 불규칙적으로 업무 지시를 하는 B씨의 말에 따라야 했다. 고시원 총무로 지내는 동안 A씨는 원생들의 입퇴실 관리와 민원 업무는 물론 세면대 배수구 교체작업, 화장실 수리, 도배, 파손된 주차장 차단바 수리, 심지어 야간 총무와 2인1조로 공조기 필터 청소까지 했다. 대부분 전문업체가 담당했어야 할 일이지만 A씨는 사업주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B씨의 요구는 A씨가 중요한 시험을 한 달 앞둔 때에도 계속됐다. A씨는 “시험이 한 달 남은 시기였는데, 사장님이 수도밸브를 던져주면서 연구해서 설치하라고 했다”며 “오죽했으면 제가 월급서 공제해도 좋으니 전문가를 부르면 안 되겠냐고 요청했다”고 토로했다.

고시원 외부 간판 전등을 교체하는 작업에 투입됐을 때는 철물점 직원이 “안전장치 없이 미숙련 노동자가 작업하면 위험하다”고 말해줄 정도였다. 또 A씨의 근무 시작 시간은 오전 9시였지만 아침 일찍 원생들의 온수 사용을 위해 보일러를 체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B씨의 집에 있던 소파를 폐기하는 일 등 집안일에 불려간 적도 있었다.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근무하던 야간 총무가 퇴직금 문제로 B씨와 갈등을 빚자 A씨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졌다. B씨는 A씨와는 퇴직금 분쟁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월급 40만원에 대해 절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만 담긴 일종의 각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해당 서류를 A씨에게 주지 않았다. B씨는 A씨의 후임 총무에게도 같은 내용의 각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1심 최저시급 위반 무죄
휴게시간 여부 쟁점으로

B씨의 부당한 대우가 계속되자 A씨와 야간 총무는 2015년 10월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노동청 조사 과정서 B씨는 A씨와 야간 총무에게 업무 지시를 한 적이 없고, 자유로운 휴게시간을 보장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B씨가 혐의를 부인하자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구약식 기소했고 B씨는 법정서 시비를 가리고 싶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 지난해 5월부터 현재까지 공방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A씨가 1년의 근무기간 동안 제대로 정산받지 못한 급여, 주휴수당, 퇴직금 등은 1400여만원에 이른다. 또 다른 피해자인 야간 총무의 미지급금과 합치면 3000만원 돈이다.

가장 큰 쟁점은 B씨가 주장하는 휴게시간에 정말로 두 사람이 업무에서 완전히 해방된 상태였는지 여부다.

2006년 대법원은 24시간 일한 후 24시간을 쉬는 격일제 형식으로 근무하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실제 근로시간에서 휴게시간과 심야 수면 시간을 제외한 원심 판결을 파기한 사례가 있다. 휴게시간과 심야 수면 시간 동안 아파트 경비원들이 지휘명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됐는지 여부에 대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전문가들은 두 사람이 근무하던 때 B씨의 행위로 보면 이들은 언제든 업무 지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이 정말로 B씨의 업무 지시에서 완전히 해방됐다면 내내 총무실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1년째 답보

2015년 말부터 노동청을 오가고 법원에 의견서 및 탄원서를 내면서 1년을 보낸 A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포기했다. 현재 A씨는 교육 분야 아웃소싱 업체서 일하고 있다. A씨는 “법정 다툼을 하는 내내 과거에 머무르는 기분”이라며 “이 일이 해결되기 전까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생각이지만, 흙수저인 제가 정말로 의미 있는 결과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고시원 총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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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