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반기문 검증’ 발목 잡을 아킬레스건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1.02 11:05:12
  • 호수 10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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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장어’몰이 시작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유력 대선주자로 손꼽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국내 복귀가 임박했다. 반 총장에 대한 혹독한 인사 검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시험대에 오른 반 총장이 과연 현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지난달 24일 <시사저널>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23만달러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반 총장이 외교부장관이던 지난 2005년 5월 박 전 회장이 베트남 명예총영사 자격으로 참석한 만찬자리서 20만달러를 반 총장에게 줬다는 것.

또 2007년 초반 반 총장 취임 후 뉴욕서 ‘사무총장 취임 축하 선물’ 목적으로 3만달러가 추가적으로 건네졌다는 내용이다.

23만 달러?
과연 진실은…

이에 반 총장 측근은 “돈을 줬다는 사람도 부인하고, 또 당시 정황상 불가능한 사실무근 얘기”라며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반 총장에 돈을 줬다고 의심을 받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논란은 말도 안 된다.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반 총장은 임기를 마치고 오는 15일 귀국한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본격적인 대선 검증대에 오른 모습이다. 정치권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을 중심으로 반 총장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작업에 착수했다.


더민주 관계자는 “조만간 당내 ‘반기문 검증팀’을 구성해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반 총장은 혹독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제2의 박근혜 대통령’이 나오는 건 우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라며 “반 총장은 기름장어처럼 피할 게 아니라 혹독한 검증을 자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반 총장과 연대를 염두에 둔 국민의당은 23만달러 의혹에 대해 검찰수사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근거 없는 폭로’에는 선을 그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해명이 납득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수사해 그 결과를 발표해주는 게 당연히 대통령 후보로서 국민에게 할 도리”라면서도 “근거 없는 폭로는 밝은 정치, 깨끗한 대선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임명직 고위공무원을 거쳤지만, 인사청문회를 거친 적은 없다. 지난 2004년 1월16일 외교통상부장관으로 임명된 시점에 인사청문회에는 모든 국무위원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채 청와대 외교보좌관으로 일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명으로 외교부장관실로 자리를 옮겨 업무를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한 여권 인사는 “인사 청문회서 고위공직후보자의 개인 정보를 넘겨받아 꼼꼼히 조사하는데, 반 총장의 경우 이런 부분이 생략됐다”며 “유력 대선주자 검증은 개인 정보에 대한 강제조사권이 없으므로 오히려 인사 청문회보다 허술한 측면이 많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들이대는 칼날…친인척·재산 의혹
더민주 ‘반기문 검증팀’본격 가동

다만, 정치권서 꾸준히 ‘반 총장에 대한 검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왔다는 점에서 반 총장이 혹독한 검증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의 가족, 친인척, 재산, 기업인과의 관계, 사무총장 당시 활동 등이 집중 검증 대상이 될 예정이다.

우선 반 총장 가족 관련해 아들 우현씨 특혜 채용 의혹이 있다. 한 언론에 따르면 우현씨는 지난 2011년 1월 SK텔레콤 뉴욕 사무소에 입사했다. 현재까지 매니저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SK텔레콤 뉴욕 사무소는 지난 2010년 4월에 설립됐다.


SK텔레콤 본사에 소속된 파견 사무소로 미국 관련 업계 동향 파악이 주 업무로 특별한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현씨가 공채가 아닌 특채로 입사를 하면서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취업지자(H-1B)스폰서’를 써줬다는 것이 특혜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SK텔레콤 측은 “우현 매니저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미국 UCLA MBA 과정을 거쳤다. 경력과 학력이 업무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며 “인력이 너무 적다 보니 별도의 채용공고를 낸 것은 아니고, 현지 채용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SK가 우현씨를 취직시켜 미래권력으로 불리는 반 총장에 미리 줄을 댄 것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반 총장은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지만 정치권의 공세에 묵묵부답으로 버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들 특혜 의혹
측근 비리 솔솔

