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4]정치권 10인 새해 마스터플랜 엿보기

“이제 1년이다…대권을 향해 쏴라”



날개 편 잠룡들, 사람·정책 챙기며 대권 기지개
박근혜 ‘대세론’ 키우고, 여야 주자 ‘반전’ 노려

2012년 대선을 사정권에 둘 시간이 다가오면서 잠룡들이 날개를 펴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정책을 다듬어 세상에 내보이기 시작한 것. 지지조직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당내에서는 차기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화의 움직임이 읽힌다. 일찌감치 ‘대세론’에 시동을 거는 이와 도약의 기회를 노리는 이들 사이의 신경전도 달아오르고 있다.

2011년 활약이 기대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이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말로 향할수록 레임덕 등 권력누수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과 달리 이들은 ‘뜨는 해’이기 때문이다.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는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정몽준 전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도로 압축된다. 여기에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 뜨나

이중 박 전 대표는 한 해 동안 여야 정치권을 통틀어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라는 자신의 입지를 ‘대세론’으로 연결시킬 것으로 보인다. 준비운동은 이미 시작됐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친이계까지 만남의 장을 넓힌데 이어 ‘복지’를 중심으로 한 정책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그는 지난 12월20일 국회에서 가진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 발의를 위한 입법 공청회에서 ‘한국형 복지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이날 공청회는 당내 친박계 의원들과 미래희망연대 의원들을 비롯해 박희태 국회의장과 안상수 대표, 장광근·원희목·김기현·김정훈·강승규·고승덕·나성린 의원 등 친이계 의원들 1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하는 등 친이·친박계 의원 75명과 400여 명의 지지자들로 가득 차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박 전 대표는 앞으로 과학기술 재정건전성 등 그동안 준비해 온 정책 구상들을 잇달아 선보일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한 봄빛이 완연할 즈음이면 외곽 지원조직도 윤곽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규택 미래연합 대표는 최근 “외부에서 박 전 대표를 차기 (대선)에 도와주기 위해 포럼을 추진중”이라며 “이명박 대통령 시절 뉴라이트(같은) 형태로 (해당 인사들이) 익명을 요구하고 있으나, 많은 분들이 동참하고, 저명 인사들이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몽준 전 대표를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도약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정 전 대표는 당대표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그동안 올인했던 2022년 월드컵 유치에도 실패하며 침체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연평도 사태와 관련, 사회 지도층 자제의 전방 복무를 제안하는 등 다시 한 번 ‘뜰’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 주가를 높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최근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던 오 시장은 무상급식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행정가’에서 ‘정치인’으로 존재감을 새롭게 하고 있다. 김 지사는 연평도 사태 후 의정부에 있는 제2청사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안보이슈를 틀어쥐었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개헌론’ 등 주요 현안을 띄움과 동시에 여권에서 막후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지난번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처리 뒤에도 이 장관이 있었다는 게 정가의 전언이다. 

야권 차기 대선주자들도 잰걸음을 시작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예산안 강행처리 후 장외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26일 경기, 28일 서울을 마지막으로 16개 시·도를 순회하는 강행군이다. 손 대표는 이번 전국 순회 규탄대회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고 있다. ‘복지예산 삭감’ ‘형님예산’ 등 예산안 강행처리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했으며 제1야당의 아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그의 싱크탱크격인 동아시아미래재단도 조직정비와 기름칠을 마쳤다.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지난 7일 ‘위기의 한국사회, 진보개혁의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 데 이어 ‘성장친화형 복지국가’라는 손 대표의 정책 비전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난 전당대회에 들고 나온 ‘보편적 복지론’과 함께 남북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참여정부 통일부 장관 출신인 그는 당내 남북평화특위 위원장을 맡아 한반도 주변 4대국 등에 대한 당 차원의 외교적 노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연평도 사태 이후 불안해진 한반도 정세 속에서 개성공단의 현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통일부에 개성공단 방문신청서를 제출키도 했다.

하지만 당내 빅3 중 가장 먼저 ‘대권’을 향한 행보를 시작한 것은 정세균 최고위원이다. 정 최고위원은 1월 중순 쯤 대선정책 구상을 맡을 싱크탱크를 출범시키는 한편 2012년 총선·대선을 염두에 둔 ‘야권연대’를 주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권행보를 가속화하고 있지만 빅3의 마음은 급하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정한 ‘대선 1년 전 대권·당권 분리’ 원칙에 따라 하반기에는 대권이냐, 당권이냐를 두고 마음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박 전 대표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야권 차기 대선 주자는 민주당 ‘밖’의 인사,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이다. 유 원장은 지난달 보육수당제 도입을 제안한 데 이어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민간 임대주택 사업 활성화’를 골자로 한 부동산 정책 대안을 발표하는 등 정책토론회를 통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친노의 부활?

그는 최근 2012년 대선에 대한 자신의 구상과 원칙을 밝히기도 했다. 유 원장은 “‘2012년 12월 이후 정치는 없다’는 각오로 임하겠다”면서 “대권에 연연하지 않고 정권교체와 야권연대에 모든 걸 바치겠다”라고 강조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한명숙 전 총리가 2011년 ‘깜짝 스타’가 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한 전 총리의 발목을 잡았던 불법 정치자금 수뢰 관련 재판에서 검찰의 주장을 뒤엎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는 탓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검찰 수사와 관련, ‘표적·기획수사’라는 역풍이 불 경우 다시 한 번 ‘노무현 바람’이 불 것”이라며 “박 전 대표를 견제할 ‘대항마’로 뜰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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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