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더민주 새리더 추미애

뚝심 있는 여장부 추다르크가 떴다!

[일요시사 안재필 기자 = ‘추다르크’ 추미애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됐다. 야당 최초의 영남출신 대표로 지역주의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은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으로 지역감정에 맞서 영남에서 야당 지지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얻어졌다. 뚝심 있는 여장부 추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본다.

지난달 27일, 전당대회를 맞이한 야당에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여당 텃밭의 영남 출신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지난날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노동조합법 개정 논란이 약점으로 작용했지만 추 대표는 이에 맞서 여장부의 이미지를 더 굳건하게 했다.

세탁소집 둘째 딸
소신 있는 판사로

추 대표는 대구 달성군 출신으로 1958년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후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법대에 전액 장학금과 4년 기숙사 사용을 보장받으며 입학했다. 지난 1982년엔 제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5년까지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를 지냈다. 같은 대학 출신의 서성환 변호사와 결혼해 법조인 부부로 유명세를 탔다.

지난 1986년 춘천지방법원서 근무하던 초년 판사 시절엔 군사정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념서적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소신대로 판결해 ‘껄끄러운 판사’ ‘운동권 판사’로 불렸다.

추 대표가 약 10년간 입던 법복을 벗고 정계로 진출한 것은 지난 1995년 새정치국민회 창당을 준비하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출마에 대비해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내세울 인재를 영입 중이었다.


추 대표가 정계 입문을 수락하자 김 전 대통령은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 대표는 그렇게 야당의 여성 부대변인 1호로 정치에 입문해 이듬해인 지난 1996년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서 서울 광진구 을 새정치국민회 후보로 출마한다.

선거를 앞두고 여자는 이기기 힘들다며 외면 받은 일화도 있었다. 추 대표는 돈 안쓰는 선거를 선언하고 오직 진심 하나로 당원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떠났던 당원들은 그녀의 노력에 마음을 열고 돌아왔다. 노력을 증명하듯 선거에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 추 대표는 서울 지역구 소선거구 최초의 여성국회의원이 됐다.

지역주의 타파할 영남출신 첫 야당 대표
“우선은 정권교체” 당내 계파 청산 숙제

그녀는 자신을 ‘세탁소집 둘째 딸’로 소개하며 “구멍가게 둘째 딸로 태어난 영국의 대처 수상이 영국병을 고쳤듯이 세탁소집 둘째 딸이 한국의 썩은 정치를 세탁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추 대표는 유세단장을 맡았다. 지역주의가 극심했던 당시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이면서 야당인 김 전 대통령의 유세를 했기 때문에 대구 사람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녀의 별명 ‘추다르크’는 이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다.

추 대표는 지난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국민참여운동본부’의 공동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녀는 노 대통령의 행보에 앞장서며 노 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보여줬다.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희망돼지저금통 사업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도 얻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후보 교체를 위한 후보단일화 압박이 있을 때도 추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김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별검사를 수용하는 일이 일어났다. 추 대표와 노 전 대통령이 갈라서는 것은 이 시기부터다. 특검 수용 이후 친노(친 노무현) 의원들은 새천년민주당서 분당, 열린우리당을 만든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추 대표는 분당 사태에도 새천년민주당에 남아야 한다며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의 분당에도 반대 입장을 보였다.

DJ 따라 정계 입문
노 정권 때 부침

2004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표였던 조순형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총선 개입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을 추진했을 때, 추 대표는 ‘이성계의 3불가론’으로 탄핵에 맞섰다. 그녀의 3불가론은 첫째 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고, 둘째 탄핵 찬성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어 현혹되면 안되며, 셋째 그래도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 참패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탄핵을 반대하는 추 대표의 행동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당내 비난을 샀다. 그러나 비난을 감수하며 탄핵에 맞선 그녀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손을 들게 된다.

당시 추 대표는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안된다. 숯댕이가 검댕이를 나무랄 수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를 드리겠다”며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

그러나 탄핵은 부결됐고, 역풍이 되어 새천년민주당에게 돌아갔다. 추 대표도 탄핵 유탄을 맞았다. 탄핵 찬성이라는 굴레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추 대표는 삼보일배를 통해 여론을 돌리려 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서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이에 반해 열린우리당은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서 9석을 얻는 데 그쳐 원내교섭단체서 제외된다.

이후 지난 2007년 추 대표는 제 17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정동영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다. 2008년엔 제 18대 총선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 광진구 을에 재도전 해 51%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된다. 또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다.

당선 이후 삼성그룹 특검 시 삼성그룹 내부 문건에 로비를 받지 않는 정치인으로 분류돼 있다는 말도 돌았다. 그 말을 검증이라도 하듯 추 대표는 삼성그룹 특검서 로비가 있었다는 진술을 한다. 재선을 앞둔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한 뒤 사무실에 오니 비서가 삼성에서 골프가방을 주고 갔다는 말을 했다. 그 안에는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현금이 있었는데 추 대표는 골프가방을 받지 않고 삼성에 돌려줬다.

이후 지난 2010년 추 대표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생긴 ‘노조법’ 분쟁이 원인이 돼 다시 한번 굴곡을 겪는다. 노조법의 복수노조금지 및 노조전임자급여지급 규정에 대한 개정과 관련돼 비판을 얻었다. 개정과 관련해 여야의 대립이 계속되자 추 대표는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그녀의 개정안에 야당은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한 노동개악이라며 반발했다. 당 내부에선 추 대표에 대한 징계도 논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는 여당 의원들과 함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추 대표는 2개월 당원 자격 정지 징계를 받고 당내 입자도 줄어들었다. 그녀는 수정안을 통과시키며 야당의 출입을 막아 날치기 통과의 오명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각에선 추 대표의 이 결정이 당원이 아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입장서 어쩔 수 없었다는 옹호론도 돌았다. 아무런 준비가 안된 상태서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전임자급여지급이 금지되게 되면 사회적 혼란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는 의견이다. 그들은 추 대표가 반대표를 던진 점을 근거로 삼았다.

