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권력지형 변화…‘깨지는 친이 뭉치는 친박’


한나라당 내 권력지형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친이명박계(이하 친이계)와 친박근혜계(이하 친박계)를 양대 산맥으로 하는 기본틀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친이계 내부적으로 권력을 잡은 이상득계와 소외된 이재오·정두언계 갈등 구조화 속에서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또한 친박계가 날로 세력을 넓혀가는 것도 친이계의 위기의식을 키우고 있다. 특히 초선그룹을 중심으로 ‘계파 이동’의 조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아직 판도가 뒤바뀔 것이라 단언하긴 이르지만 향후 당내 역학관계, 멀리는 차기 대권구도에도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의 거취 논란 파동을 이재오계 정두언계 세력 vs 이상득계 박근혜계의 힘겨루기로 풀이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달 16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이재오계 의원들의 홍준표 원내대표에 대한 분위기는 강경했다. 그러나 친박계 의원들은 이와 대조적으로 홍 원내대표를 적극 엄호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총선 이후 ‘주류 내 비주류’로 밀려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이재오 정두언계 의원들이 이번 추경안 사태를 맞아 홍준표 체제를 집중 공격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이상득 의원에 대한 간접 공격, 즉 친이 그룹간의 내부 다툼이라고 보고 있다.

친이재오계 진수희 의원은 “홍 원내대표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은 패배주의적 발상이고, 원내대표가 잘못을 했으면 다시 선출하는 게 상처를 치유하는 일일 뿐더러 집권당으로서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라고 거침없이 성토했다.

연이어 발언에 나선 김영우·정태근·권택기·김용태 의원 등도 홍준표 사퇴론을 주장했다.

친이계 3개 세력으로 분화
친박·이상득계 전략적 연대

홍 원내대표 사퇴론을 주장하는 친이재오계 의원 10여 명은 9월16일 저녁 모임을 갖고 “당내 새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홍 원내대표 퇴진에 의견을 모았다.

반대로 친박계는 홍 원내대표 엄호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인기·손범규·박종희·이정현 등 친박계 의원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심기일전하자며 홍 원내대표를 엄호했다.

친박계인 이정현 의원은 “한나라당을 생각해 반대했다”며 “홍 원내대표 외에 대안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의원은 의총장에서 유임론을 주장했다. 이 의원은 “사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홍 원대대표가 정권 창출에 더 기여했다”고 말했다. 사퇴론자들이 정권 창출을 이야기하면서 이 대통령의 개혁 입법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비주류인 친박계 의원들은 이번 의총에서 홍 원내대표를 적극 보호하고 나섬으로써 이상득 의원 쪽 손을 들어줬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친박계와 이상득계의 전략적 연대로 풀이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번 사퇴론의 배후로 이재오계를 주목했다. 이재오계인 권택기 의원은 “이재오계가 뜻을 모은 것은 아니다”면서 “이 문제로 따로 만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홍 원내대표 측이 이재오계가 홍 원내대표를 몰아내려 한다며 이 상황의 본말을 전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친박계나 이상득계 쪽에서는 이재오계에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주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사퇴를 주장하는 의원들을 보면 뭔가 일사불란함이 느껴진다”면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반이상득(SD)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이상득 의원 불출마 촉구의 2탄이라는 것이다. 당시 불출마를 촉구한 55명의 공천자 명단에는 사퇴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의 대부분이 포함돼 있다. 이때 불출마 촉구에 나선 한 의원 측은 “어디에서인지 모르지만 사퇴에 동조하자는 동료 의원의 전화가 왔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퇴론은 홍 원내대표를 둘러싸고 이상득계와 친박계가 단일 대오를 형성하고 반대편에 이재오·정두언계가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당 안팎에서는 이재오 전 의원의 복귀시기를 주목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의 사퇴 주장이 사전에 이 전 의원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는 것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의 사퇴 문제가 사실상 끝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정두언계에 속하는 조해진 의원은 “말 그대로 유보가 됐을 뿐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이번 홍 원내대표의 진퇴를 둘러싼 여권의 갈등이 봉합이 아니라 계파 간 힘겨루기의 전초전이라고 보고 있다. 권택기 의원은 “정권 출범 후 지금까지 참아왔다”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지금부터 한나라당내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나라당내 친이계 그룹은 이상득계·이재오계·정두언계 그리고 비주류에 속하는 친박계 등의 계파 간 힘겨루기가 이뤄질 전망이다.

한나라당 1백70여명의 의원 가운데 1백10명에 달하는 친이계 그룹 중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그룹은 이재오계다. 또 초선들을 가장 많이 장악하고 있고, 당내 주요 당직을 접수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더욱이 친이 그룹의 좌장 역할을 해온 이 전 의원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측근을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과 가까운 일부 의원들은 지난 7월 15일 ‘함께 내일로’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심재철·공성진·진수희 의원 등 17대 국회에서 이 전 의원과 함께 ‘국가발전연구회’에서 활동한 멤버들이 주축이 됐다. 이 모임에는 권택기·현경병·이춘식·정미경 초선 의원 등 40명이 넘는 친이재오계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친이계 중 이재오계가 활발
계파 확장에 나선 친박계

