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실태 충격보고④전문가의 진단과 사회적 처방

자신을 고립시키고 사회와 동떨어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을 외톨이라고 한다. 최근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에서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운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역시 ‘은둔형 외톨이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 가운데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할 20·30대가 많다는 사실이다.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대해 진단해보고 전문가들의 처방과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알아보았다.

“삶의 동기와 잠재력을 이끌어 내라”

최근 개봉한 영화 ‘외톨이’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를 소재로 한 국내 첫 공포스릴러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히키코모리란 ‘(어떤 장소에) 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로, 주로 어려워진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산이나 시골로 은둔하는 정치인들에게 자주 쓰이던 말이었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급증하기 시작한 히키코모리족은 현재 1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억2천만 일본 인구의 1%에 달하는 엄청난 수다. 히키코모리 가운데 30%가 30세 이상이며 10명 중 7명이 남성이라고 한다. 이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사회문제화 되고 있어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퇴치’ 운동마저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은둔형 외톨이’의 수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일본에 비해 이들의 수가 적기도 하지만 최근 급증하고 있어 이들에 관한 연구나 대책이 초기 단계 수준이다.
지난 2002년 8월28일 국내 정신과 전문의들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제12차 세계정신의학회에서 한국형 ‘은둔형 외톨이’의 출현을 공식 보고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소장 이시형)와 강북삼성병원, 서울 동남정신과의원(원장 여인중)이 2000년 1월부터 2002년 5월까지 동남클리닉을 방문한 외래환자 총 2천4백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중 31명이 친구가 한 명도 없고, 가족간의 대화가 없으며, 혼자 식사하는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은둔형 외톨이는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병원을 찾는 환자 중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유형’이라며 ‘국내에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조사는 처음이다’라고 설명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 가운데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할 20~30대가 많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자신만의 작은 세계에 갇혀 살아가게 됐을까?

밤낮 바꾼 채 몇년 동안 TV-컴퓨터로만 생활 방에서 두문불출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시선…전문의와 상의· 대화 많이 나눠라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10대들은 집단 따돌림과 가정불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20~30대들은 사랑과 이별을 통해 겪은 아픔, 취업실패 등의 이유가 많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인터넷 중독자들도 쉽게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
국내 연구팀이 밝힌 은둔형 외톨이의 특징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씩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지만 5-10년 넘게 이 생활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대개 학교나 직장도 없다. 일체의 사회활동을 거부하기 때문에 친구가 없고 가족 사이의 대화가 단절돼 있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인터넷과 TV에 몰두해 보내고 낮,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으며, 대인공포증, 우울증, 성격장애, 강박증 등의 등 건강 문제를 수반하고 있어 해결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들의 정신적 질환이 점점 심화될수록 자살과 살인이라는 상황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크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연구팀에 참여한 정신과 전문의 여인중 박사는 “은둔형 외톨이를 병자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냐는 경계가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며 “방에 박혀 두문불출한다고 해서 이를 병자로 보기는 힘들다”고 신중론을 폈다. 여 박사는 “문제는 은둔형 외톨이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지 않는 것”이라며 “풍부한 사례 분석이 이뤄져야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확한 병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운둔형 외톨이 치료 방안과 대응책
그렇다면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과 은둔형 외톨이들을 다시 사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떠한 대응책이 있는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대안1 에너지 발산할 통로와 따뜻한 관심 필요
은둔형 외톨이가 범죄성향 또는 공격성향이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만나보면 은둔형 외톨이들은 반사회적 성향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발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톨이가 된다는 지적이다.
미디어전문가 박준표씨(연세대 청년문화원)는 “자신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는 통로나 채널, 한국적 안전망이 너무 없는 상태에서 이른바 ‘외톨이’를 문제로 보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이라며 “결국 ‘외톨이’를 잠재적 문제로 보는 사회적 시선, 누구도 그들의 에너지를 생산적 기획으로 연결시켜 보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역설했다.
또 이미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이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내면에는 애정과 관심에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성격이 그래서’ 혹은 ‘저러다가 말겠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방치해 두면 안된다. 정신과적 문제가 주된 원인이 된다면 전문의를 찾아 치료적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사회 환경적 부적응에 주된 원인이라면 부모, 선생님, 상담사 등이 함께 나서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진로 관련 상담 청소년종합상담센터에서도 심리검사나 적성검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검사 결과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도 있지만 청소년의 진로 분야에 특화된 상담기관을 찾는 것도 좋다.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운영해 직접 상담을 받으려면 일정한 비용을 내야 하지만 온라인 상담은 대개가 무료로 이뤄진다. 1990년 생긴 YMCA 청소년진로진학상담실에서는 다양한 진로탐색 프로그램과 함께 게시판과 전자우편, 채팅 등을 활용한 사이버 상담이 활성화 돼 있다. 안창규 한국진로교육학회 부회장이 소장을 맡고 있는 한국진로상담연구소도 면접 상담은 유료이지만 게시판을 통한 사이버 상담은 무료로 진행한다.

