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 1996년 vs 2016년 정치권 권력지형 막전막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달라진 게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1996년 5월부터 20년이 흐른 현재까지 한국 정치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각 당의 공천을 둘러싼 암투, 총선 결과를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 정국 주도권을 위한 무분별한 의원 영입 등 2016년 5월 한국 정치는 답보상태다. <일요시사>는 1996년과 2016년의 권력 지형을 비교해 봤다.

 

지난 4월13일 제20대 총선이 열렸다. 정치권의 예상을 뒤엎고 여소야대 국면이 그려지면서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1996년과 2016년의 상황의 공통점은 집권당이 보수라는 점과 두 대통령 모두 국회 의석수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를 1년 7개월 남겨둔 상태에서 본인의 지지기반인 신한국당의 제1당 및 과반수 의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임기를 1년7개월여 남긴 현 상태에서 국정 운영의 힘을 받기 위해선 새누리당이 다수석을 차지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1996 김영삼
2016 박근혜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김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각각 15대와 20대 총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박 대통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총선 개입 의혹을 강하게 받았다. 지난 4월8일 박 대통령은 청주, 전북 등 여야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지역에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청주에서 “이번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20대 국회는 확 변모되기를 여러분과 함께 기원하겠다”며 국회심판론에 불을 지폈다.

당시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민생법안 처리에 발목을 잡고 있던 야당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박 대통령은 총선 하루 전인 지난 4월12일에도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는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 한다”고 말해 다시 한 번 19대 국회에 대한 심판론을 언급했다. 20년 전에도 대통령의 총선 개입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여당인 신한국당 총재를 겸했던 김 전 대통령은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수시로 수도권 경합지역에 출마한 자당 후보들에게 전화를 걸어 독려하고 부진한 후보에게는 ‘이거밖에 못하나’며 호되게 혼을 낸 것으로 알려진다. 대통령이자 신한국당의 총재를 겸직했던 김 전 대통령의 지원은 당시 신한국당에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대통령들이 총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려는 데는 의석수가 국정 운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회 의결정족수인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다른 당의 동의 없이도 법안을 처리할 수 있어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여소야대·3당구도·공천파동 유사
20년 동안 돌고 돌아 도로 제자리

20대 총선과 15대 총선은 공천 개입뿐 아니라 여소야대의 국면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을 보인다. 15대 국회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299석 중 139석을 차지하면서 제 1당의 자리에 올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재로 있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은 79석을 확보해 제1야당의 자리를 지켰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이끈 자민련의 경우 50석을 차지했다. 이어 통합민주당은 15석을 차지했다. 신한국당이 제1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각각 여당 139석, 야당 144석을 차지해 여소야대 국면이 형성된 것이다.
또한 20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15대 총선은 제3당 원내교섭단체가 꾸려졌다.

자민련은 충청에 지지기반을 둔 정당이고 국민의당은 호남에 지지기반을 둔 정당이라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15대 국회의 ‘신한국당-국민회의-자민련’과 20대 국회의 ‘새누리-더민주-국민의당’의 1여 2야의 구도는 동일하다. 또한 제1당이 전체 의석수의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3번째 정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도 같다.

훗날 15대 총선 이후 신한국당은 당시 무소속 의원과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을 영입하면서 무리하게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20대 총선에서는 더민주가 123석, 새누리 122석, 국민의당 38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새누리가 탈당했던 무소속 의원들을 복당시킨다 하더라도 과반의석을 차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즉 상호 견제가 가능한 3당 구도가 펼쳐진 것이다. 15대 총선에서는 신한국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면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저항 없이 신한국당의 의도대로 의회를 꾸려나갔지만 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의 의중에 따라 의회의 판도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공천 파동은
계속 된다

20대 총선에서는 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파동의 중심에 있었다. 전권을 휘두른 이 위원장은 김무성 대표의 상향식 공천을 뒤로 한 채 비박계 그 중에서도 친 유승민계를 대거 솎아냈다.

