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줄소환’ 쇼맨십 청문회 논란

“정치가 경제를 또 삼킨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재벌 총수들이 무더기로 증언대에 오르게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상을 규명한다는 취지에서 내려진 조치다. 모두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총수들이다. 재계는 당혹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각 기업들의 연말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오는 6일로 예정된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는 9명의 대기업 총수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이번 청문회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배경 등이 주된 조사내용이 될 전망이다. 검찰조사 때 모든 것을 밝혔기 때문에 별도의 국정조사 청문회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해온 재계는 이제 국회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

줄줄이 증인석으로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 나오게 된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8),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78), 최태원 SK그룹 회장(56), 구본무 LG그룹 회장(71),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1),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6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67), 손경식 CJ그룹 회장(77), GS그룹 회장인 허창수 전경련 회장(68) 등이다.

대기업 총수 9명 중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청문회 경험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2명뿐이다. 신 회장은 지난해 9월 형제 간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불거진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해명하기 위해 10대그룹 총수 중 처음으로 국정감사에 불려나왔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과정과 관련해 지난달 국감에 출석했다.

나머지 7명은 증인으로 서 본 경험이 없다. 이에 해당 기업들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조사실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으면서 검사의 질문에 답하는 검찰수사와 달리 국정조사 청문회는 전 과정이 TV로 생중계된다는 점에서 증언대에 서는 총수나 기업 모두에 큰 부담이다. 총수의 발언 한마디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말란 보장도 없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장시간 증인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할 때 회사 임원을 배석시켜 보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에는 홀로 자리를 지켜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국회 인근에 전문 의료진과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여의도 인근 대형병원과 연락체계를 갖추는 등 긴급 이송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국회 국정조사에 최선을 다해 응하겠지만 워낙 고령인 데다 건강도 좋지 않다”며 “생각만큼 소통이 쉽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9명 회장 국정조사 증인 채택
일방적 망신주기 우려와 걱정

청문회를 기회로 삼아 국회의원들이 ‘쇼맨십’을 발휘하려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총수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놓은 채 국회의원들이 일방적으로 호통을 치는 청문회가 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청문회에 불출석할 경우 국민적 지탄을 우려, 울며 겨자 먹기로 청문회를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각 기업들의 관심이 총수들의 청문회 출석에 쏠리는 탓에 기업의 한해 마무리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통상 기업들은 연말은 한해 경영실적에 따라 인사를 단행하고 투자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총수의 청문회 출석을 앞둔 몇몇 기업은 핵심 의사결정을 미루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2월 초 실시하던 사장단 인사를 내년으로 미룰 예정인 곳도 제법 눈에 띈다.


주요 외신도 우려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25일 “정치인들이 재벌 총수들을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토록 하는 안에 합의했다”며 “이는 경제 심리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청문회가 끝나더라도 기업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기 힘들다. 곧 출범할 특검이 다시 수사를 시작하면 총수들이 특검 수사선상에서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진상 규명과 별개로 그룹 총수들을 매번 동일한 사안으로 계속 조사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각 그룹은 총수들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방송을 타게 되는 상황을 앞두고 법무팀 등을 중심으로 대응전략 수립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 로펌을 선정해 청문회 답변을 준비한다는 소문이다.

심지어 대책팀을 구성해 예상 질문을 미리 뽑고 답안지를 만든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예행연습까지 할 것이라는 얘기도 돈다.

때리고 또 때리고

재계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공격적으로 질문할 테니 침착하게 대응하는 게 관건”이라며 “총수들을 무조건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질의가 이어지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벌총수 청문회 기록

내달 6일 열리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는 다양한 진기록을 양산할 것으로 보인다. 총수가 청문회에 출석하는 9개 그룹의 지난해 국내 매출은 910조원에 이른다. 이는 2015년 정부예산인 375조원의 2.4배에 달한다.

지난해 약 1559조원을 기록한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면 58%가 넘는 수준이다. 9개 그룹의 순이익 규모는 52조297억원으로 정부가 예상하는 2017년도 교육 예산인 56조원과 맞먹는다.

특히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역대 청문회 증인 가운데, 기업총수로는 최고령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정몽구 회장에 앞서 청문회 등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고령 기업인은 1988년 ‘5공 청문회’에 출석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당시 73세였고 1997년 ‘한보사태 청문회’에 나온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77세였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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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