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전두환 회고록

계엄군 발포 명령 ‘입 연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근 5·18 발포 책임을 부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연내에 과거사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회고록을 통해 밝힐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말 많은 전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을 되짚어 봤다.

최근 <신동아>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 명령 책임과 관련해 “보안사령관(전 전 대통령)은 정보·수사 책임자요, 보안사령관이 청와대를 꺾고 이렇게는 (발포 명령을) 절대 못해”라고 주장했다.

[5·16 과정은?]

1931년 경남 합천서 태어난 전 전 대통령은 대구공업중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다. 육사 동기 노태우, 정호용을 만나 훗날 12·12군사반란과 5·17쿠데타를 모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4년 동안의 생도시절에 축구와 권투에 집중한 그는 학과 성적은 평균에 미치지 못해 교관들의 기대를 끌지 못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발발했던 그해 4월, 그는 육군본부 특전감실 기획과장 직무대리로 발탁되면서 군인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5·16쿠데타를 통해 그는 인생에 전기를 마련했다. 쿠데타가 발생하자 육사로 돌아가 지지 시위를 주도해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박정희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다. 당시 그는 쿠데타 주모자들인 박창암·박치옥 대령에게 “강영훈 육사 교장이 육사 장교들과 생도들에게 금족령을 내려 혁명 지지시위가 방해받고 있다”고 말하는 등 군사 쿠데타를 강력 지지했다.


이듬해인 1962년에는 하나회를 조직한다. 하나회는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박병하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된 조직으로 훗날 12·12군사반란, 5·17쿠데타를 주도하고 5·18민주화운동 진압에도 참가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 속에 1970년 육군 대령으로 진급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10·26 후일담]

10·26사건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저격당했던 사건이다. 이날 전 전 대통령은 부하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가진 합동수사본부 설치 기안을 명령하면서 전면에 등장했다. 계엄사령부 설치와 함께 그는 박 전 대통령 피살사건의 수사를 명령받았다. 같은해 11월6일 합수부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피살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계엄군법회의서 공개재판할 것을 언론에 발표했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김재규가 역적이고 배신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어야 된다고 봤다. 김재규의 동생 김항규에게도 이 같은 사정을 양해해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당시 그는 김항규에게 "나는 군 선배로서 김재규 장군은 존경하지만 국가원수에 대한 일이니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이해해 달라"라고 했다. 10·26사건 이후 그는 하나회 동기와 후배들을 규합해 군사반란을 일으킬 모의를 했다.

[12·12 자평]

1979년 12월6일 그는 육군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이 제안한 수사계획서에 의거해 반란을 실행하기로 결정한다. 엿새 후인 12월12일, 계엄사령부 합수부장으로 현장에 있던 김계원 및 계엄사령부 사령관 육군 대장 정승화 등을 내란방조죄로 체포한다.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은 보충역 이등병으로 강등당한 뒤 강제 예편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12월12일 그와 신군부는 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와 내통했으니 체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최 전 권한대행은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며 버텼다.


그러자 노태우, 최세창 등 부대에 병력출동 명령을 하면서 최 전 권한대행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결국 정 육참총장은 즉시 체포돼 감금당한다. 그는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고 군 주요 병력을 장악했다. 휴전선을 지키는 최전방의 병력마저 서슴없이 동원하는 등 대범함도 보였다.

자서전 집필 마무리 단계로 알려져
조만간 출간 예정…책 내용에 주목

그는 당시 주한미국대사 글라이스틴에 “부패를 일소한 후 병영에 복귀하겠다”고 말해 자신의 쿠데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당시 미국은 신원조회 결과 그가 공산주의자는 아닌 것이 확인되자 5·16때와는 달리 방관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 불과 이틀 만에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 차장보를 겸임했고 이듬해 4월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취임해 국내 모든 정보기관을 장악했다.

[5·18 진실은?]

1980년 5월17일 그는 노태우, 정호용 등에게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시국수습방안에 대한 찬성 의견을 주도하도록 지시함과 동시에 국무총리와 대통령에게 계엄 확대, 비상기구 설치 등을 실시하도록 강요했다. 같은 날 중앙청과 국회가 군으로 포위되고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된 상태서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이튿날인 18일에 그는 김대중, 김종필 등을 영장없이 불법 체포하고, 김영삼 등 다른 야당 인사들도 연금시켰다. 계엄 확대와 동시에 신군부는 계엄포고령 제 10호를 발표해 정치활동 금지, 휴교령, 언론 검열 등의 조치를 내렸다.

