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2016 재계 달군 핫 키워드

올해 가도 내년이 더 걱정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새해 첫날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건만 어느덧 한해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건·사고들은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훗날 2016년을 되돌아보며 격변의 시대였다고 되새길지도 모를 일이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올 한해는 굵직한 재계 이슈가 연이어 터졌다. 재계의 판을 뒤흔들만한 폭발력을 지닌 사건들이 사회 문제로 부각기도 했다.

[끊어진 대화창구]
개성공단 폐쇄

정부는 지난 2월10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개성공단 운영 중단 조치를 내렸다. 대북지원사업이 북한의 직접적인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이로써 개성공단 입주기업 124곳은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특히 개성공단 생산 비중이 높은 섬유업종 입주기업의 피해가 막심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피해보상 방안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5000여곳에 달하는 입주기업 및 협력업체를 구제할만한 방안은 턱없이 부족했다. 공단이 언제쯤 재가동될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입주기업들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 결정이란 점도 논란이 됐다. 정부가 남북경협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향후 기업들에게 참여를 독려할 명분을 없앴다는 비판도 거셌다. 지금까지도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방침을 무리하고 성급한 조치쯤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막내린 신화]
정운호게이트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는 한때 화장품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하지만 정 대표가 시도한 광범위한 로비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의 성공스토리는 빛이 바랬다.

정 대표는 2003년 중저가 화장품 매장 ‘더페이스샵’을 론칭하며 국내에 중저가 화장품 붐을 일으켰다. 정 대표는 2009년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매각했다. 이때 정 대표가 거둔 시세차익만 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정 대표는 더페이스샵을 판 뒤 2010년 3월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며 다시 화장품사업에 뛰어들었다. 정 대표는 취임 후 6년 만에 네이처리퍼블릭을 연매출 2800억원 규모의 화장품 회사로 일궈냈다. 그는 화장품사업에서 승승장구했지만 구설수도 적지 않았다.

개성공단으로 시작해 최순실로 끝나
책임감 결여된 대규모 ‘모라토리움’

정 대표의 ‘성공신화’에 균열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 100억원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기소돼 실형(8개월)을 선고받으면서부터다. 업계에서는 정 대표가 실형을 다 채우고 나오게 되면 올 하반기로 예정된 네이처리퍼블릭의 상장 등 경영현안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 대표가 여성 변호인을 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데 이어 구명을 위해 전방위 로비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정 대표는 부장판사 및 검사장 출신 변호사에게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주고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 처벌 수위가 낮아질 수 있도록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면세점 입점을 위해 인맥과 브로커를 동원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서울메트로 지하철 역사매장을 확보하기 위해 브로커를 동원해 공무원들에게 금품 로비를 벌인 정황도 드러났다.


[유령회사의 실체]
파나마 페이퍼스

지난 4월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로 명명된 비밀문서가 공개됐다. 유출된 자료 2.6TB는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의 탐사보도 기자들이 익명의 취재원에게서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내부자료를 입수하면서 시작됐다.

파나마 페이퍼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세계 각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 회피 의혹에 대한 관련 조사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파나마 페이퍼스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유출 데이터에 ‘Korea’로 검색되는 1만5000여건의 파일 중 한국 주소를 기재한 195명의 한국인 이름이 포함된 까닭이다.

시작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씨였다. 파나마 페이퍼스를 분석하던 조사단은 노씨가 노 전 대통령의 장남과 같은 이름이라는 점을 기반으로 생년월일과 사진을 검토한 결과 동일인물임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뉴스타파>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추측되는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추가 공개를 공언했고 조금씩 해당 인물들의 정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자녀인 서영배·서미숙씨, 박병룡 파라다이스 대표, 김광호 전 모나리자 회장,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세회피 의혹을 받은 유력 인사들만 40명이 넘었다. 
 

