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공제회의 ‘수상한 영전’

고위 임원 부자 특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자회사 사장으로 선임된 군인공제회 고위급 간부가 돌연 사장직을 내려놓고 또 다른 자회사 임원으로 명찰을 바꿔 달았다. 능력에 대한 물음표를 떨쳐내지 못했건만 새 직장은 임기를 더 늘려주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자식들을 취직시키는 데 입김을 행사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군인·군무원의 복지증진을 목표로 1984년 설립된 군인공제회는 17만 회원과 9조원대 자산, 6개 산하 사업체를 휘하에 둔 거대조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군인공제회 내부에선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 전무이사로 재직 중인 이모씨 역시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뒤에 누가 있나?

육사 36기인 이씨는 8군단 감찰참모, 국방대 국방정신전력 리더십 개발실장 등을 거쳐 2011년 군인공제회 기획관리본부장으로 임명됐다. 몇 년 후 이씨가 군인공제회 산하 사업체로 진출하게 된 것도 군인공제회라는 배경이 힘을 발휘한 덕분이다.

이씨는 2014년 3월28일 뜬금없이 한국캐피탈 사장으로 선임됐다. 군인공제회 기획관리본부장 임기가 끝나기 전에 내려진 인사였다. 당시 여신금융회사인 한국캐피탈은 유재정 사장의 임기만료에 따라 이씨가 사장으로 선임되기 약 두 달 전부터 사장 공개모집에 나선 상황이었다.

‘여신전문금융회사 10년 이상 근무한 자로서 임원 3년 이상 경력자, 임원 재직 시 리스·인수합병·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영업분야 업무경력자’ 등이 사장 후보의 필수지원 자격이었다. 이 같은 기준에도 불구하고 군인 출신인 이씨가 선임됐다는 건 평가단계서 후보자의 전문성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국캐피탈 측도 당시 이씨를 사장에 선임한 건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 아니었음을 인정했다. 다만 정황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뜻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이씨의 한국캐피탈 사장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4년 5월16일 한국캐피탈은 일신상 이유로 사임의 뜻을 내비친 이씨를 대신해 김철영 사장을 신규 선임한다고 공시했다.

한국캐피탈 관계자는 “사장 후보로 추천된 김철영 전 산은캐피탈 기획관리본부장의 청와대 인사검증 절차가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불가피하게 대주주(군인공제회) 입장을 반영했던 것”이라며 “정기주총 직후 김철영 사장에 대한 인사검증 절차가 끝났고 자연스럽게 사장 교체가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다음 행선지는 대한토지신탁이었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신탁 및 부수업무를 주목적으로 하는 군인공제회의 또 다른 산하 사업체다. 이씨는 2014년 7월1일 자로 대한토지신탁 전무로 공식 임명됐다. 이 무렵부터 이씨와 관련한 인사 구설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군인 출신이 금융·부동산 중책 
두 아들은 인사 구설…자회사 취업

한국캐피탈 사장에 선임될 때와 마찬가지로 전문성을 감안한 인사로 해석하긴 애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2년 임기를 다 채운 것도 모자라 2017년 6월30일까지 임기를 1년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산하 사업체 임원 선임 권한을 지닌 군인공제회 이사회서 이씨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대한토지신탁 다른 임원의 임기 연장을 위해 이씨가 직접 나섰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산하 사업체 임원 인사 결정에 관여하는 군인공제회 고위직 임원의 이름까지 오르내리는 등 구체적인 정황마저 거론되는 상황이다. 소문의 중심에 선 사람들 모두 육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군인공제회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군인공제회서 임원의 임기 연장은 좀처럼 찾기 힘든 일이다.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 연임이 불가능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들은 육사 출신이라는 끈을 적절히 활용하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반면 대한토지신탁 측은 이씨 부임 후 회사가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는 점에서 이씨 연임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 측근들의 임기를 연장시키고자 물밑작업을 펼친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대한토지신탁 관계자는 “실적 목표 초과 달성과 기업경쟁력 제고에 성공한 점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연임이 결정된 것”이라며 “애초부터 실적에 따른 1년 연장 가능성을 고려한 결정이었고 나머지 임원들 역시 같은 기준에서 평가를 내린다. 몇몇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임기 연장을 위해 알력을 행사한다는 소문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한술 더 떠 이씨를 둘러싼 인사 구설은 그의 가족과 연루되는 양상이다. 이씨가 군인공제회 산하 사업체에 자식들을 취직시키는 데 힘을 썼다는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취재 결과 30대 중반인 이씨의 두 아들은 2014년부터 군인공제회 산하 사업체에 직원으로 등록된 상태였다. 시기상 이씨가 군인공제회서 산하 사업체로 자리를 옮긴 후였다.

첫째 아들은 이씨가 대한토지신탁에 둥지를 튼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4년 7월 전산시스템(SI) 업무를 영위하는 군인공제회C&C의 경영지원팀 직원으로 입사했다. 둘째 아들은 한국캐피탈서 자금 담당업무를 맡고 있다. 둘째가 몸담고 있는 한국캐피탈은 이씨가 잠시나마 사장으로 이름을 올렸던 곳이다. 

자식도 꽂았나

이씨의 두 아들이 각각 근무하는 군인공제회C&C와 한국캐피탈 모두 이씨의 아들이 근무한다는 점은 순순히 인정했다. 다만 공정한 심사를 거쳐 직원으로 채용했을 뿐 항간에 떠도는 특혜성 취업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군인공제회C&C 관계자는 “고위직 임원의 아들이었음을 알게 된 건 한참 지난 후였다”며 “누구도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공정한 심사를 거쳤기에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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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