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반가운’ 업종 백태

‘게이트’가 장사에 도움될 줄이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우리 사회에 미친 후폭풍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7월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 이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그 그림자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유명 외신들은 이번 사태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30년 정도 후퇴시켰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꼽았다. 온통 악영향뿐이다.

지난해 실업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연간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9.8%로, 10%에 육박했다. 지난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자 수는 101만2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9년 이후 처음 100만명을 넘어섰다.

실업자 100만

‘실업자 100만명, 청년실업 10%’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실업자 수의 증가는 지난해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 여파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더 암울한 것은 공식 실업자에 취업준비생, 고시학원·직업훈련기관 등 학원 통학생, 특별한 이유 없이 쉰 사람(통계상 ‘쉬었음 인구’),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등 실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을 포함한 ‘사실상 백수’ 인구가 450만명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는 공식 실업자 101만2000명의 4.5배에 이르는 규모다. 단순 계산으로 인구 약 10명당 1명이 일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경제활동인구로 범위를 좁히면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 “올해가 최악”이라는 말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경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경제 한파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은 청년층의 경우는 체감 경기가 더 살벌하다. 유력 대선주자는 대학 특강에서 취업이 안 되면 창업을 하라고 부추기지만 여건상 청년창업은 ‘맨땅에 헤딩하기’와 다름없다. 일시적인 침체현상이 아니라 이미 경기 불황이 고착화된 상태라 앞길은 더욱 막막하다.

파쇄업·디지털세탁 성행
지우기 열풍에 반짝 인기

이런 상황에서도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는 업종이 있다. 어떤 경제상황에서든 ‘틈새시장’은 늘 있어왔다. ‘다 죽겠다’ 수준으로 경제 불황이 지속될지라도 특정업종은 호황을 누리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 경매시장이 뜨는 것처럼 한 업종 내에서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경우, 중소기업이 상식, 고정관념을 뒤집는 발상으로 매출을 올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령 동남아엔 제설기, 유럽엔 온돌을 수출하는 것처럼 보통 상식선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방향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별로 각광받지 못했던 업종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파쇄업과 디지털세탁업을 동시에 불러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교롭게도 두 업종은 모두 정보를 지우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미처 없애지 못한 문서, 지우지 못한 휴대폰 음성으로 범죄 사실이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들을 보고 ‘뜨끔’한 사람들이 두 업종의 호황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개인정보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높아진 점도 인기의 원동력이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 신사동 더 리버사이트호텔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우수 브랜드대상’ 인증식에서 보안 문서 기록물 폐기 전문 기업 ‘더부러’가 고객 만족브랜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해당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서비스가 자세히 소개돼있다.

현장·입고 등 다양
공기업서 개인까지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찾아가는 ‘현장 파쇄’, 특수운반차량으로 문서를 이송한 후 공장서 한 번에 파쇄 하는 ‘입고 파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쇄해주는 ‘하드디스크 파쇄’ 서비스도 있다.

지난 21일 구속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하드디스크 파쇄 서비스를 이용했다면 현재 구치소가 아니라 따뜻한 집에 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조 전 장관이 취임 직후 교체한 하드디스크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그 안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자료가 나온다면 조 전 장관은 무거운 형량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대부분 고객들은 현장 파쇄를 선호한다. 자신의 눈앞에서 문서가 파쇄되는 것을 보고도 파쇄 전 문서 무게와 파쇄 후 무게를 비교,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고객은 공기업, 병원, 은행, 변호사 사무실 등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최근에는 개인 고객도 많이 늘었다.
 

종합편성채널 JTBC가 최순실씨의 단골병원서 파쇄 자료를 찾아 하나하나 맞춰 증거를 찾은 사례가 있지만 전문업체의 경우 고객의 눈앞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후처리’는 깔끔한 편으로 알려졌다. 보험사나 은행의 경우는 정기 방문을 요청하기도 한다.

SNS의 발달과 함께 성장한 디지털세탁업도 성행 중이다. 온라인에 남긴 내 흔적을 말끔히 지워준다는 의미에서 디지털 장의사라고도 불린다. 최근에는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소셜 네트워크 시장이 광범위하게 성장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때문에 누리꾼들은 논란이 발생하면 SNS를 통한 ‘신상털기’에 나선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직후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페이스북 글이 누리꾼들에 의해 발견되면서 전 국민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국조특위 청문회의 숨은 공로자인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는 ‘구글링’을 통해 관련자들의 과거를 샅샅이 훑어냈다.

법률시장 호황이지만
빈익빈 부익부 심해

주갤러(주식갤러리 이용자)들은 당사자는 기억도 못 할 시기의 사진과 영상을 인터넷의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된 김기춘 청와대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 국조' 청문회서 2007년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이 공개돼 코너에 몰렸고, 국조특위 간사였던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사진 몇 장으로 청문회 증인들과의 관계 의혹이 제기돼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자신이 정말로 그 자리에 있었는지, 누구와 사진을 찍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인터넷에 게재된 자료의 확장성과 생명력은 넓고 질기다. 언제 어느 순간 발목을 잡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특히 대학 입학, 취업, 이직 등 ‘검증’이 필요한 단계에서 온라인 활동을 살피는 학교, 기업 등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장의사를 찾는 손길은 더욱 많아졌다. 한 디지털 장의사 업체 대표는 “정치인, 대학교수 등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들이 의외로 전화가 많이 온다”고 귀띔했다.

과거를 지워라

법률시장도 호황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관계자가 너무 많아 대형로펌은 의뢰가 없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거물급 변호사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전관예우 비리로 몇몇 변호사가 처벌을 받고 제명을 당하는 등 제재 조치가 있었지만 여전히 전관 변호사는 섭외 1순위다. 반면 무명 변호사는 월 100만원을 버는 것도 힘들어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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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