이날 전남대 학생들은 신군부의 쿠데타적 조치, 김대중 체포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였고, 시위가 거세지자 신군부는 계엄군과 공수부대를 투입해 진압했다. 다음날 시위대가 5000여명으로 늘어나자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워 시위대를 진압했다.
 

21일에는 계엄군의 발포로 수십여 명이 사망했고, 시민들은 5·18사태수습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사태수습을 하려 했지만 계엄군의 거부로 협상이 결렬됐다. 5·18 당시 상황을 둘러싸고 그는 1995년 검찰 수사 결과 정식지휘계통에 불법 개입해 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청와대 생활]

1980년 8월6일 그는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곧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한국 언론은 미국 <타임>지의 공식 보도를 통해 '전두환 장군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훗날 이는 미국 인사들의 발언을 왜곡한 오보로 밝혀지게 된다. 같은해 8월15일 최규하 전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자 8월27일 그는 대통령 후보로 단독 출마했다.


그는 8월29일 장충체육관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간접선거로 제 11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9월1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과 동시에 경제학자인 김재익을 등용한다. 김재익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입각하면서 그의 가정교사 역할을 했고, 철처한 지지 속에 군부의 간섭을 벗어나 경제정책을 펴 나갔다.

1981년에는 민주정의당에 입당해 12대 대선에도 출마 의사를 밝히고 후보로 출마한다. 헌법 개정에도 깊게 관여해 유신헌법의 6년 연임제를 7년 단임제로 바꾸고 입법부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등 형식적으로 민주화를 따르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1인 장기집권' 대신 '1당 장기집권'을 유지했다. 직선제로 개헌하지 않았다는 점이 독재에 대한 그의 의지를 반증한다.

[삼청교육대]

제5공화국 시절 그는 당시 헌법의 주요 정책강령으로 정의사회구현, 복지사회건설을 구호로 내걸었고 재임기간 물가안정, 범죄 소탕, 경제 성장, 88서울올림픽 개최, 무역 흑자 달성 등의 성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파 억압 및 인권유린 등으로 인해 국민과 민주화운동가들에게 군부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과 민주화 운동가들은 하나회 계열에 부정적인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 실세들을 권력형 부조리 혐의로 엮어 제거하면서 박정희시대를 부정과 부패, 부조리의 시대로 규정하고, 자신들은 정의사회구현을 추구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취임 초기 핵실험 및 개발을 포기했는데 원자력연구소를 한국핵연료개발공단과 강제로 통폐합시킨 뒤 에너지연구소로 개칭했다. 핵포기 이유는 12·12군사반란과 5·17쿠데타 등으로 정당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미국의 지원과 정당성 승인을 받기 위해서라고 알려진다.
 


인권탄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삼청교육대도 임기 중에 실시됐다. 삼청교육대를 통해 반체제 인사, 5·18민주화운동 참가자, 범죄자, 건달, 무직자, 노숙자 등을 잡아들여 특수훈련을 시켰다. 문제는 연행된 대다수가 전과가 없거나 초범임에도 삼청교육대 특수훈련 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아웅산테러]

임기 3년째 되던 해에 아웅산묘소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1983년 10월, 제5공화국 내각은 그를 대동하고 동남아 순방을 떠났다. 10월9일 동남아 순방 기간, 순방국 중 하나인 미얀마에서 아웅산묘소 참배 도중 북한 공작원들이 자행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함병준 대통령비서실장 등 내각의 주요 요인들이 대거 사망했다. 이후 1년여 동안 남북관계는 냉각기에 돌입했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꾸준히 추진됐다. 1984년 8월20일, 그는 남북 간 물자교역 및 경제협력 제의, 대북 기술, 물자 무상제공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군사반란, 재임기간 비화 담길 듯
5·18, 추징금 등 언급도 초미 관심

같은 해 9월20일부터 24일까지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동시 교환방문이 이뤄졌다. 1987년 4월13일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국민의 개헌과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1988년 2월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그는 “본인의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이라며 “서울올림픽이라는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 개헌 논의를 지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호헌조치는 국민들의 반발을 샀고 호헌철폐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다가 권인숙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이 겹치면서 6·10항쟁으로 번졌다. 당시 그는 5·18때와 마찬가지로 강경진압을 고려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와 미국의 민주화 수용 압박에 결국 직선제를 수용하면서 전두환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문민정부 심판]

그는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수 만명의 국민에 의해 반란죄 및 내란죄로 고발당했다. 1995년 8월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워 반란죄 및 내란죄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불기소하기에 이른다.

국민들의 반발은 거세게 일었고 당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공소시효 정지 규정을 둔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아울러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결해 검찰은 1995년 11월 말 5·18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했다.

