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연평사태 후폭풍⑤ 재계는 지금?

‘열중 쉬어’ 애 타는 눈길로 지켜보기만 할 뿐…

 현대아산 잇단 악재에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직접적인 피해 없는 기업도 행여 불똥 튈세라 긴장

북한군의 집중포격을 받은 연평도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기습적인 포격에 섬 곳곳이 찢기고, 불에 타고, 무너져 내렸다. 여러 채의 집이 쑥대밭이 됐다. 거리는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로 가득 찼다. 평화롭기만 하던 연평도 마을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버렸다. 주민들은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총탄은 우리 젊은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했다. 이에 대한민국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규탄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다. 정부는 대응을 위해 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재계는 지금, 이번 사태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과거 북한 리스크가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영향이 있더라도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 그마저도 바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5월25일 있었던 북한의 2차 핵실험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금융시장이 흔들렸으나 당일 오후 들어 안정을 회복했다. 오히려 CDS 프리미엄(부도 위험을 사고파는 신용파생상품)은 연중 최저치로 떨어지기도 했다. 올 5월 천안함 사태 이후 열린 증시에도 0.34% 하락에 그칠 정도로 한국경제는 북한 리스크에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 왔다.

북한 리스크에도 꿋꿋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번 도발이 예전과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간인을 공격한 때문이다. 기존 해상 충돌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무력시위와는 다른 차원의 도발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재계는 지금 잔뜩 긴장한 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가장 애가 타는 것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이다. 남북관계가 고비를 맞을 때마다 정작 불똥을 맞는 것은 개성공단 사업이기 때문이다. 입주기업들은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5·24 조치’로 현지 체류인원을 1000여명에서 500여명까지 제한받은 바 있다. 당시 업체들은 주문량이 급감하고 남측 관리인원 부족으로 도난사고나 납기 차질, 품질 결함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후 정부는 공단 체류인원을 800∼900명 수준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최근 공단 누적 생산액이 10억달러를 돌파하면서 입주기업들은 자생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해안포 공격 사건이 터져 나오자 개성공단 입주기업 모임인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개성공단이 생긴 이래 최악의 사태”라며 도발 여파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긴장하는 모습이다. 입주기업들은 북한의 공격 소식이 전해진 이날 오후 회원사들과 긴급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공단 내 영업 상황 점검에 착수했다.

입주기업들은 북한의 이번 공격으로 연평도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 관계가 더욱 경색될 것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개성공단기업협회 배해동 회장은 “회원사 관계자와 연락하며 공단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며 “사업에 영향을 줄까봐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대북사업체인 현대아산도 잇따른 악재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된 상태에서 천안함 사건에 이어 해안포 공격까지 발생하자 당분간 사업 정상화를 기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감에 빠진 모습이다.

이달 초까지 1년 2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면서, 남북 관계가 풀리고 있는 것으로 기대하던 터라 더욱 충격적이기만 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 18일 금강산 관광 12주년을 기념해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을 참배한 직후 기자들에게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타이밍이 됐다”며 “너무 오랫동안 서로 대치관계에 있어 지금은 서로 대화가 오고 갈 때”라고 의욕을 보였다.

또 장경작 현대아산 사장도 같은 날 12주년 기념 조회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우리에게 맡겨진 운명”이라며 정부의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북한에 체류 중인 입주기업 직원들의 신변과 작업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는 점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개성공단에는 121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이날 현재 남측 체류 인원은 764명이다.
이번 사태로 고민이 많은 건 정부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의 폐쇄 문제와 관련,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이날 하루에 한해 출경을 제한했다. 그리고 이후 진전 상황을 고려해 재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유례없는 출경 불허에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개성공단이 폐쇄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는 천안함 사태로 인한 ‘5·24조치’ 당시 개성공단의 폐쇄를 검토했다. 그러나 정부는 체류인원을 축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었다. 개성공단이 남북 긴장완화를 위한 유일한 완충지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우리 측 체류 국민들이 억류돼 사실상 대규모 인질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거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해 3월 북한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빌미로 개성공단에 대한 인력 및 장비의 출입을 차단하면서 우리 측 인력들이 억류상태에 놓인 바 있다.

