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 재평가 받는 사람들

그땐 몰랐던 그들의 외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던 말이나 행동이 시간이 흐르면 다시없을 진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반대로 과거에는 진실처럼 믿었던 사실이 허무한 거짓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떤 사안이든 시대 보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요즘 같은 재평가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신문, 방송할 것 없이 온 언론이 매달려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수없는 의혹이 쏟아져 전 국민이 경악했다. 현실이 팍팍하면 과거를 되돌아보는 법, 국민들은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 일가와 연관됐던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립다’
책·영화 인기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그를 다룬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8년간 일한 강원국씨의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인터넷서점 ‘예스24’서 베스트셀러 6위, ‘교보문고’서 7위에 올랐다. 상위 작품들이 전부 올해 발간된 것을 감안하면 2014년 2월에 나온 책이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강 전 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3년, 노 전 대통령과 5년간 일했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에 ‘빨간펜’ 첨삭을 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의 글쓰기는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연설문을 쓸 때마다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노 전 대통령에게 관심이 쏠렸다.


노 전 대통령의 연설문 사랑은 지독한 구석이 있었다고 한다. 강 전 비서관은 언론과 인터뷰서 “노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쓸 때 같이 앉아서 고치고 토론했다”며 “말을 하셔야 말이 생각나고 말이 발전한다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보다 설득력 있는 말과 글로 다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만큼 대통령에게 연설문은 전부였다”고 했다. 국정 방향, 국내외 정책, 대통령의 의지 등 국민을 상대로 드러내는 국가 수장의 생각 자체인 연설문이 농락당한 현실이 노 전 대통령을 다시금 2016년으로 불러들였다.

최순실 게이트서 ‘재평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재판정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일갈했다는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인물로, 10·26사태의 장본인이다.
 

당시 김 전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부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노무현, 김재규, 이기붕, 이정희
사건과 연관 인물들 재조명 화제

강 변호사는 주간지 <시사인>과 인터뷰서 당시 영애였던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수차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이를 묵살하자 거사를 결심하게 됐다는 김 전 부장의 증언을 전했다.

강 변호사는 “김 전 부장이 사형당하기 4개월 전인 1980년 1월28일 면회를 갔더니 최태민 얘기를 처음 꺼냈다.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최태민은 교통사고라도 내서 처치해야할 놈이라고 분개했다”고 전했다.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 전 부장은 최후변론서 “구국여성봉사단이 많은 부정을 저질러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돼왔다”며 “그럼에도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가 관여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구국여성봉사단은 최태민씨가 총재, 박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맡고 있던 단체였다.

최근 시국을 덮친 사태에 최태민씨의 딸인 최순실씨, 최순득씨 등 최씨 일가가 얽혀 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당시 김 전 부장의 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역적, 대통령 살해범 등으로 불렸던 김 전 부장은 젊은 층에서 구국의 영웅, 의사, 열사 등의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민주화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함세웅 신부는 <채널예스>와 인터뷰서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제거한 바로 그날 김재규 부장이 유신의 핵을 제거했다. 김재규가 재평가되는 그날,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최순실의 관계서 이승만-이기붕의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10월19일 “최순실 모녀 사태를 보면 옛 이승만정권 때 권부 핵심 실세로 정권의 부패와 몰락을 자초했던 이기붕 일가가 떠오른다. 이기붕 일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최순실씨와 이기붕 전 부통령은 대통령을 움직여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 전 부통령은 노쇠한 이승만 전 대통령 뒤에서 국정 전반을 주물렀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는 바로 이 전 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1960년 예정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을 후보로 내세웠다.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이 후보로 나섰다.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그 직을 승계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자유당은 정당한 선거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대리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가공할 만한 부정을 저질렀다.

국민들은 부정선거에 항의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 4월11일 마산 앞바다서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얼굴에 맞은 김주열의 시신은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 전 부통령은 자신이 이 전 대통령에게 양자로 바쳤던 아들 이강석의 총에 죽었다.

이승만·박근혜
둘은 닮은 꼴?

이미 오래 전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을 제기해 옥살이를 한 사람들도 재조명 받고 있다. 당시 목사였던 김해호씨는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경선 과정서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에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2007년 6월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며 “자신이 가진 재단조차 소신껏 꾸리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는가”라고 했다.


김씨의 폭로에 사람들은 그를 ‘이명박의 개’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상대였던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서 일하고 있었다.

김씨는 “최 목사(최태민)와 그의 딸(최순실)이 육영재단에 개입한 1986년 이후 어린이회관 관장이 세 번 바뀌었고 직원 140명이 최 목사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직당했다”며 “유치원을 운영하던 최 목사의 딸은 서울 강남에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가졌는데 이 돈은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재산일 가능성이 있으니 검증위원회가 밝혀달라”고 주장했다.

