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 재평가 받는 사람들

그땐 몰랐던 그들의 외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던 말이나 행동이 시간이 흐르면 다시없을 진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반대로 과거에는 진실처럼 믿었던 사실이 허무한 거짓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떤 사안이든 시대 보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요즘 같은 재평가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신문, 방송할 것 없이 온 언론이 매달려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수없는 의혹이 쏟아져 전 국민이 경악했다. 현실이 팍팍하면 과거를 되돌아보는 법, 국민들은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 일가와 연관됐던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립다’
책·영화 인기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그를 다룬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8년간 일한 강원국씨의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인터넷서점 ‘예스24’서 베스트셀러 6위, ‘교보문고’서 7위에 올랐다. 상위 작품들이 전부 올해 발간된 것을 감안하면 2014년 2월에 나온 책이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강 전 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3년, 노 전 대통령과 5년간 일했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에 ‘빨간펜’ 첨삭을 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의 글쓰기는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연설문을 쓸 때마다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노 전 대통령에게 관심이 쏠렸다.


노 전 대통령의 연설문 사랑은 지독한 구석이 있었다고 한다. 강 전 비서관은 언론과 인터뷰서 “노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쓸 때 같이 앉아서 고치고 토론했다”며 “말을 하셔야 말이 생각나고 말이 발전한다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보다 설득력 있는 말과 글로 다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만큼 대통령에게 연설문은 전부였다”고 했다. 국정 방향, 국내외 정책, 대통령의 의지 등 국민을 상대로 드러내는 국가 수장의 생각 자체인 연설문이 농락당한 현실이 노 전 대통령을 다시금 2016년으로 불러들였다.

최순실 게이트서 ‘재평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재판정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일갈했다는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인물로, 10·26사태의 장본인이다.
 

당시 김 전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부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노무현, 김재규, 이기붕, 이정희
사건과 연관 인물들 재조명 화제

강 변호사는 주간지 <시사인>과 인터뷰서 당시 영애였던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수차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이를 묵살하자 거사를 결심하게 됐다는 김 전 부장의 증언을 전했다.

강 변호사는 “김 전 부장이 사형당하기 4개월 전인 1980년 1월28일 면회를 갔더니 최태민 얘기를 처음 꺼냈다.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최태민은 교통사고라도 내서 처치해야할 놈이라고 분개했다”고 전했다.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 전 부장은 최후변론서 “구국여성봉사단이 많은 부정을 저질러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돼왔다”며 “그럼에도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가 관여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구국여성봉사단은 최태민씨가 총재, 박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맡고 있던 단체였다.

최근 시국을 덮친 사태에 최태민씨의 딸인 최순실씨, 최순득씨 등 최씨 일가가 얽혀 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당시 김 전 부장의 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역적, 대통령 살해범 등으로 불렸던 김 전 부장은 젊은 층에서 구국의 영웅, 의사, 열사 등의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민주화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함세웅 신부는 <채널예스>와 인터뷰서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제거한 바로 그날 김재규 부장이 유신의 핵을 제거했다. 김재규가 재평가되는 그날,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최순실의 관계서 이승만-이기붕의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10월19일 “최순실 모녀 사태를 보면 옛 이승만정권 때 권부 핵심 실세로 정권의 부패와 몰락을 자초했던 이기붕 일가가 떠오른다. 이기붕 일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최순실씨와 이기붕 전 부통령은 대통령을 움직여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 전 부통령은 노쇠한 이승만 전 대통령 뒤에서 국정 전반을 주물렀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는 바로 이 전 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1960년 예정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을 후보로 내세웠다.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이 후보로 나섰다.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그 직을 승계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자유당은 정당한 선거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대리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가공할 만한 부정을 저질렀다.

국민들은 부정선거에 항의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 4월11일 마산 앞바다서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얼굴에 맞은 김주열의 시신은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 전 부통령은 자신이 이 전 대통령에게 양자로 바쳤던 아들 이강석의 총에 죽었다.

이승만·박근혜
둘은 닮은 꼴?

이미 오래 전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을 제기해 옥살이를 한 사람들도 재조명 받고 있다. 당시 목사였던 김해호씨는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경선 과정서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에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2007년 6월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며 “자신이 가진 재단조차 소신껏 꾸리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는가”라고 했다.


김씨의 폭로에 사람들은 그를 ‘이명박의 개’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상대였던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서 일하고 있었다.

김씨는 “최 목사(최태민)와 그의 딸(최순실)이 육영재단에 개입한 1986년 이후 어린이회관 관장이 세 번 바뀌었고 직원 140명이 최 목사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직당했다”며 “유치원을 운영하던 최 목사의 딸은 서울 강남에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가졌는데 이 돈은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재산일 가능성이 있으니 검증위원회가 밝혀달라”고 주장했다.

