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김영란법 이후…수렁에 빠진 대한민국 ⑥고개 드는 무용론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2.06 09:48:42
  • 호수 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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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빨리 바꾸거나 없애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설 명절 전후 소상공인과 유통가는 썰렁했다. 김영란법 탓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본격적으로 김영란법이 적용된 명절은 이번 설이 처음이다. 김영란법을 감안해 5만원 이하의 설 선물세트 품목을 대폭 늘려도 예상외로 잘 판매되지 않았다. 김영란법이 내수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시급히 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속히 일고 있다.

김영란법의 전면 개정을 위한 소상공인들의 국회앞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설날을 앞두고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이 시작한 1인 시위는 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 민상헌 회장(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 전국한우협회 황엽 전무, 한국화원협회 선호영 부회장, 한국농축산연합회 이홍기 상임대표, 한국산업전동툴협동조합 유재근 이사장,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문승국 부회장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이번 설 명절 경기는 그야말로 최악”이라며 “김영란법으로 인한 전반적인 소비심리 위축이 소상공인들을 절망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영란법으로 저렴한 선물 및 메뉴의 판매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며 “극도로 위축된 소비 심리를 되돌릴 정부 당국의 방안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유통가도 이번 설날 명절특수는 없었다. 지난달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설 선물세트 판매실적은 최대 10% 줄었다. 대형 마트들도 역성장을 면치 못했다. 면세점 역시 성장보다는 ‘제자리걸음’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설 선물세트 매출이 하락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보다 10.1%(12월26일∼1월27일), 신세계백화점은 3.8%(1월12∼26일 기준), 갤러리아백화점은 2%(1월9∼26일) 줄었다.


현행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법률’(김영란법)은 3·5·10이라는 통제선을 정해놓고 이 선을 넘어서는 음식이나 선물, 경조사비를 받거나 제공할 경우 쌍방 모두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올해 대형백화점과 유통업체의 매출이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감소는 곧바로 기업과 고용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매출이 떨어지면 우선 1차적으로 완성업체의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고용인원을 감축시키고 생산량을 줄이는 1차 사태가 일어난다. 2차적으로는 대기업서 자재를 받아 중간제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의 일감이 줄어들어 2차 고용감소 현상이 일어난다.

3차적으로는 원자재 생산업체의 일감이 줄어들면서 국가기간산업 마저 흔들리는 사태가 일어난다. 4차적으로는 농·수산물과 서비스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서민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이 본래의 취지와 정반대로 가고 있어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서도 김영란법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법 개정에 나섰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7일 새누리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국회 당정 민생물가점검회의서 “김영란법의 조속한 개정을 통해 농민의 어려움을 해소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조속히 개정 작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썰렁’ 내수 침체 가시화
당·청 개정안 논의 개시

이 정책위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개정 검토 지시가 있었고 4당 정책위의장들도 정부에 김영란법 시행 이후 발생할 문제를 점검해 국회에 보고해 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며 “김영란법의 문제점으로 특별히 농·축산 농가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있어 개정 공감대가 형성됐고 정부도 구체적인 대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 개정안은 애초 ‘3·5·10’서 ‘5·5·10’으로 높였다. 음식물 접대 한도가 3만원서 5만원으로 바뀌는 것이다. 가액 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정부의 판단으로 ‘3월 초부터 시행한다’는 일정도 공개했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접대 제한으로 기준이 ‘3·5·10’이다. 이 시행령의 개정은 사실상 김영란법의 개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국민권익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 등 관계부처가 참석하는 회의를 개최해 시행령 개정을 위한 향후 일정을 논의했다.

정부는 우선 각 부처에서 자체 진행하고 있는 실태조사를 마무리한 후 청탁금지법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종합 분석해 시행령을 개정하는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각 부처는 특히 청탁금지법이 이번 설 명절 기간 우리 경제현실서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다. 정부와 별도로 중소기업청도 다음 달까지 실태조사를 마치고 결과를 공유해 개정안에 반영토록 할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현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시행령 개정을 위한 TF로 전환하고 구체적인 일정을 잡아 관련 작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해 TF 구성 이후 총 7차례 정례회의를 가졌는데, 앞으로는 각 부처 실태조사 결과를 기초로 청탁금지법의 비현실적인 부분과 이에 대한 보완 방안을 취합해 시행령 개정작업을 주도토록 할 예정이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지난달 8일 경북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영세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농·수·축산물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문 전 대표가 상한금액 개정안을 직접적으로 촉구한 것은 아니지만 김영란법이 여러 모로 영세상인에게 피해를 준다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주장한 개정안에 힘이 실린 상황이다.

법 개정 눈앞

일각에선 여전히 김영란법 폐지론이 거론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정부가 국민생활 안정의 기본임무마저 소홀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김영란법이 본래의 취지와 정반대로 가고 있어 법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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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김영란법 개정안 보니…

김영란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9월28일에 앞서 8월 김영란법에 대한 개정안이 6건이나 발의됐다. 김영란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가 한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소속 의원이 잇따라 개정안을 발의했다. 진보성향인 정의당도 개정에 동참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청탁성 소비뿐만 아니라 다수 국민의 소비심리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며 ‘농축수산물 소비촉진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도 “국회가 통과시킨 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하는 것은 국민정서에 반한다”면서도 “시행 후 문제점이 나타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국회 개원 뒤 입법발의된 김영란법 개정안은 6건이다.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월 관련법 시행에 따른 수수금지 품목에 국내산 농축수산물과 가공품을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한 김영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강석호 새누리당 의원은 명절과 같은 특정 기간 내에는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품을 수수금지 품목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개호 민주당 의원은 농어민들이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품을 허용가액 범위 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준비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3년간 유예기간을 허용하는 김영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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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