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 빠진 스포츠 스타들

야구선수 축구선수 그린에 푹 빠지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사막에 위치한 와일드파이어 골프장(파72·6601야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JTBC 파운더스컵 개막을 하루 앞두고 이곳에서는 이날 프로암 행사가 열렸다. 올해 프로암에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박찬호를 비롯, 미국프로미식축구(NFL)의 카슨 파머, 래리 피츠제랄드, 마이클 플로이드, 그리고 미국프로농구(NBA)의 패트릭 패터슨 등의 스타들이 이곳을 찾았다.

박찬호 300야드 가볍게 날려
은퇴 후 골프로 우울증 극복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18)는 오전에 박찬호와 짝을 이뤄 9홀을 돌았다. 박찬호는 나머지 9홀을 장하나(24·비씨카드)와 플레이를 했다. 리디아 고는 “박찬호 선수가 워낙 장타자여서 (거리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다. 내가 두 번 가야 할 거리를 그는 한 번에 보냈다” 며 “마지막 홀에서는 내 캐디도 해주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웃었다.

힘은 여전해

박찬호는 300야드를 가볍게 날리는 장타자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야구 선수들 중에서는 대개 투수 출신들이 타자들보다 골프에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프로암 참가자들은 카트를 타고 라운드를 하지만 박찬호는 이날 리디아 고를 배려해 9홀 동안 같이 걸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특히 마지막 9번 홀에서는 박찬호가 리디아 고의 캐디를 자청하기도 했다.
박찬호는 리디아 고의 ‘세계 랭킹 1위’라고 새겨진 캐디빕을 입고 한 홀을 돌았다. 그는 프로암을 마친 뒤 “캐디백이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고 했다. 리디아 고는 최근 근황에 대해서도 전했다. 그는 “한국 나이로는 이제 20살이다. 이제는 저도 점차 나이를 먹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약간 이상한 느낌”이라며 “얼마 전 마련한 자동차로 가끔 집 근처에서 운전을 하는데 무척 재밌다”고 했다.

리디아 고는 올 초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 스포츠카를 ‘인생 첫 자동차’로 마련했다. 리디아 고는 아직 정식 면허를 탄 게 아니고 배우는 단계라 옆에 보호자가 동승해야 운전을 할 수 있다. 운전 시간에도 제한이 있다. 리디아 고는 올 시즌 각오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이 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된다”며 “메이저 대회 우승 등 많은 목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받고 싶은 상은 아무래도 ‘올해의 선수’상이다. 한 시즌 동안 가장 꾸준한 성적을 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어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메달까지 딴다면 더욱 기쁠 것”이라고 했다.


‘JTBC 파운더스 컵’에서 리디아 고와 함께 프로암 대회를 치른 박찬호가 하루 종일 많은 관심을 받은 날이 있었다. 박찬호는 3월17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와일드파이어 골프클럽에서 열린 2016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6번째 대회 ‘JTBC 파운더스 컵’ 프로암 대회에 나섰다. 박찬호는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18·뉴질랜드)와 함께 9홀, 장하나(23·BC카드)와 함께 9홀을 돌았다. 박찬호는 프로암 도중 리디아 고의 캐디 빕을 입고 리디아 고의 백을 메며 캐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류현진·차범근·신수지 소문난 골프광
은퇴 선수들 직접 자선골프대회 열기도

야구 선수였던 박찬호는 골프와도 조금 인연이 있다. LPGA 측도 박찬호와 리디아 고의 프로암 소식을 전하며 “박세리(38·하나금융그룹)가 LPGA에 한국 여자 골프 스타 바람을 일으켰다면 박찬호는 한국 메이저리그 스타들의 바람을 일으켰다”고 소개했다. 박찬호는 박세리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선구자다.

