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불린 친박 '20대 플랜'

당대표 이주영, 원내대표 유기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총선 직후,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민의 철퇴를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당대표와 선출직 최고위원들은 패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지도부 옷을 벗었다. 결국 계파 갈등에 발목이 잡혔다는 게 정치권의 주된 분석이다. 그러나 갈등을 청산하겠다던 ‘친박-비박’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한번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일요시사>는 최근 새누리당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계파전 양상을 추적해봤다.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원인이 계파 갈등이었다는 데에는 따로 이견이 없다. ‘친박-비박’은 총선 전날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막판 ‘유승민 공천 배제’와 그로 인한 ‘옥새 파동’은 밥그릇 싸움의 절정을 보여줬다.

민심이 천심
계속되는 계파전

패배 후 민심을 깨달았다며 늦은 후회를 해봐도 기차는 떠난 뒤였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태 의원은 총선 직후의 당선인사에서 “우리 당의 훌륭한 후보들이 제대로 날개를 펴보지도 못한 채 추풍낙엽처럼 스러지는 마당에 가까스로 살아났다”며 “민심의 위대함과 무서움을 뼈아프게 깨달았다”고 평했을 정도로 결과는 참혹했다.

새누리당은 ‘환골탈태’를 약속했다. 김무성 대표와 김태호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지도부 인사들이 총선 다음날 일괄사퇴를 발표한 것이 그 증거. 같은 날 국회에서 있었던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김 전대표는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이번 총선 결과에서 있었던 참패의 모든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태호 전 최고위원은 같은 날 사퇴를 발표한 후 기자들 앞에서 “우리는 국가와 국민이 우리 새누리당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잘 들어야 한다”며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우리의 오만함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승민을 포함한 무소속 당선인들의 복당에 대해 “문호를 과감하게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친박계 선봉장의 역할을 해왔지만, 참패 앞에선 계파를 초월한 모습이었다.

이렇듯 한동안 봉합에 나설 것으로 보였던 친박-비박은 당권을 앞에 두고 다시 한 번 맞붙는 모습이다. 참회의 입장을 보인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비대위 구성이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은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알렸다. 그 과정에서 비대위원장 선출을 두고 친박계가 원유철 원내대표를 추대하면서 갈등은 재점화됐다. 김태호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자진사퇴를 알린 날 여의도 당사에서 “원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며 “당헌·당규 상 절차를 밟기 위해 전국위원회는 최대한 가까운 시일 내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비박계는 원유철 비대위 체제에 반발하고 있다. 참패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비대위원장에 앉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김무성 전 대표의 최측근인 김성태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대위는 말 그대로 잘못된 상황을 극복하고자 모든 지도체제를 날려버릴 때 만드는 것”이라며 “김 전 대표 등 다른 지도부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동반사퇴 했는데 실질적으로 최고위원회의 넘버2인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장파 모임을 표방한 ‘새누리당혁신모임’(이하 새혁모) 또한 같은 이유로 원유철 체제를 반대했다. 출범을 알린 지난 17일, 김세연·오신환·이학재·주광덕·황영철 의원 등 초기 구성원 5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물러난 지도부는 비대위원장을 추천할 명분도, 권한도 없다”며 “새로운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이 되어 비대위를 구성하고, 당의 정비와 쇄신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새혁모에는 김영우·박인숙·하태경 의원 등이 가세한 상황이다.

이처럼 비박계 및 소장파 인사들이 원유철 체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비단 총선 책임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그간 ‘수평적 당·청 관계’보다 ‘관리형 지도체제’를 주장해 온 원 원내대표의 철학을 지적한다. 수평적 당·청 관계는 김무성 전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이하 전대)에서 내건 공약사항 중 하나로, 서청원 당시 후보를 꺾는 데 원동력이 된 공약이다. 그만큼 당내에서는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다. 비박계는 이 수평적 당·청 관계가 관철되길 줄 곧 희망해왔다.

비박 원유철 반대 “그 나물에 그 밥”
이주영·이정현 출사표…최경환은?


일단 사태는 원 원내대표의 일보후퇴로 일단락됐다. 기존의 전대까지 비대위원장을 맡겠다는 입장에서 최대한 빨리 차기 원내대표를 선출해 비대위원장 자리를 넘겨준다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원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가 비대위 구성에 손을 댈 수 있다는 우려가 비박계와 새혁모에서 나온 후 내려진 결정이다. 원 원내대표는 “이 비상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이른 시간 내에 차기 원내대표를 선출해 비대위원장직을 이양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한 새혁모는 ▲비대위 구성을 위한 전국위원회 소집 반대 ▲혁신 비대위 출범을 위한 당선인 총회 소집 등을 요구했는데, 이러한 것들도 일정부분 반영돼 ‘선 당선인 총회, 후 전국위원회 소집’으로 결정됐다. 원 원내대표가 앞서 비대위원장 선출을 위한 전국위원회를 지난 22일에 열 예정이었으나, 오는 26일로 예정된 당선인 워크숍 이후로 연기할 뜻을 밝혔다.

이로써 관심은 차기 원내대표에 대한 하마평으로 넘어갔다. 최근 새누리당에서 들리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후보는 10명 내외로 좁혀진다. 김재경, 김정훈, 나경원, 심재철, 유기준, 이군현, 정진석, 홍문종 의원 등이 물망에 올라있다.

