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파란의 4·13> ③20대 국회 계파 총정리

친박·친노 옛말…군소 전성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치는 생물이라고 흔히들 얘기한다. 해당 관점이라면, 계파는 팔·다리처럼 생물의 한 부분을 맡고 있는 기능적 요소라 해석할 수 있다. 팔·다리가 고장나면 생물이 움직일 수 없듯, 계파가 제 기능을 못하면 정치는 나아갈 수 없다. 4·13 총선을 거치면서 계파에는 ‘감수분열’이 일어났다. 과연 대한민국 정치는 어떤 진화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변화한 계파 내 구성원들을 총정리해봤다.

결과는 ‘여소야대’다. 새누리당 후보 248명 중 살아 돌아온 이는 105명에 그쳤다. 생환율은 불과 42.34%.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의 46.81%(후보 235명 중 110명 당선)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국민의당은 173명 후보에 25명 당선, 생환율 14.45%). 공천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에 유권자들이 심판을 내린 것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당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계파의 변화를 동반한다.

계파 전쟁
그 결말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지만, 여야를 통틀어 정치권에는 대략 14개의 계파가 존재한다. 그 중 새누리당 내에는 크게 친박근혜계(친박계)와 비박근혜계(비박계)로 나뉜다. 비박계 내에서도 친이명박계(친이계)와 친김무성계(친무계), 친유승민계(친유계), 그리고 범비박계가 하나의 계파로서 존재한다.

이번 총선의 당선인들 중 확실히 친박계라 볼 수 있는 인사들은 50명 내외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무소속 윤상현(인천 남을) 당선인이다. ‘욕설 파문’으로 새누리당에서 컷오프되자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던 그는 재선에 성공했다. 윤 당선인은 출마 선언 전, 칩거하며 당선 가능성을 타진해 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24일 윤 당선인은 4·13 총선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날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 간판을 내려놓고 윤상현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주민의 냉철한 심판을 받겠다”며 총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한때 ‘중진 용퇴론’으로 컷오프되는 게 아니냐는 루머에 휩싸였던 서청원(경기 화성갑) 당선인은 더민주의 김용 후보와의 대결에서 52.3%를 차지, 36.7%에 그친 김 후보를 15.6%p 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최근 친박계의 구심점으로 통하는 유기준(부산 서동) 당선인도 2위 더민주 이재강 후보를 52.2% 대 34.8%, 17.4%p 차이로 눌렀다. 한때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이한구 당시 의원과 후보군에 올랐던 이주영(경남 창원마산합포) 당선인은 65.3%로 29.1%의 더민주 박남현 후보를 36.2%p의 큰 차이로 이겼다.

그 외에도 원유철(경기 평택갑), 조원진(대구 달서병), 최경환(경북 경산), 홍문종(경기 의정부을) 등이 당선인으로 이름을 올려 건재를 과시했다. 이정현(전남 순천) 당선인은 헌정사상 최초로 여당의원 신분으로 호남에서 재선에 성공해 김부겸 당선인 못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친박계 재편
새로운 얼굴은?

반면 패배의 쓴잔을 맛봐야 했던 이들도 있다. 황우여(인천 서을) 후보는 37.9%의 표를 얻어 더민주 신동근 당선인의 45.8%에 7.9%p 격차로 고배를 들었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김희정(부산 연제) 후보 또한 더민주 김해영 당선인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김을동(서울 송파병) 후보는 더민주 남인순 당선인에 밀리며 3선에 실패했다.

‘뉴페이스’ 친박도 있다.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출신의 곽상도(대구 중남),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민경욱(인천 연수을), 행정자치부 장관이었던 정종섭(대구 동갑),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면서 최경환과 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윤상직(부산 기장), 청와대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던 추경호(대구 달성) 당선인 등은 모두 ‘진박’으로 통했던 인물들이다. 새로운 피를 영입하는 데 성공한 친박계는 이들을 중심으로 한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비박계 내 군소 계파들의 성적표는 부진하다. 한때 최대 계파를 자랑했던 친이계는 겨우 5명만이 당선돼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주호영(대구 수성을), 안상수(인천 중동강화옹진), 이철규(강원 동해삼척), 심재철(경기 안양 동안을), 정병국(경기 여주양평) 등이 그들이다. 그 중 주호영·안상수·이철규 당선인은 새누리당을 박차고 나와 무소속으로도 당선되는 저력을 보여줬다.


