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9) 대야성

복수심에 불판 평정심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신하들의 시선이 의자왕의 얼굴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일찍이 성왕께서 관산성 전투에서 패하여 서거하신 적이 있음을 잘 알고 있소. 당시 우리의 세가 약했다 할 수 없으나 성왕께서는 평정심을 잃고 전쟁에 임하였기에 그런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이오.”

의자왕이 잠시 말을 멈추고 저만치에 앉아 있는 청년 장수 계백에게 시선을 주었다.

“계백 장군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관의 덕목이 뭐라 생각하는고?”

“그야…… 방금 전하께서 말씀하신 평정심입니다.”

“바로 말하였네. 그런데 성왕께서는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 평정심을 잃으셨었네. 그런 연유로 신라군에게 패하신 게고.”

경청하는 신하들이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러니 경들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네. 군사, 계속 설명하게.”

흥수가 가볍게 목례하고 다시 신료들을 바라보았다.

“하여 이번 전투에서는 양동작전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양동작전이오?”“그러합니다, 대장군.”

성충의 말에 가벼이 답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성충 장군께서는 전하를 모시고 미후성(구체적 지명은 알 수 없으나 경남 거창 인근 지역으로 사료됨)을 시작으로 진격해 주십시오. 아울러 그와 관련하여 전하께서 계백 장군을 가잠성(경남 거창) 성주로 임명하셨으니 회의가 파하는 즉시 계백 장군은 서둘러 전쟁 준비를 하시오.”

“그렇다면 가잠성을 본진으로 삼고 주변의 모든 성을.”

성충이 말하다 말고 시선을 의자왕에게 주었다.

“그렇소. 그러니 장군은 짐과 함께 움직여야 하오.”

성충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오, 장군.”

“이왕지사 전하께서 친정하신다면 의미 있는 전쟁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습니다.”

“그 이야기인즉.”

“미후성 정도가 아니라 신라의 중심 혹은 그에 버금가는 장소를 취하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급하게 흥수가 말을 이어받았다.

“하면.”

흥수가 즉답에 앞서 의자왕을 주시하자 의자왕의 시선이 윤충에게 향했다.

시선을 받은 윤충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는 듯 흥수를 주시했다.

“대장군께서 전하를 모시고 가잠성을 기반으로 신라를 공략할 시점에 소신은 윤충 장군과 함께 신라의 대야성을 공략하려합니다.”

“대야성!”

모두의 입에서 일시에 터져 나왔다.

“우리 백제의 실제 목표는 바로 대야성입니다.”

“대야성을 치고자 하는데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소이까?”

“신라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거점이란 점이 첫째 이유고 둘째는 지금 대야성 성주가 김품석이라는 사실입니다.”

“김품석이라면 김춘추의 사위 아니오?”

“그렇습니다. 하여 지금 신라 선덕여왕의 조카인 김춘추의 사위를 죽여 우리 백제의 기개를 만방에 알리고 이를 계기로 지난 시절 관산성 전투에서 당했던 일을 복수하고자 합니다.”

성충이 김품석을 되뇌며 의자왕을 주시했다.

“왜 그러는 게요, 대장군.”

“전하, 그런 경우라면 소장이 당연히 선봉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그러하옵니다.”

“대장군이 말이오? 하면 대장군은 짐을 내치고 가겠다는 이야기요?”

의자왕이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자 당황한 성충이 의자에서 일어나 급히 무릎 꿇었다.

“전하, 꿈이라도 그런 말씀은 삼가하여 주십시오.”

“하면, 방금 이야기는 무슨 뜻이오?”

“대야성 같은 중요 지점에는 아무래도.”

성충이 말을 하다 말고 윤충을 바라보았다.

“형님, 아니 대장군은 소장을 어찌 보고 그러십니까!”

말을 마친 윤충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왕에게 다가서면서 허리에 있던 칼을 풀어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전하, 소장이 명을 받들지 못할 시에 반드시 이 칼로 소장의 목을 베어주십시오.”

윤충의 목소리가 가래 끓는 듯했다.

“하기야 군사가 함께 한다면.”

성충이 동생의 모습, 어깨까지 심하게 떠는 모습을 살피며 급히 말을 돌렸다.

