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차병원 황제경영 막전막후

최순실 엎친데 제대혈 덮쳤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참 잘 나가던 '차병원'이 위기에 봉착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정권실세들과의 유착설이 사실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여기에 오너 일가의 비윤리적 태도까지 겹쳐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오너 일가의 미심쩍은 경영행태마저 부각되고 있다.

차병원그룹은 1960년 차경섭 박사가 서울시 중구 초동에 설립한 ‘차산부인과’를 모태로 한다. 현재 그룹을 이끄는 인물은 차씨의 아들이자 불임 연구분야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손꼽히는 차광렬 총괄회장. 차 총괄회장의 지휘 하에 외형 확장에 힘쓴 차병원은 어느새 병원·대학·기업 등 20여개 자회사를 아우르는 그룹사 형태를 갖추게 됐다.

정권 결탁하고
윤리 저버리고

그러나 마냥 잘 나갈 듯 했던 차병원은 최근 각종 구설로 인해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일본 차움의원서 헐값에 면역세포 치료를 받았던 사실이 지난해 11월 공개된 후 차병원과 정권실세들 간 밀착 정황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회원권 가격이 1억7000만원에 이르는 강남 차움의원서 공짜 회원 특혜를 누린 정황도 포착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길라임’이라는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으로 공짜 회원 서비스를 받았다는 의심을 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차병원과 정권실세 간 밀착설이 공공연하게 퍼질 즈음에 차병원에 또 한 번 악재가 터진다. 분당차병원서 그룹 총수 일가를 대상으로 제대혈 주사를 불법 시술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차 총괄회장이 미용·보양 시술을 목적으로 제대혈 주사를 맞아왔다는 주장이 처음 제기될 때만 해도 차병원 측은 강하게 반박했다. 부작용 등의 우려로 초기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이 어려워지자 임상에 앞서 차회장이 직접 나섰을 뿐이라는 해명도 뒤따랐다.

불법 제대혈 시술…버림받은 윤리의식 
정권과 그 실세들 업고 혜택 ‘한가득’

그러나 차병원 측 해명이 나온 지 불과 일주일 후 차 총괄회장이 연구목적이 아닌 미용 등 개인적인 목적으로 제대혈 주사를 맞은 사실이 보건복지부를 통해 확인됐다. 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제대혈 불법 시술을 단행한 차병원에 대해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 은행의 지위를 박탈하고 그동안 지원했던 예산을 회수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차 총괄회장과 부인, 부친이 총 9차례 제대혈을 투여했음을 밝혀냈다. 제대혈은 태아 탯줄서 나온 혈액으로, 노화 방지와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행법상 제대혈은 산모가 연구용으로 기증하고, 질병관리본부가 치료·연구 목적으로 승인해야 하지만 차 총괄회장 일가는 개인 목적으로 주사를 맞고 증거를 숨기기 위해 진료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민영 의료법인의 총수 일가가 도덕적 비난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처한 셈이다.
 

복지부의 허술한 제대혈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복지부는 차병원이 차 총괄회장 일가에 제대혈 공급할 때 당국 승인을 받은 연구용으로 속여 제대혈정보센터에 신고했는데도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미심쩍은 성장
거듭된 의혹들

정권실세와의 결탁 정황과 비윤리적 시술 사건으로 차병원은 윤리의식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문제는 이 즈음부터 차병원의 성장과정에 대한 의혹어린 시선이 한층 굳어졌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제대혈 보관 열풍이 불었지만 각종 잡음이 발생했고 결국 정부는 2011년 제대혈법을 만들고 제대혈 관련 사업 규제에 나섰다. 동시에 몇몇 기증제대혈은행에 국고를 지원해 장기적으로 제대혈을 공공재로 만들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이 시기에 서울대병원 서울시보라매병원이 운영하는 서울시 제대혈은행, 대구파티마병원 제대혈은행, 가톨릭대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제대혈은행 등 3곳이 이때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으로 선정됐다.

2014년 연구중심병원으로 이 명단에 추가된 차병원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192억원 국고지원을 받는다. 1월에는 박 대통령이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대통령 업무보고를 받았고 대통령 자문의로 선정된 김상만 원장은 대통령 해외순방에 세 차례 동행했다.

지원은 계속됐다. 복지부는 황우석 사태 이후 중단됐던 체세포 복제 배아 연구를 7년 만에 승인하는 과정서 차병원을 참여시켰다. 물론 잡음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배아줄기세포 관련 연구 승인 과정서 반대 의견을 밝힌 복지부 담당과장이 교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연구계획은 끝내 정부 승인을 받았다.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형태는 이 무렵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차병원그룹은 오너가 3세를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구축된 상태.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주력계열사인 ‘차바이오텍’이 있다. 세포치료제 연구개발 및 제대혈 보관사업을 영위하는 차바이오텍은 CMG제약, 차헬스케어 등 차병원그룹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차병원그룹을 이끌고 있는 차 총괄회장의 지분 5.9%를 비롯해 오너 일가의 차바이오텍 지분율은 14.79%이다.