공천 파동은 새누리당 20대 국회 선거 결과에도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쳤고 더불어민주당도 이에 자유롭지 못했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배치시킨 이른바 ‘셀프 공천’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김 대표는 셀프 공천뿐 아니라 정청래 의원을 탈락시킨 데 이어 친노 좌장으로 불리는 이해찬 의원도 배제시켜 공천 파동을 촉발시켰다.
 

이 위원장과 김 대표는 각각 유 의원과 이 의원의 공천 배제 논란에 대해서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윗선의 '콜' 없이는 행해지기 어려운 공천이라는 평가다. 특히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새누리당 출신의 유승민, 장제원 의원과 더민주 출신의 이해찬, 홍의락 의원 등이 대거 여의도에 재입성하면서 양당은 무리한 공천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20년 전에도 공천을 둘러싼 파동이 있었는데 15대 총선이 있기 한 달여 전, 국민회의에 호남 현역의원 가운데 공천 탈락자 상당수가 반발한 것이다. 일부 탈락자나 지지자는 당시 김대중 총재의 자택까지 몰려가 항의하기도 했다.

당시 국민회의에서 공천 탈락한 유준상 의원은 당 지도부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반발했고 최낙도, 유인학 의원 등도 무소속 출마를 검토해 공천 휴유증을 겪었다.

차기대선 ‘씨 마른’ 여권…날개 단 야권
더민주-국민의당 연합? DJP연합 재현?

공천 파동 속에 진행된 이번 20대 총선서 눈에 띄는 점은 지역주의 구도의 완화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인 강남을에서 김종훈 의원이 재선에 실패하며 더민주 전현희 후보에게 깃발을 내줬다. 반대로 새누리당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대구서는 수성갑에 출마한 더민주 김부겸 의원이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꺾고 31년 만에 '대구에서 당선된 야당 의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더민주도 '텃밭'이었던 호남서 단 3석에 그치면서 국민의당에 호남의 맹주 자리를 내줬다. 전북에서도 20년 만에 여권인 정운천 후보가 야당 후보를 눌렀다.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는 자신의 고향인 전남 곡성서 지역구 조정을 잃었음에도 재선에 성공해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20년 전에도 지역주의 타파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강현욱 후보와 이완구 후보는 각각 전북 군산을과 충남 청양·홍성에서 당선돼 극심한 지역주의를 다소 극복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역주의가 완벽하게 타파되지는 못했지만 지역주의가 과거에 비해 옅어졌다는 평가다.
 

이번 20대 총선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불법선거운동 문제가 대두됐다. 20대 총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인 지난 4월7일에 총선 등록후보 7명 중 1명은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대검찰청은 지난 4월5일까지 후보자 13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고, 125명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15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로 불법선거운동이 판을 쳤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현역의원 27명이 불법선거운동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식의 안일한 생각이 금품선거·흑색선전·여론조작 등 불법선거운동을 부추겼다.

당시 비슷했던
차기 대권구도

금품 수수 등 각종 파문으로 얼룩진 20대 총선 이후로 새누리당의 대권주자들은 자취를 감췄다. 김무성 전 대표는 20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대권주자에서 멀어졌고 차기 대권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던 오세훈 전 시장 역시 더민주 정세균 후보에게 패하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총선 이후 여권의 대선 후보들이 야권 대선주자들에 비해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날개를 단 모습이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나란히 대선지지율 1, 2위를 다투면서 대권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김부겸 의원 등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처럼 20대 총선 이후 야권의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이 대부분 상승하면서 내년 대선을 향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앞서 밝혔 듯 19·20대 총선의 공통점은 총선 이듬해 대선이 있다는 점이다. 총선과 대선이 붙어 있어 총선이 대선 전초전 역할을 한다.


