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2017 대선판 데자뷰 내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6.12.19 10:21:38
  • 호수 10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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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이인제 보면 문재인-이재명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순실 게이트’는 주권자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웠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정치 혐오라는 장막 뒤에 숨어 각종 이권에 개입, 국정을 농단했다. 분노한 국민들은 그들에게 철퇴를 내렸고, 차기 대선서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겠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야권 입장에선 정권교체의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지난 1997년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다면, 정권교체는 요원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야권의 유력 대권후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레이더P’ 의뢰로 실시해 지난 15일 공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 따르면, 문 전 대표는 지난주 대비 0.9%포인트 오른 24.0%를 기록했다. 또 다른 유력 대권후보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앞선 1위 자리를 수성했다. 문 전 대표는 7주째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
반문연대 돌출

‘문재인 대세론’을 부정할 순 없다. 문 전 대표가 현 시점서 가장 앞서 있다는 점은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드러난다. 지난 8월 말 치러진 더민주 전당대회를 통해 ‘친문 체제’가 공고해졌다는 점도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로 조기대선이 치러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여론조사 1위를 섭렵하고 있는 문 전 대표가 대권에 한걸음 다가섰다는 정치권 안팎의 분석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때문에 문 전 대표가 최근 대세론에서 비롯된 조급증에 걸렸다는 분석이 있다.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의결이 있던 그 주, 문 전 대표는 “탄핵 표결(지난 9일) 이전에 사임하면 나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탄핵이 의결되면 딴말 말고 즉각 사임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선 시기를 앞당기는 전략적 발언이었다고 해석했다. 문 전 대표가 대세론을 의식해 박 대통령의 즉각 사퇴를 유도, 사실상 내년 2~3월 중 조기 대선이 치러지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때문에 더민주 친문계열을 제외한 다른 정치권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새누리당 비박계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가능하면 빨리 대선을 하겠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욕심에 눈이 먼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CBC라디오와의 인터뷰서 “그분(문 전 대표)은 처음엔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로 가는 것도 꺼렸다. 광장에서 바로 정권을 넘어뜨리자는 식으로 말했는데 조기 대선을 하면 자기가 이롭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그건 문 전 대표 혼자(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급한 행보
이재명 때문?

이러한 분위기 속에 최근 야권에선 ‘문재인 고립작전’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개헌·반문 전선을 형성할 것이란 예상이다. 손학규, 김종인과 같은 개헌파들이 개헌을 반대하는 문 전 대표에 대해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동시에 이재명, 박원순, 김부겸 등 당내 대선주자들이 소위 ‘반문연대’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특히 이재명 성남시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 시장은 촛불집회의 열기를 타고 비상하고 있는 야권 대선주자다. 그의 지지율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을 기준으로 분명한 변화를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가 촉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만 해도 이 시장의 지지율은 4∼5%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1차 촛불집회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의 지지율은 9∼10%로 두 배가량 수직 상승했다. 기세를 탄 이 시장의 지지율은 최근 15%를 돌파, 16∼18% 사이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굉장히 유의미한 숫자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본지와의 만남에서 “대선주자가 국민들의 주목을 받아 인지도가 상승할 때 두 개의 지지율 장벽을 만나게 된다”라며 “첫 번째로 마주치는 게 10% 장벽이고, 두 번째가 15%다. 9%까지 올라가긴 쉬워도 10%를 넘는 건 굉장히 힘들다. 15%는 더더욱 뚫기 어렵다. 만약 15%를 뚫어냈다면 진정한 의미의 대선주자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레 이 시장은 문 전 대표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특히 최근 ‘반문연대’를 시사하는 발언으로 대항마 이미지가 더욱 공고해진 상태다.

이재명 ‘우산론’, 박원순 손 잡았다
“문, 동반자” 해명에도 ‘반문연대설’

이 시장은 탄핵이 가결되고 하루가 지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박 시장님은 국민권력시대를 말씀하신다. 국민들이 주인 되는 나라를 위해 검찰, 재벌을 포함한 사회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장하신다. 이는 나의 생각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며 “비 내리는 국회 앞에서처럼 (박)원순 형님과 함께 같은 우산을 쓰며 국민승리의 길을 가겠다”고 ‘우산론’을 펼쳤다.

이 시장은 글을 올린 후 곧바로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특강에 참석했다. 이 자리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우리의 팀이 이기는 것이 중요하고 그 중 누가 MVP(대통령)가 될 것인가는 결국 국민이 정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 시장님과 제일 먼저 함께하는 것이고, 곧 안희정 충남도지사, 김부겸 의원, 문재인 전 대표와 다함께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박 시장은 이 사장에 대해 ‘청출어람’이라고 평가하는 등 함께할 뜻을 내비쳤다. 또한 이 시장의 우산론에 대해 자신의 SNS에 “우리를 씌우는 우산이 아닌 국민들의 눈비를 막아주는 우산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무엇보다 이 시장과 박 시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등에서 함께 활동한 이력이 있어 연대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후 반문연대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에 이 시장은 당 내부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 “이재명 이름 석 자로 정치하지, ‘반’이나 ‘비’자가 들어가는 패거리정치는 해온 적도 없고 앞으로 할 일도 없다. 문 전 대표님을 배제하려는 제3지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의 제3지대는 국민의 신뢰도, 지지도 받을 수 없다’고 확신해서 답했다”며 반문연대 성격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반문계·개헌파
합종연횡 가능성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반문연대는 현실화 될 것이란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리고 그 포인트는 앞으로 만들어질 개헌특위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여야는 이달 말부터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따라서 개헌파의 움직임이 지금보다 더 활발해질 예정이다.

