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40) 운명

배신의 그림자, 피할 수 없는 운명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동일이 말을 멈추고 주선을 응시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주선이 가볍게 헛기침했다.

“동생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네가 직접 말해 보거라.”

주선이 말하다 말고 영란에게 시선을 주었다. 영란이 잠시 창밖을 주시하다 동일을 바라보았다.

“이번 일로 저 역시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마냥 철부지일 때 오빠 말을 무시하고 조총련과 북한의 꼬임에 빠져들었고. 그 일로 오빠가 저를 구한다는 사유로 조총련에 가입했고 또 후일이 염려되어 홀로 지내고 있지만…결국 모든 거 다 잃고 제 몸 하나 건사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영란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니 절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기 위해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가능하다면 대한민국에 정착하고 싶습니다.”

“그는 전혀 문제될 바 없습니다. 허나.”

“물론 신변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죽어 산다면 북에서도 굳이 저를 찾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북한에서 굳이 저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데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살아서 북한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인사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였던 터였다.

물론 본보기 차원에서 일을 감행할 수도 있으나 그러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자제하리란 사실을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으로 돌아가 조용한 산사를 찾아 불자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해 그리고 또….”


물론 문석원을 의미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시다면 그 일은 저희 쪽에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동일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건넸다.

“무엇입니까?”

“살펴보시지요.”

앞 좌석에 앉아있던 주선과 영란이 눈을 마주쳤다.

“저는 오늘 오후 비행기 편으로 일본을 떠납니다.”

주선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을 지키다 봉투를 개봉해 내용물을 꺼냈다.

두 사람의 여권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일단 차 여사의 여권도 만들었습니다. 물론 차 사장의 도움을 받았습니다만.”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두 분께서 해주신 일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언제 일본을 떠나시렵니까?”


“동생과 그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거사 전에 행방을 감추면 이 일이 자칫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여 행사 당일까지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그날 곧바로 출국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일이 주선의 이야기가 끝나자 메모지를 꺼내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주었다.

“무엇입니까?”

“이런 일을 하다보면 매사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여 대한민국 영사관에서 두 분께 비자 발급한 사실조차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한 사전에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게 되면 그 역시 기록으로 남게 되어 있습니다. 철저하게 비밀에 붙이자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 번호는?”

“출국 당일 공항에서 그 사람과 만나십시오. 그러면 서울행 티켓과 함께 신변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선이 영란을 바라보며 감탄의 미소를 자아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두 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차 사장은 어떻게 하기로 하였는가?”

“처음에는 외국행을 원했었습니다만.”

“그런데.”

“떠나지 않겠다던 동생이 마음을 바꾸어 대한민국에 정착하겠다고 하니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모양입니다. 해서 일단 서울에 와서 상황을 보아가며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이 사건과의 연결고리는 철저하게 차단할 터이니 대한민국에 머물며 조용히 살아간다면 굳이 별 문제 없을 듯합니다.”

“그러이, 일단 일을 마무리하고 그 연후에 정 팀장이 그들의 행보에 각별히 신경 써주도록 하게.”

북조선 배신…새 삶 계획하는 영란·동일
덫에 걸린 석원…아내 속이고 출국 준비

“느닷없이 웬 케이크야?”

밤 늦은 시각 술에 취해 들어서는 석원을 아내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맞이했다.

곁에서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신일이 아버지의 출현 더불어 케이크의 모습을 살피고는 급하게 석원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아내에게 케이크를 건네고 아들을 가슴으로 안아들었다.

“당신과 신일이 먹으라고.”

석원이 아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건성으로 답하자 아내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를 살피던 석원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건넸다.

“이건 또 뭐야.”

얼떨결에 봉투를 받아든 아내의 표정과 목소리에 의심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선불 받은 거야.”

“무슨 선불?”

“장기간에 걸쳐 빌딩 청소하기로 하였다니까!”

석원이 술기운 탓인지 혹은 아내의 쉬지 않는 추궁에 짜증이 났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가 석원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미소를 보였다.

“이번 일은 오래 하는 모양이지.”

아내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변했다.

“약 한 달 일정으로 진행될 거야. 그래서 선불로 받아 온 거야.”

“어디로, 언제 가는데?”

“와카야마에 있는 건물 몇 개를 맡았는데 일이 급하대. 여름 휴가철에 청소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네.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야.”

느닷없는 케이크와 함께 돈의 출처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이루어지자 아내가 석원에게 다가앉았다.

남조선으로의 입국 날짜가 내일로 다가오자 석원이 호룡의 안내로 도쿄의 한 음식점을 방문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조총련 중앙위원인 차주선과 북조선 정치지도위원인 영란이 이미 음식을 준비해놓고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와요, 석원 군!”

살가운 소리로 반기는 영란을 바라본 석원이 흠칫했다.

그러나 티를 낼 수는 없는지라 급히 두 사람에게 고개 숙여 예를 표하며 순간을 모면했다.

“석원 군에게 당부하고픈 이야기가 몇 가지 있어 이 자리를 마련하였어요.”

모두 자리하자 영란이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일행의 면면을 주시했다.

“말씀 주십시오, 지도위원 동무!”

영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원이 정색하고 고개 숙였다.

아마도 영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한몫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를 살피던 영란이 자세를 공손하게 하고 곁에 있는 핸드백에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일성 수령께서 석원 동무의 영웅적 행위에 성공을 기원하는 전문을 보내주셨습니다.”

김일성이라는 소리에 차주선과 이호룡이 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석원 역시 그들의 행동을 살피며 엉거주춤 무릎을 꿇었다.

“우리 민족의 생사가 석원 군의 어깨에 달려있는 만큼 거사의 성공을 기원하며 또 조국은 석원 동지를 영웅으로 길이 추앙할 것이란 내용입니다.”

영란이 개략적인 설명을 곁들이고 카드를 석원에게 건넸다.

석원이 얼떨결에 받았으나 감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감격에 겨웠는지 양손으로 카드를 자신의 가슴에 밀착시켰다.

“읽어보도록 해요.”

영란의 차분한 소리에 석원이 카드를 손에 들고 카드와 좌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호룡에게 건넸다.

“왜 그러는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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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