친무계는 당초 선전이 기대됐으나,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앞서 비박계 인사들이 공천에서 대거 컷오프됐을 때 친무계는 공천 칼바람을 피해 한때 ‘친박-김무성’ 밀약설이 나돌 정도였다.

참패 여당 재편 급물살…너도나도 줄서기
“호남이 야속해”숙제 남긴 친문계 몰락?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부산 민심은 새누리당을 외면했다. 김 대표의 측근인 박민식(부산 북강서갑), 서용교(부산 남을), 나성린(부산 진갑) 후보가 생환에 실패했다. 덕분에 새누리당은 18석의 부산 선거구 중 5곳을 더민주에 내주게 됐다. 19대 때 문재인·조경태 의원에게 내준 2곳을 뛰어 넘는 수치다. 생환에 성공한 친무계는 강석호(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김성태(서울 강서을), 김영우(경기 포천가평), 황영철(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등 부산을 제외한 곳이다.

친유계 역시 많은 수가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수장인 유승민(대구 동을) 당선인이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류성걸(대구 동갑), 권은희(대구 북갑),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후보가 줄줄이 낙선하면서 힘이 빠진 상황이다. 친박의 갖은 방해를 뚫고 4선에 성공했음에도 정치적 입지는 도리어 약화됐다고 분석하는 이유다.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친유계도 있다. 평소 유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이혜훈(서울 서초갑), 김상훈(대구 서), 김세연(부산 금정) 당선인은 재선에 성공했다.

이들을 제외한 범비박계 인사들은 선전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태(서울 양천을) 당선인은 더민주 이용선 후보를 간발의 차(2.1%p)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선거기간 중 딸의 성신여대 부정입학 의혹이 있었던 나경원(서울 동작을) 당선인은 더민주 허동준 후보를 11.9%p라는 다소 여유로운 차이로 제쳤다. 그 외에도 권성동(강원 강릉), 신상진(경기 성남 중원), 여상규(경남 사천남해하동), 이군현(경남 통영고성), 홍문표(충남 홍성예산) 등이 범비박계 당선인에 속한다.

결과적으로 친박-비박 간 계파 전쟁은 승자 없는 막장 스토리로 마무리됐다. 제1당 자리를 더민주로 내줬다는 것은 어떤 손익계산서로도 매길 수 없는 손실이다. 후폭풍으로 당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사퇴하는가 하면, 청와대에서는 박근혜정부의 국정 동력까지 걱정해야 될 지경이다. 시간에 쫓기게 된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는 조기 전당대회는 물론 조기 레임덕을 막기 위한 대책 모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조기 전대로
정상화 모색

친노무현계(친노계)는 안정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제는 당과 계파 내에서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친문재인계(친문계)는 새로 영입한 인재들까지 합쳐 약 20명 정도가 살아 돌아왔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영입작 1호인 표창원(경기 용인정) 당선인은 막바지 여당의 흔들기를 이겨내고 새누리당 이상일 후보를 13.6%p 차로 눌렀다.

문재인표 영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손혜원(서울 마포을) 당선인은 새누리당 김성동 후보를 10.3%p 차로 제쳤다. 마포을 현역이었던 정청래 의원을 제치고 공천을 받았을 당시만 해도 의문부호를 달고 있었으나, 이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결과를 냈다.
 

‘국정교과서 반대’를 진두지휘했던 도종환(충북 청주 흥덕) 당선인은 새누리당 송태영 후보를 9.2%p 차로 이겼다. 당선 직후 도 의원은 “영혼이 있는 정치, 기존의 정치와는 다른 정치, 불가능하다고 포기하지 않는 정치로 희망을 만들어 가겠다”고 소감을 남겼다.

서영교(서울 중랑갑), 진선미(서울 강동갑), 추미애(서울 광진을) 등 친문계 우먼파워도 빛났다. 각각 서 당선인은 새누리당 김진수 후보, 진 당선인은 새누리당 신동우 후보, 추 당선인은 새누리당 정준길 후보를 두 자릿수 차로 이겼다.