그래서인지 현재까지도 박찬호와 박세리는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박찬호는 소문난 장타자다. 첫 홀부터 티샷을 300야드 이상 날려보내 동반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좌측으로 휜 도그레그 홀인 3번 홀(385야드)에서는 과감하게 왼쪽으로 가로지르는 티샷으로 무려 345야드나 볼을 날려보냈다. 전형적인 파워 히터인 박찬호는 탄탄한 하체를 기반으로 빠르게 클럽 헤드를 끌어내리면서 최고 137마일(220㎞)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를 기록한 적이 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평균(113마일·181㎞)은 물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127마일·204㎞)보다도 빠르다. LPGA 투어 장타자로 손꼽히는 장하나는 “클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부터가 달랐다. 캐리(날아가는 거리)로만 평균 300야드 이상을 날려보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박찬호의 골프 사랑은 남다르다. 2012년 은퇴 이후 한동안 우울증을 겪었던 그는 골프 클럽을 잡으면서 컨디션을 되찾았다. 박찬호는 “화려했던 시절을 보낸 선수일수록 은퇴 이후 우울증에 걸리거나 알코올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한동안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골프’라는 집중할 거리가 생기면서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매일 9시간 연습


박찬호는 골프 안에서 야구를 한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투수는 손으로 볼을 던지고, 골퍼는 클럽을 사용해 볼을 날린다는 것이다. 박찬호는 “투수가 정확하게 볼을 던져야 타자를 아웃시킬 수 있다면 골퍼는 타깃을 향해 정확하게 볼을 날려 보내야 타수를 줄일 수 있다.

타자를 아웃시키기 위해 항상 일정한 릴리즈 포인트로 투구를 해야 하듯 골프는 일정한 루틴을 밟아야 일관된 샷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점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매니지먼트나 멘털 컨트롤이 중요하다는 점에서도 야구와 비슷하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박찬호는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고 욕심을 부리면 안타를 맞을 수 있듯이 골프도 그린에 볼을 잘 올렸더라도 과욕을 내면 버디가 보기로 바뀌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력은 3년밖에 되지 않지만 이제까지 이글을 다섯 차례나 했다. 베스트 스코어는 76타다. 박찬호는 “4개월 만에 70대 타수를 쳤지만 곧 스코어가 100타로 내려가더라. 그 뒤로 겸손함을 배웠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뿐이다. 그래서 그 과정을 만들기 위해 연습을 늘 시합처럼 한다. 그 뒤로 골프가 더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9번 홀에서 박찬호는 캐디빕(조끼)을 착용한 뒤 골프백까지 메고 리디아 고의 캐디로 변신했다. 리디아 고는 “박찬호 선수와 동반 라운드를 하다보니 첫 몇 홀은 무척 긴장돼 제대로 샷이 안 됐다. 그러나 자상한 조언과 유머 덕분에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프로인 내가 오히려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종목은 다르지만 빅리그에서 활약을 펼친 대선배와 함께한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고 말했다.

골프에 빠진 대표적인 야구 선수로는 박찬호 외에도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8 ·LA 다저스)이 있다. 류현진의 절친인 김하늘(27·하이트진로)이 “류현진 오빠는 골프를 진짜 좋아한다. 골프도 같이 치고 스크린 치거나 볼링 치거나, 만나면 운동밖에 안 한다”고 증언할 정도. 지난 2015년엔 어깨 수술 후 재활 훈련으로 인해 개최하지 못했지만, 2014년까진 시즌 후 한국에 들어와 유소년 야구 선수들을 위한 자선 골프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외에도 많은 프로 야구 선수들과 야구 감독들이 골프를 즐기고 좋아한다. 축구에선 대표적으로 차범근 전 감독, 홍명보 전 감독을 들 수 있다. 홍명보 전 감독은 축구인 자선 고려대 동문 자선 골프 대회 등을 통해 자신의 골프 실력을 유감없이 뽐낸 바 있다. 차범근 전 감독의 골프 실력도 수준급으로 알려졌다. 여자 스포츠 스타 중에선 신수지가 눈에 띈다.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인 신수지는 리듬체조 현역 은퇴 후 현재는 프로 볼링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자타 공인 스포츠 우먼이다. 신수지는 취미로 골프를 치고 있지만 처음 시작할 땐 하루에 9시간씩 골프 연습을 했다며 골프 티칭 프로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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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