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경찰 '계급체계' 대해부

11만 경찰 수장이 겨우 차관급?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로 불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및 공공의 안녕을 책임지는 사명 때문에 붙여진 수식어다. 즉 경찰은 그 어떤 공무원보다 책임감이 막중하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경찰의 위상은 그렇게 높지 않다. ‘동네북’에 가까울 정도다. 이런 까닭에 대해 경찰 관계자와 학계는 "이상한 계급체계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9월14일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구파발 총기사고에 대한 질의 도중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총기 발사 시연을 요구했다. 유 의원은 이날 경찰청을 대상으로 한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구파발 총기사고가 계획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요지로 질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유 의원은 강 청장에게 모의 권총을 총기사용 지침에 따라 격발 시연을 요청했다. 강 청장은 사전에 준비된 모의 권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격발 과정을 시연했다.

장관은 파트너
차관은 밑으로

이는 공직사회에서 11만명 경찰 수장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유 의원은 강 청장에게 총기 발사 시연을 요구해 큰 논란이 됐다. 당시 여야를 막론하고 강 청장의 총기 시연은 경찰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야당 국회의원실 보좌관은 “국회의원들은 기본적으로 장관급을 파트너로 생각한다”며 “차관 정도밖에 안 되는 경찰청장은 사실상 자기 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청장에게 장난감 총 들고 ‘시연해 보라’는 것 자체가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이 경찰청장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경찰청장이 국회의원보다 급이 낮다. 국회의원은 장관급 대우를 받지만, 경찰청장은 차관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앙행정기관 직급별 정원 현황에 따르면 경찰 인력은 11만6988명으로 집계됐다. 11만명의 경찰을 거느리고 있는 경찰청장이 차관급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안 된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같은 수사기관인 검찰의 경우 전체 인력 9942명에서 차관급 49명과 장관급 1명이 있는 것과 상당한 대조를 이룬다.

국회의원들 만만한 청장 대놓고 망신주기
공직사회도 무시…기죽는 민중의 지팡이

경찰 관계자들은 강 청장의 총기 발사 시연을 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와 더불어 경찰 관계자들은 당시 강 청장의 모습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꼈다고 한다. 경찰들의 이런 박탈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은 오래 전부터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 주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는 게 내부의 오랜 소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 공무원에 비해 업무 난이도와 스트레스가 크지만 경찰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경찰의 불합리한 직급 개편에서 비롯됐다”고 덧붙였다.
 

"직급 부분을 자꾸 어렵게 풀려고 하는데요. 경찰대, 간부를 7급 경사로 임용시키고 경위 경감 통합해서 6급으로 조정해 일반직과 같이 계급은 허수고 단일 호봉으로 풀어가면 좋겠네요. 왜 계급만 많이 만들어 오를 때마다 호봉은 까여서 급여 부분에서도 손해를 보는지..."

이는 한 경찰이 경찰 내부망 게시판에 게재한 현행 경찰 계급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로 현행 경찰 계급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글이 올라오자 많은 경찰 관계자가 "공감한다"며 댓글이 이어졌다.

경찰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경찰 계급의 대대적인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 동안 학계에서도 ‘경찰계급 단계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2004년)와 ‘경찰 계급별 인력구조의 중장기적 개선방안’(2010년) 등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먼저 우리나라 경찰 계급의 변천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 경찰 계급장은 1946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7차례에 걸쳐 변경됐다. 1979년 최종적으로 경찰 계급에 대한 변경이 이루어졌으며, 현재까지 37년 동안 유지돼 왔다.

경찰 11계급
일반 9계급

경찰 공무원은 일반 행정직 공무원과 다른 계급체계를 갖고 있다. 경찰은 국가공무원 중 특정직공무원으로 분류된다. 11계급(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경정·총경·정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 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직 공무원보다 2계급이 더 많다. 통상적으로 일반 공무원은 9계급이다.

2010년 경찰의 계급별 인원을 살펴보면 전체 경찰관 10만481명 중 순경·경장·경사(7급 이하) 등 하위직 경찰관 6만5800명으로 65.4%를 차지하고 있다. 중간 간부인 경위·경감·경정(5∼6급)은 1만6693명으로 33.9%다. 경정 이하 경찰관이 전체 인력의 99.5%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고위직인 총경·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4급 이상)은 530명으로 0.5%에 불과하다. 즉 전형적인 첨탑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인력구조는 타 부처 일반 공무원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현격하다. ‘2009년 국가직 일반공무원의 경우 9-7급(경위 이하) 56.9%, 6-5급(경정∼경감) 36.4%, 4급(총경 이상) 6.7%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같은 청단위인 국세청과 비교해도 경찰의 9-7급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찰조직에서 실질적 중간 관리자인 6-5급 경우에는 국세청과 무려 6배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찰 조직의 계급별 인력 구성이 다른 부처에 비해 매우 불균형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래 전부터 경찰의 11계급을 일반직 공무원 9계급에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이 같은 하위 중심의 인력 구성으로 받게 되는 불이익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일반직 공무원보다 2단계 많은 직급 때문에 승진이 느려진다. 2008년 공무원 총 조사에 따르면 일반직 공무원의 경우 9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27년 5개월이다. 반면 경찰의 경우 순경(9급)에서 경정(5급)까지 승진하는 데 무려 35년 1개월이 소요된다.

