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실태 충격보고<1>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존재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돈벌이를 위해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타인과 살을 맞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이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이들은 일체의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몇 년이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히키코모리’라는 이름으로 일본사회에 등장한 이들은 몇 년 뒤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들은 각종 범죄를 저지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맞기도 해 한 개인이나 가정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기엔 심각성이 크다. 우울한 한국의 한 단면을 차지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를 집중 분석했다.

유명인의 자살이 잇따르고 일반인들의 자살도 덩달아 늘어나면서 ‘자살 위험군’에 속한 이들에게 우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나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거나 알콜중독자나 약물중독자 등 심신이 쇠약해진 사람 등이 그들이다.
이들과 함께 가족이나 이웃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오랜 시간을 지냈다는 점에서 ‘혹시 저 사람도?’ 라는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낳고 있는 것.

일본의 ‘히키코모리’ 현해탄 넘어 한국에도

우울한 세태 속에서 더 큰 걱정거리로 떠오르는 은둔형 외톨이들. 이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학교나 직장 등 사람들과 부대끼는 장소에 참석하는 것은 극도로 자제한다.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경로는 인터넷이 전부다. 이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은둔형 외톨이라는 명칭까지 생겨난 배경에는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있다.

히키코모리는 일본 사회의 오래된 병폐현상으로 이들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것도 수십년이 지나고 있다. 일본 NHK 복지네트워크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내에 거주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수는 무려 1백60만명. 이들의 수는 대도시로 갈수록 많아져 도쿄의 경우 인구 1천2백80만명 중 히키코모리로 추정되는 청년층이 2만5천명으로 조사됐다.

일본사회에 히키코모리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 당시 입시에 시달리던 학생들이 무단결석을 일삼고 낮에는 집안에 있다가 밤이 되면 외출하는 현상이 생겼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두고 일부 불량청소년들의 단순한 등교거부 쯤으로 해석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학생들이 밤에 거리로 나와 행인을 폭행, 살인하는 등 점차 과격한 행동을 보였는데 비슷한 시기, 은둔하는 성인들도 나타나면서 히키코모리는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그러다 일본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할 무렵,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전선에서 낙방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아예 집안으로 잠적하면서 지금의 히키코모리들이 양산된 것.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히키코모리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특히 각종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은둔형 외톨이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방에 틀어박혀 가족들과 식사조차도 하지 않는 이들의 실생활을 방영해 은둔형 외톨이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환기시켰다.

그렇다면 어떤 원인들이 은둔형 외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 전문가들은 핵가족화와 이혼율 증가로 인한 가족의 해체,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단절된 가족이나 친구 간의 대화, 그리고 경제난으로 인한 불안감, 취업난, 실직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은둔형 외톨이의 수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또 치열한 입시경쟁과 학교 폭력 등도 원인 중의 하나. 내성적인 성격이나 대인기피증, 사회공포증, 우울증 등의 개인적인 문제도 원인이 된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에 발을 들이지 않은 10대 청소년 가운데 은둔형 외톨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것. 지난 2005년 청소년위원회가 조사해 발표한 결과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상대하며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등 사회 부적응 현상을 보일 위험이 높은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 고교생 수가 4만3천여 명에 달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청소년기에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한 이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의욕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인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또 은둔형 외톨이들이 늘면서 이들의 강력범죄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자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해 ‘묻지마 살인’등의 범행을 저지르는 사건도 종종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범죄가 열도를 발칵 뒤집은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그 중 하나는 지난 3월23일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 쓰치우라시역 대로에서 발생한 사건. 히키코모리 증상을 보이던 가나가와(24·무직)씨가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러 1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가나가와는 범행을 저지른 뒤 경찰에 스스로 전화를 걸어 “나 잡아봐라”라고 말한 뒤 이틀 뒤 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찰에서 “7~8명을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해졌다. 문제는 그가 별다른 죄책감이 없었다는 것.

또 경찰조사결과 4일 전인 3월19일에도 동네에 사는 70대 노인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에 대해 “처음엔 동생을 죽이려 했지만 집에 없어 그만뒀다. 누군가를 죽이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갔지만 때마침 졸업식이 진행되고 있어 포기했고, 학교에서 나와 길을 걷다 누군가 보여 살해했다”고 증언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쌓인 분노 타인에게 표출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조사 결과 가나가와는 계속된 취업실패로 방안에서 틀어박혀 지내던 전형적인 히키코모리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로 폭력적인 인터넷게임을 하며 수년간 바깥세상과 담을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히키코모리들의 강력범죄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은둔형 외톨이의 특성을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살인을 저지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주인공은 40세의 임모씨.

