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강 ‘우병우 라인’ 추적

권력 중심에 선 ‘왕수석 사람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우병우 민정수석은 청와대 ‘행동대장’이다. 내 몸처럼 움직여줄 행동대원이 필요했을 터. 우 수석은 일명 ‘우병우사단’을 검찰·법무부·국정원 등의 주요 요직에 앉혔다. 이번 우 수석의 스캔들은 행동대원인 진경준 검사장에게 문제가 생기면서 시작됐다. 우 수석은 진경준을 검사장으로 승진시켜준 장본인이나 마찬가지다. 결과는 인과응보였다.

지난해 단행된 우병우(49) 민정수석의 승진은 파격적이었다. 우 수석은 2014년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는데, 약 8개월 만에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진급했다. 게다가 우 수석은 40대 최연소 민정수석이었다.

모르쇠로 일관
언제까지 버틸까

우 수석 진급은 검찰의 기수문화 파괴라는 진통을 겪으며 여러 우려를 낳았다, 사법연수원 19기인 우 수석이 5기수나 선배인 김진태(14기, 65) 당시 검찰총장을 ‘핸들링’하는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나이나 기수로 봐도 김 전 총장은 우 수석의 대선배다(우 수석은 김수남 검찰총장 후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민정수석과 검찰총장간에 마찰이 빚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서초동 일대에 파다했다. 민정수석은 청와대를 등에 업고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을 아우르며 일을 한다. 사실상 민정수석이 검찰총장을 지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수문화가 철저한 검찰에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후배한테 지시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검사들의 자존심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검사들이 제때 진급하지 못하면 검복을 벗는다.


지난해 1월 그가 민정수석이 되고 ‘왕실장’으로 불리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퇴진하면서 “왕수석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그는 청와대 인사와 함께 단행된 검찰 간부 인사에 자기사람을 꽂아넣는 등 실세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해 2월17일 법무부는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발표했다. 이때 일명 우병우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청와대 민정라인이 재편된 이후 나온 인사라 논란이 더했다. 우 수석 내정 이후 기존의 민정라인은 마치 사전기획이라도 한 듯 모조리 사퇴했고 이후 대부분은 우 수석과 같은 TK(대구·경북) 검사 출신들로 채워졌다.

청와대 등에 업고 경·검·국 주물럭
서울대 법학 동창들 법조계 쥐락펴락

공직기강비서관에 우 수석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유일준 평택지청장이 임명됐고, 민정비서관에는 TK 출신 권정훈 부산지검 형사1부장이 임명됐다. 그는 검찰 내에서 엘리트코스를 밟고 법무부의 직접 추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검찰 내 우병우사단의 약진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결국 우 수석과 김 전 총장의 관계였다. 우 수석이 검찰 내 영향력을 넓히게 되면 총장과의 완력 다툼은 불가피했다. 검사장급 인사는 김 전 총장이 챙겼지만, 부장급 이하 인사는 우 수석 몫이었다.

김 전 총장으로 대표되는 검찰과 우 수석으로 대표되는 청와대 간 팽팽한 샅바싸움의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 당초 청와대서는 김주현 법무부 검찰국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려 했는데 김 전 총장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 전 총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성재 대구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됐다.


최연소 민정수석
정의감 불탔는데…

대검 중수부 폐지와 더불어 권력층 수사를 도맡게 된 서울중앙지검장의 위상은 막강하다. 중앙지검장은 정권 실세들과 ‘직통’하는 자리로 알려진다. 중앙지검장과 청와대의 핫라인이 구축되면 검찰총장은 자칫 고립될 소지가 다분하다. 김 전 총장이 이 자리에 특히 신경 쓴 이유이기도 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전 중앙지검장 자리는 청와대가 김 총장에게 양보한 모양새지만, 그외 주요 보직 인사에서는 우병우사단이 대거 약진했다. 중앙지검장 자리를 양보한 탓에 더욱 뚜렷한 ‘청와대 맞춤식’ 인사가 단행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력층 인사의 사정을 주도하는 자리가 모두 우 수석과 가까운 이들로 채워졌다.

최윤수 전 부산고검 차장(사법연수원 22기)이 올해 2월 국정원 제 2차장에 발탁된 건 우 수석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최윤수 당시 대검 검찰연구관이 특수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임명된 데 이어 올해 2월 부산고검 차장에서 국정원 2차장으로 옮겨간 데에도 우 수석의 입김이 개입된 것이란 시각이 있다. 물론 최 차장은 “세간의 오해다. 그분과 그렇게 친분이 있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해외자원 개발 비리, 포스코, 농협, KT&G 비리 등 전 정권 인사 관련 사건이 유독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용두사미에 그치면서 ‘청와대 하명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도 최 차장이 지난 2월5일 단행된 국정원 인사에서 전격 발탁되면서 절친인 우 수석의 인사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당시 국정원 인사에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청와대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최 차장을 앉히려고 했다는 것. 이는 당시 이병호 국정원장이 청와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하지만 그 대신 최 차장이 2차장으로 갔다는 것. 한마디로 국정원은 기획조정실장 자리를 지키고 2차장 자리를 내준 격이었다. 2차장은 국내정보를 담당한다. 우 수석의 절친으로 알려진 최 차장이 가면서 ‘청와대가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교체한 셈이다.