이 중 유력한 후보로는 나경원, 유기준, 홍문종 의원이 꼽힌다. 이들은 각각 수도권과 부산에서 4선에 성공한 중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 동작을에서 43.4%를 득표해 31.8%의 더불어민주당 허동준 후보를 누른 나경원 의원은 당선 직후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그는 당선인사에서 “4선 의원으로서 중앙 정치에서 맡아야 할 역할의 막중함을 잘 알고 있다”며 “4선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원내대표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 의원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는 그가 서울지역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새누리당 4선 의원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총선 책임이 친박에게 있다는 당내 여론이 있는 가운데 비박계 인사로 꼽히는 나 의원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비대위 체제
친박 독점액션?

그간 친박계의 입을 자처해왔던 홍문종 의원 또한 경기 의정부을에서 4선에 성공해 원내대표 후보로 거론된다.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이 제가 나서야 될 때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최근 출마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유기준 의원을 꼽는다.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낸 그는 앞선 후보들처럼 4선에 성공했다. 그는 당선된 직후 “선거가 끝난 지 얼마 안 되고 당이 어려워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당의 중진으로서 주어진 역할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해 출마에 뜻이 있음을 알렸다.

유 의원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입지에 있다. 대표 친박계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의 초대 총괄간사를 맡아 모임이 구성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그는 친박계 내부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박계 인사는 “유 의원이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을 잘 이끌어 왔다”며 “지도력이 있고 사람을 잘 챙긴다”고 호감을 표했다.

이들 후보들의 당선 여부는 결국 ▲계파의 세 ▲확장성이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파의 세에서 최근 친박계가 총선에서 대거 당선돼 주류 계파로 완전히 올라선 상황이다.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을 받은 것도 영향이 있지만, 민경욱·정종섭 등 청와대·정부 출신 인사들 또한 여의도 입성에 성공해 몸집이 커졌다.

친박 원내대표
당대표까지?


또 하나의 변수는 확장성이 될 전망이다. 당 내부 관계자는 “확장성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확장성이 있는 사람이 당선 확률이 높다. 더구나 총선 후에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이 되면 이제 전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르면 다음 달 하순경 새 당대표 선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시기가 늦어지면 20대 국회 개원에 맞출 수 없기 때문에 가급적 이른 시간에 선출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계파 안배를 위해 친박계 당대표, 비박계 원내대표 또는 그 반대의 상황을 예상한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당대표, 원내대표 모두 친박계가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당대표로 후보군으로 지목되는 사람은 대략 8명 정도. 그 중 가장 유력한 후보로 이주영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계파 색이 상대적으로 옅다는 이유에서다.

이 의원 또한 도전 의사를 밝혔다. 그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대표 출마를 묻는 질문에 “시대정신에 맞고 당의 요구가 있다면 소명을 거부하진 않겠다”며 “이번 총선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결국 계파 갈등에서 나왔는데 나는 그 부분에서 자유롭다”고 답했다. 이어서 그는 “당장 대권에 욕심을 내지도 않으니 당을 중립적으로 관리하기에도 적합하다”고 어필했다.

나경원·유기준·홍문종 좁혀지는 구도
유승민 복당은 전대 이후?…7월설 제기

이정현 의원 또한 당권 도전을 선언한 상태다. 이 의원은 순천시에 있는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총선결산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대표에 나서 당선되면 정말로 새누리당을 완전히 뒤바꿔놓고 싶다”며 “인치를 수직적으로, 수직을 수평적으로, 참모가 써 준 그 상식을 갖고 한 것을 철저히 국민 위주로 바꾼 시스템으로 당을 운영해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이 의원은 수차례 의사를 피력했다. 더불어 앞서 유력한 당대표 후보로 거론됐던 최경환 의원은 칩거하며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대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유승민 등 무소속 당선인들의 복당 시기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지난 19일 함께 탈당한 당원 256명과 함께 복당을 신청한 상태다. 이를 두고 계파 간에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대체로 비박계에선 ‘일괄 복당’을 승인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친박계에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혁모 소속 황영철 의원은 “유승민·윤상현 등 무소속 당선인의 복당을 일괄적으로 함께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박계에서는 아직 ‘선별 복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친박계는 유 의원의 복당이 과연 옳으냐에 대한 근본적 질문부터 시점을 늦춰야 한다는 실리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유 의원의 복당을 주저하는 사람들은 그의 복당이 이미 불붙은 친박계 책임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그간 ‘복당 불가→원칙적 허용→선별·순차 복당 고려’로 입장이 갈지자를 보여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는 상황이다. 유 의원의 복당을 반대하는 홍문종 의원은 “갑자기 살림이 궁해졌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받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쏘아붙였다.

유승민 복당에 주목
전대 후로 연기?

때문에 전대가 끝난 후인 7월로 복당을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힘을 받고 있다. 자칫 친박계 지도부 구성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생각이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정국으로 박근혜정부의 레임덕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지도부를 비박계에게 뺏기면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확실한 것은 친박계가 유 의원을 중심으로 한 비박계 결집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친박계는 그토록 원해왔던 친박계 지도부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인지 결과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들끓는 이한구 책임론

“공천 파동 없었으면 180석 가능”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무소속 조해진 의원이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쓴소리를 날렸다. 지난 21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 출연해 “이 전 위원장은 당헌·당규, 공천 룰을 모두 무시하고 궤변으로 일관했다”며 “(총선 참패에 따른) 새누리당과 정부의 불행과 위기의 씨앗”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서 그는 “(이 전 위원장이) 공천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당·정·청을 모두 위기에 빠뜨린 것”이라며 “만일 이한구 의원이 공관위원장을 맡지 않았다면 당초 예상대로 (새누리당이) 180석에 가까운 압승을 거뒀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의 공식기구에서도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 19일 새누리당 중앙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공천파동과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김무성 전 대표와 이한구 전 위원장에게 사과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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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