반 총장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도 불거진 바 있다. 성 전 회장은 생전에 “내가 반기문하고 가까운 건 사실이고, 동생(반기상)이 우리 회사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반기문이) 우리 포럼(충청포럼) 창립멤버인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 총장은 지난 2015년 5월19일 “저는 성완종 회장과 특별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2006년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 확정되자 같은해 10월8일 그를 위해 가장 먼저 축하 모임을 롯데호텔서 열어준 사람은 성 전 회장으로 알려진다. 또한 반 총장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거의 매번 성 전 회장과 충청포럼 인사들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는 2012년 10월30일 ‘반기문 가족오찬’ 일정이 기록돼있기도 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1심서 징역 1년6개월의 징역을 선고 받은 홍준표 경남지사는 “성완종씨는 반기문 매니아”라며 “내가 대선 이야기를 안했으면 성완종 리스트에 내 이름이 끼어들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완종씨가 2012년도 대선을 하면서 충청포럼을 만들었는데 그게 왜 생겼겠느냐”고 반문하며 충청포럼은 반 사무총장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은 두 사람의 과거 친분관계에 대한 반 총장의 뚜렷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더불어 반 총장의 조카인 반주현씨 관련 의혹도 반 총장이 풀어야할 숙제다. 고 성완종 의원이 회장으로 있던 경남기업에 부회장이었던 주현씨가 지난 2014년 베트남 하노이의 랜드마크인 72타워 매각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72타워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1조2000억원을 투자해 건축했지만 입주 부진으로 매각을 결정했다. 당시 주현씨는 매각 대리에 나서면서 반 총장을 통해서 카타르 국왕을 접촉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카타르 투자청이 인수 의사를 밝히자 인수의향서를 허위로 작성해 경남기업에 전달했다. 이 과정서 주현씨는 계약금 명목으로 6억5000만원을 수령했다.

성완종 관계 미스터리
신천지 영상 등장 왜?

자금난에 시달리며 검찰수사를 받게 된 성 전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남기업은 주현씨에게 6억5000만원에 대한 민사소송을 걸었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주현씨가 경남기업에 6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매각과정서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 전 경남기업 고문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실제 주현씨가 위조된 것으로 알려진 카타르투자청의 투자의향서 성격의 공식 문서를 보낼 때도 이를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경남기업 관계자도 반기상 전 고문의 매입과정 개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경남기업 관계자는 “반기상 고문은 형님인 반기문 총장이 카타르 국왕에게 랜드마크72 매각건에 대해 부탁하겠다고 성완종 전 회장에게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며 “랜드마크72 매각에 있어 반 고문이 사실상 경남 측 프로젝트매니저였다”고 밝혔다.

반 전 고문은 경남기업이 랜드마크72 매각에 나설 때 아들 주현씨가 몸담고 있는 부동산 회사를 독점적 매각주간사로 추천키도 했다.

이를 두고 더민주 송현섭 최고위원은 지난달 23일 “반주현은 큰 아버지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직분을 악용해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주현의 이런 사기행각은 미국에서 한국의 국위를 실추시키고 있어 국가 망신”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주현씨가 미국 법원에 걸린 소송만 13건에 달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송 최고위원은 “13건 중 1건의 내용을 보면 반주현은 2011년 T금융사의 매니저를 칭하며 리조트 회사인 N사에 접근했다”며 “한화 약 120억을 대출해주겠다는 의향서를 주고 N사로부터 약 7800만원을 수령해 갔다”고 주장했다.


즉 지난 2014년 경남기업 사기때와 같은 수법인 셈이다. 이에 대해 송 최고위원은 “반 총장은 귀국 전에 미국에서 조카 반주현이 저지른 모든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야 한다”고 반 총장 책임론을 주장했다. 반 총장이 조카 주현씨 사기 행각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것은 없다.
 

하지만 측근 비리가 끊이지 않는 반 총장에 대한 정치권 및 국민들의 의구심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측근비리는 대선주자로서의 도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반 총장의 해명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을 통해 측근비리가 끊이지 않았던 역사를 지켜봐왔다. 그렇기 때문에 측근비리에 대해 명명백백한 소명을 해야만 ‘반 총장발 측근비리’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전망이다.

