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의 총수 청문회 막전막후

‘죄송, 송구, 다시는…’ 그때 그 정주영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총수 9명이 총출동한 재벌청문회는 의원들의 ‘거친 목소리’로 시작해 증인들의 ‘버티기’로 끝났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던 총수들은 강요에 의한 상납 차원이었다고 발뺌하기 바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그대로 통용된 셈이다. 그나마 지금껏 의혹 수준에 그쳤던 몇몇 정황이 사실로 판명됐다는 건 위안 삼을 만한 구석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제1차 청문회가 지난 6일, 국회서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이날 청문회는 밤 11시까지 약 13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뻔한 질의와 응답이 오갔지만 틈틈이 눈길을 끌 만한 발언이 이어졌다. 

[입 맞춘 듯]
[동문서답]

이날 증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가를 바라고 돈을 낸 게 아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청와대의 요청을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힘들었을 뿐 사면, 경영 특혜, 세무조사 회피 등 대가를 기대하진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쏟아지는 질문에 “제가 부족한 점이 많다”며 대부분의 질문을 피해갔다. 정몽구 회장도 “잘 몰랐다”가 주된 답변이었다. 구본무 회장의 경우 ‘정부의 압력’을 강조하며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대신 대기업이 준조세를 내는 것에 대해 입법을 통해 막아달라는 등 직설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 또한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면세점 사업은 우리에게 매우 적은 부분”이라고 강조하며 특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신동빈 회장은 긴장 속에도 다소 편한 모습으로 질의에 응했다. 지난 6월 진행된 검찰 압수수색과 관련해 "알지 못했다. 조직 정보력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웃으며 말하는가 하면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승연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쓰지 말라는 압박이 있었다는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의 발언이 나오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조양호 회장과 손경식 회장은 청와대의 인사 개입을 인정하며 비교적 솔직한 모습을 보였다.

[애먹은 회장님]
[후속조치 고심]

이번 청문회서 가장 바빴던 인물은 이재용 부회장이다. 의원들의 전체 질의 가운데 80% 이상이 이 부회장을 향했다.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던 이 부회장은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라는 깜짝 계획을 내세웠다.

속시원한 한방 없었던 13시간 공방전
대가성 전혀 없었다…정부 입김만 살짝

이 부회장은 “(미전실 관련) 여러 의원님들의 질타가 있었고 미전실에 관해서 의혹과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을 느꼈다”며 “창업자인 선대회장이 만든 조직이고 회장님이 유지한 것이라 조심스럽지만 부정적 인식이 있다면 없앨 것”이라고 말했다.

1959년 이병철 창업주 시절 회장 비서실서 출발한 삼성 미래전략실은 6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해 온 미래전략실은 ▲전략팀 ▲기획팀 ▲인사지원팀 ▲법무팀 ▲커뮤니케이션팀 ▲경영진단팀 ▲금융일류화지원팀 등의 편제로 이뤄져 있다.

미래전략실 해체 발언은 삼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해소하는 차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 안팎에선 미래전략실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말 지원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발언이 특위 위원들의 압박으로 인한 돌발 언사였는지, 의도된 발언이었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재계 관계자는 “미전실 축소 및 폐지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어왔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번 청문회 발언으로 명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준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이 부회장이 언급한 미래전략실 해체설에 대해 예정된 발언이 아니라고 밝혔다. 컨트롤타워라는 점에서 미래전략실 해체 작업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이 부회장의 입을 통해 미래전략실 폐지가 공식화됨에 따라 삼성 전체 조직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삼성은 조만간 미래전략실 해체를 위한 조직 재편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잇단 탈퇴 선언]
[침몰 직전 전경련]

전국경제인엽합회(전경련)의 존폐를 가늠할만한 발언도 쏟아졌다. 이번에도 이 부회장이 앞장섰다. 그는 “(전경련)해체를 논할 자격은 없지만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전경련에 내는)기부금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하라”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추궁에 이 부회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재차 화답했다.

