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멈춘 자이로드롭> 롯데월드 사고일지

놀이기구 탔다 세상 하직할 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롯데월드의 간판 놀이기구인 자이로드롭이 멈추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이후 롯데월드 측이 기계 결함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은 이미 고장 사례가 두 번이나 있어 사람들의 신뢰도는 바닥을 쳤다. 이번 일이 논란이 되자 여태까지 있었던 롯데월드의 놀이기구 고장 사례들이 하나둘씩 수면위로 떠올랐다.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이 되고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장소가 됐던 롯데월드. 아찔했던 사고 사례에 대해 알아본다.

언제서부터인지 네티즌들은 롯데월드를 ‘데스월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안전 문제로 인한 사망 및 부상사고의 발생빈도가 다른 놀이공원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롯데월드 사고’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수많은 자료가 쏟아져 나올 정도로 롯데월드는 개장 이래 20년동안 다양한 안전사고들이 발생했다.

잠실 데스월드?

2000년대 초중반에는 심각한 안전사고들이 발생, 롯데월드의 이미지 악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결국 롯데월드는 2007년 초 시설 전면 보수를 위해 6개월 전면 휴장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당시 롯데월드 관계자는 “안정성을 보다 강화했다. 독일의 종합안정 승인기관인 TUV를 통해 놀이시설 운행관련 1000여 안전항목을 테스트받았다”고 했다.

테스트에 소요된 예산만 650억원, 10만명 이상의 인력이 투입됐다. 재개장한 후로는 예전과 같은 안전문제로 인한 사망 및 부상사고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지만 시설 고장으로 인한 사고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이용객들의 불안을 사고 있다.

1992년 8월16일에는 롯데월드를 관람하던 조선족 이모(39)씨가 롤러코스터 후렌치 레볼루션의 540도 뱅킹 수평회전 구간 근처에서 사람 허리춤 높이의 안전펜스를 넘어서 트랙구간에 무단출입해 레일 위로 목을 내밀고 사진촬영을 하려다 시속 80km로 달리는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후 사고 지점의 안전펜스는 사람 키 높이만큼 높아졌다.


1995년 3월23일에는 민속관 저잣거리 부근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롯데월드 방재실에서 1분 만에 상황을 파악했음에도 사고를 숨기려는 목적으로 신고하지 않다가 30분 정도 지나서야 신고하는 바람에 소방서 출동이 늦어졌다.

스프링쿨러도 작동 기준 온도 미달로 가동되지 않아 초기 진화에도 실패했다. 화재 발생 8시간 뒤 민속관 내부 시설이 잿더미로 변하고 나서야 진압이 됐다.

1999년 4월16일 롯데월드를 방문한 모 여고 2학년 박모(17)양이 '신밧드의 모험' 탑승 중 스릴을 느끼고 싶다며 자리서 일어났다가 천장에 얼굴을 강타당하고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 박양은 이 사고로 얼굴 등에 64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었다. 실제 신밧드의 모험 차량에는 안전바 장치가 없었다.

그래서 운행 중에도 탑승자가 일어서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 이 당시에 신밧드의 모험을 서서 타는 게 청소년들 사이에서 무용담 같이 퍼졌었다. 이후 신밧드의 모험의 탑승 차량에는 절대 일어서지 말라는 문구가 부착됐다.

그런데 이 부상 사고가 당시에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이상하게 퍼지면서 어느 여성이 남자친구와 자이로드롭에 탑승했다가 바람에 흩날리던 긴 생머리가 타워 꼭대기에 고정된 기계에 끼인 채 하강하는 바람에 두피를 비롯, 얼굴 가죽이 모두 벗겨져 사망했다는 괴담으로 번졌다.

게다가 당시 사망자의 사진이라며 얼굴 가죽이 벗겨진 시신 사진이 함께 나도는 등 끔찍한 루머가 돌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이 괴담을 믿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당시 나돌던 시신 사진은 외국 고어 사이트에서 가져 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괴담이 너무 심각하게 퍼졌던 탓에 당시 경찰은 언론을 통해 직접 사실을 조사 및 해명까지 했을 정도다.

60m 상공서 39명 벌벌…툭하면 고장
사고 발생빈도 다른 곳에 비해 높아


이용객이 아닌 직원들 사고도 있었다.

2003년 8월4일에는 아르바이트생 김모(19)군이 고장 난 혜성특급 동체를 견인하다가 레일에 끼어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2006년 3월6일에는 롯데월드 매직 아일랜드서 '아틀란티스' 놀이기구에 탑승한 롯데월드 안전과 직원 성모(28)씨가 맨 앞좌석에 앉아 있다가 시속 70km의 속도로 급하게 회전하는 구간에서 기구에 머리를 부딪힌 후 튕겨나가 12m 아래 석촌호수로 추락, 사고발생 25분뒤 구조대에 의해 구조됐으나 익사한 채 발견된 사고도 있었다.
 