대안 2 가정방문 통해 ‘1대1’ 상담 치료
대부분의 심한 은둔형 외톨이들은 바깥출입을 전혀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 방문을 통한 1:1 상담이 우선된다. 병원에 의뢰를 하면 상담자가 가정집을 방문하는 것인데, 주로 사회복지나 청소년학을 전공한 자원봉사 대학생들이 ‘외톨이’ 아이들과 결연을 맺고 대화와 활동을 함께 유도하는 멘토(Mentorㆍ조력자) 프로그램이 활용되고 있다.
멘토링을 이끌고 있는 신은정 사회복지 치료사는 “처음에는 꼼짝 않고 방안에만 있다가 서너 달 지나면 영화 구경을 가는 등의 외출도 한다”고 말한다. 신씨는 “이들은 자폐아처럼 정신지체 증세는 없으나 혼자 방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며 “부모에 의해 병원을 찾긴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아도 분명 프로그램 참여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각자 정신적인 충격 원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혼자 있으려고 하는 성향을 보이면 다그치거나 혹은 내버려두지 말고 빨리 신경정신과를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만을 집중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별로 없는 듯하다. 게다가 1:1 프로그램을 신청할 경우 비용도 만만치 않아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동남병원의 여인중 박사는 “‘외톨이’는 질병이 아니나 그냥 놔두면 신경정신과적 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므로 신경정신과에 심리 치료를 의뢰하거나 각 공공기관의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를 통해 꾸준히 상담을 받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대안 3 한부모 ‘부자가족 지원’ 강화
한부모가족은 배우자 없이 가족생활을 책임져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자녀교육, 주택, 사회적 편견 및 차별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례로 중학교 2학년인 김모군(15)은 은둔형 외톨이로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 부자가정에서 자란 김군은 아버지와 함께 있을 시간이 적고 대인관계의 폭도 줄어들어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한국한부모가족연구소 황은숙 소장은 “남성 한부모의 경우 직장생활로 늦게 귀가하기 때문에 자녀를 돌볼 시간이 부족해 자녀가 혼자 집에 있는 동안 게임에 중독되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 있다”며 “한부모가정지도사와 같은 전문인력을 가정으로 파견하여 한부모가족의 자녀를 지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모자가정에 비해 자녀양육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자가족의 비율은 한부모가구의 21%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매년 증가폭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남성 한부모에 대해 돌봄 능력을 강화시키는 부모역할교육 및 훈련기회를 제공하고,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남성한부모 멘토링 사업과 서로 유사한 한부모가정을 연계해 남성 한부모가족의 자조능력을 배양하는 프로그램 개발 중이다.

대안4 지역사회와 정부의 지원 필요
운둔형 외톨이 치료를 위해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국청소년상담원 같은 정부와 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으로 심리검사와 상담 전문가를 통한 운둔형 외톨이의 위험성 인식, 자기통제감과 사회적 문제해결 능력 향상, 진로탐색 등이 이루어지며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이 참여하는 낙관주의 교육과 분노조절 훈련프로그램, 레크레이션 전문가와 함께하는 대안활동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안활동에는 공동체놀이, 승마, 도예, 셀프 다큐멘터리, 야영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를 통해 단계적으로 감정순화, 안정감, 긍정적 사고 기르기, 의욕과 활력 배양을 목표로 한 수련을 하게 된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차정섭 원장은 “이들은 흔히 왕따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외톨이로 남게 된다”며 “입시위주의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아예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차 원장은 “최근 들어서 인터넷 가상공간에 몰입하면서 은둔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문제 예방과 올바른 인터넷 사용방법 정립을 위해 인터넷중독 치료학교와 같은 프로그램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사회적응을 위한 은둔형 외톨이의 직업교육을 사설기관의 교육에만 떠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정부와 시민단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본의 카나가와현에서는 이를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카나가와현의 NPO와 대학, 지역시민단체가 연계하여 사회 적응도를 높이는 직업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강원재 부센터장은 “공교육 안에서 그 동기를 못 찾았을 때 강요나 질책이 아니라 내재된 동기를 찾아주는 것, 삶의 멘토로서 동기와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순한 직업교육을 벗어나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한 지역의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습득과 함께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감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며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위기의 아이들 찾아가는 청소년 동반자
보건복지가족부 청소년동반자 사업 전국 확대
보건복지가족부는 가정해체, 학교부적응 등으로 인한 위기청소년에게 상담, 정서적지지, 기관연계, 사례관리 등을 제공하는 청소년동반자(Youth Companion)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소년동반자는 일정수준의 자격을 갖춘 전문상담인력이 위기청소년의 삶의 현장(가정, 학교 등)에 직접 찾아가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사업으로써, 2007년 청소년동반자 사업 추진결과 청소년들의 만족도와 프로그램 권유도에서 98점을 기록해 높은 성과를 나타내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는 2007년 14개 시도(37개 시군구)에서 추진하던 본 사업을 올해는 16개시도(64개 시군구)로 확대하고 청소년동반자 수도 4백70명까지 확충할 예정이다.
또한, 그간의 운영성과와 지역사회의 높은 수요를 반영하여 서비스지역과 청소년동반자 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위기청소년 사회안전망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2012년까지 청소년동반자를 6백명 수준까지 확대하고 134개 시군구까지 서비스를 제공하여 위기청소년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할 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부터 청소년 동반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화(40)씨는 “위기 청소년이 겪는 문제는 대단히 복잡한 경우가 있어서 상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다”고 했다. 상담지원뿐만 아니라 숙식, 교육, 의료, 법률, 여가, 직업훈련 등 생활지원까지 이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씨는 “위기 청소년들을 만나 마음을 열고 고민을 해결한다고 해도 집에 돌아갔을 때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느끼면 같은 문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한다”며 “더구나 위기 청소년을 지켜보는 부모도 상당한 상처를 입었을 것이 분명하므로 부모도 상담을 통한 정서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위기 청소년 한 명을 구하는 데도 그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복원이 전제돼야 하는 셈이다.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이나 부모님은 전국 어디서나 국번없이 “헬프콜 1388”로 문의하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동반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문의 아동청소년상담자활과
02)2023-8805, 청소년전화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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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