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공화국 대한민국 현주소 ②사회경제적 손실

자살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엄청나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나아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자살 문제가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연예인을 비롯해 지도층이나 경제인 등 유명 인사들의 경우 손실의 강도는 더욱 커진다. 사회적 충격은 물론 그 여진이 모방으로 연결되는 탓이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연간 수조원이 넘는다. 자살률 감소 시 1년에 수천억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꼭 돈 때문만은 아니지만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 돈잔치 열린다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은 한국 재계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이 사건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2003년 8월4일 새벽. 서울 계동 현대그룹 본사 12층에 있던 자신의 사무실에서 창문을 열고 투신했다.
당시 정 전 회장은 2003년 5∼6월 대북송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으며, 이어진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의 조사를 연속적으로 받았다. 때문에 검찰 압박에 대한 부담감이 자살 원인으로 유력했다.
일반인들은 실직, 빚, 취업난 등 경제적인 부담에 가정불화와 우울증이 맞물리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경제인 등 상류층은 다소 다르다. 사회지도층의 자살 원인은 외부 압박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검찰 조사 와중에 사건이 벌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장래찬 전 금감원 국장은 2000년 10월 ‘정현준 게이트’연루 의혹에 휩싸여 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4년엔 안상영 전 부산시장(동성여객 로비 의혹),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대통령 인사청탁 의혹), 박태영 전 전남지사(국민건강보험공단 인사청탁 의혹)와 이준원 전 파주시장(전문대 설립 뇌물수수 의혹) 등이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줄줄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사회경제적 손실 연간 3조원 추산 “자살률 1위답다”
1명당 2억7천만원…정부 올 예산 고작 5억6천만원

이후에도 2005년 11월 이수일 전 안기부 2차장이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에, 2006년 5월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이 현대차 사옥 인허가 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돼 세상을 등졌다.
전·현직 고위 인사들의 자살 사건이 있을 때마다 검찰의 강압 수사 논란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고위층 인사가 검찰청만 다녀가면 자살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자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유가족 측에선 “검찰의 무리한 강압수사로 피의자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진술이 나왔고, 검찰은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해명하기에 바빴다.
한 인사는 “검찰이 나를 괴롭혀서 항복을 받아낼 욕심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수사하고 있다. 차라리 죽어서 명예를 지키겠다”는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문제는 자살이 사회적 파장은 물론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해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사회지도층 등 유명인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 여진이 ‘베르테르 효과’, 즉 모방으로 이어지는 탓이다. 사회 유명인사의 자살 후 평소의 10배 이상 자살사건이 증가한다는 경찰청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전문가들은 하루 평균 20명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손실을 연간 무려 3조원 정도로 추산한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답다.
2006년 7월 국립서울병원과 이화여대가 발표한 ‘우리나라 자살의 사회경제적 비용부담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로 초래되는 사회경제적 부담은 매년 3조8백56억원에 달했다. 이 금액은 2004년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토대로 자살자의 사망 전 1년간 소비한 의료비용과 조기 사망으로 잃은 생산성 손실액 등을 합한 결과다.
2004년 한해 자살자 수가 1만1천5백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자살자 1명이 발생할 때마다 2억7천만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보고서의 비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입 상실 등 자살자의 간접 비용 3조7백2억4천만원 ▲진료비·장례비·수사비 등 직접 비용 95억4천만원 ▲가족 의료·교통비 등 외부적 직접 비용 47억6천만원 ▲기회 노동력 손실 등 외부적 간접 비용 10억원 등으로 조사됐다.

가족 의료·교통비 등 외부 직접비용 47억6천만원
가족의 기회 노동력 손실 등 외부 간접비용 10억원
수입 상실 등 간접비용 3조7백2억4천만원
진료·장례·수사비 등 직접비용 95억4천만원

 

