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과감하게 바뀌어야 산다”

<대한민국 이끄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⑩>정의화 국회부의장

오는 2012년 대선을 2년 여 앞둔 시점에서 <일요시사>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라는 기획으로 편집국장 대담을 진행한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 정치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앞으로도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판단되는 여야 유력 정치인, 정계 원로와의 만남을 통해 차제의 시대정신과 정치발전 과제 등에 관한 철학과 지혜를 담아낼 예정이다. 그 열 번째로 정의화 국회부의장을 만나봤다.  <대담=최민이 편집국장>


판 커진 4월 재보선 “여당은 민생법안부터 챙겨야”
재보선 결과 상관없이 당 변화·발전 위한 노력 당부 

지난달 말 오는 5월에 있을 G20국회의장단 회의를 위해 의장특사로 유럽출장을 다녀온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4월 임시국회 일정이 이어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의화 국회부의장을 지난 11일 국회부의장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4월 국회 열렸지만
정치권은 재보선 붙박이

- 4월 국회가 열렸지만 정치권의 시선은 4·27 재보선에 향해 있는 것 같다.
▲ 내년에 총선·대선이 있어 거물을 내보내는 등 ‘필승전략’을 쓰다 보니 판이 커졌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 당의 어른으로서 여당에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야당이 선거에 올인한다고 책임 있는 여당마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민생은 뒷전이고 선거에만 급급해 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당면한 4월 임시국회에서 민생법안 논의와 통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4·27 재보선 결과로 향후 정치권이 요동을 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 예단키는 어렵다. 선거 결과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기든 지든 변화와 발전을 위한 당 자체의 노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일각에서는 재보선 결과와 관계없이 ‘한나라당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내년 총선, 대선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부터 과감한 자기혁신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변화에 인색했다. 폐쇄성을 과감히 깨뜨리고, 집권여당의 오만함을 겸허한 자세로 낮추고, 변화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으로 총선·대선을 맞이해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차기 대권 제1화두
‘국민대통합’의 리더십

- 총선 조기 가열에 이어 차기 대권 레이스도 일찌감치 시작됐다는 평이 많다. 차기 대선에서의 시대적 화두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보나.
▲ 차기 대선주자의 제1화두는 국민대통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지역적·계층간 분열과 갈등을 봉합하고, 국민 간 조화와 화합을 이끌어내는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예상되는 북한 변수를 어떻게 큰 무리 없이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 ‘북한 변수’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최근 북한은 3대 세습을 통해 상당한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사건, 11월 연평도 포격도발이 그 대표적 사례다. 올해 3차 북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특히 대선이 있는 내년은 북한이 공언해온 강성대국의 원년이다. 때문에 누가 북한변수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는 물론 이를 적극 활용해 한반도평화구도 정착을 위한 주도권을 쥘 것인가에 시선이 모아질 것이다. 단순한 연착륙이 아니라 갑작스런 통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보다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구사할 것인지 여부가 대선 이슈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 (사)남북의료협력재단 이사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를 맡는 등 평소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남북관계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 평소 ‘통일은 대결이 아니라 신뢰하고 화합할 때 가능하다’는 소신을 갖고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다.

또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은 일시적으로 억압할 수 있겠지만 영원히 감옥에 가둬둘 수는 없는 만큼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통일은 다가올 것이며 점진적 통일을 위해서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 일환으로 2년여 전부터 정부 예산의 1%를 적립하자는 주장을 해왔다. 지난해 ‘남북협력 및 통일 기금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남북협력기금법은 우리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남북경색을 푸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더불어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 같이 개혁 개방의 길로 나와 정상국가로 일정수준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한데,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북한과 동포는 별개로 생각하며 인도적 지원을 하고, 이렇게 이뤄진 만남이 점에서 선 그리고 면이 되어 접촉면이 확대된다면 동포로서 남북이 서로 돕는 과정에서 그동안 무너진 신뢰를 충분히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던데….
▲ 남북대결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이명박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이 만나 담판 지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대통령도 그동안 발언의 행간을 살펴보면 ‘언제든지 북한이 진정성을 보이면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을 봤을 때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추측은 가능하다.

- 지난 6일 여야중진의원들과 남북 국회회담,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런 형태의 모임은 전례 없는 일 아닌가.
▲ 이번 간담회는 정치적 경륜이 풍부한 여야 중진의원들이 형식이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주 모여 국가적 현안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고자 하는 제 개인적 바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원내대표, 여야의 3선급 이상 의원 27명이 모였다. 여야 중진들이 이렇게 모이긴 처음이었다. 
 