무시당한 폭로
이제야 사실로

김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했던 내용은 지금 거의 사실로 밝혀졌다. 김씨의 폭로가 9년이 지나서 일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당시 법원은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허위사실로 치부했다. 김씨는 사전선거운동 및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1심서 징역 1년의 실형을, 항소심에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검찰과 피고인 측이 모두 상고하지 않아 형은 그대로 확정됐고, 김씨는 6개월가량 옥살이를 겪었다.

김씨는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정책특보였던 임현규씨와 함께 재심을 청구한 상황이다. 임씨는 김씨가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작성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입장자료를 통해 “당시 제기한 의혹 상당수가 현재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당초 재심청구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다시는 이 같은 국정농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재심 청구를 결심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자칭 목사’ 조웅씨는 2013년에 등장했다. 조씨는 2013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조씨는 “박 대통령(당시 당선인 신분)이 평양에 방문할 때 정부에 허가받지 않은 500억원을 들고 갔고, 김일성 동상에 참배했다”고 했다.

그는 최태민씨와 관계,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 배후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수사관은 언론 인터뷰 도중 조씨를 긴급 체포했고,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조씨는 1심과 2심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대법원은 원심 확정판결을 내렸다.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박 전 행정관은 지난 2014년 <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폭로하면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는 박 대통령의 오래된 측근인 ‘문고리 3인방(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의 동향을 다룬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작성했다. 박 전 행정관은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수사 과정서 박 전 행정관은 담당 검사와 수사관에게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며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와 대부분의 언론은 박 전 행정관의 발언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팍팍한 현실에 과거 회상

그의 발언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재조명받고 있다. 박 전 행정관의 발언은 최순실씨의 운전기사로 17년간 그녀를 비롯해 최씨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김모씨의 인터뷰서도 확인됐다.

김씨는 “박 의원님(박 대통령) 위에 정 실장(정윤회)이고, 그 위에 순실이(최순실)야”라고 말했다. 기자가 박 전 행정관의 발언과 같다고 말하자 “맞지. 순실이가 대장, 그 다음은 정 실장, 박 의원은 꼴등”이라고 설명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잊혔던 정치인도 다시 상기시켰다. 지난달 30일, 박 대통령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 가운데 박영수 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를 선택했다. 특검은 대통령을 직접 수사할 가능성이 있어 누가 선정될지 여부에 큰 관심이 쏠렸다.

그 가운데 등장했던 이름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다. 2014년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이후 국민의 시야에서 사라진 이 전 대표는 특검 후보로 거론되며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전 대표는 18대 대선 TV토론 때 박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전 대표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토론에) 나왔다”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것이다. 한국이름 박정희” “뿌리는 숨길 수 없다. 대대로 나라 주권 팔아먹는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를 자격이 없다” 등 날선 발언으로 박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일각에선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사이다’라고 환호했지만 한편에선 동정론을 일으켜 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때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출판한 <i 전여옥>이라는 책에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담은 바 있다.

“박근혜 위원장이 용서하는 사람은 딱 한 명, 자기 자신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식견·인문학적 콘텐츠도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한다” 등의 어록들을 쏟아냈다.

전 전 의원은 최근 박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비판했다.

전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언급했다. 전 전 의원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격을 스스로 무너뜨리신 게 아닌가 하는 매우 유감스런 담화였다. 지도자라면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판단하고 명확하게 밝혔어야 한다”고 했다.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는 최순실 게이트로 이미지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 박태환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직전인 9월 초 금지약물 검사에서 세계반도핑기구의 금지약물이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돼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8개월 자격 정지, 메달 박탈 등의 징계를 받았다.

박태환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피부 치료 때문에 찾은 병원서 의사가 부작용과 주의사항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네비도’ 주사제를 놨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박태환의 수영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막혀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다. 박태환은 법정 다툼 끝에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 여론은 여전히 약물 의혹서 자유롭지 못한 박태환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반전이 일어난 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박태환을 상대로 올림픽 출전 포기를 강요하는 등 압력을 행사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부터다.

30년 만 재등장
이미지 회복도

김 전 차관은 박태환에게 올림픽 출전을 고집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환은 언론과 인터뷰서 “(김 전 차관이) 너무 높으신 분이라 무서웠지만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밝혔다.

박태환은 최근 일본 도쿄서 열린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며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은 박태환에게 네비도를 투약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김씨 상고심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박태환은 약물 고의 투여 의혹을 벗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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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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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