그는 같은해 12월4일 '자신을 5·18특별법 등으로 구속한 김영삼 대통령 역시 군부세력과 연합했으니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듬해 8월26일 서울지방법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넉달 후인 12월16일 서울고등법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는다.

이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투옥 직후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 보복이자 정치 탄압'이라며 단식투쟁을 감행했다. 형 확정 후 수감생활을 하던 그는 1997년 12월22일 지역감정 해소 및 국민 대화합의 명분으로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을 받는다.

[추징금 반응은?]

1997년 재산은닉, 비자금 조성 혐의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던 그는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텼다. 그 결과 지난 2013년까지 환수금액은 533억원에 그쳤다.

이후 국회는 추징금 집행시효를 4개월 앞둔 지난 2013년 6월 시효를 2020년까지 연장시키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통과시켰고 지난달 말까지 그의 일가로부터 추징금 1136억원을 환수했다.

최근 검찰이 장남 재국씨 소유의 회사에서 미납 추징금 중 24억여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이 재국씨 소유의 (주)리브로를 상대로 낸 미납 추징금 환수 소송에서 “리브로는 국가에 7년간 24억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지난 16일 확정된 이번 판결로 리브로는 2022년까지 매년 이자를 포함해 추징금으로 3억6000만원을 국가에 갚아야 한다. 검찰은 앞서 재국씨가 보유한 출판사 시공사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해 올해 1월 추징금 56억9000여만원을 대신 변제하라는 법원의 강제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두환 가계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순자 여사와의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장남 재국씨는 출판사 시공사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장녀 효선씨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했고,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과 결혼했으나 2004년 9월 이혼했다. 윤 의원은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장녀 경아씨와 재혼했다.