차바이오텍의 주요 주주는 차 총괄회장(5.9%), KH그린(4.79%), 성광학원(4.31%), 장남 차원태(4.04%), 장녀 차원영(2.23%), 차녀 차원희(1.74%), 부인 김혜숙(0.88%) 순이다. 부인과 자녀를 포함한 차 회장 일가의 상장사 차바이오텍 주식 자산 합계는 1100억원이 넘는다.
 

오너 일가는 공익재단인 ‘성광학원’과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 ‘KH그린’을 통해 차바이오텍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를 우회 지배하며 안정적인 지배구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비상장사 KH그린과 공익법인 성광학원은 차바이오텍의 2, 3대 주주이다. 차 총괄회장은 성광학원 이사인 동시에 KH그린의 최대주주다.

1996년에 설립된 성광학원은 차의과학대학교를 운영 중이며 건물 및 토지가 약 1600억원을 포함해 자산규모가 3000억원이 넘는다.

차케어스 등 주요 계열사의 유상증자에도 참여, 지분을 확보해 주식평가액도 약 370억원에 이른다. 특히 성광학원 이사진 총 12명 중에는 차 총괄회장과 장남인 차원태 상무 등이 포함돼있어 오너 일가가 차병원그룹 계열사 지분 매입 등을 무리 없이 실행할 수 있는 구조다.


탄탄한 지배체제…수익사업 혈안
다시 부각되는 비자금 조성 의혹

공교롭게도 오너 일가의 막강한 그룹 내 영향력은 타 분야로 확장을 진행하는 과정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여기서도 정권과의 연계설이 연이어 부각된다. 지난해 1월 복지부는 제약·의료기기·화장품·임상시험수탁기관(CRO) 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헬스케어펀드’를 출범시켰다. 복지부 예산 300억원과 10개 민간기관 출자 1200억원 등 총 1500억원이 투입됐다.

복지부가 조성한 펀드 4개 중 가장 운용금액이 크다. 솔리더스는 KB금융지주 계열의 KB인베스트먼트와 함께 펀드 운용사로 참여하게 된다. 자본금 80억원대 소규모 회사가 대규모 국책사업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솔리더스의 이전 펀드 운용 실적은 최대 300억원 규모의 펀드 4개(총 운용액 770억원)를 굴린 게 전부다. 
 

게다가 해당 펀드는 복지부가 지난해 4월 국내 의료기관 해외진출 지원 명목으로 ‘한국의료글로벌펀드’(500억원 규모)를 조성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만들어졌다. 한국의료글로벌펀드는 현재까지 투자 실적이 전무하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든 상황서 정책목표가 겹치는 펀드를 또 만든 것이다.

이렇다 보니 복지부가 애초 차병원그룹을 염두에 두고 펀드를 조성한 것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국내 의료기관 중 유일하게 미국 진출에 성공한 차병원그룹을 우대하려는 포석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투자 과정서 솔리더스가 차바이오텍 등 차병원그룹이 거느린 의료 관련 계열사를 지원할 수 있다는 의혹도 더해졌다. 현행법상 솔리더스가 그룹 계열사에 직접적으로 투자할 수는 없지만, 계열사와 합작한 기업에 투자하는 등 우회 지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병원 오너 일가의 경영형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몇 해 전 불거졌던 불법 리베이트 사건도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비자금 조성 가능성 때문이다.

2012년 차병원그룹 계열사인 CMG제약은 병·의원 불법 리베이트로 압수수색을 받은 이력이 있다. 당시 경찰은 성광의료재단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고, 강남차병원 등 소속 기관에는 서류를 제출받아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1998년부터 500억원대의 매출 가운데 80%가 넘는 의약품을 차병원그룹에 납품했던 도매업체를 수색했다. 수사 과정서 차병원 측이 납품가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불거졌다.

그러나 경찰은 이 돈의 사용처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도매업체 쪽에 대해선 회계장부 압수, 계좌추적을 했으나 차병원그룹 쪽은 계좌추적조차 하지 않았다. 리베이트의 상당 부분이 비자금 용도로 특정 사람들에게 전달됐다는 추측만 남겨진 찜찜한 마무리였다.

곳곳에 흔적
소문만 무성

2011년에는 오너 일가에서 내부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창업주의 둘째 딸인 광은씨는 자신의 투자회사를그룹 계열사인 것처럼 홍보하다 분란을 일으켰다. 위조된 위탁계약서를 이용해 차인베스트먼트가 마치 차병원그룹의 계열사인 것처럼 홍보했다는 게 차병원 측의 주장이다.

논란이 커지자 성광의료재단 이사회는 광은씨를 CHA의과학대 대외부총장에서 보직해임하며 사태를 일단락지었다. 하지만 표면적인 이유와 상관없이 그룹 실권을 두고 오너일가 사이에 충돌이 있어났다는 관측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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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