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777호 특별기획>2010 대박 쫓는 사람들 현장보고 ①사행산업 현주소

인생역전 한방?…한방에 훅 갈 수 있습니다!

경기 불황 불구 도박 산업 규모 증가 추세
지난해 총매출 16조5천억…전년비 3.3%↑
연이용객 4천만명 육박…10년만에 140%↑

요즘 날씨만큼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는 대한민국 ‘밑바닥 경제’. 서민들은 죽을 맛이다. 각종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지만,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꽁꽁’얼어붙어있다. IMF 시절보다 더 춥다는 게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이렇다 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대박’에 쏠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생역전의 한방을 잡으려는 위험한 모험이 시작된다. <일요시사>는 지령 777호를 맞아 대박을 쫓는 사람들과의 밀착 동행을 시도해봤다. 머리말로 사행산업 현주소를 들여다보고, 이어 야바위에서 카지노까지 그 현장을 직접 가봤다.

서민들이 갖고 있는 대박의 꿈은 결국 도박과 직결된다. 창업 등 땀으로 일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베팅’에 한방의 기대를 건다.

국무총리실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2010년 국내 사행산업 이용실태 조사 결과 대한민국 만 20세 이상 일반 성인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6.1%로 나타났다. 성인 100명 가운데 6명이 도박 중독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도박중독 유병률 6.1% 선진국 비해 2배 이상

이중 도박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는 위험성이 높은 사람(중위험군)의 비율은 4.4%, 도박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문제군)의 비율은 1.7%로 조사됐다. 이는 2008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 결과 9.5%와 2009년 고려대의 조사 결과 6.9%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그러나 영국(2007년 1.9%), 캐나다(2005년 1.7%), 호주(2006년 2.5%)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사행산업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도박중독 유병률이 61.4%로, 2008년 조사 결과 55.0%에 비해 6.4%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약 200만명이 도박중독 문제를 안고 있고, 50만명은 조속한 치료가 필요한 그룹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사행산업별 이용자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카지노(85.6%), 경마 장외발매소(82.9%), 경정 장외발매소(80.1%), 경륜 장외발매소(79.2%), 경정 본장(75.5%), 경마 본장(68.0%), 경륜 본장(66.9%), 스포츠토토(35.5%), 로또(20.3%) 순으로 나타났다.

사행 행위를 하는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여가 및 레저보다 참여 동기 비율이 훨씬 높았다. 가장 많이 참여한 종목(?)은 로또(71.8%)였다. 이어 경마(31.4%), 경륜(29.6%), 스포츠토토(28%), 경정(23.3%), 카지노(18.8%), 온라인게임(17.3%) 등의 순으로 경험률이 높았다.

1회 베팅액 상한선 초과 경험은 복권류의 경우 “전혀 없다”의 응답이 90% 이상이었다. 반면 경마와 경륜, 경정은 약 40% 정도가 상한선을 초과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카지노는 60% 가까이 상한선을 초과해 베팅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감위 측은 “복권류, 온라인 게임 등은 혼자 방문하는 비율이 높은데 비해 경마, 경륜, 카지노, 성인오락실, 카지노 바, 사설스크린 경마는 친구 및 직장동료 등과 함께 가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처음엔 친목목적 게임을 시작으로 해 복권류를 경험한 후 경마와 경륜, 경정, 스포츠 토토, 카지노 등의 합법 사행산업을 거쳐 불법 사행활동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사행산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국민들은 사행행위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75.3%가 “문제가 심각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저 그렇다”는 21.7%, “별로 심각하지 않다”는 3.0%에 불과했다. “전혀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없었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한 합법 사행산업은 카지노(83.8%), 경마(75.0%), 경륜(68.2%), 경정(61.5%), 로또(34.9%), 스포츠토토(28.5%) 등이었다. 불법사행행위는 성인오락실(85.2%), 사설 스크린경마(81.1%), 불법온라인게임(77.3%), 카지노 바(67.5%) 순으로 문제 심각성이 높았다. 응답자의 79.1%는 “사행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국내 사행산업의 호황만 봐도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최근 몇년간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 도박산업의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 사행산업은 카지노(내국인 출입 카지노·외국인 전용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 등 총 6개 업종이 허용되고 있다. 업종별 시설은 강원랜드 1개소, 외국인 전용 카지노 16개소, 경마 3개소, 경륜 3개소, 경정 1개소 등이 있으며, 복권 12종, 체육진흥투표권 16종이 판매되고 있다.


사감위의 ‘2009 사행산업 백서’에 따르면 이들 사업의 지난해 총 매출액은 전년대비 3.3% 증가한 16조5337억원으로 집계됐다. 2002년(12조6516억원)에 비해선 30.7%(연평균 3.9%)나 늘었다.

사감위는 “2000년부터 2003년 사이 급격한 증가추세를 나타내다 2004년과 2005년 복권 매출액 감소와 불법사행산업의 확산으로 일시 감소한 이후 2009년까지 다시 지속적인 증가추세”라고 말했다.

업종별 매출액은 ▲경마 7조2865억원(전년대비 1.8%↓) ▲복권 2조4712억원(3.2%↑) ▲경륜 2조2238억원(8.4%↑) ▲체육진흥투표권 1조7590억원(10.2%↑) ▲강원랜드 1조1553억원(5.3%↑) ▲외국인 전용 카지노 9196억원(22.1%↑) ▲경정 7183억원(4.6%↑) 순이었다.