이로써 그간 정경유착의 매개물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지목되어 온 전경련에 대한 삼성의 탈퇴가 기정사실화된 모양새다. 전경련은 삼성그룹 창업주이자 이 부회장의 조부인 고 이병철 회장이 주도해 1961년 출범한 단체다.

정몽구 회장, 최태원 회장, 구본무 회장, 손경식 회장도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전경련 탈퇴 의사를 묻자 정몽구 회장은 “(탈퇴할)의사는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과 구본무 회장은 하태경 의원이 연이어 전경련 탈퇴 의사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예”라고 답했다.

삼성 집중포화…미전실 폐지 깜짝 발언
잇단 탈퇴 선언…전경련 이대로 침몰하나

주요 그룹이 속속 탈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전경련이 해체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전경련은 600여개 회원사로부터 매년 400억원의 회비를 걷고 있다. 5대 그룹인 삼성·현대차·SK·LG·롯데그룹이 이 가운데 절반인 200억원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삼성이 내는 회비만 연간 1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전경련이 어떤 쇄신안을 내놓는지에 따라 조직의 존속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전경련은 청문회 의견과 회원사들의 견해를 반영해 조직 쇄신안을 준비하고자 내부적 실무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잇단 공개 탈퇴 선언 와중에서도 청문회에 출석한 대기업 총수 9명 중 정몽구, 구본무, 신동빈, 김승연, 조양호 회장 등 5명은 “전경련 해체에는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전경련은 헤리티지 단체처럼 운영하고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회원사들의 의견수렴에서부터 쇄신안 마련까지 매 단계 난관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공식적인 의견수렴을 위한 회장단 회의를 열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개최하려다 최순실 국정 농단 관련 검찰 수사와 참석률 저조 탓에 무산돼 버린 정례 회장단 회의는 다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의혹에서 사실로]
[밝혀지는 실체들]

이번 청문회를 통해 정부 차원의 재벌기업에 대한 압력 행사 의혹 상당수는 사실로 재확인됐다. 최순실씨와 연루된 각종 의혹이 총수들의 입을 통해 정황상 의심 차원을 넘어 실제 있었던 일로 판명된 셈이다.

손경식 회장에게는 청와대의 이미경 부회장 퇴진 압력에 대한 질문이 주로 나왔다. 손경식 회장은 “조원동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이 부회장이 조금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라고 증언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자유경제주의적 시장 질서에 어긋난 요구 아닌가’라고 묻자 손경식 회장은 “과거에 군부정권 때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만 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은 안다”라고 답했다. 또 “차은택씨가 CJ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직원들이 거절했다고 들었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조원동 전 수석과 재차 통화한 배경에 대해 “이미경 부회장이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해서 그러면 자기가 조 수석 얘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주장했다.

조양호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일하던 당시 정부 차원의 사퇴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조 회장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조직위원장직의 사퇴 압력을 받았냐는 질문에 “사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언급했다.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이 “조 회장께서 평창올림픽 성공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나”고 물자 조 회장은 “(열심히 한 것이) 맞다”고 답했다.

조 회장은 “최순실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물러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런 내용을 신문기사를 통해서 알았기 때문에 정확히 대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은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추가 출연 압박을 거절한 이유를 공개했다. 최태원 회장은 “K스포츠재단의 추가 요청을 왜 거절했느냐”는 최교일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K스포츠재단이 80억원을 추가 요청한 적 있다”며 “당시 계획이 부실했고 돈을 전하는 방법도 부적절해 실무진 차원서 거절했다”고 밝혔다.

새롭게 추가된 의혹도 있었다.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은 한화그룹이 정유라에게 8억원 상당의 말을 상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장 의원은 김승연 한화 회장에게 “2014년 4월26일 한화갤러리아 명의로 원산지가 독일인 8억3000만원 상당의 말을 두 필 구입했다. 어디에 썼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이 말 두 필이 사실상 정유라 전용말로 쓰였고 정유라는 이 말로 훈련을 받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 회장은 “정유라가 금메달 딴 건 알고 있다”면서도 “(증여한 사실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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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