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9) 대야성

복수심에 불판 평정심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신하들의 시선이 의자왕의 얼굴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일찍이 성왕께서 관산성 전투에서 패하여 서거하신 적이 있음을 잘 알고 있소. 당시 우리의 세가 약했다 할 수 없으나 성왕께서는 평정심을 잃고 전쟁에 임하였기에 그런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이오.”

의자왕이 잠시 말을 멈추고 저만치에 앉아 있는 청년 장수 계백에게 시선을 주었다.

“계백 장군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관의 덕목이 뭐라 생각하는고?”

“그야…… 방금 전하께서 말씀하신 평정심입니다.”


“바로 말하였네. 그런데 성왕께서는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 평정심을 잃으셨었네. 그런 연유로 신라군에게 패하신 게고.”

경청하는 신하들이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러니 경들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네. 군사, 계속 설명하게.”

흥수가 가볍게 목례하고 다시 신료들을 바라보았다.

“하여 이번 전투에서는 양동작전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양동작전이오?”“그러합니다, 대장군.”

성충의 말에 가벼이 답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성충 장군께서는 전하를 모시고 미후성(구체적 지명은 알 수 없으나 경남 거창 인근 지역으로 사료됨)을 시작으로 진격해 주십시오. 아울러 그와 관련하여 전하께서 계백 장군을 가잠성(경남 거창) 성주로 임명하셨으니 회의가 파하는 즉시 계백 장군은 서둘러 전쟁 준비를 하시오.”

“그렇다면 가잠성을 본진으로 삼고 주변의 모든 성을.”

성충이 말하다 말고 시선을 의자왕에게 주었다.

“그렇소. 그러니 장군은 짐과 함께 움직여야 하오.”

성충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오, 장군.”

“이왕지사 전하께서 친정하신다면 의미 있는 전쟁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습니다.”

“그 이야기인즉.”

“미후성 정도가 아니라 신라의 중심 혹은 그에 버금가는 장소를 취하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급하게 흥수가 말을 이어받았다.

“하면.”


흥수가 즉답에 앞서 의자왕을 주시하자 의자왕의 시선이 윤충에게 향했다.

시선을 받은 윤충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는 듯 흥수를 주시했다.

“대장군께서 전하를 모시고 가잠성을 기반으로 신라를 공략할 시점에 소신은 윤충 장군과 함께 신라의 대야성을 공략하려합니다.”

“대야성!”

모두의 입에서 일시에 터져 나왔다.

“우리 백제의 실제 목표는 바로 대야성입니다.”


“대야성을 치고자 하는데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소이까?”

“신라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거점이란 점이 첫째 이유고 둘째는 지금 대야성 성주가 김품석이라는 사실입니다.”

“김품석이라면 김춘추의 사위 아니오?”

“그렇습니다. 하여 지금 신라 선덕여왕의 조카인 김춘추의 사위를 죽여 우리 백제의 기개를 만방에 알리고 이를 계기로 지난 시절 관산성 전투에서 당했던 일을 복수하고자 합니다.”

성충이 김품석을 되뇌며 의자왕을 주시했다.

“왜 그러는 게요, 대장군.”

“전하, 그런 경우라면 소장이 당연히 선봉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그러하옵니다.”

“대장군이 말이오? 하면 대장군은 짐을 내치고 가겠다는 이야기요?”

의자왕이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자 당황한 성충이 의자에서 일어나 급히 무릎 꿇었다.

“전하, 꿈이라도 그런 말씀은 삼가하여 주십시오.”

“하면, 방금 이야기는 무슨 뜻이오?”

“대야성 같은 중요 지점에는 아무래도.”

성충이 말을 하다 말고 윤충을 바라보았다.

“형님, 아니 대장군은 소장을 어찌 보고 그러십니까!”

말을 마친 윤충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왕에게 다가서면서 허리에 있던 칼을 풀어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전하, 소장이 명을 받들지 못할 시에 반드시 이 칼로 소장의 목을 베어주십시오.”

윤충의 목소리가 가래 끓는 듯했다.

“하기야 군사가 함께 한다면.”

성충이 동생의 모습, 어깨까지 심하게 떠는 모습을 살피며 급히 말을 돌렸다.