이를 세부적으로 보면 경마는 2002년을 정점으로 감소추세를 나타낸 이후 2006년 증가추세로 전환됐다. 복권은 2003년을 정점으로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으나 2009년 소폭 증가했다. 경륜은 2002년을 정점으로 감소추세를 나타낸 뒤 2007년 증가추세로 돌아섰다. 카지노와 체육진흥투표권은 각각 2000년, 2001년 이후 지속적인 증가추세다. 경정은 2006년 일시 감소한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친목목적 게임→복권→경마 등→불법도박’

이용객 수는 ▲경마 2167만5000명 ▲경륜 942만9000명 ▲경정 349만9000명 ▲강원랜드 304만5000명 ▲외국인 전용 카지노 167만6000명 순으로 나타났다. 체육진흥투표권은 총 1억7536만건이 판매됐다. 복권과 체육진흥투표권을 제외한 국내 사행산업 이용객은 2000년 1637만6000명에서 지난해 3932만4000명으로 140.1% 증가했다. 사행산업 이용객 추이는 2004년 경마 이용객 감소에 따른 일시적인 감소를 제외하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합법적인 사행산업 뿐만 아니라 불법도박도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도박산업 규모 확대와 함께 불법도박도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불법 사행산업은 합법 사행산업에 비해 도박중독, 한탕주의 등 사회적 부작용의 폐해를 야기하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

국내 불법도박의 정확한 규모는 집계된 바 없다. 다만 아주대 산학협력단이 2008년 발표한 ‘불법도박의 실태조사 및 대책 연구 보고서’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불법도박 산업의 순매출액은 약 5조3000억원으로 파악된다. 이를 경제적 규모로 환산할 경우 무려 53조원에 이른다. 유형별론 사설경마 2조6885억원, 사설경륜 1044억원, 사설경정 3888억원, 사설카지노 6조9615억원, 사행성게임장 11조5596억원, 온라인도박 32조원 등으로 추산된다.

이중 특히 인터넷상의 불법 사설경마나 경륜, 경정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폐쇄한 온라인 사설경마 사이트는 2006년 27개였지만, 지난해 225개로 8배 이상 늘었다. 국민체육공단의 불법 온라인 경륜·경정 사이트 단속건수도 2005년 47건에서 지난해 346건으로 7배나 증가했다.

사법기관의 적발 건수도 마찬가지다. 불황기에도 불구하고 불법 도박이 판을 쳤다. 경찰청의 단속 현황을 보면 불법도박의 발생 및 검거 건수는 2000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현상을 보이다 ‘바다이야기’사태가 확산되던 2006년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 정책개입이 이뤄진 이후 2007년 그 규모가 크게 감소하다 2008년부터 다시 그 건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경찰청의 불법도박 단속 현황에 따르면 2007년 7031건이었던 불법도박 검거건수는 2008년 1만849건으로 늘어난데 이어 지난해엔 무려 2만9634건으로 전년 대비 173%나 늘었다. 지난해 불법도박으로 경찰에 검거된 인원도 2007년(3만9177명)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6만5828명을 기록했다.


사감위는 “사행산업 규모가 확대되면서 덩달아 규모가 커진 불법도박은 정부의 소홀한 감시를 틈타 2년 전부터 폭증하고 있다”며 “불법 사행산업은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대규모의 세금포탈행위로 연결될 뿐더러 도박 중독 등 사회적 부작용을 야기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고 전했다.

사행산업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순기능과 역기능이다. 우선 합법적인 사행산업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지급하는 세금과 기금, 기업의 이윤, 관광객 유치로 인한 외화 획득, 여가시설 제공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또 고용창출과 소득창출, 지역사회의 경제 활성화 등의 기능도 있다.

반대로 부정적 효과도 존재한다. 개인에겐 우울증, 신체적 질병, 자살, 별거와 이혼, 가정폭력, 경제적 파산 및 사회적 고립 등을 유발한다. 가족 및 친지들에겐 경제적 및 정신적 고통을 야기한다. 사회적으론 노동에 대한 윤리의식을 무너뜨려 생산성 저하, 실업 증가와 살인, 폭력, 사기, 절도 등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가적으론 도박중독의 예방과 치료 등을 위한 재정지출 및 도박 산업관련 규제비용 투자 등을 초래한다. 우리나라의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1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도박에 한 번 중독되면 치유가 어렵고 재발이 잦아 평생에 걸친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도박중독 예방·치유 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미흡한 게 현실이다.

불법도박 단속 3만건, 검거 인원 6만5천명

전국도박피해자모임 한 관계자는 “도박은 개인의 몰락뿐 아니라 가정의 파탄과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더 이상 피해자가 늘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현재 도박중독 치유를 위한 국가기관은 사감위 산하 중독예방치유센터가 유일하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도 정부와 민간을 합쳐 연간 160억원에 불과하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중독자 33만명을 위해 연 366억원을 쓴다.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 마사회 유캔센터 등 사행산업 시행사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도박중독 상담·치료시설도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전혜숙 민주당 의원은 지난 국감에서 “도박중독은 심각한 정신 질환임에도 불구, 각종 도박중독치유 프로그램이 보건복지부와 협의가 전무하고 의료기관과의 연계가 되지 않아 부실하기 짝이 없다”며 “도박중독치유센터의 운영에 있어서도 상담 후 도박중독 정도에 따라 의료기관에서의 중점적 진료가 필요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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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