무시당한 폭로
이제야 사실로

김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했던 내용은 지금 거의 사실로 밝혀졌다. 김씨의 폭로가 9년이 지나서 일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당시 법원은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허위사실로 치부했다. 김씨는 사전선거운동 및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1심서 징역 1년의 실형을, 항소심에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검찰과 피고인 측이 모두 상고하지 않아 형은 그대로 확정됐고, 김씨는 6개월가량 옥살이를 겪었다.

김씨는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정책특보였던 임현규씨와 함께 재심을 청구한 상황이다. 임씨는 김씨가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작성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입장자료를 통해 “당시 제기한 의혹 상당수가 현재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당초 재심청구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다시는 이 같은 국정농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재심 청구를 결심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자칭 목사’ 조웅씨는 2013년에 등장했다. 조씨는 2013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조씨는 “박 대통령(당시 당선인 신분)이 평양에 방문할 때 정부에 허가받지 않은 500억원을 들고 갔고, 김일성 동상에 참배했다”고 했다.

그는 최태민씨와 관계,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 배후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수사관은 언론 인터뷰 도중 조씨를 긴급 체포했고,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조씨는 1심과 2심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대법원은 원심 확정판결을 내렸다.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박 전 행정관은 지난 2014년 <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폭로하면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는 박 대통령의 오래된 측근인 ‘문고리 3인방(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의 동향을 다룬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작성했다. 박 전 행정관은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수사 과정서 박 전 행정관은 담당 검사와 수사관에게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며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와 대부분의 언론은 박 전 행정관의 발언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팍팍한 현실에 과거 회상

그의 발언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재조명받고 있다. 박 전 행정관의 발언은 최순실씨의 운전기사로 17년간 그녀를 비롯해 최씨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김모씨의 인터뷰서도 확인됐다.

김씨는 “박 의원님(박 대통령) 위에 정 실장(정윤회)이고, 그 위에 순실이(최순실)야”라고 말했다. 기자가 박 전 행정관의 발언과 같다고 말하자 “맞지. 순실이가 대장, 그 다음은 정 실장, 박 의원은 꼴등”이라고 설명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잊혔던 정치인도 다시 상기시켰다. 지난달 30일, 박 대통령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 가운데 박영수 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를 선택했다. 특검은 대통령을 직접 수사할 가능성이 있어 누가 선정될지 여부에 큰 관심이 쏠렸다.

그 가운데 등장했던 이름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다. 2014년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이후 국민의 시야에서 사라진 이 전 대표는 특검 후보로 거론되며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전 대표는 18대 대선 TV토론 때 박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전 대표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토론에) 나왔다”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것이다. 한국이름 박정희” “뿌리는 숨길 수 없다. 대대로 나라 주권 팔아먹는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를 자격이 없다” 등 날선 발언으로 박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일각에선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사이다’라고 환호했지만 한편에선 동정론을 일으켜 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때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출판한 <i 전여옥>이라는 책에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담은 바 있다.

“박근혜 위원장이 용서하는 사람은 딱 한 명, 자기 자신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식견·인문학적 콘텐츠도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한다” 등의 어록들을 쏟아냈다.

전 전 의원은 최근 박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비판했다.

전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언급했다. 전 전 의원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격을 스스로 무너뜨리신 게 아닌가 하는 매우 유감스런 담화였다. 지도자라면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판단하고 명확하게 밝혔어야 한다”고 했다.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는 최순실 게이트로 이미지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 박태환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직전인 9월 초 금지약물 검사에서 세계반도핑기구의 금지약물이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돼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8개월 자격 정지, 메달 박탈 등의 징계를 받았다.

박태환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피부 치료 때문에 찾은 병원서 의사가 부작용과 주의사항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네비도’ 주사제를 놨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박태환의 수영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막혀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다. 박태환은 법정 다툼 끝에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 여론은 여전히 약물 의혹서 자유롭지 못한 박태환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반전이 일어난 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박태환을 상대로 올림픽 출전 포기를 강요하는 등 압력을 행사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부터다.

30년 만 재등장
이미지 회복도

김 전 차관은 박태환에게 올림픽 출전을 고집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환은 언론과 인터뷰서 “(김 전 차관이) 너무 높으신 분이라 무서웠지만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밝혔다.

박태환은 최근 일본 도쿄서 열린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며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은 박태환에게 네비도를 투약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김씨 상고심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박태환은 약물 고의 투여 의혹을 벗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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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