-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 이날 논의주제는 ‘남북국회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국회의 역할’이었다.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으며, 이에 대해 앞으로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가 남북국회회담 진전을 위해 생산적 논의를 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열되는 복지논쟁
차기 대선판도 뒤흔들라

- 이 외에 대선에서 화두가 될 수 있는 것을 꼽는다면.
▲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아,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국민들의 복지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최대 쟁점으로 부각했듯이 내년 대선에서도 복지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 복지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어떤 복지가 ‘진정한 복지’라고 보는가.
▲ 복지에 대한 이러저러한 주장이 있지만 제가 주장하는 복지는 ‘적재적소의 복지’, 이른바 ‘칵테일 복지’다. 필요한 곳에 복지지원이 우선 이뤄지고, 재정에 맞게 단계적으로 복지의 덩치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퍼주기식 복지’보다는 자립심을 돕는 복지로 가야한다. 이를 위해선 튼튼한 중소기업 육성,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정책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복지누수’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 지난 5일 ‘참다운 선진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참다운 선진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란?
▲ 진정한 복지는 정책과 재정 이전에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진실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며 나만이 아닌 우리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가짐, 인간을 사랑하는 진실 된 가슴이 있을 때 복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 복지와 보건, 복지와 고용이 어우러지는 선진복지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고통 받는 이웃들과 어려움을 나누려 하는 민간부문의 능동적인 노력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려는 민간부문의 참여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선진국 수준의 복지수요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영국 등 공공복지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사회복지의 절반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꾸려가고 있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이 남아 있다. 공동체를 중시했던 선조들의 삶에서 나눔과 봉사는 자연스러운 생활, 그 자체였다. 지금도 태풍과 폭설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전국 곳곳에서 사랑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지 않나.

우리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이러한 따뜻한 마음을 일상의 자원 봉사와 기부 활동으로 전환해 나갈 때, 우리 대한민국은 선진복지국가의 반열에 올라 설 것이다.

호남 한나라당 의원
신공항 백지화를 논하다

- ‘호남출신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라고 불리던데, 호남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 호남과의 개인적 인연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치입문 전에 의사였는데 전주 예수병원에서 수련의로 일하게 되면서 호남과 인연을 맺었다.

영호남의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것을 보고 ‘조그만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린데 이어 동서마저 간격이 있다면 국가에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정치입문 전인 1991년부터 부산과 광주에서 뜻을 함께 하는 분들과 ‘영호남민간인협의회’를 결성해 영호남 화합과 소통에 앞장서오기도 했다.

호남에서는 별로 인기 없는 한나라당 의원이고 제 지역구도 아니지만, 한나라당 지역화합발전특별위원장 등을 맡아 현안과제를 해결하고, 호남 발전을 위한 예산을 꾸준히 챙기면서 그런 별명을 얻게 된 것 같다.

- 정치를 하는 이유 중에는 ‘호남’에 대한 부분도 있나.
▲ 영호남 화합이 이뤄질 때 지역 균형발전과 국민통합이 가능하고, 통일 대한민국도 앞당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통일을 바라봐야 하는데, 그 통일의 전제조건이 바로 동서화합과 전국 균형발전이고, 이를 달성하는 게 제가 정치를 하는 목적의 하나다.

- 국회의원이 되기 전 유명한 신경외과 전문의였는데, 정계 입문 과정이 궁금하다.
▲ 15대 총선을 앞둔 지난 19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주도한 공천혁명에 발탁되면서 운명처럼 정치에 뛰어들게 됐다. 의사를 관두고 정치를 시작한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권력을 즐기고 편하게 살자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를 통해 병들어 가는 우리 사회를 조금 이나마 더 건강하게 만드는 더 큰 의사가 돼야겠다는 일념이었다.


차기 대선 3대 화두 ‘국민대통합·북한 변수·복지논쟁’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방침 철회, 조속 추진 강력 주장

- 지역구가 부산이다. 지역에서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을 것 같은데….
▲ 신공항은 미래를 대비해서 꼭 필요하다. 그 필요성은 이미 정부가 과거부터 인정해 온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은 대선 공약이자 국민들과의 약속인데, 정부가 장기적 추진과제로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지 못한 채 백지화로만 결론을 내서 아쉬움이 크다.

또한 신공항 입지 선정 결과 발표 후 경제성이나 정책성, 가중치 등 (평가 과정에) 뭔가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 억지로 짜 맞추려는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어떻게 처리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 저는 오래전부터 ‘남해안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의 정체 국면을 타파하고 선진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남해안을 수도권에 버금가는 ‘제2의 경제축’으로 개발해야만 한다고 주장해왔다. 동남권 신공항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추진해야 한다. 국토균형발전과 남해안시대를 위해서라도 백지화 방침은 분명히 철회하고, 시급한 국가과제로 조속히 추진해나가야 한다. 
 
- 마지막으로 국회부의장 임기 내에 꼭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해 달라.
▲ 다양한 사회에서 갈등은 당연히 존재한다. 당연히 존재하는 갈등을 의장단이 헌정 60년이 넘었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게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당 부의장으로서 축구의 미드필더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더불어 민주적인 의회상을 정립해야하는데, 18대 국회후반기 부의장으로서 최소한 우리 국회가 여야간의 상호 호혜의 원칙을 지키고, 국회의원 간에는 상호존중의 원칙을 엄격히 지키는 불문율을 세워 국회 폭력을 추방하고, 국민으로부터 좀 더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공헌한 부의장으로 남고 싶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다가가겠으니 성원과 격려 부탁드린다.

정리=장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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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