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32)남조선 여행

배신자는 끝까지 처단한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고개 돌리지 말고 시선 고정하고 따라 오라우!”

석원이 그 자리에 멈추어서 남자의 얼굴을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조선말 잘 모르오?”

“그저 조금밖에는…”

남자가 거칠게 혀를 차고는 다시 일본어로 반복했다. 이어 석원이 얼른 시선을 남자의 뒤통수에 고정시켰다. 그렇게 따라가기를 잠시 후 육중한 철문 앞에 멈추었다.


이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크고 작은 방들이 복도를 가운데로 나란히 늘어선 모습이 보였다. 순간 석원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왜 그러는 게요!”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석원이 온몸에 힘을 주며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한 방의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라 했다. 열린 문 사이로 내부를 바라보자 역시 흐릿한 백열전등 아래 달랑 책상과 의자 두 개만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오!”

석원을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는 남자의 음산한 말투에 뭔가 말하려했지만 입가에서만 맴돌고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문 닫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방안을 살펴보았다. 취조실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찾아들었다.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책상 앞으로 다가섰다. 막상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 했으나 차마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여 엉거주춤한 자세로 책상을 손으로 잡고 서 있는 중에 갑자기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비명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심하게 다그치는 소리 그리고 채찍 소리 역시 어우러졌다.가만히 소리가 들려오는 벽 가까이로 다가가 귀를 밀착시켰다. 여자의 비명이 아이들의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뒤섞여 들렸고 여러 남자의 악다구니 역시 들려왔다.


순간 벽에서 얼른 떨어졌다. 아울러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다리는 절로 후들거려 서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간신히 힘을 내어 의자에 자리 잡았다. 등에서 그리고 목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그곳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지만 마음뿐이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식은땀 마냥 여러 가지 생각으로 뒤죽박죽 되어가는 중에 문이 열리며 이호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장…니…임.”

“많이 기다렸지.”

호룡을 부르는 석원의 턱이 심하게 움직였다. 호룡이 짐짓 그를 모른 체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은근하게 다가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석원이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가?”

석원이 손을 들어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을 가리켰다. 호룡이 석원이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섰다가 다시 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부장님, 어디 가세요!”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너무 시끄러워 조용히 하도록 할 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게.”

말을 마친 호룡이 마치 가지 말라고 손을 젓는 석원의 모습을 무시하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다시 석원의 귀로 악다구니와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방금 전 호룡이 곁에 있을 때는 소리가 잦아들었었는데 호룡이 방을 나서자마자 다시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다시 두려움이 밀려왔다.


잠시 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호룡이 다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일시적으로 악다구니와 비명이 잦아들었고 그저 흐느끼는 소리만 미세하게 들려왔다.

“부장님, 무슨 일인지요?”

석원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악질반동 새끼 가족들은 죽어도 싸지.”

석원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룡이 독백을 뱉어내듯 했다.

“아, 지금 왜 그러는지 그 사유를 물었었지?”


“그렇습…”

석원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마지막 각오를 다지다
여행으로 긴장감 해소

“한 악질반동 새끼가 조국의 은혜를 저버리고 도망갔다는 거야. 그래서 그 아내며 어린 자식들이 저 몹쓸 일을 당하는 거 아닌가.”

“무슨 내용인지요?”

“악질반동 새끼가 북조선 자금을 받고 일을 하기로 하였는데 돈만 먹고 튀어버렸다는구만. 그래서 그 가족들을 잡아와 고문하는 게지.”

“돈을 갚아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 사람아, 돈만이 문제가 아니지. 이미 그러한 사실을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데 그게 밖으로 흘러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여하튼 반동 놈의 가족만 안 되게 생겼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데요?”

“어떻게 되긴. 북으로 끌려가서 총살당하거나 아니면 최하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일하게 될 거야.

북조선이 다른 건 몰라도 배신하는 놈들은 절대 그냥 두지 않거든.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놈도 조만간 잡혀올 거야.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조선의 비밀 요원들이 지옥까지라도 쫓아갈 테니까.”

호룡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바로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영란이 들어서고 있었다.

“지도원 동무!”

영란의 밝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자 석원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으로부터 조그마한 외침이 눈물과 함께 흘러나왔다.

“석원 군, 왜 이래요?”

영란이 급하게 석원에게 다가섰다. 이어 부드럽게 석원의 얼굴을 손으로 쓸며 호룡을 주시했다.

“각오를 확고히 다지는 모양입니다.”

“각오라니요?”

“물론 우리 민족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각오 말입니다.”

“그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래야 나도…”

영란이 말하다 말고 석원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며 아랫도리를 슬그머니 훑었다. 그 손에 축축함이 감지되고 있었다.

“남조선에 가자고?”

“어때, 지난번 홍콩 갔을 때처럼 함께 가는 거야.”

옆에서 운전하는 석원을 바라보는 기미코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왜 그래. 함께 가기 싫어?”

“나야 당연히 가고 싶지. 그런데…”

“그런데 뭐?”

“그 놈이 눈치 챈 거 같더라고.”

“무슨 수로?”

“내가 당시 친구들과 함께 여행 다녀왔다고 했는데 그 놈이 내가 이야기했던 친구 중 한 아이와 만났던 모양이야.”

“그래서 우리 둘이 홍콩 다녀온 사실을 안다는 이야기야?”

“거기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뭔가 의심하는 눈초리더라고.”

“그러면 되었지 뭐. 함께 가는 걸로 하자고.”

말을 자른 석원이 주차시키고 문을 열고 나서자 저만치에서 오사카 항이 불빛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서 한 곳을 주시했다.

아직도 무시무시한 만경봉호가 전에 있던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그를 생각하며 순간적으로 치를 떨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바라보는 거야?”

“저 항구 말이야, 오사카 항.”

“느닷없이 오사카 항은 왜?”

석원이 답에 앞서 가까이 다가온 기미코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너무나 아늑해 보여서 그래.”

“그야 우리 고향이니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지, 고향이지 고향.”

석원이 고향을 되뇌며 며칠 전에 있었던 악몽을 떠올렸다.

영란의 손에 이끌려 또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방금 전 머물렀던 방과는 천양지차였다.

마치 호화롭기 그지없는 초일류 호텔의 객실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하고 깨끗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영란이 석원에게 바짝 다가섰다.

“왜 이런 거야?”

영란이 손을 뻗어 슬그머니 석원의 아랫도리를 다시 훑었다. 석원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다가선 영란의 머리칼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잠시 그 순간을 유지하던 영란이 천천히 석원의 몸에서 벗어나 석원의 바지를 벗기기 위해 손을 허리께로 가져갔다. 순간 석원의 다리가 꼬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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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