친이재오계 의원들은 총선 직후 미국으로 떠난 이 전 의원이 언제쯤 귀국할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전 의원이 귀국할 경우 모임의 결속력과 규모가 더 커지면서 명실상부한 당의 구심체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일각에선 “친이 계파 내부에서 이 전 의원의 귀국과 정치적 움직임을 감안한 사전 정치작업이 이미 시작됐다”는 말도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으로 막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상득계는 ‘정두언 의원 파동’ 이후 물밑 행보를 거듭하고 있지만 영향력은 오히려 커졌다는 관측이다. 당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수지만 영향력은 가장 크다는 것이 정설이다.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물러났지만 청와대 주요 비서관이 이 의원의 측근들로 채워져 있고 당내에서는 ‘상왕(上王) 정치’ ‘형님 정치’의 상징성으로 대적할 맞수가 없다는 평가다. 아울러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중심으로 박희태 대표 등 원로 그룹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당내 입지를 강화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현재 이상득 의원 주변에는 이병석 의원 등 주로 경북 출신 의원들이 포진해 있고, 친이상득계로 분류되고 있는 초선은 고승덕·이철우 의원 등이다.

정두언계는 친이재오계와 함께 ‘반 이상득 라인’을 형성하고 있지만 별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정두언 의원 등 지난 대선 기간 안국포럼에 참여했던 멤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모든 현안에서 한 발 비켜나 있으며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을 겨냥한 여러 차례의 공세를 주도했으나 이에 실패한 후 당내 입지가 좁아지면서 ‘자숙의 기간’을 갖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백성운?강승규?조해진?이춘식 의원 등 친이 직계 20여명이 ‘아레테(그리스어 ‘탁월함’이라는 의미)’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이명박식 개혁’을 국회에서 뒷받침하겠다며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친이계와 치열하게 각을 세워온 박근혜계는 친박 복당 조치 이후 차기를 관망하며 서서히 계파확장에 나서고 있다. 대략 60여명 내외의 세력을 형성한다. 그 어떤 계파보다도 결속력이 높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최근 유정복 의원이 만든 정책연구모임인 ‘선진사회연구포럼(선사연)’은 친박 의원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공부 모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친박계를 결집하는 친목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최근 복당한 친박계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는 ‘여의도 포럼’이 있다. 김무성 의원이 주축이 된 이 모임에는 박대해·김세연·정해걸·홍장표 등 친박 초선의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친박계 초선의원들은 박근혜 경선 캠프 출신인사들의 모임인 ‘엔빅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김선동·이정현·현기환·구상찬 의원 등의 초선의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친박계는 무소속 친박 인사들의 복당으로 당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초선들에 대한 흡인력도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친박계 초선 의원인 김선동 의원이 “당내에 박 전 대표를 따르고 싶어 하는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의원은 “이번 18대에서 정치권에 진입한 분들이 많은데 나 같은 경우에도 박 전대표의 비서실 부실장을 한 경력 때문에 밥이나 한 번 먹도록 주선을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며 박 전대표의 당내 위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달 4일 나경원 의원이 “요즘 당내에서 박근혜 의원 쪽으로 옮기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발언한 바와 같이, 최근 당내 박근혜 쏠림 현상을 단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최근 한나라당 내 권력지형에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친이계가 구심점 없이 원심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반면 친박계는 특유의 응집력을 바탕으로 저변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친이계 내에서 ‘계파 색’을 지우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친박계 의원들과 접촉을 늘려나가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친이’에서 ‘친박’으로
권력지형 변화 움직임

특히 변화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역은 영남권이다. 박 전 대표가 영남권 장악력이 워낙 큰 데다 이 지역에서 지난 18대 총선 때 ‘박풍’(박근혜 바람)의 위력이 집약적으로 나타났던 영향이 크다. 그만큼 영남권 친이계 내지 중도성향 의원들의 친박계로의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

박 전 대표는 최근 대구 경북 의원 모임에 적극 참여하는 등 ‘지역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5일 지역구인 대구에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과 간담회를 나눴다. 이미 오래전부터 박 전 대표의 ‘안방’격이었던 대구 경북도 ‘친박 일색’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앞서 23일에는 당내 여성 초선의원들과 만나는 등 당내 인사들과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 상대가 먼저 만나기를 청하고 박 전 대표는 그에 응하는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는 “대구 경북뿐 아니라 부산 경남도 박근혜에게 넘어간 것 같다”라는 말이 나돈다. 지난달 12일 박 전 대표가 부산을 방문했을 때 12명의 국회의원이 행사에 참석했던 일이 오르내리고 있다. 부산 경남에서는 박근혜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김무성 의원이 중심이다. 김 의원과 쌍벽을 이루었던 권철현 전 의원이 국회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부산의 정치 판도는 김 의원이 좌우하는 상황이 되었다. ‘박근혜 주가’가 오르면서 덩달아 김 의원을 만나려는 이들도 늘었다고 한다.

정치권 한 인사는 “대선 때 선진국민연대에 줄 섰던 인사들이 지금은 박 전 대표 쪽에 서려고 한다. 최근 만난 국회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어떻게 하면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더라”라고 전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흐름이 그런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국회의원들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이 오면 박 전 대표는 일정이 허락하는 한 거절하지 않고 만나고 있다”면서 “지역을 챙기는 것에 대해서는 대구 경북 지역이 특히 어려워 경제를 살리는 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정가에는 박 전 대표측이 이른바 ‘친박 인사’들을 점검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정치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친박계’를 표방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박 전 대표와 뜻을 같이하는 것인지 파악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얘기가 나도는 것 자체가 박 전 대표 측이 무언가 큰 틀을 새롭게 짜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