이는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문 전 대표는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다. 오래된 적폐들에 대한 대청소와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대한 논의에 집중해야 될 때”라며 대선 전 개헌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당내 개헌파는 문 전 대표에게 쓴소리를 내고 있다. 김부겸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서 “시간을 핑계로 (개헌) 논의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개헌 추진 의지를 밝혔다. 김종인 전 대표도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대통령 후보(문재인)가 개헌 찬성을 안 하니까 개헌을 못한다는 식으로 개헌 문제를 다뤄선 안 된다”라며 “공약을 해서 개헌하겠다는 것은 전부 다 부정직한 사람들 얘기”라고 날을 세웠다.
 

또한 당내 비주류 인사들이 세 규합에 나서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대표와 박영선 의원 등 비문재인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은 최근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동아시아미래재단은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한 명인 손학규 전 더민주 대표의 싱크탱크다.

당시 손 전 대표는 정계개편을 시사했다. 그는 “여러분과 함께 제7공화국 건설에 나설 개혁세력을 한 데 묶는 일을 하겠다”며 “7공화국을 위해 ‘국민주권 개혁회의’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국가적 대개혁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회창 VS 인제 구도 ‘남의 일 아냐’
야권 분열 기대하는 새누리당 속내

결국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문세력과 이재명 시장을 중심으로 한 반문연대와의 대립이 불가피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정치권 관계자들은 과거 1997년 대선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자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는 지난 15대 대선, 그러나 대선 전에는 서로에 대한 난타전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14대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 전 평민당 총재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출마를 선언해 유권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신한국당 경선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이내 팽팽한 균형이 맞춰졌다.

당시 신한국당에선 이른바 ‘9룡’이라 불린 대선주자들이 있었다. 김영삼정권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이홍구·이수성과 민주계의 최형우·김덕룡·이인제, 민정계의 김윤환·이한동, 그리고 14대 대선에 출마했던 박찬종까지 유력 대권후보들이 난립했다. 이들 중 이회창과 이인제가 1, 2위를 차지해 결선에 올랐고 최종 후보로 이회창 당시 총재가 후보로 최종 낙점됐다.

그러나 이인제 후보가 돌연 신한국당을 탈당한 뒤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 후보의 탈당은 서석재 등 지지자들의 도미노 탈당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이인제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비슷한 시기 야권에선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 결성됐다.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 총재인 김종필이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손을 잡은 것이다. 김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김 총재를 국무총리로 임명해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함께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당시 <한국일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대중 32.1%, 이회창 31.5%, 이인제19.9%로 나타났다.

이인제 독자출마
이재명 선택은?

이후 상황은 네거티브전으로 이어졌다. 그해 12월에 열린 TV토론회에 참석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는 작심한 듯 서로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 김대중 후보가 “20억원을 선거위문금으로 받았다”고 하자 이회창 후보는 “5·18 학살자로부터 받은 돈도 위문금인가”라고 캐물었다.

다시 이회창 후보가 ‘3김정치 청산’을 주장하자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후보는 군사독재정권에서 호의호식하지 않았나”라며 “(민주화를 위해 싸웠는데) 고맙다는 말은 못할 망정, ‘3김이다’ ‘낡은 세력’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같은 당에 몸담았던 이회창, 이인제 후보 간 난타전도 신랄했다. 이회창이 “이인제를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 “현재 지지도로서는 (이인제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등의 말로 공격하자 이인제는 “이회창은 새로운 지역패권주의를 만들고 있다”라며 응수했다.

한때 여론조사 결과가 김대중 1위, 이인제 2위, 이회창 3위로 나오다가 TV토론 이후 이회창이 2위로 치고 올라오면서 상황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러나 끝내 이회창, 이인제는 손을 잡지 않았고, 결국 김대중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당시 대선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대선주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2위간 표차는 불과 39만여표(1.6%포인트 차)에 불과했다.

당시 김대중 후보 측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표를 모은 반면, 이회창 후보는 이인제 후보로 인한 보수표 분산이 결정적 패배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경상도 표심 분열이 뼈아팠다. 만약 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15대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의 몫이었다.

이를 현 상황에 대입해보면 정권교체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시장이 더민주 경선에서 맞붙을 시 서로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경선을 하지 않고 독자출마를 선언하는 순간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짐짓 이러한 분열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곧장 감지되곤 한다는 점에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야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문재인과 이재명의 대승적 결단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과 이재명 신경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은근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탐색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문 전 대표는 이달 초 TBS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이 시장에 대해 “아주 잘하고 있는 건 맞고 정말 사이다 같다. 내가 들어도 시원하다”면서도 “어쨌든 사이다는 금방 목이 마른다. 탄산음료가 밥은 아니다”라고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이에 이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서명운동’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목마르고 배고플 때 갑자기 고구마를 먹으면 체한다”며 “사이다로 목 좀 축이고 난 다음에 고구마로 배 채우고 든든하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받아쳤다.

‘고구마’와 ‘사이다’는 최근 문 전 대표와 이 시장에게 붙은 별명이다. 문 전 대표는 최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서 모호하고 답답한 답변으로 일관, 고구마란 별명이 붙었다.

반면 이 시장의 사이다는 박 대통령 퇴진과 관련해 빠르고 명쾌하게 움직여 생겨났다. 의미하는 바는 상반되지만 야권의 두 대선주자들은 자신의 별명을 적극 활용해 이미지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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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