내성적인 성격의 임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줄곧 방안에 틀어박혀 살다시피 했다. 특별한 직업도 없었고, 결혼도 하지 않아 노부모와 함께 살던 임씨가 가졌던 유일한 취미는 인터넷. 그는 하루종일 방안에서 지내며 인터넷서핑을 하고 만화 등을 다운받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식사도 혼자 방안에서 하며 방에서 발을 떼지 않았던 임씨는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의 습성을 띄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5년 전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 임모(88)씨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출판업체에 아들을 나오게 했다.

거의 처음으로 해보다시피 한 사회생활에서 임씨는 그리 잘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업무상 자신과 함께 할 일이 많았던 영업부장 권모(58)씨와 종종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임씨는 함께 일하던 직원들의 신발을 감추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결국 2개월여를 일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또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임씨가 집밖으로 나온 것은 지난 3월. 임씨는 신문지로 싼 흉기를 주머니에 넣은 채 한때 일했던 아버지의 회사로 갔다.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던 권씨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권씨를 발견한 임씨는 이날 오후 12시30분 경 권씨의 목을 수차례 찔러 살해한 뒤 도주했다.

이같은 살인사건의 신고를 받은 성북경찰서는 임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임씨의 행방을 쫓았다. 범행현장에 그가 가지고 다니던 신문지로 만든 칼집이 떨어져 있었고 그가 드나들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권씨를) 죽이고 싶다”는 글이 남겨진 점 등에 착안한 것.

그러나 경찰이 임씨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유는 임씨가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던 탓. 임씨는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았고 은행거래도 하지 않아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그런 임씨의 행적을 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친구나 직장동료 등 지인들도 없어 그의 동선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성북경찰서는 임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를 내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임씨의 방안에서 유서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성북경찰서는 임씨가 쓴 “산에 가서 죽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본 뒤 자살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집 근처 야산을 수색했다. 그리고 임씨는 며칠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성북구 돈암동 북악산 등산로 아래에서 임씨가 나무에 목을 매고 숨져 있는 것을 등산객이 보고 신고한 것. 임씨가 입은 옷에는 범행에 사용됐던 흉기가 나왔고 권씨를 살해한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이 임씨의 것과 동일해 임씨의 범행임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끝내 자살로 마감하기도…응어리 풀 장치 마련해야

그런가 하면 지난 8월에는 5년 동안 홀로 방안에 지내던 20대가 지나가던 행인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전문대를 다니다 피해망상성 정신분열증으로 학교를 그만둔 김모(25)씨가 범죄자가 된 것은 8월15일 오후 4시경이었다. 김씨는 서울 홍제동 모 초등학교 정문 앞을 지나던 오모(41)씨를 흉기로 한 차례 찔렀고 오씨는 오른쪽 목 부위 출혈이 심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대낮에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김씨가 경찰에서 말한 범행 동기는 단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라는 것.

범행을 저지르기 전 김씨는 무려 5년여 동안 방안에서만 지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애인이나 친구를 사귀지 않는 등 대인관계가 없었고 휴대전화도 없었고 인터넷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김씨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것을 택했다. 김씨는 가방에 흉기를 넣고 다니며 범행대상을 물색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오랜 은둔형 외톨이 생활 끝에 목숨을 끊는 사건도 종종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취업에 번번히 실패하고 7년여 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20대 여성이 목숨을 끊었다. 이 여성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인터넷 등으로 시간을 보냈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 가족들이 없는 틈을 타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일부 은둔형 외톨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행각을 벌이기도 해 심각한 사회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정신의학 전문가는 “모든 은둔형 외톨이들이 잠재적인 범죄자라거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의사소통도, 스트레스나 분노를 표출할 통로도 마땅치 않은 은둔형 외톨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에 비해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라며 “이들을 당장 사회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힘들다면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분노를 터트릴 수 있는 장치라도 마련해 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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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고 흔드는’ 민주당 꽃놀이패