15·20대 총선의 공통점은 대권후보들의 난립에 있다. 15대 총선 이후 신한국당에서는 무려 9명이 대선 후보로 출마하면서 이른바 ‘신한국당 9룡’이라 불렸다. 이홍구, 이회장, 박찬종, 이수성, 최형우, 김덕룡, 이인제, 김윤환, 이한동 등 지금은 정치 2선에 물러난 이들이 당시에는 신한국당의 쟁쟁한 대선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지금 야권에서 대권 후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15·19대 대선의 차이점이 있다면 15대 대선의 경우엔 야권의 김대중 전 대통령, 이회창 전 국무총리 등이 일찌감치 대권후보로 떠오르면서 양자구도의 대결이 펼쳐졌다는 점이다.

이 전 국무총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든든한 지지와 대쪽 이미지를 바탕으로 여권의 대선 후보자로 낙점 받았다. 당시 야권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3년 대선 패배이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1995년 6월27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대승을 거두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는 구체화 됐고 같은 해 9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후 15대 총선서 새정치국민회의 비례대표 14번으로 출마했지만 13번까지만 당선돼 낙선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이 전 총리의 아들 병역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선을 몇 개월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 전 총리를 앞서게 된다.

그 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 전 총리의 대선 구도에서 이인제 전 의원의 경선 불복과 독자 출마를 감행해 여권의 분열을 야기했다. 이어 15대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DJP연합이 성사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됐다.

계파갈등 여전
이합집산 절정

이번 19대 대선은 여야 모두 확실한 대권 주자가 없는 상황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민심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야는 총선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내년 대선을 위해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이 20년 전의 신한국당처럼 정권교체라는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계파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계파 갈등은 더민주도 마찬가지다. 야권 일각에서는 정권교체를 위해 20년 전 DJP연합과 마찬가지로 더민주-국민의당 연합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고개 드는 ‘정권 10년 주기설’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정권 10년 주기설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10년마다 정권이 교체됐던 현상을 의미한다. 13대, 14대는 각각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이 10년 동안 보수정권을 이뤘고 이후 1997년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의 이회장 전 총리는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하면서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으로 진보 측에 정권을 넘겨줬다. 노무현 정부까지 10년동안 진보진영에서 정권을 이끌다가 보수정권인 17대, 18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이어 받았다.

보수에서 진보로
이제 다시 보수로?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대통령 주기가 전권 10년 주기설과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한 여론업체 본부장은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며 “유권자들의 연령대가 변하기 때문에 보수화 속성이 말했다. 이어 “보수가 장기 집권할 가능성도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의 개념보다는 누가 더 국민들에게 맞는 이미지를 주는 정당이 되는가, 안정감을 주는 정당이 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10년 주기설에 대해 한 정치 전문가는 “10년 주기라는 것은 선거가 5년마다 있기 때문에 나타난 말인데, 그보다는 사회적 흐름이 뒤바뀌는 ‘사이클’이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며 “지금은 신자유주의 이후 보수의 시대에서 진보의 시대로 약간은 변해가는 흐름에 있다”고 말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유권자들의 의식도 변해가기 때문에 시대 흐름을 탄 쪽이 이긴다고 본 것이다. <훈>
 

<기사 속 기사> 1996년 대권구도
그때 그 잠룡들은 지금…
박찬종·이회창·김종필·조순…


<경향신문>에 따르면 1997년 대선을 1년 여 앞둔 1996년 10월 대권 잠룡은 모두 13명으로 조사됐다. 보수진영의 신한국당 이회창, 박찬종, 이홍구, 이인제, 김덕룡, 김윤환, 이수성, 이한동, 최형우가 ‘신한국당 9룡’으로 대선 1년여 전부터 대권 행보를 이어갔다. 진보 진영의 새정치국민회에서는 김대중, 김상현 등이 잠재적 대권후보로 꼽혔고, 범야권 자민련의 김종필도 대권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대선 1년 앞두고 13명 물망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 여론조사 결과는 김대중·박찬종·이회창이 상위그룹을 형성했고 조순·김종필·이홍구가 뒤를 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할 자질’로 제시한 8개 항목 중 응답자의 26.8%가 ‘강력한 지도력’을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 해결능력(25%), 도덕성(14.4%), 지역감정 해소능력(14.3%), 통일을 앞당기는 능력(8.5%)이 뒤를 이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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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