특히 사고가 난 어트랙션인 아틀란티스는 지난 2004년 2월에 무면허 업체가 철골 및 구조물 시공을 한 것으로 드러나 관할구청인 송파구청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전력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특히 일반 이용객이 롯데월드에서 정식 운영 중인 어트랙션에 탑승했다가 시설 안전 문제로 인해 사망한 첫 사고사례로 롯데월드 역사상 최악의 안전사고로 기록될 정도였기에 후폭풍과 파급 효과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롯데월드 측은 아틀란티스 사망 사고에 대한 대국민사과 차원에서 2006년 3월26일부터 31일까지 무료입장 및 이용 이벤트를 공식 선언했다.

무료입장 첫날인 26일에는 그야말로 전국의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꼭두새벽부터 몰려드는 바람에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인파가 출입구를 가득 메웠다. 이날 롯데월드 측은 질서 유지에 나섰으나 확성기를 통한 안전요원의 말이 잘못 전달돼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면서 7명이 넘어져 중경상을 입기도 했다.

안전요원이 입장 대기 중인 관람객들에게 '앉으라'고 한 것을 뒤편에서는 이를 '이제 입장하라'는 뜻으로 오해해 일시에 성급하게 밀어붙이면서 일어난 사고였다. 사고가 난 장소가 워낙 넓은 곳이라서 음성안내 전달이 잘못 전해진 데다가 관람객들의 조급증이 겹쳐진 복합적인 이유였다.

이후 롯데월드 쪽으로 앞다퉈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곳곳서 바닥에 넘어지고 출입구 유리창이 깨져 골절 등 중경상을 입는 환자가 속출해 초등학생 등 35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입장객 통제를 했던 롯데월드 직원에 따르면 압사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한다. 사고 직후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의경 400여명을 배치, 질서 유지에 나서면서 비로소 사태가 수습됐고 오전 9시30분부터 입장이 시작됐다.

2006년 6월27일에는 최모(10)군이 다크라이드인 ‘환타지 드림’을 타던 도중 갑자기 4m 위 천장서 떨어진 가로 30cm, 세로 30cm 크기의 석고로 만든 캔디마감재에 머리를 맞아 상처를 입는 일도 있었다. 옆에 있던 13살된 최군의 형도 파편 조각에 얼굴을 다쳤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마감재 뒷면엔 드릴로 박은 못이 박혀 있어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이를 계기로 롯데월드 측에선 외부 기관에 안전 컨설팅을 의뢰했다. 그 결과 몇몇 구조물들에 붕괴 위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컨설팅 내용이 언론에 노출되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롯데월드는 2007년 1월8일 사장의 기자회견과 함께 전격적으로 보수공사에 들어가 6개월 후 재개장했다. 당시 롯데월드 측은 안전에는 문제가 없지만 여론 때문에 휴장한다는 입장이어서 또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2010년 10월7일, 2015년 4월28일과 2016년 9월19일에 자이로드롭이 상공 60m 지점서 멈춰서는 사건이 벌어졌고 2011년 9월15일에는 ‘혜성특급’이 정전 사태로 인해 10분간 멈추는 사고, 2012년 2월12일 롤러코스터 ‘후렌치 레볼루션’이 출발 직후 멈춰서 탑승객 20여명이 비상 대피통로를 통해 긴급 대피했다.