이어 지난해 1월 특수1부장으로 발령났던 임관혁 부산지검 특수부장도 우 수석이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재직 시절 평검사로 직접 우 수석을 ‘모셨던’ 전력이 있다. 임 부장은 서울중앙지검 출신 부장검사는 지방으로 보낸다는 김진태 전 총장의 ‘하방 인사’ 원칙마저 무력화시킨 인사 발령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인사의 배경으로 김 전 총장의 하방인사 원칙보다는 우 수석 등 청와대에서 직접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우 수석 뜻대로 인사이동이 이뤄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기수 선후배 뭉쳐
주변인 고공행진

특수2부장에 임명됐던 조상준 전 대검 수사기획과장도 우 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을 맡았을 때 함께 일했다. 대검 중수부의 역할을 일부 물려받은 반부패부장에는 우 수석이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지낼 때 중앙지검 3차장으로 함께 호흡을 맞춰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이 올랐다.

결과적으로 우 수석은 법무부나 대검을 통하지 않고도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하는 것은 물론 필요할 경우 관여할 수 있는 직접적인 ‘통로’를 확보했던 셈이다.
 

청와대 파견 경력이 있는 검사들도 당시 인사에서 요직을 맡았다. 이선욱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검찰과장에 임명됐다. 이준식 법무부 상사법무과장도 각급 검찰청서 진행되는 사건을 보고받고 조율하는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에 임명됐다. 법무부 검찰과장과 형사기획과장은 과거 ‘검찰 1·2과장’으로 불리던 법무·검찰 기획라인의 최고 요직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검찰 인사도 우 수석의 힘이 확인된 인사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자신이 데리고 있던 권정훈 당시 대통령 민정수석이 법무부 인권국장에 앉았는데, 법무부 인권국장은 검사장 승진 1순위로 꼽히는 핵심 보직이다. 당초 이 자리는 검사장 승진 대상 기수인 23기가 유력하게 거론됐다.

이영상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검찰 수사첩보를 총괄하는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 자리를 꿰찼다. 각종 범죄첩보와 정보를 수집해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는 이 자리는 대검 내에서도 핵심 보직으로 꼽힌다.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도 우 수석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김 지검장은 지난해 말 인사 당시 마지막까지 유력한 서울중앙지검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최 차장과 김 지검장 모두 우 수석과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법조계에선 검찰과 법무부 최고 수뇌부 인사도 우 수석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례적인 인사 뒤엔…”
청 입성 후 개입 의혹

우 수석은 진경준 검사와도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상 진 검사의 검사장 승진을 우 수석이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사장 승진은 검찰인사위원회서 결정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검증을 통해 이뤄진다.

우 수석은 지난해 2월 초 이뤄진 검사장 인사를 주도했다. 당시 검사장급 승진자 9명 중 1명에 진 검사가 있었다. 우 수석과 진 검사는 서울대 법대 2년 선후배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우 수석이 거쳐온 요직을 진 검사가 연이어 맡기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진 검사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했던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청와대 인사) 검증 실무팀에서는 (진 검사가 보유한 넥슨 주식) 부분에 대해 ‘부적절한 거 아니냐’는 실무 의견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무서운 입김
국정 전반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우 수석 처의 부동산을 넥슨코리아가 1000억원대에 매입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 “정부의 권력기관 도처에 널린 우병우사단이 먼저 제거돼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권력의 정점에서 인사와 사정, 모든 권력을 전횡했고 심지어 비서실장까지 무력화시킨 장본인인 우 수석 문제는 언젠가 터질 것이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검찰 개혁안
수십년째 약속만…

진경준 검사장이 구속되면서 더 이상 검찰 스스로 달라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의 사과 및 개혁 약속은 역대 주요 검사 비위 사건마다 ‘판박이’처럼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자체 개혁 약속은 번번이 유야무야됐다.

2010년 스폰서검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김준규 검찰총장은 전국 검사 화상회의에서 “검찰이 국민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마음속 깊이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검찰권 행사에 대해 국민의 통제를 받겠다”고 말했다.

2012년 김광준 부장검사(55) 뇌물수수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은 “환골탈태의 자세로 강력한 감찰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 시기 진 검사장의 ‘뇌물 주식·제네시스’가 적발되기는커녕 진 검사장은 대한항공 등에서 처남 회사 앞으로 130억원대 일감을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검찰의 폐쇄적 체제가 오히려 강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2006년 법조브로커 김홍수씨의 폭로로 촉발된 법조비리 사건 때도 대검은 “법조브로커 리스트를 작성·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둘러싼 전관 변호사와 브로커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검찰의 10년 전 약속이 빈말로 확인됐다. 법무부가 1999년 법조 비리 근절 과제로 발표했던 ‘공직자비리조사처’도 17년째 관련 법안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고 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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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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