재산 축소 왜?
정치력 검증

반 총장의 재산축소 의혹도 검증 대상이 될 전망이다. 반 총장이 지난 10년간 유엔 규정에 따라 1만달러 이상의 재산은 신고했지만 그 액수가 공개되지 않아 일각에선 재산 축소 신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공개된 반 총장의 재산은 외교통상부장관 시절인 지난 2006년 2월이 전부다.

당시 반 총장은 12억2195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삼성래미안아파트·충북 충주 문화동의 한 아파트 등 건물 2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대지 약 80평·인천 계양구 목상동 약 1400평 임야 등 토지 2곳을 신고했다.

사당동 아파트는 당시 공시지가로 3억원이었지만, 현재는 실거래가가 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07년 유엔 사무총장 재직 이후부터 반 총장은 ‘유엔 직원 재산신고규정’에 따라 매년 재산을 신고했다. 유엔 사무총장 연봉은 한화로 2억7000만원에 달해 재직 기간 동안 현금재산이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언론에 따르면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유엔에 신고한 9년간의 재산신고 중 2010년, 2011년에만 유엔 외 소득으로 한국정부연금(공무원 퇴직금)이 신고됐다. 즉 그외의 기간에는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험대 오른 정치력
난국 타개할 카드는?

공무원 퇴직은 일시불과 연금, 혹은 20년 뒤 일시불 수령 3가지 방법만 있을 뿐 중간에 2년치만 수령하고 그칠 수 없다는 점에서 퇴직금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실정법 위반은 아니라는 점에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재산을 고의로 누락했다는 점에서 도덕성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산 축소 의혹도 타 의혹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에는 반 총장이 ‘신천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지난달 10일과 17일 게시된 유튜브 홍보 영상에 따르면 반 총장이 수차례 등장한다. 특히 영상에는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김남희 대표가 유엔본부 초청으로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며 김 대표와 반 총장이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됐다.

신천지대책전국연합 신현욱 목사는 영상에 대해 “신천지 이만희 대표가 과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도 사진을 찍어 홍보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해 왔다”며 “반 총장과 찍은 사진을 홍보하는 것 역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에는 반 총장을 제외한 세계적 유명 인사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반 총장이 신천지와 정확히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 총장은 측근 비리 및 각종 의혹뿐만 아니라 정치력에 대한 검증도 통과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치권은 반 총장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름과 동시에 날을 세우며 정치력을 입증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음해 세력들
단호히 대처

반 총장에 검증 여론에 대해 반 총장 측근은 “반 총장이 10년간의 국내 공백 기간이 있는 만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검증을 받을 용의가 있다”면서도 “검증이라는 미명 아래 음해하는 공격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딧불이 ‘거목 반기문’ 논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우상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거목 반기문’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지난달27일 개최된 팬클럽 창립대회를 안내하는 책자에 실리면서 공개됐다.

반딧불이 충주지회 관계자는 “작곡가가 인쇄소에 악보를 놓고 가서 창립대회 책자에 착오로 실리게 됐다”며 “회원들이 이 노래를 부를 계획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제 진행된 축하행사에는 ‘아리랑’을 개사한 노래가 울렸다.

지난달 27일 열린 반딧불이 충주지회 창립 행사에는 회원 100여명이 참석했다. 윤주성 반딧불이 충주시지회장은 대회사에서 “반 총장이 선한 삶을 살아왔고 글로벌 리더로서 평화 운동에 앞장섰다”며 “저 역시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해볼까 해서 지회장을 맡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북한도 아니고…반기문 찬양
반기문 팬클럽 창립대회 개최
우상화 노래 안내 책자에 실려

이날 창립보고 대회에선 최근 논란이 됐던 ‘거목 반기문’ 노래 합창은 하지 않았다. 강동구 반딧불이 충북회장은 “거목 반기문이란 노래로 물의를 일으켜 거듭 죄송하고 송구하고”고 말했다. 윤 지회장 역시 “반 총장이 재임하면서 충주의 작곡가가 훌륭하고 국가적으로 거목이란 판단에 지은 것으로 안다”며 “너무 가요풍이라서 행사에선 채택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창립대회를 마친 회원들은 충주누리센터서 300m 떨어진 반 총장의 본가 반선재에 들러 기념 촬영을 한 뒤 행사를 마쳤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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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