어물쩍 넘어가

2월14일에는 어린이용 관람차의 문이 운행 중 열리는 사고, 8월1일에는 ‘풍선비행’ 기구가 수직 상승기의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승객들이 탑승한 풍선 부분이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현재까지도 롯데월드의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어 이용객들의 불안은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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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기세를 앞세워 쟁점 법안들을 한순간에 처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과제를 풀어야 하는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주요 후보 4명이 출마할 예정이다. 약점도 4인 4색이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일 충북 청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주목받았던 유력 당권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등 4명이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과 장성민 경기 안산갑 당협위원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4파전 예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들이 수북하게 쌓여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의 기세와 압도적인 의석수를 토대로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서둘러 처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완전히 폐지한 후 기존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옮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의 의석수는 107석에 불과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법안을 막을 힘이 없다. 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유력 후보 중 1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힘을 겨냥해 “내란범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직도 반성 없이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내란을 옹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란 종식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및 인용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도록 위협하면서 자금줄을 끊는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건희 특검팀은 같은 날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엔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의 수사 상황에 따라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승부수로 제시했다가 좌초된 5대 개혁안에 담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 문제도 새 당 대표의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친윤(친 윤석열)계는 5대 개혁안을 좌초시키면서 친윤계 일원인 송언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등 여전한 힘을 드러냈다. 5대 개혁안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안건이었다. 신임 당 대표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숙제는 내년 6월 진행될 지방선거다.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벌써 낮게 진단되고 있다. 실제로 패배하면, 다음 달 선출되는 당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숙제와 뻔한 죽음이 예상되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은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정치인들로 이들 모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어려운 숙제를 잔뜩 안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대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대 다가오는데 또 같은 얼굴들 대표 유력 주자 약점 들춰보니… 하지만 후보 4명은 각자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새 지도부가 구성됐다고 해서 저 많은 과제가 술술 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서울희망포럼 강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 내가 싸우겠다”며 “국민이나 당이 위축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김 전 비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시도했던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김 전 장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인 국민의힘 김재원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지난달 13일 YTN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국정 전횡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당무감사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인지 회의적”이란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이 몰두하는 것은 ‘빅텐트’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비전은 ▲권력의 잘못에 맞설 수 있도록 107명이 제대로 뭉친 국민의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낙연 전 총리·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과의 빅텐트 및 연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당 체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김 전 장관의 ‘빅텐트’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빅텐트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지지 선언은 이끌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는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도 스스로 제안했다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태도를 바꿔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후보와 친윤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대선에서 41%를 득표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이 ‘비교적 선전’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상황에 비해 선전했다는 것일 뿐, 진짜로 선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빅텐트에 집착하고 있다. 빅텐트 정당은 다양한 세력을 묶고 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 당내 화합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을 탈당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단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다시 빅텐트 김문수 집착 심지어 김 전 장관이 대선후보 시절 구상했던 빅 텐트엔 전 목사 등 광장 세력도 포함됐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관악산에서 열심히 턱걸이를 해도 고령에 따른 판단력 문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전 장관이 윤석열정부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연이어 발탁됐던 이유로는 “고령의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예우”란 평가가 계속 나왔다. 이 평가엔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발탁했다”는 의미가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는 등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선택은 일부 돋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적 선택도 정확한 판단력과 맞물려야 그 빛을 발한다. 대권·당권주자가 없단 약점이 있는 친윤계가 그나마 지향점이 비슷한 김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도를 공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면 당 체질은 필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빅텐트에 집착하는 옛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여당과 제대로 맞설 제1야당 대표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선 “어려운 상황에서 정면 승부하는 결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한 전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규정한 ‘이조 심판론’이란 구호를 내걸었다가 ‘108석 당선’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로 제시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정치 인생에서 제일 빛났던 순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를 막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친한계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후 민주당과 협조해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원로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극찬했다. 조 대표는 지난 2월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당 대표가 계엄을 좌절시키긴 어렵다”며 “보통 이런 걸 ‘별의 순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합의해 지난해 12월7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1차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이어 다음날엔 한 전 총리와 함께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당정 협의를 강화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전 총리 탄핵 심판 결정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각계각층에선 한 전 대표를 일컬어 “권력 찬탈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격렬하게 비판했다. 한동훈 급부상 당시 한 전 대표는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소추 표결 불참 ▲탄핵 찬성 등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반발과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대선 유세에 참여했고, 친한계를 움직여 대선후보 강제 교체 반대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친윤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전하고,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등 ‘결기 부족’이란 일각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김민석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농성이 되고 말았다. 나 의원은 냉방이 잘 되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김밥과 유명 메이커 커피를 곁들이고 탁상용 선풍기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을 알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촬영해 스스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나 의원 자신이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핑이나 바캉스 같다”고 비웃었다. 지난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 농성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도 지난 1일 MBC <뉴스외전>에서 “로텐더홀에서 출판기념회 하듯이 농성한다”고 비판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피서 농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주말엔 로텐더홀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달 30일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작 농성의 대상인 김 총리는 같은 날 나 의원을 방문해 “식사는 했느냐”면서 “단식은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김 총리의 기세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대선 경선 그대로 옮겨지나 수많은 난제…독이 든 성배? 그러자 나 의원은 다음날 농성을 해제했다. 나 의원이 6일 동안 진행한 농성은 나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진행될 대정부 투쟁의 회의적 가능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당 대표 당선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지 의문이 커진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오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후 겨우 8분 만에 사퇴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국민의힘은 악성 종양이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라면서 “메스를 들어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 의원은 송 비대위원장에게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와 관련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도·수도권·청년 중심으로 혁신위를 구성하려던 안 의원의 구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 혁신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 내정 이전부터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따라서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친윤계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일찌감치 “친윤계가 이전처럼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왜 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돌아다녔다. 안 의원은 “‘쌍권(권영세·권성동)’ 숙청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따라서 “혁신하는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은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나 홀로 버티고 있다. 친윤계와의 연대설이 돌아다녔던 이유도 안 의원에게 세가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안 의원도 김 전 장관처럼 친윤계와 치명적으로 갈등한 이력이 생겼다. 김 전 장관과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실리는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메스를 들어 고름과 종기를 적출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남는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 계보를 거느린 한 전 대표도 친윤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조 의원과 장 당협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주요 후보 4명에 비하면 비중 있게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조 의원에 대해선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하고, 좌장인 조 의원이 대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수장과 좌장이 동시에 출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숙제 뻔한 결말? 여러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가능성이 더 큰 당 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출혈은 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쟁점 법안들을 연이어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는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자중지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내부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