‘쥐고 흔드는’ 민주당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1일 이재명정부의 첫 정기 국회가 열리면서 100일 대장정이 시작됐다. 늘 그렇듯 각종 입법과 개혁, 예산안 등을 두고 여야가 거세게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회 첫날부터 기싸움이 만연한 가운데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고삐를 틀어쥐면서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9월에 접어듦과 동시에 빽빽한 일정이 여야를 기다리고 있다. 9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오는 10일, 국민의힘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되고, 15~18일 나흘 동안 정부를 상대로 ▲정치▲외교 ▲통일·안보 ▲사회 ▲교육 ▲경제 등 대정부질문이 예정됐다. 벌써부터 국정감사 제보센터를 개설하는 의원실도 눈에 띄었다. 사면초가 국민의힘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생과 성장, 개혁 안전 등 4대 핵심 과제를 골자로 한 224개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개혁, 금융위원회 등 정부조직법 개정을 포함해 언론개혁, 대법원 개혁 등 공약으로 내걸었던 법안도 지체 없이 빠르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계획을 ‘입법 폭주’라고 비판하며 ‘경제·민생·신뢰 바로 세우기’를 기조로 하는 100대 입법 과제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미래 첨단산업 육성을 비롯한 경제 활성화 및 민생경제 회복, 청년 희망 및 취약계층 돌봄 등을 통해 국민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번 정기국회는 인사청문회와 대정부질문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인사청문회서 국민의힘은 최교진·주병기 후보를 정조준하면서 이정부의 ‘인사 실패’ 프레임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먼저 국민의힘은 최 후보의 과거 음주 운전 전력과 천안함 폭침 관련 음모론을 제기한 것을 문제 삼았다. 당내 교육위원회 간사인 조정훈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최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음주 운전, 학생 체벌, 막말, 천안함 음모론 제기, 부산·대구 폄하 발언, 입시 비리 조국 사태 옹호 등 셀 수 없는 범죄와 논란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며 “그 사과가 진심이라면 자진 사퇴하라. 이재명정부는 후보를 즉각 지명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주 후보에 대해선 세금 ‘상습 체납’ 이력 등을 파고들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에 따르면 주 후보와 배우자가 공동 소유한 아파트에는 압류 등기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주 후보는 종합소득세 납부기한도 여러 차례 어겼으며 2023년(406만원)과 2024년(183만원) 종합소득세도 올해 6월에야 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민주당은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요구서에 대한 국회 표결을 벼르고 있다. 앞서 지난 1일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만큼 국회의장은 요구서가 접수된 후 다음 본회의인 오는 9일에 국회 보고를 거쳐 72시간 이내에 표결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다만 국민의힘 교섭단체 연설일인 10일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이날을 제외한 11일 또는 12일 처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정부 첫 정기국회 100일 대장정 권성동 체포동의안 변수도 ‘주목’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돼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주도하에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권 의원은 혐의를 부인하며 체포동의안 처리와는 관계없이 구속 적부심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민주당은 야당 교섭단체 대표연설 일정에 저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집어넣으려 한다”며 “이는 야당 대표 연설을 덮으려는, 국회를 정치 공작 무대로 삼으려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원식 국회의장은 민주당과 정치적 일정 거래에 저의 체포동의안을 이용하지 말라”고 밝혔다. 국회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던 만큼 결국 개원 첫날부터 여야가 격돌했다. 우 의장은 “차이보다 공통점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화합의 메시지”를 예로 들며 개회식에서 한복 착용을 권유했지만, 국민의힘은 “국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이재명정권의 독재정치에 맞서자는 심기일전의 취지”라며 검정 양복과 검정 넥타이, 근조 리본을 맨 상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정부와 여당에 항의하는 차원의 퍼포먼스라고 들었지만 정작 애도해야 할 대상은 국민의힘 자당”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 역시 “국민이 국회에 바라는 것은 희망과 미래지, 장례식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회 상임위에서도 크고 작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서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검찰개혁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표결하려 하자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석 앞으로 몰려가 항의했고, 초선인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가시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앉아 있어”라고 반말로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굽히지 않는 강대강 매치 이를 두고 범여권에서는 나 의원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고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초선 의원은 의정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5선 의원이 가만히 있으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냐. 초선 의원이 가마니인가”라고 직격했다. 정 대표는 “초선 의원이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 의원은 일단 예의를 모르는 것 같다”고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검찰개혁 관련 공청회에서도 설전이 오갔다.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담길 검찰개혁안의 핵심은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권 분리 및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신설인데, 국민의힘이 이를 두고 “검찰해체법을 통해 독재 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반발하면서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높다는 점을 들어 추석 전에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오는 25일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개혁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3대 특별검사(내란·김건희·순직해병)의 수사 인력과 기한을 확대하고 재판 중계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더 센 특검법(특검법 개정안)’도 민주당 주도로 상정됐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특검 수사 기간은 기존 한 차례 30일 연장에서 두 차례, 최대 60일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된다.