즉 순경 입직 후 경위(7급)까지 승진하는 데 19년7개월이 걸리며, 경감(6급) 견장을 다는 데 28년 2개월이 소요된다. 일반 공무원은 9급에서 6급까지 15년 밖에 걸리지 않으며, 개인적 편차를 고려하면 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지난 2006년부터 경사 8년 근무자의 경우 자동으로 경위로 승진하는 ‘경위 승진제’가 도입·시행됐다. 경위는 일선 치안 현장에서 관리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경위 승진제로 경위 계급이 급증한 나머지 관리자와 실무자가 혼재돼 팀장급 직책에 대한 보직 갈등 및 지휘통솔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선 파출소에서 경위인 파출소장 바로 밑에 경위 순찰팀장이 있는 등의 기형적인 구조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장 지휘권 혼란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순경+경장
통합론 일어


또 대부분의 경찰관은 순경으로 입문에 평생을 근무하고도 경사(7급)로 퇴직하는 게 현실이다. ‘2005-2009년 경찰공무원과 일반직 공무원의 퇴직 시 계급현황’에 따르면 일반직 공무원은 7급 이하로 퇴직하는 경우는 26.3%인 반면, 경찰은 83.4%가 경위 이하로 퇴직한다. 심지어 경찰 내부에서는 순경 퇴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대다수 경찰은 경위까지만 승진을 하고, 경감부터는 지나친 병목현상으로 승진이 제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문제는 곧 봉급과 연금 수령액과도 연결된다. 경찰은 구조적으로 늦은 승진 때문에 일반직 공무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봉금과 연금을 받는 경향이 강하다.
 

2008년 치안정책연구소에서 나온 ‘경찰보수 현실화 방안’에 따르면, 20년 차 경찰과 일반직 공무원의 1년 기본급은 100만원까지 차이가 났다. 20년 차 경찰의 기본급이 212만원이라면 일반직 공무원은 221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 역시도 경찰은 월 평균 175만원인 반면 일반 공무원은 183만원으로 8만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거기다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으로 업무특수성의 반영 미흡, 기본급과 수당체계의 문제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경찰은 직업 특성상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난이도와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교대 근무 및 야간 근무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 또한 높은 편이다.

경찰 차관 1명 검찰 차관 49명
일반 공무원보다 승진도 어려워

이런 인사 구조 때문에 중하위직 경찰관의 근무 의욕 저하 및 지나친 승진 경쟁으로 인사철 치안 공백을 야기한다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또 경찰의 만성적 인사 적체로 직급과 계급의 불일치로 인한 지휘권 혼란 등이 현장에서 빚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계급 구조의 문제점은 경찰관 개개인의 사명감과 소명의식에 의존해 해결할 수 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며 “구조적인 문제로 경찰 계급 구조개선 및 직급의 상향 조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런 필요성을 절감한 경찰청은 경위 이하 편중의 기형적 직급 구조를 위해 ▲중간 관리자 직급 조정 ▲성과 우수자 경감 승진 ▲경사·경장 계급 통합 등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 중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계급 통합이다. 업무 내용면에서 순경과 비슷한 경장 계급을 줄이고 경정과 경감을 합쳐 업무를 경정이 담당하도록 하고 경감 계급을 없애면 9계급이 될 수 있다. 혹은 경사·경장을 통합해 하위직의 계급 단계를 축소함으로써 승진·보수·연금 등의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11만 경찰을 지휘하는 경찰청장도 일본처럼 경찰청 장관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즉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되 국무총리 하에 가칭 치안처장관이나 경찰부장관으로 격상 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것이다.

일반 공무원과
100만원 차이

신현진 한세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은 분명 거대 조직이다. 경찰 장관은 없을지언정 경찰청장에 대해 장관급 대우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 조직이 타 부처에 비해 급이 낮게 책정돼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경찰 공무원들이 불이익을 보고 있다. 세분화된 경찰 계급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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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