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9) 신하국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0:28:45
  • 호수 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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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신라, 그 해법은?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적장이 유신의 칼날이 목에 닿기 바로 전에 그 경황 중에도 위급을 알아차렸는지, 아니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어 유신의 칼이 적장의 목을 비껴 어깨에서 겨드랑이를 깊게 베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적장이 그 일격에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를 살피며 곁에서 알몸으로 심하게 떨고 있는 여인을 살펴보았다.

완전히 혼이 빠져나간 듯 보였다.

여인을 무시하고 유신이 고꾸라진 적장의 목에 칼을 휘둘렀다.

이어 재차에 거친 칼질로 적장의 수급을 베어 한손으로 들고 바로 밖으로 나섰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오자 수급을 높이 치켜들었다.

“고구려 장수의 수급이 이 손에 있다. 신라 병사들이여,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도록 하라!”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라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사에 불을 지르고 술에 취해 비몽사몽에 빠져있는 고구려 군사들을 무 자르듯 베어 나갔다.

동시에 한 병사가 신라 진영을 향해 불화살을 쏘아 올렸다.

유신을 위시한 신라 병사들의 기습공격에 대비할 겨를이 없었던 고구려 진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게다가 신라 본진이 돌진해오자 전의마저 상실한 고구려 군사들이 퇴로도 없는 진영 안에서 갈팡질팡했다.

신라군은 기세를 몰아 바로 성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미 모든 정황을 감지한 고구려 군은 싸울 기력도 없는 듯 칼도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선선히 항복하였다.

신라군은 첫 패전을 완전히 설욕하였음은 물론 고구려 군사 오천여 명을 죽이고 일천여 명을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 전투를 계기로 확고한 위상을 확립해나가던 중에 아버지 김서현과 최대 후원 세력이었던 김용춘이 이어 이승을 떠났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유신의 역할이 급격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변해버린 자신의 처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늘 뒤에서 힘이 되어주던 아버지와 김용춘이 이승을 떠났을 뿐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 더 자신과 나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으나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막상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나 결국에는 슬그머니 따돌림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니 자연 겉돌게 되고 그저 들러리서는 역할에 만족해야했다.

특히 선덕여왕이 보위에 앉자 더욱 심화되었다.

선덕여왕은 즉위 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매사 종교의식과 외세 특히 당나라에 의존하는 경향이 매우 심했다.

그러다보니 번번이 당나라에 조공을 바쳐야 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신하국으로 전락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게다가 백성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사에만 전념했다.

그를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 작심하고 선덕여왕을 알현했다.

그 자리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군사력을 강화해야 함을 역설했다.

아울러 국경 근방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 부탁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선덕여왕은 김유신의 간곡한 요구를 거절하였고, 그런 연유로 시름에 겨워 홀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집 가까이 이르자 대문 앞에서 유신의 아내 유모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를 확인하고 취한 몸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움직이자 유모 역시 황급히 다가와 유신의 한쪽 팔을 잡았다.

성장하는 고구려·백제…선덕여왕 알현
당나라 신하국으로 전락…신라 미래는?

“어인 일로 이리 취하셨어요?”

유모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왜 아직도 자지 않고 나와 있소?”

“왜라니요. 귀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오시지 않으니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랬구려.”

부인을 바라보는 유신의 얼굴로 공허한 미소가 흘렀다.

“무슨 일 있었나요?”“일은 무슨 일이 있겠소. 그저 부인에게 면목 없구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느닷없이 면목이 없다니요. 여하튼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아니오, 부인. 우리 정원에서 저 달 구경 좀 하다 들어갑시다.”

“달구경이오!”

“달이 얼마나 밝고 환한지 모른다오.”

유모가 정자로 향하는 유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없이 따랐다.

“뭐 좀 내올까요?”

정자에 자리 잡자 유신의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필요 없소. 그냥 이대로 달구경이나 합시다.”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부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순간 잠시 주춤하던 유모가 유신의 무릎 위로 자연스럽게 넘어졌다.

자세를 바로하려는 부인을 제지하고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왜 이러세요, 서방님!”

“부인이 너무 좋소. 그리고 미안하고.”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한참 물이 올라 농익은 아내의 체취를 맡으려는 듯 얼굴을 가슴에 묻었다.

부인이 자세를 바루고는 유신을 사랑스러운 듯 감쌌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장군 마음이 온전하시겠어요.”

한동안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그대로 있던 유모가 자세를 바로 했다.

“부인, 저 달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내 자신 처량하다는 생각이 듭디다.”

술기운 혹은 달빛 탓인지 유신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 나이 벌써 마흔 여덟인데 아직도 반달은커녕 초승달만도 못하니.”

유모가 아무 말 없이 유신의 손을 어루만졌다.

“휴우!”

유신이 술기운을 쫓아내기라도 하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서방님, 제가 민망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아들 하나 없으니.”

제 11대 풍월주(화랑도의 수장)를 지낸 진골 하종공의 딸로 언니인 영모가 김유신과의 사이에 딸 넷을 낳고 사망하자 바로 유신의 아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 때까지 아들은커녕 자식 하나 낳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을 안겨드렸어야 하는데.”

유신이 가만히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요?”“부인, 아시오?”

“무엇을 말인가요?”

“기분이 언짢을 때 그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말이오.”

아내가 그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듯 유신의 얼굴을 빤히 주시했다.

달빛에 비친 아내의 얼굴이 창백하리만치 곱게 느껴졌다. 순간 유신이 범처럼 아내를 덮쳤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아니오, 부인. 저 달에게 간절히 기원하며 여기서 일을 벌입시다.”

잠시 말을 되새긴 부인이 유신의 목을 휘감았다. 하늘에서는 보름달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충과 효 

순행을 마치고 돌아온 바로 그 날 잠자리에 들었던 무왕이 생을 마감하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마냥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은 아버지의 모습을 살핀 효가 국상을 서둘렀다.

급히 국상을 준비하는 중에 성충을 비롯한 몇몇 대신들이 효를 찾아 급히 보위에 오를 것을 주청했다.

그러나 아버지 상중인데 차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상을 마치고 보위에 오르겠노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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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