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 재판의 녹화 방송 중계도 가능해진다. 재판 내용이 공개돼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교훈을 후손에 남겨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노란봉투법도 쟁점이다. 국민의힘이 ‘사용자’와 ‘노동쟁의 대상’ 범위를 제한하는 보완 입법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여야의 입법 주도권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형사처벌 규정 개선,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오는 12월까지인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대표는 소상공인연합회를 찾아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기업 달래기에 나서면서 경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저항해도 질질∼ 국민의힘은 매일같이 보이콧과 논평을 쏟아내지만 무용지물이다. 의석수로 민주당을 이길 수 없을 뿐더러, 특검의 대대적 압수수색 등 당 내부도 시끄러운 만큼 민주당이 휘두르는 대로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겨냥해 ‘야당 탄압’ ‘야당 말살’ 프레임 씌우기에 나섰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정치 특검이 연이틀 국민의힘 심장부에 쳐들어왔다”며 “법사위에서는 특검 기간을 연장하고, 특별재판부도 설치하고, 재판까지 검열하겠다는 무도한 법들이 통과될 예정”이라고 소리 높였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민주당을 향해 “요즘 정부여당을 보면 폭주 기관차를 떠올리게 된다”며 “역사적 전례를 보면 폭주 기관차는 반드시 궤도를 이탈해 전복된다”고 꼬집었다. 특검이 국민의힘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민주당이 내란특별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지금처럼 과도한 행태를 계속 보이면 국민의 냉엄한 견제가 시작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오 시장은 “지금 국민의힘은 정권을 잃어버리고 이제 겨우 전열을 재정비하는 중”이라며 “그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과도한 정치 공세로 야당을 뒤흔드는 폭주 기관차의 모습에서 저는 정말 전복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송언석 원내대표도 “(이번 특검은) 이재명정부의 앞잡이를 자처하고 있는 조은석 정치특검”이라며 “국회의 권위와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이재명정권과 특검의 야당 탄압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풍 기우제” 오히려 똘똘 뭉쳤다 윤석열·김건희 지지율 올리는 주역 오히려 민주당은 단일대오로 뭉치면서 “역풍 기우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야당이던 당시 개혁을 앞세워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려고 하면 역풍 타령이 이어졌다”며 “이는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 지금이 개혁 적기다. 순풍이 부는데 이를 자꾸 역풍이라 하는 건 민주당이 돛을 펼치는 걸 막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당원 전체의 목소리로 인식돼 당분간은 이들이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치 효능감을 느낀 강성 지지층이 당 분위기는 물론 방향까지 주도하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민주당 의원들의 강경한 태도가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날이 갈수록 민주당 의원들의 혀가 독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강성 지지층에게 있어 지금은 ‘이재명과 개혁의 시간’이다. 아직 국민의힘이 ‘내란 동조범’이라는 꼬리를 떼지 못한 만큼 여야 협치에서 국민의힘은 논외 대상으로 여겨진다. 범여권 의석수를 합하면 180석이 넘는 만큼 입법 과정에서도 국민의힘 눈치를 보거나 숙일 필요가 없다. 정부여당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더라도 다시 솟아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수사에 비협조적일수록 민주당을 향한 여론이 다시 우호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노리는 것이다. 그 예시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의 구치소 CCTV 사건이다. 윤 전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속옷만 입고 있었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관심이 다시 전 정권으로 쏠렸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은 자신의 SNS에 “체포영장을 모면하려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교도관들을 상대로 온갖 술수와 겁박을 늘어놓는 궁색하고 옹졸한 모습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한때 대통령이셨던 분 아닌가, 옷을 입어달라”는 말에 “나 검사 27년 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이거 따르면 앞길이 구만리인 여러분 어떻게 할 거냐” 등 극구 반발했다. 추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은) 내란의 밤에 불법 명령을 내리고, 사령관들에게 따르라고 거듭 재촉해 군 간부들의 신세를 망쳐 놨다”며 “재판 거부와 수사 방해, 회피로 책임지기를 거부하면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갈수록 첩첩산중 여기에 국정감사까지 줄지어 있어 민주당의 강경한 태도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해석이다. 국정감사는 흔히 야당의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정기국회가 시작된 만큼 국민의힘은 갈 길이 멀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터지니 빠르게 수습해도 세월이 걸릴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어 “걱정인 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수사가 끝나고 상황이 일단락돼도 속은 여전히 곪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올 텐데 여기에 대응할 현실적인 방법이 아직은 없어 보인다. 언제까지나 민주당의 실책에 기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또 다른 솟아날 구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띄우기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오는 22일부터 지급되는 정부의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언급하며 “지난번 1차 소비쿠폰이 마중물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물이 콸콸 나오는, 경제계에 활기가 넘치도록 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것만으로 재계엔 긍정의 시그널을 줬다”며 “주가도 3200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시총이 700조원 늘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역시 “이정부 출범 이후 실행한 민생소비쿠폰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2일부터 발급되는 2차 소비쿠폰은 내수와 소비 회복을 더욱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여당 의원들의 평가로 미뤄볼 때, 민주당은 정기 국회에 돌입하면서 정쟁으로 치우친 국회를 벗어나 민생과 경제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한번 지지율 견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