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시즌 눈치보는 대기업 속사정

살 떨리는 주총장 ‘예전 같지 않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지난달 17일 넥센타이어를 시작으로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가 막을 올렸다. 배당금 증액 등 주주친화 정책이 현안으로 부각된 만큼 주가부양을 위한 액면분할이나 자사주 매입 등이 안건으로 상정될 전망이다. 기존 경영진에 대한 재선임 안건이 어떻게 결정될지 지켜보는 일도 나름의 관전 포인트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3월에 주주총회 일정을 공시한 상장사는 모두 826곳. 이 가운데 77.96%에 해당하는 644곳이 11일, 18일, 25일에 주총을 실시한다. 모두 금요일이다. 특히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367곳은 오는 25일 주총을 열겠다고 신고했다. ‘주총데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매주 금요일
슈퍼주총 예고

날짜별로 살펴보면 11일에는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총이 몰려있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과 포스코의 주총도 이날 열린다. 18일에는 SK그룹 계열사와 LG그룹 계열사들이 일제히 주총을 실시한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도 이날 주총을 실시한다.

25일에는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주총을 갖는다. 이밖에 KB금융, 대림산업, 대한전선, 엔씨소프트, 팬오션, 현대홈쇼핑, NHN엔터테인먼트, LS, 코오롱, 웅진에너지, E1, 남양유업 등의 주총이 예정돼 있다.
주총의 최대 화두는 배당 확대로 귀결된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주주들의 요구대로 배당을 늘리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주당 1000원이던 배당액을 2500원으로 크게 늘렸다. 2014년 3509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1조6111억원으로 359%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라홀딩스는 배당액을 500원에서 1200원으로 늘렸고 S&T중공업도 배당금을 전년도 100원에서 200원으로 2배 증액했다고 공시했다. 이외에 SK하이닉스, 삼성정밀화학, 동아타이어, LG유플러스, 등도 배당액을 60% 이상 늘렸다.


분기배당을 고려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연 1회 중간배당이 가능하도록 규정된 정관을 변경해 매 분기배당이 가능하도록 한 안건을 11일 주총에 상정한다. 포스코와 한온시스템도 분기배당을 도입한다고 공시했다.

더욱이 ‘증권가 큰손’ 국민연금은 배당성향이 낮은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중점 관리하기로 하면서 기업들은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기금운용본부가 저배당 기업을 몰아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배당확대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내부 기준을 이미 마련하고 전담팀까지 꾸렸다. 저배당 기업을 선정해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표적대상 기업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배당 관련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거나 배당 성향이 낮은 기업 중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해당 목록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예고될 뿐이다.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율 5% 이상 가진 기업은 대략 250곳에 이른다. 기금운용본부는 주총시즌이 끝나는 3월 말 이후 배당성향을 분석해 예측 가능한 배당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기업들을 가려낼 계획이다. 우선 구체적으로 배당정책이 있는지를 따져보고 시장 상황과 산업의 특성, 개별기업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대상기업을 선정할 방침이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은 “투자자가 공감할 수 있는 배당정책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수립하도록 유도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 막 올라…관전 포인트는?
배당 확대로 주주 달래기 “국민연금 신경쓰이네”

국민연금의 배당확대 요구 움직임에 대해 기업들은 긴장과 함께 내심 경영권 간섭으로까지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국민연금 주권행사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유통주식 수를 늘리기 위한 액면분할도 주총을 관통하는 핵심 안건으로 꼽힌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난해 액면분할을 통해 주가를 상승시켰던 전례를 참고삼아 주주들이 주가 부양을 위해 액면분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양상이다.

통상 액면분할은 거래량 증가를 수반하며 이를 통한 주가 상승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액면분할을 결정 공시한 기업은 모두 26곳으로,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종목들의 주가가 상승세를 나타냈다. 시총 1000억원 이상 기업들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6개 기업 가운데 3개는 주가가 상승했고, 나머지 절반인 3개는 주가가 하락했다.