 
김진학 국립서울병원 정신보건연구과장은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도 문제지만 자살이 사망 원인의 4위를 차지하는 등 중대한 보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연구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자살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우울증의 사회경제적 비용도 엄청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우울증으로 인한 직·간접적 손실액은 간접비용(작업손실비용, 자살방지비용 등) 1조8천5백50억원, 직접비용(의료비 등) 1천6백3억원 등 매년 2조원이 넘는다.
정상혁 이화여대 의과대학 교수는 “이제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살예방센터를 구축해 체계적으로 연속적인 자살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며 “선진국처럼 청소년기부터 정신건강 프로그램 등에 대대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등 자살에 대한 국가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자살로 인한 정부의 지출 비용도 막대하다. 지난해 7월 보건복지가족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명백한 고의가 아닌 자살 시도를 정신질환으로 간주하고 치료와 사후관리를 위해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했다.
이때부터 지난 8월까지 약 14개월 동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쓴 건강보험급여 비용은 39억원에 이른다. 지난 5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소속 최영희 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살시도자 건강보험급여 적용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올해 8월까지 자살시도로 의료기관을 찾은 사람들이 건강보험 급여혜택을 받은 것은 총 2천9백12건으로 39억3천5백만원이 지급됐다. 월별로는 건수 기준으로 2007년 9월이 3백37건으로 가장 많았고, 금액 기준으로는 2007년 8월이 4억2천1백41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자살을 유발할 수 있는 정신질환 진료비도 연간 1조원에 육박했다. 역시 같은 날 최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정신질환 진료현황’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질환으로 인한 진료비는 9천8백38억원(8백74만8천6백35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4년 5천2백80억원과 비교해 3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한 비용이다.
벌써 올해 상반기에만 5천4백27억원(5백17만3백52건)을 기록하고 있다. 진료비가 가장 많았던 정신질환은 ‘우울증에피소드’로 1천4백11억여원(2백9만여건)이 들었다.
반면 정부의 자살 예방 관련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
자살이 사회 문제로 급부상할 때마다 정부는 “예산지원 확대”를 공언해 왔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자살 문제에 대해 연령대별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2008년부터 예산을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에 따라 올해 위기자살대응팀 설치(2개소) 등 자살 예방을 위한 예산을 새로 반영했다.
그러나 복지부가 2004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자살예방 대책사업인 ‘생명존중정신건강증진사업’의 올해 예산은 고작 5억6천만원에 불과하다. 2005년엔 2억원이었고, 2006년에도 5억원에 그쳤다. 미국의 경우 정부 산하기관인 자살예방센터를 통해 매년 1백억원 가까운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최 의원은 “복지부가 2004년 자살예방 기본대책을 수립해 추진 중에 있지만 올해 예산이 5억6천만원에 불과해 실효성 있는 대책 수립이 어렵다”며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대 3조8백56억원으로 추산됨에 따라 자살률을 10% 감소할 경우 연간 약 3천9백억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도 “정부가 자살 예방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나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전문 상담원조차 두고 있지 않는 실정”이라며 “자살문제를 더 이상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경제적 문제 등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자살을 막기 위한 예방 프로그램 등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전체 사망자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다”며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국가차원의 문제로 심각히 볼 필요가 있으며 이제는 자살로 야기되는 사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정부와 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가 악화일로다. IMF 재연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자살의 증가폭 또한 그 시절로 회귀한 듯하다. 정부는 어떻게든 IMF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필사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꼭 돈으로 따질 문제는 아니지만 사회경제적 손실을 보전하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할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기업인 자살 미스터리
열리지 않는 ‘판도라의 상자’
자살을 택한 대기업 CEO들은 검찰 조사 와중에 사건이 벌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자살 원인이 미제로 남은 경우가 허다하다.
2003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현대 대북송금과 비자금 의혹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희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판도라의 상자’열쇠를 쥔 핵심 인물들이 여러명 거론되지만,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는 상태다.
일각에선 정 전 회장의 죽음이 메가톤급 ‘폭풍’을 머금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당시 경찰은 정 전 회장의 친필유서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를 내세워 “충동적 자살로 추정된다”며 사건이 터진 뒤 불과 이틀 만에 서둘러 수사를 종결해 의문을 키웠다.
2004년 3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자살한 상황도 비슷하다. ‘남상국 미스터리’는 지금까지 속 시원히 풀리지 않고 있다. 남 전 사장도 노무현 전 대통령 형 건평 씨에게 인사 청탁을 한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을 두고 각종 원인이 부상했다. ‘대우건설 비자금 때문이다’, ‘정치권과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다’, ‘검찰의 강압 수사 때문이다’등의 설왕설래가 떠돌았다. 심지어 ‘죽지 않고 해외로 도피 잠적했다’는 어이없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청와대가 친인척 관련 사건의 증인을 은닉하기 위해 남 전 사장을 도주시켰다는 괴담이다.
이밖에 장래찬 전 금감원 국장, 안상영 전 부산시장, 박태영 전 전남지사, 이준원 전 파주시장, 이수일 전 안기부 2차장,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 등이 비리 의혹 혐의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줄줄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자 경 검찰의 공식적인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망 원인을 놓고 타살설 등 온갖 ‘설’이 난무하기도 했다.


검찰 조사 이후 자살한 사례
2000년 10월21일 장래찬 전 금감원 국장 - 정현준게이트 연루 의혹
2003년 8월4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 현대비자금 사건
2004년 2월3일 전모 부산국세청 직원 - 동성여객 로비 사건
2004년 2월4일 안상영 전 부산시장 - 동성여객 로비 사건
2004년 3월11일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 대통령 친인척 인사청탁 의혹
2004년 4월29일 박태영 전 전남지사 -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사청탁 비리 의혹
2004년 6월4일 이준원 전 파주시장 - 전문대 설립 관련 뇌물수수 의혹
2005년 11월20일 이수일 전 안기부 2차장 -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
2006년 1월21일 강희도 경위 - 윤상림게이트 연루 의혹
2006년 5월15일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 - 현대차 사옥 인허가 로비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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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