그 외 김경협(경기 부천 원미갑), 김태년(경기 성남 수정), 민홍철(경남 김해갑), 박남춘(인천 남동갑), 윤후덕(경기 파주갑), 홍영표(인천 부평을) 등이 당선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호남의 ‘반문정서’를 극복하지 못한 한계도 있다. 계파의 대부분이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부산·경남에 집중돼 있다. 한때 ‘정계은퇴’까지 거론하며 정치적 승부수를 걸었던 문 전 대표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은 모습. 이에 정치적 내상을 입게 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또한 향후 김종인 대표가 영입한 인사들, 즉 친김종인계(친김계) 사람들과의 계파전이 예상된다는 의견도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 과거 ‘친노-비노’의 갈등처럼 ‘친문-친김’ 간의 내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호남을 두고 엇갈렸던 두 사람이 어떤 봉합 과정을 거칠지 유권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치1번지' 종로에서 정세균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당선됨에 따라 친정세균계(친정계) 또한 힘을 받게 됐다. 앞서 문재인 체제에서 김종인 체제로 바뀌면서 정세균계 인사들이 공천에서 대거 컷오프 당해 세가 반 토막난 바 있다. 실제 광주지역 탈당 바람에도 끝까지 당을 지켰던 강기정 의원을 비롯해 전병헌, 이미경, 오영식 의원 등 많은 수의 친정계 인사들이 공천에서 배제됐다.

주가 뛰는 안철수 사람들
손학규·김한길계도 주목

그러나 살아남은 친정계 인사들은 선전했다는 평이다. 대체적으로 정치권은 해당 계파에서 6명의 당선인을 배출했다고 본다. 김상희(경기 부천 소사), 김영주(서울 영등포갑), 박병석(대전 서갑), 백재현(경기 광명갑), 안규백(서울 동대문갑), 이원욱(경기 화성을) 등이 그들이다.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친안희정계(친안계)는 4명의 당선인을 배출하며 신생 계파로서 입지를 다졌다. 박완주(충남 천안을) 당선인은 새누리당 최민기 후보를 23.7%p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충남 정무부지사를 지내며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함께 충남도정을 이끈 김종민(충남 논산계룡금산) 당선인은 ‘피닉제’ 새누리당 이인제 후보에게 단 1%p 차로 신승을 거뒀다.

충남도 정무특보를 지낸 정재호(경기 고양을) 당선인 또한 42.3%로 새누리당 김태원 후보와 1%p 차이로 당선됐다. 충남도 비서실장을 지낸 조승래(대전 유성갑) 당선인은 48.3%의 표를 얻어 새누리당 진동규 후보를 14.6%p 차로 앞질러 국회로 향했다.

손실도 있었다. 친안계 중 핵심으로 꼽히는 박수현(충남 공주부여청양), 나소열(충남 보령서천) 후보가 각각 새누리당 정진석, 김태흠 당선인에게 석패했다. 그 외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원혜영(경기 부천 오정), 강창일(제주갑), 한정애(서울 강서병) 등이 당선됐다.

비노무현계(비노계)는 날개를 달았다. 당초 친노계와의 갈등으로 파생된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 제3당으로서의 가능성을 높였다.

친안철수계는 보이는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됐다. 국민의당의 전략 성공으로 안철수 대표의 주가가 뛰어 자연스레 계파의 입지도 넓어졌다. 지역구 당선인은 송기석(광주 서갑) 등으로 그 수가 한정되지만, 비례대표에서 친안철수계가 대거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정당투표에서 더민주를 26.74% 대 25.54%로 앞섰다.

반면, 친김한길계는 타격을 입게 됐다. “야권통합 없이 총선승리는 없다”며 안 대표에게 날을 세웠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또한 수장의 이른 불출마 선언으로 의원직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20대 국회에서의 영향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선인을 보면, 더민주의 노웅래(서울 마포갑), 이상민(대전 유성을)과 국민의당의 김관영(전북 군산), 주승용(전남 여수을) 등이 있다.

친문 호남 완패
풀지 못한 숙제

친손학규계는 비노진영 중 가장 성공한 계파가 됐다. 양승조(충남 천안병), 오제세(충북 청주 서원), 우원식(서울 노원을), 이개호(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등과 국민의당으로 옮긴 김동철(광주 광산갑) 당선인이 여의도로 향했다.

계파 구성원의 선전으로 수장인 손학규 전 고문의 입지도 함께 높아졌다. 손 전 고문은 정계를 은퇴한 상황이지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주된 관측이다. 계파 구성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 격려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최측근인 송태호 동아시아미래재단 이사장을 유세현장에 보내는 등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만 봐도 대선 전으로 복귀가 예상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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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