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과 불법 사이' 흥신소 채권추심의 함정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정말?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못 받은 돈 회수

거리를 걷다보면 이 같은 현수막이나 전단, 전봇대의 스티커를 가끔 볼 수 있다. 간단명료하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기재된 번호로 전화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게 만든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빚 독촉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수막과 광고는 누가 붙이고 어떤 방식으로 채무를 받아주는 것일까.  

이런 광고는 대부분 신용정보회사(채권자를 대신해 채무자에게 채권추심을 대행해주는 회사)가 붙이는 것이다. 신용정보회사는 채무금을 받아낸다는 업무특성상 기획재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회사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2016년 현재 29개 신용정보사가 기재부의 허가를 받아 채권추심행위를 하고 있다.

업체 30% 이상
‘해결사’ 노릇

의뢰자 입장에선 기재부의 허가를 받은 업체인지 먼저 확인해야 하고, 법무법인에 문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법무법인을 통해 재산조사와 통장 압류, 유체동산(가재도구, 집기 등 재산권을 제외한 물건 및 유가증권) 압류, 재산명시신청, 감치명령 등 강제집행절차를 밟을 수 있다. 채무자가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압류’ 신청을 한 후 공탁을 할 수 있고, 형사고소 등도 병행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채권추심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광고 중에서 약 30% 이상이 소위 ‘해결사’를 자처하는 불법추심업체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불법추심 관련 민원은 2013년 4535건, 2014년 3090건, 2015년 3197건, 올해 1/4분기 900건으로 집계되는 등 지난 수년간 꾸준히 증가해왔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께부터 증가 추세에 있다. 지자체에서 강력하게 대응 관리 중”이라면서 “민원을 받고 조사를 하다보면 공식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암흑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조직폭력배들이 하는 업무 중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불법 추심 행위 유형에 대해 “영업장에 찾아오고 행패부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알려 창피하게 한다”며 “그나마 그런 것들은 신고를 하기라도 하지만 조직폭력배와 연결된 것은 더 심한 데도 신고가 안 될 수 있다”고 했다.
 

공정채권추심법에 의하면 미등록 대부업체나 채권추심권한이 없는 사람이 추심을 하는 경우, 채권추심자가 채무내용을 제3자에 알리거나 제3자에게 변제를 요구하는 경우, 폭행·협박·감금 등 과도한 추심행위를 하는 경우는 모두 불법이다.

이렇게 음지에서 일어나는 불법적 빚 독촉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법에 의해 빚 독촉을 하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불법업체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판결문이나 공증서 등 법적인 효력이 있는 증빙자료가 있어야 신용관리사들이 채무자를 상대로 추심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법적 절차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나마 ‘차용증’을 써두지 않았다면 소송에서 이기기도 어렵다.

“못 받은 돈 회수” 전화 해보니…
누가 붙이고 어떻게 채무 받나

한 신용관리사는 “차용증이나 공증서 등 증빙서류가 없으면 접수 자체를 받을 수가 없다”면서 “의뢰를 받는 것이 추심법상으로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7년 동안 어렵게 모은 5000만원을 빌려줬는데 받지 못했다고 울면서 전화한 의뢰인도 있었다. 차용증이 없어서 도울 길이 없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이 많다. 우리도 도울 길이 없어 답답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신용관리사에 의하면 다양한 채권이 추심대상이 된다. 상거래채권이 주를 이루지만 2010년 신용정보법이 개정되면서 개인 민사채권 의뢰도 증가하고 있다. 병원 입원 채권도 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만 받고 도주하는 행위에 따른 것이다. 그는 “내연남을 남편 명의로 입원시켰다가 남편에게 들켜서 이혼 당한 부인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지인을 믿고 금전을 빌려주면서 차용증 등을 써두지 않은 경우에 채무자가 대여가 아닌 ‘증여’라고 주장할 경우 소송에서 이기기 어렵다. 또 수년에 걸쳐 소송에서 이겨 ‘지급명령’을 받아도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하거나 파산신청, 개인회생신청을 통해 면책 받을 경우, 추심행위가 금지된다. 대부분 악성 채무자는 이러한 법의 맹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경우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서민들 중 상당수는 불법추심업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비용은 얼마?
20∼50% 수수료

그렇다면 이러한 불법추심업체는 어떤 방법으로 채무를 받아내고, 비용은 얼마나 요구할까. 인터넷에선 “직접 만났더니 50%의 수수료를 요구했다” “선수금만 받고 잠적하는 사기가 많다” “수수료를 받은 다음 더 달라고 요구한다” 등의 글이 눈에 띄었다. 심부름센터 등 추심업체 여러 곳에 직접 전화로 문의를 한 결과, 저마다 ‘못 받은 돈’을 받아내는 다양한 노하우를 제시했다.
 

A업체는 채권전문팀을 운용하고 있다며 1년 이상 지급기일이 경과된 채권은 30%, 미만은 20%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했다. 착수금을 미리 입금해야 추심에 들어갈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 업체는 일단 ‘채권양수도 계약서’를 써서 자기 업체에 채권을 넘겨야 한다고 했다. 헐값에 채권을 사고파는 행위의 실체를 해당 업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업체 관계자는 차용증 등 증빙서류가 없어서 법적 절차를 밟지 못했던 경우도 매매계약을 통해 양수인이 되면 소송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그간 양수금 소송을 거의 다 승소했다”면서 “판결을 받으면 강제집행할 수 있고 시간 제약 없이 전화를 할 수도 있고, 주말에 찾아갈 수도 있다. 채무자에게 공증서를 쓰게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에선 오전 9시 이전, 오후 8시 이후 추심행위는 금지돼 있다.

