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전쟁…국민들‘뿔’났다 (3) 가공식품의 위험 바로 알기

멜라민이 함유된 중국산 분유의 불똥이 식품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과자에서 줄줄이 멜라민이 검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2006년 KBS에서 과자의 위험성에 대해 방송한 이후 일어난 ‘과자파동’ 만큼이나 그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믿었던 유명 식품사의 과자에서까지 멜라민이 발견되면서 충격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리고 이는 가공식품 전반의 위험성으로 번지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뭘 먹고 살아야 하나’란 한숨 섞인 탄식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세태를 조명했다.

“제2, 제3의 과자파동 또 터질 수 있다”

멜라민 파동으로 세계가 시끌시끌하다. 중국산 분유에서 그칠 줄 알았던 이번 파동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과자, 커피 등으로 번지면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처럼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먹거리 파동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와 장을 보는 주부들의 손길을 주춤하게 만든다. 특히 이번 멜라민 파동은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과자 등 가공식품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부모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06년 과자파동
다시 한번 일어날 조짐
아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에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성분이 들어있다는 결과가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6년 일어난 ‘과자파동’으로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린 바 있다.
2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과자파동의 시초는 KBS ‘추적60분’이 과자의 위험성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면서부터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과자 속에 들어가는 색소, 방부제, 조미료와 같은 첨가물이 아토피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 방송에서는 과자로 인해 아토피가 더욱 악화됐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직접 나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와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먹였던 과자들이 위험한 식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공장에서 만들어진 과자를 먹이지 말자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결과로 과자매출이 급감하는 현상과 ‘홈 메이드 쿠키 열풍’이 함께 불기도 했다. ‘내 아이가 먹을 것은 내 손으로 만들자’는 구호아래 과자 만들기 교실 등이 우후죽순 생기고 과자 굽기에 필요한 오븐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또 잊혀졌던 한과 등의 과자와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떡 등의 간식거리가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에 기름을 부은 것은 책 한 권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과자 회사에서 16년간 근무하다가 과자의 위험성을 직접 체험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과자공장의 비밀을 공개한 안병수 소장(후델식품건강연구소)이다.
그는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라는 저서를 통해 위험천만한 과자와 가공식품의 위험성을 파헤쳤다. 이 책은 가공식품이 아이의 몸을 망칠 뿐만 아니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청소년 범죄 등의 정신장애를 일으키고, 선천성 장애아 출산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식품회사 이익과 소비자 이익이란 운명적인 엇박자 사이에서 우리와 우리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소비자뿐이란 사실을 기억해내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당시 과자파동과 함께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극에 달하게 했던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발 멜라민 파동으로 2년 전 ‘과자파동’ 다시 일어날 조짐
건강 해치는 식품첨가물 들어있는 가공식품 또 한번 집중조명

▲ 세기의 최고 걸작 ‘라면’ = 인스턴트의 가장 큰 문제는 여러 종류의 첨가물을 한꺼번에 섭취하도록 고안된 점이다. 라면의 원료는 열처리 과정을 거친 ‘흰 밀가루’와 ‘첨가물’이다. 라면에 쓰이는 고열처리된 탄수화물은 입자가 작고 성글어서 소화흡수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혈당치를 급속히 증가시켜 우리 몸의 인슐린 분비 세포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 식품이 아닌 식품인 ‘정크푸드, 스낵’ = 영양가는 없으면서 적은 양으로도 혈당치를 급상승시키고 공복감을 해소시키는 정크푸드. 이런 식품을 지속적으로 탐닉하면 결국 혈당 관리시스템에 빨간 불이 켜지고 만다.
 
