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36) 처형

대통령 생각하고 총을 쏘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두 남자에 의해 한 남자가 그야말로 개 끌리듯 끌려왔는데 남자의 표정이 막 불에 끄슬리기 전 개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였다. 눈에서 나왔는지, 혹은 코와 입에서 나왔는지 모를 이물질이 얼굴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바탕색 역시 핏기하나 없이 파리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얼굴 곳곳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찢어진 옷 사이로 선혈이 낭자했다.

“지도원 동무, 제발…”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 남자가 영란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조국과 당을 배신한 놈이 목숨까지 구걸한다는 말이냐, 더러운 놈!”

영란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자 두 남자가 무너진 남자의 상체를 똑바로 세워 무릎을 꿇렸다.


순간 호룡이 영란을 바라보자 영란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무언의 신호에 따라 호룡이 권총의 빈 탄창을 총알로 채우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탄창을 가득 채운 호룡이 총을 영란에게 건넸다.

권총을 건네받은 영란이 총구를 남자의 머리에 겨누자 남자가 격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란이 총을 석원에게 건넸다.

“석원 군이 처리하도록 해!”

얼떨결에 권총을 받아 든 석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어 영란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는 듯이 호룡을 주시했다.


“실전 훈련이라 하지 않았는가!”

호룡이 석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면 제가…제가 어찌…”

급격한 상황 변화에 더 이상 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무슨 나약한 소린가. 그런 배짱도 없이 박정희를 암살하겠다고 했던 건가!”

“그거야…”

석원이 곤혹스러움이 가득 들어찬 표정으로 손에 들려있는 총과 앞에서 살려 달라 몸부림치는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뿐만 아니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가슴 역시 떨고 있었다.

“문 군, 정녕 박정희를 암살할 자신이 없는 건가!”

호룡의 싸늘한 소리가 이어졌다.

“박정희와 이 사람은…”


“이 놈을 박정희로 생각하도록 하게.

이 놈 역시 조국과 당을 배신한 비열한 자이니만큼 이 놈을 사살하면서 실전에 대비토록 하게!”

석원이 가만히 상황을 정리해보는 듯 영란과 호룡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조금도 변화 없이굳건했다.

그 모습을 살피며 도리 없다 판단한 석원이 크게 심호흡하고 총구를 남자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겠는가!”

영란의 입에서 다시 싸늘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 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려졌다. 남자의 눈이 거의 흰자위로 가득했다.

“어서 당기게. 박정희를 생각하면서!”

호룡의 다그치는 소리가 이어지자 석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 아니 그보다도 더 빨리 “퍽” 하는 소리가 들린 듯했고 이어 남자의 머리가 순간적으로 앞으로 기울었다.

곁에서 남자를 잡고 있던 두 남자가 옆으로 물러서자 남자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계속 쏘지 않고 뭐하는 건가!”

의문의 남성…조국과 당 배신 대가는?
영란과 호룡 음모…살인 저지른 석원

영란의 다그침에 석원이 이미 죽은 듯한 남자를 향해 마치 기계처럼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 “퍽” 하는 소리가 번갈아 석원의 귀를 파고들었다. 석원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저 쇠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탄창이 빈지도 모르고 방아쇠를 당겼던 터였다.

“호룡 동무, 석원 군을 내 방으로 보내도록 해요.”

영란이 희미한 미소를 보내며 방을 나갔다.

“잘했네!”

영란의 모습이 사라지자 호룡이 권총을 잡고 있는 석원의 손을 잡았다.

“사람도 죽여 본 사람이 죽일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실전이라 했던 거고.”

귀에서 윙윙 거리는 호룡의 소리를 들으며 이미 죽은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흡사 인간이 아닌 개처럼 보였다. 그 기이한 현상에 직면하자 서서히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막상 일을 끝내고 나니 어떤가?”

“이상하게도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막상 답을 하고는 순간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이 이상한지 호룡에게 묘한 미소를 보냈다.

“그런데 자네가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는가?”

이외의 질문에 석원이 시선을 다시 바닥으로 주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생면부지의 인간이었다.

“일전에 만경봉호에 승선했을 때 기억나는가?”

“당연히 기억합니다만. 그 일과 무슨 상관있다고.”

석원이 순간적으로 어깨를 움찔거렸다.

“내 그때 말하지 않았는가. 북조선에서 한번 배신한 놈은 어떻게든 찾아낸다고.”

“그러면 바로 그 사람들의…”

석원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마치 그를 즐기기라도 하듯 호룡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동일이 한여름의 더위를 쫓으며 사무실에서 이런 저런 생각하는 중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이어 비자발급 업무를 맡고 있는 미스 오가 한 뭉치의 서류를 들고 들어섰다.

“뭔가요?”

“오늘 산트라벨 여행사에서 신청한 비자 발급 서류들입니다.”

“또 단체 신청인가요?”

동일이 서류를 받아들고 마치 무게를 재듯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이번에는 일부 개별적으로 신청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검토하고 돌려줄 테니 자리로 돌아가서 기다려 주세요.”

동일이 미소를 보내자 미스 오 역시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자리를 물렸다.

문이 닫히는 모습을 확인한 동일이 단체 비자 신청서류는 제쳐두고 개별 서류를 뒤적였다.

그리고는 한 서류에 시선을 멈추었다.

물론 아베 고타로 명의로 된 신청서류로 역시 관광을 목적으로 입국하겠다는 사유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를 한쪽으로 제쳐두고 다른 서류들을 뒤적였다. 차주선에게 사전에 설명 들었지만 혹시나 모르는 일이라 샅샅이 살펴보았다.

문석원의 연인인 기미코의 서류는 보이지 않았다.

“문석원 혼자 비자를 신청할 듯합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오사카 바닷가 한적한 곳에서 동일이 차주선과 자리를 함께했다.

“문석원이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기미코를 설득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기미코는 남편 눈치 때문에 차마 함께하지 못할 듯합니다.”

“오히려 잘된 일 아닙니까? 기미코가 함께한다면 일이 상당히 번거로울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여하튼 문석원이 그녀의 남편인 고타로 명의로 비자를 신청할 터인데 문제없겠습니까?”

“우리는 문석원에게 비자를 발급해 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일본인인 고타로에게 발급해 주는 것뿐이지요.”

주선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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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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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