“바로 그러하오. 윤충 장군의 용맹함과 군사의 지략이 합해지면 대야성 아니라 경주를 함락시키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하오.”

말을 마친 의자왕이 윤충에게 물러가라 고갯짓하자 윤충이 가볍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성충을 바라보았다.

성충이 그 시선을 은근히 회피하며 흥수를 바라보았다.

“결국 전하를 모시고 신라의 관심을 유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송구하옵니다만 결과는 그렇습니다.”

성충이 생각에 잠겨들었다는 듯 잠시 사이를 두었다.

“그건 그렇다 하고 신라 쪽의 대응은 생각해 보았소?”

성왕 관산성 전투 패배…설욕 위해 성 접수?
앞장서는 계백 장군…신라군 역습 대비 나서

“당연합니다, 대장군. 경주에 잠입해 있는 세작에 의하면 지금 신라의 장수로는 김유신이 으뜸인데 그야말로 찬밥 신세라 합니다.”

“김유신, 찬밥 신세라.”

“사사건건 선덕여왕과 반목을 일으키고 그런 연유로 하루하루 술에 의지한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김유신이 지금 신라의 실세인 김춘추와 처남 매부지간으로 알고 있소만.”

“대장군, 권력의 문제입니다.”

흥수가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하고 의자왕을 바라보았다.

순간 의자왕의 얼굴이 경직되고 있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의자왕의 표정을 살피던 성충이 급히 말을 돌리고 계백에게 시선을 주었다.

“계백 장군, 아니 가잠성 성주는 여하한 경우라도 방심하지 말고 가잠성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네.”

“명심하겠습니다, 대장군.”

“신라 놈들은 간사한 족속들이라 예측할 수 없으니 쉽게 움직이지 말도록 하게. 그리고 행여나 전하를 모시고 백제군이 진군하기 전에 신라군이 쳐들어온다 해도 오로지 수성에만 전념하게.”

“수성만 하라니요?”

혈기왕성한 계백이 목소리를 높였다.

“방금 전 전하께서 지적하셨듯이 전쟁은 혈기로만 치르는 게 아니네. 즉 평정심이 중요한 게야, 평정심.”

성충이 평정심에 힘을 주고 의자왕을 바라보았다.

“계백 장군은 대장군의 말을 유념하도록 하라. 짐이 가기 전까지 오로지 성을 견고하게 유지하도록 하게. 이후의 일에 장군을 소중히 쓸 터이니.”

의자왕까지 나서 계백의 혈기에 일침을 가하자 계백이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타소의 주의를 무시하고 기어코 검일의 처를 빼앗은 품석이 그녀를 위해 집을 마련하고 치마폭에 젖어 지냈다.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가야금 소리에 낮을 보내고 버들가지처럼 야들야들한 몸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지속되었다.

그 시각 백제는 성충을 앞세운 의자왕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국경으로 이동했다.

이어 가잠성을 기반으로 미후성 등 국경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성을 공략했다.

그에 따라 백제군을 막기 위해 신라의 주력군이 급히 움직였다.

동시에 윤충이 군사인 흥수와 함께 백제의 정예병 일만 명을 거느리고 김품석이 성주로 있는 대야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을 치고 성을 포위했다.

그 모든 정황을 입수한 대야성 진영에서도 즉각 경계태세가 발동되었다.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뭐가 말인가?”

“기껏 매복 훈련에다 순찰을 강화했는데 정작 백제군이 코앞까지 닥치도록 모르고 있었다니.”

검일의 지적에 모척 역시 의아한 듯 백제 진영을 바라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니.”“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했던 훈련을 생각해보았네.”

“훈련이라니요?”

“어느 순간 훈련이 멈췄지. 그래, 자네 일이 있고 난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훈련이 종료되지 않았는가?”

검일이 모척의 말을 헤아리는 듯 잠시 사이를 두었다.

“듣고 보니 형님 말이 맞네요.”

“성주가 자네 부인을 취한 후로는 훈련이 없었지.”

“그러면 그게.”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너무 비약 말게.”

“아닙니다, 형님. 한번 깊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성주가 자네 부인에게 빠져 지내느라 훈련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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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