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짝 다시 모여”…민주당 권력지형 대변화


민주당에 ‘미미한’ 권력지형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계파별 세분화 얘기가 회자되고 있는 중이다. 그간 당을 장악했던 정세균 대표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쇠약해진 것이 단적인 예다. 반면 대권 도전에 실패한 추미애 의원을 비롯해 18대 총선에서 낙마했던 거물급 인사들의 ‘복귀설’이 대두되면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물론 민주당 정체성 문제를 빌미 삼아 ‘탈여의도 정치’에서 ‘여의도 정치’ 플랜을 재가동할 조짐이다. 이는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문제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김설’과 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전 장관의 ‘연말 복귀설’이 현실화되면, 민주당 권력지형에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민주당은 마치 마라톤 경주를 하는 것 같다.” 민주당 한 관계자가 던진 일침이다. 1위 그룹인 정세균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시기에 2~3위 그룹인 민주연대, 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전 장관의 ‘연말 복귀설’ 등에 온통 관심이 쏠려, 이들이 언제 ‘스퍼트’를 할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 내 현실은 2~3위 그룹에 무게가 실리는 쪽으로 급변하고 있다.

노무현, 당내 갈등 조장…권력지형 변화 예고
이런 분위기는 최근 들어 급격히 감지되고 있다. 정 대표의 최근 행보가 민주당 내 정체성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권력지형 변화에 미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권력지형 변화에 민감한 인사들은 이때부터 자신들의 ‘주군’의 행보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행보에 따라 권력지형 변화의 폭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6일 전당대회를 통해 정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386 인사를 중심으로 정동영계, 구민주계 등은 단일대오를 형성,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몸을 낮춰왔다. 심지어 민주당 내 각 계파들이 와해됐다는 말까지 회자됐을 정도다.

또한 정 대표는 당권 장악 이후 당내 위상이 높아졌다. 민주당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 대표는 ‘측근심기’에 주력하며 당 장악을 도모했다. 게다가 한 동안 그를 중요 포스트로 보는 386계를 비롯해 손학규계, 정동영계를 등에 업고 거칠 것 없이 전진했던 것.

그러나 최근 민주당 내에서는 각 계파간의 단일대오에 대해 ‘한시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각 계파간의 계획대로 당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내 계파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내막을 알 수 있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호남 선량들과 호남표로 의원이 되겠다는 수도권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는 발언이 적잖은 파동을 예고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번 발언을 계기로 ‘곪을 대로 곪은 당내 불만이 드디어 폭발했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당내 권력지형에 미미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당을 장악하고 있는 정 대표를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견제구(?)를 던진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권력지형 대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비주류계로 손꼽히는 구민주계, 김근태계, 정동영계, 친노계 등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민주연대 등이 발족되면서 당 내 ‘미미한 변화’가 권력의 역학구도를 건드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주류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민주당 내부의 반응은 두 가지로 엇갈린다.
일단 민주당의 고질병을 해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개혁색채를 드러내 ‘정체성 논란’ 등을 잠재우고 강한 야당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게다가 10%대에 머물고 있는 민주당 지지층을 복원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반응이다.

“썩지 않게 하는 소금 역할과 함께 열매를 맺게 하는 가을 햇볕 역할도 해 달라”는 정 대표의 발언이 이를 반증한다.

반면, 비주류 인사들이 대거 활동반경을 넓힌 이상 ‘일을 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 대표 체제가 안정을 찾아가는지 여부에 따라서 민주당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 이는 정 대표의 향후 행보에 따라 이들이 큰일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주류 활동 개시 정세균 위기론 대두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내 정체성 논란이 앞으로도 계속될 경우 이들이 당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며 “최후 카드로 신당 창당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한마디로 민주당이 망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얘기다.

때문에 정치권 일부에서는 정 대표의 향후 행보가 민주당 내부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시선은 민주당 내 계파 ‘세분화’로 더욱 짙어진다. 이런 까닭에 정 대표는 표면변화보다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당내 권력지형 변화로 인해 당 입지에 ‘적신호’가 켜진 것을 ‘감’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민주연대 등 각 계파가 세분화되면 정 대표의 입지는 큰 손상을 입을 뿐 아니라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미 중립 인사로 분류됐던 김종률 의원에 대한 ‘탈당설’이 한때 나돈 것도 반정세균 체제가 미미하게 가동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귀띔했다. 이는 “민주당 앞날이 캄캄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 주변에서 ‘정동영·손학규 복귀설’, ‘김근태 여의도 정치 복귀’이 회자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손 전 대표는 수원 장안, 정 전 장관은 전주 덕진 출마설, 김 전 장관은 민주연대를 발판으로 세 불리기에 나섰다는 말이 민주당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손 전 대표와 정 전 장관은 연말을 기점으로 여의도에 복귀, 본격적인 세 불리기를 통해 내년 4월 실시예정인 재보선 지역에 출마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정 대표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했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꼼수가 있다. 정 대표를 지지했던 손학규계, 정동영계 인사들은 ‘주군’이 돌아오면 얼마든지 새로운 계파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정세균 체제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인사들은 손 전 대표가 복귀할 경우 정세균계가 아닌 손학규계로 ‘재탄생’할 소지가 높다. 게다가 반 정세균 체제 성향을 띌 것으로 보이는 민주연대에 천정배 의원의 민생정치모임 및 정동영계 인사들이 동참했지만, 정 전 장관이 복귀할 경우 이들 역시 ‘주군’의 명령을 받들 공산이 크다.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강창일·박영선·우윤근 의원,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최재성 대변인, 강기정 의원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더욱이 친노계도 독자세력을 모색하고 있고, 와해되다시피 한 구민주계도 정 대표로부터 소외된 그룹인 만큼 ‘재결집’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민주당 내부에서 반 정세균 체제가 ‘가속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도 측근들과의 교감을 통해 민주당 내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할 수도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때문일까. 민주당 내부에서는 ‘헌신짝들이 모여 또 다른 헌신짝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새로운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재선의원은 “DJ·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에서 물러나야 된다”며 “민주당 소속이지만 민주당의 앞날에 ‘먹구름’만 잔뜩 끼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민주당 한 관계자 역시 “각 계파들이 다시 이합집산으로 ‘재탄생’될 때에는 정세균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자칫 계파가 재탄생되면 당이 쪼개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거물급 귀환 여부 관심사…분당 등 전운 감돈다
이처럼 이런저런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정 대표 체제는 출범 3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비주류의 활동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대두되면서부터다. 특히 반 정세균 체제 성향을 띈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권력지형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더욱이 손 전 지사와 정 전 장관의 조기 복기설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정 대표 체제에 이상기류가 흐를 뿐 아니라 권력지형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조짐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 권력지형 대변화를 놓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적잖은 파열음이 발생할 것으로 보여, 당 내부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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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