이후 추 대표는 2012년 19대 총선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5%의 득표율로 당선된다. 같은 해 있었던 제 18대 대선서 후보로 출마한 문재인 의원 선거 캠프의 ‘국민통합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 전당대회서 당 대표로 선출된 문 의원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되게 된다.

탄탄한 인지도
5선 여성 의원

당시 새정치는 비노(비 노무현)가 끊임없이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해 비노와 친노의 대립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현 국민의당)은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최고위원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후로 비노계의 탈당 행렬이 이어졌으나 추 대표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했던 모습과 함께 자신이 속한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 덕분인지 올해 있던 20대 총선서도 48%라는 득표율을 얻어 5선 여성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고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아 지진부진 했던 17대를 제외하고 도전한 모든 총선서 당선돼 탄탄한 인지도를 증명한 셈이다.
 

총선 이후 추 대표는 지난 7월28일,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치활동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던 두 개의 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추 대표는 지난달 12일 CBS라디오 <심현정의 뉴스쇼>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상곤 후보가 지난 2004년 고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것을 문제 삼자 “진심으로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아무리 사과한다 해도 어디 그게 갚아지겠나? 그 당시 삼보일배로 사죄도 국민께 드렸다”며 “정치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사과했다.

노무현 탄핵·노조법 날치기 통과
치명적인 2개 약점 어떻게 극복?

이어 “그 후로 제가 정치와 절연한 채 멀리 떠나 있을 때 대통령님이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장관직을 제의하셨다”며 삼보일배를 한 것에 대해서도 “'무릎 아프지 않냐 괜찮냐. 언제 돌아올 거냐'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탄핵이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지지 않고 친분을 계속 유지한 것을 부각한 것이다.

이후 2009년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직권상정으로 통과시켜 ‘2개월 당원 정지’ 징계를 받았던 사실이 문제로 거론되자 “다자 협의체에서 논의한 것”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이렇게 추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약점 두 가지를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전당대회서 당 대표 투표 결과가 나왔다. 과반수가 넘는 추 대표의 압도적인 승리로 투표는 마무리됐다. 총 득표율은 54%라는 과반수 확보로 압도적인 결과를 보였고, 현장 대의원 투표는 51% 권리 당원 투표는 61%를 받았다. 당원 여론조사와 국민 여론조사에선 각각 51%와 61%의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김상곤 후보는 22.08%, 이종걸 후보는 23.89%를 얻는 데 그쳤다.

추 대표가 더민주 당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여야 양쪽서 이례적인 일이 일어난 모양새가 됐다. 신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야당 텃밭인 호남출신으로 여당의 대표가 됐고, 추 대표는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으로 야당의 대표가 돼 지역갈등이 무색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주의가 무너졌다는 환호도 나온다.

추 대표는 당 대표 선출 이후 수락연설과 기자회견서 대선주자 이름을 부르며 “모두 함께 공정하고 깨끗한 경선, 정당사에 길이 남을 역동적인 경선을 함께 만들자”며 제안했다. 문재인 대세론에 관해선 “누가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줄지 민생 처방을 들고 나와 설득할 때 정권교체 가능성이 생긴다”고 언급했다. 이어 “주류와 비주류, 친문과 비문이라는 말이 안 나오도록 하겠다”며 당 대표로서의 각오를 다짐했다.

추 대표는 강한 야당을 기조로 행보에 나섰다. 그녀는 지난달 29일, 서울 현충원에 방문해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 뿐 아니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까지 참배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3년 연속으로 불참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과 이명박·박근혜정부 8년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제주 4·3 추념식에 참여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취임 직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반대 당론화를 거론, 시작부터 여당과 충돌이 예상돼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취임 이틀째인 지난달 30일, 추 대표가 개인소신보다 전체 의원들의 중론을 따르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강한 야당 강조
시작부터 충돌

지난달 31일 예정됐던 전문가 좌담회도 오는 5일로 연기됐다. 일각에선 그간 더민주가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 기조를 뒤집을 명분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이 같은 행보를 보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드 반대 당론을 밀어봤자 득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anjapil@ilyosisa.co.kr>

 

[추미애 대표는?]

▲1958년 대구 출생 ▲경북여고 ▲한양대 법대 ▲인천·전주지법·광주고법 판사 ▲15·16·18·19·20대 국회의원 ▲제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노무현대통령 당선자 특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

 

<기사 속 기사> 추미애 남편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남편 서성환 변호사와 7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대학 동기동창이던 두 사람의 인연은 서 변호사의 편지로 변화를 맞이한다. 서 변호사는 추 대표보다 3살 많지만 서 변호사가 3년 늦게 학교에 입학을 해 법대 동기생으로 함께 학교를 다녔다.

연인관계가 된 후 추 대표는 대학을 나서 집까지 걸어가며 공중전화가 나타날 때마다 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연애에 집중하다 보니 사법시험서 낙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서 변호사는 사고를 당해 아직까지도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게 됐다.

서 변호사는 호남 출신으로 당시 영남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추 대표의 부모님은 서 변호사의 장애와 출신을 보고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서 변호사의 진솔한 모습에 결국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호남 출신의 남편을 둬 추 대표는 자신을 ‘호남의 며느리’라고 칭하기도 한다. <필>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