[살균제 공포]
옥시 사태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이 대두된 건 지난 4월부터였다. 하지만 피해자가 보고된 건 5년 전이었다. 지난 2011년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부터 피해자들은 정부와 가해 기업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검찰은 올해 5월부터 가습기살균제 사건 수사에 착수하면서 가습기살균제 기업 관계자를 잇달아 소환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가습기살균제 사태 진화작업에 나서자 가습기살균제 최대 가해 업체로 지목된 옥시레킷벤키저도 사과문을 발표하고 피해자 앞에 섰다. 5월2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대표이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5년 만의 늦은 사과를 전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가족모임, 한국소바자협회, 환경운동연합 등을 비롯한 37개의 환경·소비자 시민단체는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에 대한 불매를 선언했다. 옥시 불매운동은 모든 연령층으로 확대됐다.

검찰은 신현우·존리 전 옥시 레킷벤키저 대표에게 각각 징역 20년과10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가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에게 살균제 제조업체가 배상하라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청 현황을 살펴보면 피해자 접수만 5240명, 그 가운데 사망자 1088명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흐지부지 끝난]
롯데그룹 수사

검찰은 지난 6월부터 약 4개월에 걸쳐 대대적인 롯데그룹의 대규모 비리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을 포함한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 신격호 회장의 세 번째 부인 서미경씨 등 총수 일가를 수사 대상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그룹 계열사 임직원 300여명이 줄줄이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 롯데그룹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롯데케미칼의 수백억원대 탈세 의혹에 이어 채널 재승인 로비로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이 수차례 소환 되는 등 곳곳에서 악재가 터져 나오면서 그룹 경영이 마비됐다.

특히 그룹의 2인자로 불렸던 이인원 부회장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목숨을 끊어 안타까움을 샀다. 롯데그룹의 국적 논란부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치매설까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슈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롯데수사 성과는 외견상 화려했다. 신격호·신동빈·신동주 등 오너일가 5명을 포함해 총 24명이 조세포탈·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검찰이 밝혀낸 총수일가 범죄금액만 3755억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호텔롯데 상장은 무산됐으며 롯데그룹이 추진한 대규모 인수합병도 취소됐다.

하지만 당초 핵심 의혹인 오너일가 비자금, 제2롯데월드·롯데홈쇼핑 인·허가 관련 비리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이미 다른 건으로 기소됐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제외하고는 주요 인사들이 모두 불구속 기소돼 검찰의 수사력에 한계를 보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해운·조선업 몰락]
한진해운의 침몰

한진해운 주채권단은 8월30일 한진해운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 불가 결정을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이는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사실상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해운업 전반에 만만치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국내 해운사의 컨테이너 해상수송 능력은 51만TEU(12일 기준)로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전(106만TEU)보다 59% 감소했다. 한진해운은 사실상 청산 수순에 접어든 상태다. 보유 선박의 90% 이상은 이미 처분됐고 상당수 핵심 인력이 내년 1월 삼라마이더스(SM)그룹으로 흡수될 예정이다.

연이어 터진 굵직한 사건들
대부분 기업들 푹푹 한숨만

한진해운 부실사태가 터지면서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은 총수 일가와 채권단, 감독기관인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특히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에게는 원색적인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최 전 회장은 남편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사망한 이듬해인 2006년에 한진해운 최고경영자로 취임했다. 그러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해운업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조 회장에게 회사 지분은 물론 경영권까지 넘긴 이후 현재는 한진해운 경영서 완전히 손을 뗐다.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의이 자율협약 신청을 발표하기 직전에 한진해운의 잔여 보유 주식을 전부 처분해 미공개 정보로 주식 거래를 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최 전 회장이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물류대란 해소를 위해 출연한 개인재산은 100억원에 불과하다.
 

[최순실 후폭풍]
재벌 청문회

최순실게이트는 재계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 왔다. 재벌 총수 9명이 청문회 자리에 모이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도 최순실게이트의 후폭풍 때문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제1차 청문회가 열린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출연한 기업의 재벌총수들이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하자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이들에 쏠렸다. 재벌 총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대가를 바라고 돈을 낸 게 아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청와대의 요청을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힘들었을 뿐 사면, 경영 특혜, 세무조사 회피 등 대가를 기대하진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뜻하지 않게 전국경제인엽합회(전경련)의 존폐를 가늠할만한 발언도 쏟아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전경련)해체를 논할 자격은 없지만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 최태원 회장, 구본무 회장, 손경식 회장도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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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