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35) 실전 훈련

암살훈련 개시, 북조선 영웅 될까?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리 쉽게 파출소에서 권총을 한 자루도 아닌 두 자루씩이나 훔쳐낼 수 있습니까?”

동일이 손에 들려 있는 권총을 미리 준비해간 가방에 넣으면서 미소를 건넸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일도 아닙니다.”

“하긴, 그러니까 백주에 도쿄 한복판에서 윤대중도 그렇게 감쪽같이 납치할 수 있었겠지요.”

“허허, 차 사장께서 너무 비약하십니다.”


“그러면 아닙니까? 윤대중을 납치한 일이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특히 정 팀장께서…”

주선이 은근히 목소리를 높이자 동일이 방금 나온 파출소를 주시했다.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니라고도 말씀 못 드립니다.”

동일이 말을 마치고 야릇한 미소를 짓자 주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번 잡아보게.”

이호룡이 문석원을 이끌고 조총련 오사카 지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건물의 지하실로 들어가 품에서 권총을 꺼내 건넸다.

권총을 바라보는 석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어 호룡의 손에서 낚아채듯이 권총을 받아들었다.

“그렇게 좋은가?”

석원이 답하지 않고 권총의 이모저모를 살피다 제대로 잡고 정면을 응시하며 권총을 들었다.

곧바로 방아쇠를 당겨보았다. 철컥 하는 소리가 지하실에 울려 퍼졌다.

석원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호룡이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기분이 어떤가?”

“촉감도 좋고 또…”

“말해보게.”

“느낌이 좋습니다.”

“무슨 느낌?”

“일에 대한 성공 여부 말입니다.”

힘주어 답하는 석원은 일전에 나약한 모습을 보였던 문석원이 아니었다.


아니 권총의 존재가 한 어설픈 젊은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듯 했다.

호룡이 다시 석원으로부터 권총을 건네받았다.

“권총 쏴본 적 없지.”

“물론 없습니다만, 그냥 장전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야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도 룰이 있는 거야.”

이어 호룡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권총을 들어 전방을 주시했다.


잠시지만 온 세상의 시간이 정지되는 듯했다. 그 순간 호룡이 방아쇠를 당겼다.

다시 쇠가 부딪는 소리가 지하실에 울려 퍼졌다.

“어떤가. 자네가 방아쇠를 당기던 것과 구분되지 않는가?”

석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아쇠는 잔잔한 호수에 달이 비치듯이, 혹은 한밤중에 서리가 내리듯이 아주 조용히 당겨야 하는 거야.”

석원이 호룡의 말의 의미를 살피겠다는 듯 표정을 진지하게 했다.

이어 호룡이 다시 권총을 석원에게 건네고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쳤다.

동그란 표적이었다.

표적과 테이프를 들고 호룡이 앞으로 나아갔다.

벽에 도착하자 표적을 테이프로 부착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표적 한가운데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겨보게.”

석원이 가볍게 심호흡하고 진중하게 권총을 들어 표적을 겨냥했다.

이어 호흡을 멈추고 한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잠시 전보다 부드러운 소리가 일어났다.

석원이 그를 느꼈는지 고개를 슬그머니 끄덕거렸다.

“어때?”

“한결 부드럽습니다.”

“바로 보았어. 총이란 사랑하는 여인을 감싸듯이 부드럽게 쓰다듬어야 하는 거야.”

정말로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는 모양으로 석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 이제 실전 연습 하러 가세.”

호룡이 앞서자 석원이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금방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그 권총은 자네 애인 다루듯 해야 한다고.”

그 말의 의미를 새기던 석원이 미소를 보이며 자신의 바지춤에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허허, 애인은 그렇게 다루어야 하는구먼.”

호룡이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하고 앞서나가자 석원이 급하게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시게요?”

승용차가 출발하자 석원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오사카항서 암살 실전 훈련
영란과 재회…의문의 남성은?

“일전에 갔던 곳, 만경봉호로 가는 중이야.”

“만경봉호요!”

순간적으로 석원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곳에서 실전에 대비한 훈련을 해야지.”

“왜 하필이면 그곳에서…”

“방금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실전대비 훈련이라고.”

석원이 그저 실전이라는 소리만 되뇌었다. 호룡이 석원의 표정을 무시하고 급히 차를 몰기 시작했다.

석원은 자신의 바지춤에 있는 권총과 스쳐지나가는 창밖의 전경을 번갈아 훑어보았다.

“북조선에서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대단하네.”

오사카 항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리며 호룡이 석원의 어깨를 가볍게 만졌다.

“그런데 부장님, 왜 하필 이곳에서 실전 훈련하는지요?”

“그러면 달리 할 곳이 있다는 말인가?”

“산속이나 이런 데 있잖아요.”

호룡이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보이며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석원이 마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다는 듯 마지못해 뒤를 따랐다.

이어 일전에 만경봉호에 승선했던 것처럼 약식 절차를 거치고 배에 올랐다.

배에 오르자 낯익은 사내가 앞장섰다.

그의 안내로 전에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이르자 별로 달갑지 않은 기억 때문인지 석원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전에 머물렀던 방을 지나 구석에 위치한 곳에 이르렀다.

안내원이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다 철문을 열었다.

순간 석원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영란이 무표정한 얼굴로 맞이했던 터였다.

“어서 들어와!”

영란의 음성이 낮으면서도 날카로웠다. 석원이 급히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이어 고개 들어 영란의 시선과 마주치자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다리가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동무는 바로 준비하도록 하시오.”

영란이 안내했던 사내에게 짤막하게 지시하고 석원에게 다가섰다.

잠시 얼굴을 살피더니 손을 아래로 뻗어 석원의 가운데를 슬그머니 만지작거렸다.

석원의 다리가 절로 꼬여갔다.

그를 살피며 가볍게 미소 짓고는 이내 손을 위로 올려 바지춤에 꽂혀 있는 권총을 뽑아들었다.

“이 총이 석원 군을 영웅으로 만들어줄 바로 그 권총인가요?”

“석원 군이 실전에 사용할 권총과 동일종입니다.”

호룡이 담담하게 말을 받자 영란이 총을 들어 석원의 얼굴을 향해 겨누었다.

석원이 기겁하며 얼굴을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를 살피며 영란이 슬그머니 미소를 보내고 권총을 호룡에게 건넸다.

“이 총이 그 총만큼만 하면 좋으련만.”

영란의 시선이 석원의 가운데로 향하자 석원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호룡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석원 군이 확실하게 일처리 할 것입니다.”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암, 그렇고말고요.”

호룡의 말에 영란이 맞장구를 치는 순간 저만치서 심한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석원이 온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자 마치 살려달라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와 그를 다그치는 소리가 혼재하고 있었다.

이어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 일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현실이 석원의 면전에 도착했다.

두 남자에 의해 한 남자가 그야말로 개 끌리듯 끌려왔는데 남자의 표정이 막 불에 끄슬리기 전 개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였다.

눈에서 나왔는지, 혹은 코와 입에서 나왔는지 모를 이물질이 얼굴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바탕색 역시 핏기하나 없이 파리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얼굴 곳곳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찢어진 옷 사이로 선혈이 낭자했다.

“지도원 동무, 제발…”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 남자가 영란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조국과 당을 배신한 놈이 목숨까지 구걸한다는 말이냐, 더러운 놈!”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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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