그는 채권을 넘긴다는 계약서를 작성해도 지급에 성공하면 앞서 밝힌 수수료 20%만 지불하면 된다고도 했다. 계약서는 금전을 받아내기 위한 명목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관계자는 “일단 만나자”며 적극적으로 영업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적으론 막을 수 없다”고 전제한 후 “채권자 입장에선 포기한 금전이라고 생각하고 일부만이라도 받고자 채권을 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 업체 역시 20%의 수수료를 요구했다. 계약금을 받고 추심에 착수한 후 차례로 중도금과 잔금을 받는다고 했다. B 업체 관계자는 일단 거주지를 파악한 후 부모 등 가족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부모만 찾으면 대신 변제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 신고도 병행해야 한다. 전체 금액이 안되면 일부라도 받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3∼4명이 가족을 가장해 동행한다”고도 했다. 또 폭행을 가하지는 않지만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채무자가 많으므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전화선 너머의 관계자는 “채무금이 너무 크면 갚을 의지가 없어서 받기가 어렵다”며 “찾아가면 도망가지도 않고 태연히 살던 곳에서 살면서 못 갚는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몇 천 정도면 갚고 편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그나마 받아내기 쉽다”고 귀띔했다. 

대부분 신용정보회사 홍보물
29개 업체 허가받고 추심행위


마지막으로 접촉한 C 업체는 “추심은 대행하지 않는다. 돈을 갚지 않고 도주한 사람은 찾아줄 수 있다”고 했다. 업체 측은 “돈을 갚으라고 다그치거나 협박하면 큰일 난다”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신 그는 “이름,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 주민번호 앞자리, 사진만 있으면 이틀 안에 찾는다”며 “사례는 80만원”이라고 제시했다.

이 일을 10년 이상 했다는 이 관계자는 “채무자들 대부분은 주민등록지에 살지 않는다. 도망 다니면서 원룸, 고시원, 찜질방에서 먹고 잔다. 그런 사람은 돈을 여기저기서 빌려서 피해자가 여럿이다. 그래서 찾기가 더 쉽다. 원가는 15만원 뿐이고 나머지는 인건비, 장비 명목이다. 더 이상은 영업 비밀이라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착수금조로 30만원을 입금하면 잔금은 은신처를 알려주기 직전에 받는다고 했다. 

“도주한 사람도
찾아줄 수 있다”

이렇듯 업체들은 예상보다 낮은 20∼30%의 수수료를 요구했다. 또 일절 추가요금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앞서 금감원 관계자는 “법정수수료는 30% 미만인데, 불법추심업체는 성공보수금 등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30% 이상 요구한다”며 “합법적인 것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하는 걸 서로 아니까 그런 걸 빌미로 ‘불법추심을 교사하는 거 아니냐’며 나중에 추가적으로 각종 명목을 붙여 더 달라고 한다. 심부름 업체는 조폭 수준의 인사가 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돈을 받는 게 목적”이라며 의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렇듯 불법추심업체를 이용하면 오히려 협박당할 수도 있고 ‘불법추심행위교사’ 혐의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추심하는 업체라도 관련 법을 완벽히 준수하면서 추심을 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였다. 취재 결과, 추심업체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드나들며 빚 독촉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금감원 관계자는 “등록된 신용정보회사나 대부업체라도 불법, 탈법추심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부여한 자격을 갖춘 신용관리사라 할지라도 거주지나 직장으로 찾아가 협박성의 발언을 하거나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거나 가족 등 제3자에게 채무변제를 요구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용정보회사 측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한 신용정보업체는 “미안해하고 일부라도 변제하면 우리에게 맡기지 않는다”며 “채무자가 되려 화를 내고 ‘배 째라’하면 배신감을 느끼고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받기 위해 채권자가 채무자를 달래고 사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항변했다. 

이들 업체의 법정수수료는 30% 미만으로 정해져 있는데, 평균적으로 25% 내외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무자의 재산조사와 신용조사를 위해 추가로 수십만원의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 연락이 안 되는 채무자는 직접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교통비, 숙박비, 식비, 일당여비 등의 실비용도 따로 청구해 받는 경우도 있다. 지급기일이 1년 이상 지난 불량채권의 경우엔 조금 더 요구하기도 하지만 앞서 밝힌 법정수수료 이상으로 받을 순 없다. 따라서 의뢰자 입장에선 허가받은 업체인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국내에 정식으로 등록된 신용정보회사는 29개 업체인데, 이름만 도용해 몰래 영업하거나 지점 개설 방식으로 명의를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실태에도 단속의 손길이 일일이 미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불법과 탈법 채권추심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업계에선 “현실적으로 법을 다 지켜가면서 돈을 받아내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신용정보회사들의 ‘개인 채권 회수율’은 어느 정도일까. 업계에 따르면 사적 거래에 관한 민사채권은 의뢰가 적은 편이고 상사채권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각 사의 영업 비밀에 해당하기 때문에 취재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신용관리사들이 주로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에 따르면 5∼10% 이하라고 명시돼 있다. 실제론 그보다 낮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불법추심은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특성상 회수율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다. 금감원은 불법채권추심을 ‘5대 금융악’으로 규정하고 척결에 나서고 있지만 피해자 본인이 신고하지 않으면 피해를 구제하기가 어렵다.  

회수 얼마나?
5∼10% 이하

불법추심은 신고 전 증거자료의 확보가 중요하다. 평소 휴대전화 등의 녹취 및 촬영 기능을 잘 익혀두었다가 불법추심을 당할 경우 휴대폰을 이용해 통화 내용을 녹취하거나, 사진·동영상을 촬영하는 등 증거자료를 확보한 후 경찰(112) 또는 금감원 콜센터(1332)에 신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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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