차남 재용씨는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넷째 딸인 경아씨와 결혼했다가 1992년 이혼했고, 경아씨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재혼해 2명의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재용씨는 최정애씨와 재혼했고 결혼생활 15년 만에 이혼, 지난 2007년 탤런트 박상아와 다시 한 번 결혼했다. 삼남 재만씨의 부인은 이희상 전 동아원그룹 회장의 딸 윤혜씨인 것으로 알려진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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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이른바 ‘통일교 특검’이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는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지원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법을 각자 발의한 뒤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1일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법의 국회 통과)을 설(내년 2월17일) 연휴 전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치인 줄줄이 특검 수사의 초점은 정치인 개개인의 비위 여부를 넘어, 통일교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접근해 정책·인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이다. 수사선상에는 통일교 지도부와 핵심 실무 라인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이 거론된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통일교 내부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수사의 출발점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과 관련된 자료다. 윤 전 본부장은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에게 현금과 고가 물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해 통일교 본부 및 산하 단체 회계, 자금 집행 내역, 내부 문건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의 불법 지시는 없었다”며 일부 인사의 개인적 일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특검은 지도부 보고·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특검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사의 외연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광역단체장,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의원, 강선우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언론 보도에서 거론됐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성동 의원, 김규환 전 의원 등이 수사 관련 기사에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통일교와의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이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진술과 물증을 대조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인물은 전 전 장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전후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 각자 특검법 발의 후 협의키로 여야 막론 정교 유착 전모 밝혀지나 해당 의혹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경찰과 특검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실제 금품 전달 여부와 함께, 당시 전 전 장관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전 전 장관은 관련 보도 직후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 오고 있다. 같은 당의 임 전 의원 역시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 명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이나 전달 시점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 측이 “여야 정치인 다수에게 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실명이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특검이 임 전 의원을 포함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쟁점은 통일교와의 관계가 단순한 접촉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품수수로 이어졌는지다. 임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강 의원은 금품수수보다는 ‘접촉·관리 대상’ 의혹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보도된 통일교 관계자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언급에서 강 의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해당 보도들은 통일교 측이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관리하며 접근 전략을 세웠다는 의혹을 전하는 맥락에서 강 의원을 언급했다. 현재까지 강 의원과 관련해 현금이나 물품 제공 정황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없다. 그는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노 전 실장 역시 통일교 인사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문건에서 이름이 언급됐다는 언론 보도로 연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통일교가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 인사’로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노 전 실장 측은 통일교와의 불법적 관계나 금품수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 의원이 통일교 특검 국면에서 가장 무겁게 거론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또는 현금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권력 과시 여야 통일? 쟁점은 자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정치자금으로 신고됐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권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통일교 측이 관리·접촉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인 명단 관련 보도에서 이름이 등장했다. 그의 경우도 구체적인 금품 전달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보다는,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접점 인사’로 분류됐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의 실질적 연결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공통적인 흐름이 드러난다. 2018년 전후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로비를 담당하는 실무·재정 라인이 가동됐다는 진술이 나오고, 2022년 이후 통일교 지도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정치권 접촉 내역이 재조명됐다. 2024~2025년에는 경찰 수사와 특검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 고위 인사 진술, 녹취, 내부 문건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며 정치인 실명 보도가 잇따랐다. 의혹의 유형을 나누면 세 가지로 첫째, 전재수·권성동처럼 현금 또는 정치자금 성격을 띤 자금 제공 의혹이 직접 제기된 경우다. 둘째, 임종성처럼 통일교 측 진술에서 ‘자금 전달 대상’으로 언급됐으나 구체성이 아직 부족한 경우다. 셋째, 강선우·노영민·김규환처럼 통일교 내부 녹취나 문건에서 ‘접촉·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경우다. 특검은 이 세 유형을 종합해 통일교의 정치권 접근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계획적·조직적이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특검의 법적 판단은 몇 가지 체크 리스트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자금 또는 물품이 실제로 정치인 또는 그 측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물증(계좌 흐름, 현금 출처, 구매 내역)이 확보되는지 여부다. 줬다는데 안 받았다 또 해당 정치인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나 편의 제공 요구가 있었는지, 즉 대가성이 입증되는지다. 이어 자금이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통일교 지도부 또는 조직의 승인·묵인 아래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 정치자금으로 볼 경우 신고 누락이 있었는지, 뇌물로 볼 경우, 공소시효와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통일교 특검에서 거론된 정치인들과 관련한 보도는 모두 ‘의혹 제기’ 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특검이 이 사안을 개별 정치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종교단체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장기적 로비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소환과 기소 여부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특검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고가 선물 수수 의혹이다. 통일교 측이 명품 가방과 귀금속 등을 전달하며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안은 정치인 대상 로비와는 별도의 트랙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동일한 자금·조직 라인을 활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며,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고 있다. 특검이 들여다보는 ‘로비 방식’은 전통적인 봉투 전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교 및 연계 단체들은 국제회의, 평화 포럼, ‘평화대사’ 위촉 행사 등을 통해 정치인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식 행사 뒤편에서 현금·물품 제공이나 정치적 대가성 요구가 있었는지다. 특검은 행사 전후 일정, 면담 기록, 수행 인력 동선, 통신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접촉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상 신고되지 않은 후원이거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여야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장 관리에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하나같이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 레퍼토리 반복···한 입서 나온 증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불법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은 힘을 잃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검의 성패가 ‘대가성 입증’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친분 관계나 종교 행사 참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금품 제공과 구체적 직무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 문제도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이 초기부터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교 특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돼온 ‘종교-정치 유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사가 개인 처벌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통일교 특검이 던진 질문은 “정치가 누구의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였느냐?”다. 특검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그 결과가 한국 정치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핵심 피고인·피의자로는 통일교 지도부(한학자 총재)와 통일교 고위 간부(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한 언론은 특별검사팀 발표를 인용해 한 총재가 통일교 자금의 유용 및 증거인멸 지시,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됐고, 김건희(전 영부인)씨 및 권 의원(국민의힘)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자금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 2022년 7월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기관 주장’으로 적시돼있으며, 당사자들은 부인 취지 입장을 밝혀왔다. 로비 자금의 ‘규모’ 논란을 키운 장면은 통일교 핵심 시설(가평 천정궁) 압수수색 과정에서 거액 현금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MBC>는 특검 압수수색 당시 한학자 총재 개인 금고에서 외화 포함 약 280억원 상당 현금이 확인됐다며, 이 돈이 통일교 회계와 별개로 관리된 자금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 로비 자금’ 의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전후 ‘정치 후원금’ 형태의 지원 의혹으로는, 법정 진술을 인용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백경현(경기 구리시장), 김진태(강원도지사) 등의 이름과 액수가 거론됐다고 알려졌다. 또 나온 김건희 통일교 로비 의혹의 ‘작동 방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산하·연계 조직의 외피를 통한 접점 확보다. 예컨대 UPF(천주평화연합) 같은 NGO 성격 단체가 각종 국제 행사(월드서밋 등)를 주최하고, ‘평화대사’ 위촉 등으로 정치인·지자체 관계자·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UPF가 권역을 나눠 주요 인사를 접촉·관리하는 구조였다는 의혹을 전하며, 자금 집행과 조직적 접촉이 실제 정치자금 제공이나 청탁과 연결됐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