가공식품의 무서운 실체
각종 생활습관병 만들어
▲ 충치는 빙산의 일각 ‘캔디’ = 캔디에 들어 있는 설탕과 정제물엿은 당 대사 기능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경화시킨 유지와 첨가물을 동시에 섭취하면 그 유해성은 더욱 커진다. 캔디야말로 영양분이 전혀 없는 정제당 70%와 향료, 색소, 유화제, 가소제, 향 보조제 등 첨가물 30%가 주원료다. 오직 문제 있는 물질로만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입 청소에 가려진 껌의 진짜 모습= 껌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합성물질인 껌베이스와 일반식품에 비해 향료사용 비율은 10배를 넘는다. 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에 0.1g이나 들어가는 향료다. 향료는 ppt(1조분의 1)단위에서도 활성화하는데 체중 50kg인 사람이 껌 하나를 씹으면 향료의 체내 농도는 무려 2백만ppt에 이른다.
▲ 양의 탈 쓴 이리 ‘아이스크림’ = 물과 기름을 섞어 만드는 아이스크림에 반드시 필요한 유화제는 발암물질을 비롯한 각종 유해성분을 체액에 섞이도록 돕는다. 당류와 지방질 원료가 다량 사용된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향료와 색소, 안정제, 인공감미료 등 유해 첨가물 투성이기 때문이다.
▲ 아메리칸 사료 ‘패스트푸드’ = 패스트푸드의 문제는 첨가물이란 것과 높은 지방 함량 때문에 생기는 고칼로리 등 두 가지다. 하지만 고칼로리보다 더욱 해로운 것은 튀김과정에서 함유되는 트랜스지방산이다.
▲ 허울 좋은 너울 ‘가공치즈와 버터’ = 물성을 좋게 하기 위해 유화제를 넣고 맛을 위해 조미료나 향료를 넣고, 거기에 색소와 보존료까지 넣은 가공치즈. 가공치즈에는 조미료와 향, 색소, 보존료 등 첨가물 투성이다.
▲가장 위험한 것 ‘햄과 소시지’= 햄과 소시지는 바로 ‘아질산나트륨’이 들어 있다. 아질산나트륨이 육류라면 반드시 ‘아민’ 성분과 결합해 니트로사민을 만드는 게 문제다. 동물실험에 따르면 니트로사민 0.3마이크로그램을 단 한번 투여했더니, 간암이나 폐암이 유발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노란 우유 ‘가공유’=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바나나 우유에도 바나나는 없다. 그 깊숙한 바나나 맛을 내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 향료 속에 뇌 활동을 왜곡하는 물질, 호르몬 교란 물질, 알레르기 유발 물질들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단맛은 액상과당과 백설탕으로, 노란색은 치자황색소로, 바나나 맛은 바나나 향으로 낸다. 일본 ‘식품첨가물평가일람’은 치자황색소를 ‘위험등급 3급’첨가물로 분류한다.
▲액체사탕 ‘청량음료’ = 콜라의 유해성이 두려워 사이다를 대신 선택했다면 이는 ‘호랑이를 피하기 위해 늑대 굴로 들어서는 격’이다. 액상과당, 탄산가스, 인산, 향료 등을 주원료로 하는 청량음료가 비만의 원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인산 성분이 아이들의 정신건강까지 위협하는 행동 독리학상의 물질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가의 청량음료 ‘드링크류’ = 피로회복제로 알고 있는 드링크 제품은 정제당과 향료로 맛을 내고 각성물질이나 방부제와 같은 해로운 성분을 첨가해 만든 고가의 청량음료일 뿐이다. 드링크류의 경우 카페인 못지 않게 안식향산나트륨이 문제다. 개를 대상으로, 체중 1㎏당 인식향산나트륨 1g씩을 매일 투여했더니 운동이 불가능해지고 간질성 경련을 일으키더니 2백50일만에 죽음에 이르는 것이 확인됐다.
이처럼 안병수 소장은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각종 가공식품의 위험성을 고발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책에서 밝힌 가공식품의 위험성은 하루 종일 가공식품에 노출되어 있는 많은 이들을 긴장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잊혀졌던 과자의 위험성, 멜라민 파동으로 다시 불거져
세계적인 식품업체 제품도 위험해 소비자 불안감 커져

그러나 이 같은 파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금세 잊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특성은 과자파동에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또 그해 제과업체들이 과자에 들어간 식품 첨가물이 아토피성 피부염을 유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KBS ‘추적 60분’의 보도와 관련, 제과업체가 공동으로 KBS를 상대로 수백원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과자파동은 주춤했다.
당시 롯데·오리온·크라운·해태 등 4개 제과업체가 “아토피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KBS가 마치 과자 속 첨가물을 아토피 피부염의 주범인 것처럼 보도함으로써 천문학적인 손실을 일으켰다”며 과자파동의 책임을 물었다.

세계적 식품업체도 못 믿어
“뭘 믿고 사먹어야 되나?”
그 후 많은 이들은 일상적으로 먹는 과자 등 가공식품의 위험성에 대해 잊어버렸다. 물론 업체들이 트렌스지방 등의 첨가물이 적게 들어간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사의 제품의 안정성에 대해 홍보한 것도 안심하고 과자를 먹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소비자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과자를 섭취함으로써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에 무감각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맞이한 멜라민 파동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유명식품회사에서 만든 과자에서까지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충격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다국적 식품업체인 나비스코푸드가 중국에서 생산한 리츠 샌드위치 크래커 치즈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  많은 가공식품 중 뭘 믿고 먹어야 하나’라는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리고 가공식품의 종류와 식품첨가물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제2, 제3의 식품파동은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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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