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9) 신하국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0:28:45
  • 호수 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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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신라, 그 해법은?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적장이 유신의 칼날이 목에 닿기 바로 전에 그 경황 중에도 위급을 알아차렸는지, 아니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어 유신의 칼이 적장의 목을 비껴 어깨에서 겨드랑이를 깊게 베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적장이 그 일격에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를 살피며 곁에서 알몸으로 심하게 떨고 있는 여인을 살펴보았다.

완전히 혼이 빠져나간 듯 보였다.

여인을 무시하고 유신이 고꾸라진 적장의 목에 칼을 휘둘렀다.


이어 재차에 거친 칼질로 적장의 수급을 베어 한손으로 들고 바로 밖으로 나섰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오자 수급을 높이 치켜들었다.

“고구려 장수의 수급이 이 손에 있다. 신라 병사들이여,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도록 하라!”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라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사에 불을 지르고 술에 취해 비몽사몽에 빠져있는 고구려 군사들을 무 자르듯 베어 나갔다.

동시에 한 병사가 신라 진영을 향해 불화살을 쏘아 올렸다.

유신을 위시한 신라 병사들의 기습공격에 대비할 겨를이 없었던 고구려 진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게다가 신라 본진이 돌진해오자 전의마저 상실한 고구려 군사들이 퇴로도 없는 진영 안에서 갈팡질팡했다.

신라군은 기세를 몰아 바로 성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미 모든 정황을 감지한 고구려 군은 싸울 기력도 없는 듯 칼도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선선히 항복하였다.

신라군은 첫 패전을 완전히 설욕하였음은 물론 고구려 군사 오천여 명을 죽이고 일천여 명을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 전투를 계기로 확고한 위상을 확립해나가던 중에 아버지 김서현과 최대 후원 세력이었던 김용춘이 이어 이승을 떠났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유신의 역할이 급격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변해버린 자신의 처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늘 뒤에서 힘이 되어주던 아버지와 김용춘이 이승을 떠났을 뿐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 더 자신과 나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으나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막상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나 결국에는 슬그머니 따돌림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니 자연 겉돌게 되고 그저 들러리서는 역할에 만족해야했다.

특히 선덕여왕이 보위에 앉자 더욱 심화되었다.


선덕여왕은 즉위 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매사 종교의식과 외세 특히 당나라에 의존하는 경향이 매우 심했다.

그러다보니 번번이 당나라에 조공을 바쳐야 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신하국으로 전락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게다가 백성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사에만 전념했다.

그를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 작심하고 선덕여왕을 알현했다.

그 자리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군사력을 강화해야 함을 역설했다.


아울러 국경 근방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 부탁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선덕여왕은 김유신의 간곡한 요구를 거절하였고, 그런 연유로 시름에 겨워 홀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집 가까이 이르자 대문 앞에서 유신의 아내 유모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를 확인하고 취한 몸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움직이자 유모 역시 황급히 다가와 유신의 한쪽 팔을 잡았다.

성장하는 고구려·백제…선덕여왕 알현
당나라 신하국으로 전락…신라 미래는?

“어인 일로 이리 취하셨어요?”

유모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왜 아직도 자지 않고 나와 있소?”

“왜라니요. 귀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오시지 않으니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랬구려.”

부인을 바라보는 유신의 얼굴로 공허한 미소가 흘렀다.

“무슨 일 있었나요?”“일은 무슨 일이 있겠소. 그저 부인에게 면목 없구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느닷없이 면목이 없다니요. 여하튼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아니오, 부인. 우리 정원에서 저 달 구경 좀 하다 들어갑시다.”

“달구경이오!”

“달이 얼마나 밝고 환한지 모른다오.”

유모가 정자로 향하는 유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없이 따랐다.

“뭐 좀 내올까요?”

정자에 자리 잡자 유신의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필요 없소. 그냥 이대로 달구경이나 합시다.”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부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순간 잠시 주춤하던 유모가 유신의 무릎 위로 자연스럽게 넘어졌다.

자세를 바로하려는 부인을 제지하고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왜 이러세요, 서방님!”

“부인이 너무 좋소. 그리고 미안하고.”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한참 물이 올라 농익은 아내의 체취를 맡으려는 듯 얼굴을 가슴에 묻었다.

부인이 자세를 바루고는 유신을 사랑스러운 듯 감쌌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장군 마음이 온전하시겠어요.”

한동안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그대로 있던 유모가 자세를 바로 했다.

“부인, 저 달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내 자신 처량하다는 생각이 듭디다.”

술기운 혹은 달빛 탓인지 유신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 나이 벌써 마흔 여덟인데 아직도 반달은커녕 초승달만도 못하니.”

유모가 아무 말 없이 유신의 손을 어루만졌다.

“휴우!”

유신이 술기운을 쫓아내기라도 하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서방님, 제가 민망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아들 하나 없으니.”

제 11대 풍월주(화랑도의 수장)를 지낸 진골 하종공의 딸로 언니인 영모가 김유신과의 사이에 딸 넷을 낳고 사망하자 바로 유신의 아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 때까지 아들은커녕 자식 하나 낳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을 안겨드렸어야 하는데.”

유신이 가만히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요?”“부인, 아시오?”

“무엇을 말인가요?”

“기분이 언짢을 때 그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말이오.”

아내가 그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듯 유신의 얼굴을 빤히 주시했다.

달빛에 비친 아내의 얼굴이 창백하리만치 곱게 느껴졌다. 순간 유신이 범처럼 아내를 덮쳤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아니오, 부인. 저 달에게 간절히 기원하며 여기서 일을 벌입시다.”

잠시 말을 되새긴 부인이 유신의 목을 휘감았다. 하늘에서는 보름달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충과 효 

순행을 마치고 돌아온 바로 그 날 잠자리에 들었던 무왕이 생을 마감하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마냥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은 아버지의 모습을 살핀 효가 국상을 서둘렀다.

급히 국상을 준비하는 중에 성충을 비롯한 몇몇 대신들이 효를 찾아 급히 보위에 오를 것을 주청했다.

그러나 아버지 상중인데 차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상을 마치고 보위에 오르겠노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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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