이렇듯 개성공단은 상황에 따라 치명적인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섣불리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내놓을 수도 없다. 북한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 북측에서는 4만 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폐쇄할 시 자칫 북한이 더욱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개성공단은 남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로서 ‘평화의 존’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때문에 정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평화존’ 개성공단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현지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을 볼모로 삼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생각하면 폐쇄를 고려해야하지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와중에 개성공단 마저 철수한다면 남북 유일한 소통창구가 막히게 되는 셈”이라며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입주업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방북금지가 장기화되는 것이다. 가공업체가 많은 개성공단의 특성상 하루라도 원·부자재와 인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공장 가동에 심각한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공단 방문이 막히면 생산라인을 갖고 있는 업체는 전부 타격을 입게 된다”며 “회사에 엄청난 손실”이라고 토로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될 경우, 남북경협보험에 가입한 입주업체들은 최고 70억원 한도 내에서 투자금의 9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금전적인 부담을 줄여주는 선에 그칠 뿐이다. 사업철수 등에 따른 종합적인 피해상황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기 어렵다. 이 때문에 입주기업들의 시름은 더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입주기업들은 행여 북한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 관계자는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섣부른 판단으로 개성공단을 철수하거나 하는 행동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직접적인 피해에 대한 우려가 없는 기업들도 행여 불똥이라도 튈세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수출기업들은 당장의 피해는 없지만, 환율변동 상황과 사태추이를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후폭풍에 대비한 ‘비상대책반’ 가동을 준비하는 등 대북리스크 비상 관리 경영에 나섰다. 사태가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않더라도 북한의 2차 공격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면 글로벌 사업의 차질은 물론 외환·금융시장 충격, 수출 위축, 주가하락 등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되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은 24일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 북한 포격의 파장을 면밀히 따져볼 것을 지시하고 상황별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고하도록 했다.

삼성은 외환시장 수시 점검체제에 돌입했다. 환율리스크가 한층 커진 만큼 내년 경영시나리오에 대한 근본적 검토에 들어갔다. 삼성경제연구소와 계열사들은 환율이나 주가, 금리 등을 체크하며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수출 물량이 많은 현대·기아차그룹과 환율 변동에 민감한 SK그룹도 SK, SK케미칼 등 환리스크 부담을 안고 있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위험관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LG도 환리스크 동향을 면밀히 주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GS칼텍스, S-Oil, SK 등 정유업계의 경우, 폭발 위험이 있는 주유소들에 대한 피해 상황 파악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해 5도 가운데 연평도에 진출해 있는 GS칼텍스 주유소는 현재까지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백령도에 위치한 GS칼텍스와 S-Oil 주유소 역시 모두 현재까지 피해 상황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현재 연평도와 백령도 GS칼텍스 주유소는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모두 대피한 상태”라고 밝혔다. S-Oil 관계자도 “현재까지 백령도 주유소로부터 특별한 피해 보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SK 관계자 역시 “인천 정유 등 공장과 시설물 피해가 없는지 파악하며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일단 인천 정유는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어 현재까지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번 북한 리스크 잘 헤쳐 나가야

항공업계의 경우 예매 취소 등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서해안 방향으로 운항하던 인천공항발 중국·유럽노선의 경우 내륙방향으로 우회해서 중국항로로 접어들 수 있도록 긴급 조치했다. 이와 함께 순익과 직결된 환율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기존 이용시간보다 약 10분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되지만 안전운항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G20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한껏 들뜬 분위기에 연평도 사태가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더 이상 충격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다. 재계는 과거 북한 리스크를 정부와 손을 모아 잘 극복해 왔던 것처럼 이번 북한 리스크도 꿋꿋이 헤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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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