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계약 위반 혐의로 피소 당한 이준기 사건을 통해 본 연예계 계약불감증

“잘 키워줬더니…”

최근 연예계엔 계약 위반 여부를 둘러싼 소송이나 분쟁이 하루도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연예계에 ‘계약 불감증’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계약은 연예인의 활동을 규정하는 법적 약속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강제성을 지니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연예 기획사 전속, 드라마 및 영화 출연, 음반 발매, CF 출연 등 연예계 전방위에서 계약 경시 풍조가 발견되고 있다. 계약 기간이 분명히 남아 있음에도 새로운 계약을 맺는가 하면, 계약이 본격적으로 발효하기도 전에 종전 계약을 무시하는 계약을 맺기도 한다. 계약의 ‘법적 구속력’을 너무도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다. 몇몇 연예인은 계약이 법적 구속력을 지녔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르는 듯 행동하기도 한다.
배우 이준기가 소속사로부터 전속계약 위반 혐의로 피소를 당해 법적공방이 불가피하다.
지난달 9월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따르면 이준기의 소속사 측은 “이준기와 매니저 K씨가 무단 계약 및 활동을 하고 회사 몰래 수익금을 빼돌렸다”며 5억원 상당의 소송을 제기했다.
소속사 측은 “이준기는 2004년 5월부터 만 5년간 타사나 제3자를 위한 연예활동 혹은 이와 관련, 계약을 할 수 없다. 하지만 K씨와 공동 출자한 매니지먼트사를 세우고 몰래 출연하는 등 계약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이어 “이준기와 K씨가 이런 과정에서 수익금으로 10억원을 착복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우선 손해배상 일부로 5억원을 배상금으로 청구하라”고 주장했다.
소속사 측은 또 “남은 전속 계약기간에 방송 출연과 연예활동을 금지해야 하며, 이준기와 K씨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연예활동을 금지하는 가처분이나 형사 고발을 진행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준기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최근의 심경을 고백했다. 이준기는 지난달 9월28일 오후 미니홈피에 ‘대만 가족들께… 그리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우리가족(팬)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만 들린 오늘이네요. 미안해요”라며 “저 자신에 대한 믿음에 조금의 의심도 갖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현명하게 잘 대처할 테니 마음 다치지 않길 바래요”라고 말했다.
한편, 이준기 측은 지난달 2월 매니지먼트사에 계약 해지 소송을 제기했으며, 지난달 6월에는 소속사가 이준기에게 상당한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고소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진실을 향한 서로간의 첨예한 입장차이가 어떻게 좁혀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연예계에 만연한 계약 불감증과 계약 경시 풍조의 배경엔 지나치게 커진 연예계 스타의 위상이 있다. ‘스타 캐스팅=흥행’이라는 함수 관계가 대체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드라마나 영화 제작에 ‘스타 시스템’이 주류로 자리 잡게 되고, 스타 연예인의 위상이 극단적으로 높아지는 ‘스타만능주의’의 병폐로 이어진 것이다.
연예인들과 소속사 간 분쟁은 대체로 ‘해 준 게 뭐가 있느냐’와 ‘계약을 파기했으니 위약금을 물어내라’는 두 가지 주장으로 맞선다. 제각기 다양한 주장들 만큼이나 법정 분쟁시에도 각 케이스 별로 승자가 엇갈린다.
스타들은 몸값 급상승 효과를 즐기는 한편으로, 계약 자체도 가볍게 여기게 됐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몸값은 종전 계약 파기에 대한 위약금을 치르고도 남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연예 기획사나 영화 또는 드라마 제작사는 위약금 이상의 몸값을 제시하며 스타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계약의 법적 구속력은 무의미한 휴지조각이 되곤 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계약 당사자간의 감정 싸움은 추악하기 그지없이 펼쳐져 연예계의 구조적 후진성을 드러낸다. 사소한 부분에 대한 흠집 잡기부터 사생활에 대한 공격까지 이어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미지 실추로 인한 상품성 손상, 신뢰도 추락, 생명력 단축 등의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된다.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은 억울하다고 볼멘 소리다.
가요계에서 신인의 경우 평균 계약 연수는 5년. 계약 효력의 발생 시점은 기획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체결 순간부터다. 그렇게 되면 5년 동안 출시할 수 있는 음반은 많아야 3~4장. 결국 가수가 한참 빛을 보기 시작할 무렵 재개약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
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10년 계약을 한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계약의 세부 조건으로 연예인과 기획사가 사전에 충분이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장을 찍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연기자 기획사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발생 이익을 5대5로 나누는 것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3년 정도 걸려 어렵게 얼굴을 알리게 만들었을 때쯤 벌써부터 다른 기획사들이 물밑 접촉을 시도한다는 것.
더 큰 문제는 연예인은 기획사를 옮겨야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인 때부터 모습을 보아온 원제작자에게는 하기 싫은 스케줄을 빼 달라거나 사소한 것에 대해 나은 대우를 요구하는 것 등이 쉽지 않으나 스타급에 올라 거처를 옮기면 부담 없이 요청할 수 있다.
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잘못된 계약 관행은 고쳐지는 것이 옳다. 그보다 이 바닥의 관행을 사전에 연예인에게 충분히 숙지 시켜주고, 활동을 하면서도 많은 대화를 통해 상호 오해를 만들지 않는 경영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연예계에 계약불감증이 만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연예계의 계약 관행의 후진성을 들 수 있다. 계약서 조항이 애매모호하게 구성되는 부분이 많아 해석 여부에 따라 다양하게 파악될 수 있다. 계약 기간에 대한 부분도 확실히 명시되지 않기에 이를 악용할 여지도 충분하다. 또한 계약 내용의 상당 부분을 구두 합의로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어 계약을 둘러싼 분쟁의 소지는 계약 순간부터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는 형편이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가 우후죽순처럼 많아진 점도 계약 경시 풍조의 이유가 되고 있다. 몇몇 제작사는 충분한 제작 여건을 지니지 않은 채로 일단 스타부터 잡고 보자는 심산으로 계약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제작이 무산되면 해당 스타는 가볍게 계약금을 챙긴다. 계약을 우습게 여기는 상황이 된다.
계약 불감증에 대한 대안으로 연예계 일각에선 표준계약서 도입의 추진 움직임이 있다.
방송사, 영화 및 드라마 제작사, 연예 기획사 등 연예 관계자들이 이해관계를 포괄할 수 있는 공통의 기본 계약서를 만들자는 움직임이다. 문제시 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방지하고, 계약 당사자들이 약간의 조항을 조정 및 추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치솟은 스타들의 몸값 억제에 대한 점도 표준계약서 도입 논의에 포함돼 있다.
김태희 문근영 등이 소속된 연예 기획사 나무엑터스의 한 관계자는 “최근 연예계의 스타만능주의와 계약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연예 관계자가 뜻을 모아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상이한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하기에 다소 손해를 본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양보와 조절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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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