“바로 그러하오. 윤충 장군의 용맹함과 군사의 지략이 합해지면 대야성 아니라 경주를 함락시키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하오.”

말을 마친 의자왕이 윤충에게 물러가라 고갯짓하자 윤충이 가볍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성충을 바라보았다.

성충이 그 시선을 은근히 회피하며 흥수를 바라보았다.

“결국 전하를 모시고 신라의 관심을 유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송구하옵니다만 결과는 그렇습니다.”

성충이 생각에 잠겨들었다는 듯 잠시 사이를 두었다.

“그건 그렇다 하고 신라 쪽의 대응은 생각해 보았소?”

성왕 관산성 전투 패배…설욕 위해 성 접수?
앞장서는 계백 장군…신라군 역습 대비 나서

“당연합니다, 대장군. 경주에 잠입해 있는 세작에 의하면 지금 신라의 장수로는 김유신이 으뜸인데 그야말로 찬밥 신세라 합니다.”

“김유신, 찬밥 신세라.”

“사사건건 선덕여왕과 반목을 일으키고 그런 연유로 하루하루 술에 의지한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김유신이 지금 신라의 실세인 김춘추와 처남 매부지간으로 알고 있소만.”

“대장군, 권력의 문제입니다.”

흥수가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하고 의자왕을 바라보았다.

순간 의자왕의 얼굴이 경직되고 있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의자왕의 표정을 살피던 성충이 급히 말을 돌리고 계백에게 시선을 주었다.

“계백 장군, 아니 가잠성 성주는 여하한 경우라도 방심하지 말고 가잠성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네.”

“명심하겠습니다, 대장군.”

“신라 놈들은 간사한 족속들이라 예측할 수 없으니 쉽게 움직이지 말도록 하게. 그리고 행여나 전하를 모시고 백제군이 진군하기 전에 신라군이 쳐들어온다 해도 오로지 수성에만 전념하게.”

“수성만 하라니요?”

혈기왕성한 계백이 목소리를 높였다.

“방금 전 전하께서 지적하셨듯이 전쟁은 혈기로만 치르는 게 아니네. 즉 평정심이 중요한 게야, 평정심.”

성충이 평정심에 힘을 주고 의자왕을 바라보았다.

“계백 장군은 대장군의 말을 유념하도록 하라. 짐이 가기 전까지 오로지 성을 견고하게 유지하도록 하게. 이후의 일에 장군을 소중히 쓸 터이니.”

의자왕까지 나서 계백의 혈기에 일침을 가하자 계백이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타소의 주의를 무시하고 기어코 검일의 처를 빼앗은 품석이 그녀를 위해 집을 마련하고 치마폭에 젖어 지냈다.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가야금 소리에 낮을 보내고 버들가지처럼 야들야들한 몸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지속되었다.

그 시각 백제는 성충을 앞세운 의자왕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국경으로 이동했다.

이어 가잠성을 기반으로 미후성 등 국경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성을 공략했다.

그에 따라 백제군을 막기 위해 신라의 주력군이 급히 움직였다.

동시에 윤충이 군사인 흥수와 함께 백제의 정예병 일만 명을 거느리고 김품석이 성주로 있는 대야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을 치고 성을 포위했다.

그 모든 정황을 입수한 대야성 진영에서도 즉각 경계태세가 발동되었다.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뭐가 말인가?”

“기껏 매복 훈련에다 순찰을 강화했는데 정작 백제군이 코앞까지 닥치도록 모르고 있었다니.”

검일의 지적에 모척 역시 의아한 듯 백제 진영을 바라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니.”“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했던 훈련을 생각해보았네.”

“훈련이라니요?”

“어느 순간 훈련이 멈췄지. 그래, 자네 일이 있고 난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훈련이 종료되지 않았는가?”

검일이 모척의 말을 헤아리는 듯 잠시 사이를 두었다.

“듣고 보니 형님 말이 맞네요.”

“성주가 자네 부인을 취한 후로는 훈련이 없었지.”

“그러면 그게.”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너무 비약 말게.”

“아닙니다, 형님. 한번 깊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성주가 자네 부인에게 빠져 지내느라 훈련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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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