흥미로운 점은 액면분할 이후 대부분의 종목에서 일일 평균 거래대금이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거래대금 상승은 개인투자자들이 적극 가세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올해는 주당 액면분할이 한층 적극적으로 상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 테이프는 크라운제과가 끊었다. 크라운제과는 지난달 24일 공시를 통해 주당 5000원인 주식을 500원으로 분할하는 액면분할을 발표하고 오는 25일 예정인 정기 주총에 안건으로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라운제과 이외에도 KNN, 넥센, 성보화학, 엠에스씨, 케이티롤, 동양물산, 극동유화 등이 액면분할을 예고한 상황이다.

하지만 액면분할이 모든 기업들에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오뚜기, 오리온 등 이른바 식품업종 황제주들은 거듭된 액면분할 요구를 무작정 수용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다.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이들은 액면분할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배당금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 눈치껏
배당 늘리나

실제로 오리온은 보통주 1주당 600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한 상황이다. 최대 주주인 이화경 부회장(86만5204주)은 약 50억원, 이 부회장의 남편인 2대 주주 담철곤 회장(77만626주)은 45억원을 챙기게 된다.
오뚜기는 보통주 1주당 5200원을 현금으로 배당한다. 주식 57만543주(16.59%)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함태호 명예회장은 약 30억원, 함 명예회장의 장남인 함영준 회장은 약 28억원을 각각 배당금으로 받는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은 아직 배당금을 확정하지 않았다. 롯데 계열사의 배당성향(이익대비 배당총액)은 낮은 편이지만 개인투자자 비중이 낮아 배당금 수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예년 수준의 배당을 결정하더라도 사실상 ‘그들만의 배당 잔치’는 큰 변동이 없는 셈이다. 

이처럼 기업별 이해관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너 일가에 배당수혜가 집중되는 황제주를 액면분할해 투자 진입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거래소 역시 우량 대형주를 대상으로 액면분할 여부을 저울질하고 있다.

김원대 한국거래소 유가시장본부 부이사장은 “지난해 황제주였던 아모레퍼시픽의 액면분할 사례를 통해 주가 상승과 거래량 증가 등의 효과가 확인됐다”며 “많은 기업이 액면분할에 동참할 수 있도록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제주 피해
액면분할 효과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선임 여부도 관심이다. 주요 그룹들의 사업 재편과 대규모 투자가 예정된 가운데 등기이사 선임은 오너들의 책임경영 확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가 가시화된 모습이다. 최 회장은 SK·SK C&C·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 등 4개 회사 등기이사를 맡아왔으나 지난 2014년 횡령 혐의로 수감되면서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사면 이후 그룹 대규모 투자를 주도하는 등 그룹 전반의 현안을 직접 챙기고 있다.

LG그룹에서는 신성장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의 LG화학 등기이사 선임을 추진한다. LG화학은 18일 주총에서 구본준 부회장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안을 상정해 의결할 예정이다. 구 부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으로, LG전자 CEO를 역임하다 올해부터 지주사로 자리를 옮겨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11일 예정된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지난달 임기가 종료된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처리한다. 정 회장은 현재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14년 현대제철 등기임원에서는 물러난 바 있다.
 

정의선 부회장 역시 같은 날 열리는 현대차 주총에서 등기이사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오토에버 등 주요 계열사의 등기임원을 맡고 있다.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등재는 오너가 그에 대해 법적인 영역의 책임까지 진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그룹 오너들이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말뿐이 아닌 책임경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액면분할 확대…황제주 ‘글쎄’
이사회 재선임 ‘갈등의 화약고’


재계 관계자는 “오너들의 등기이사 선임은 단순히 감투 하나를 쓰는 의미가 아니라 경영에 대한 책임감을 높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오너의 책임경영 확대는 성장 정체 속에 그룹의 새로운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등기이사 재선임 이전에 경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본적인 장치를 함께 도입하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불법행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일정 기간 등기임원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존 이사회 구성원의 재선임을 원하는 회사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주주들 간 갈등이 곳곳에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조5000억원에 이르는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면서 주가는 3년 전에 비해 70% 떨어졌지만 박대영 대표이사 재선임이 주총 안건에 올라와 있다. 수주산업 특성상 프로젝트가 장기간에 걸쳐 마무리되기 때문에 업무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논란은 불가피하다.

효성 주주총회에서 조석래 회장의 재선임 여부도 관심사다. 조 회장에게  지난달 15일 법원은 총 1358억원의 탈세 혐의를 적용한 바 있다.

갈등의 내막
이사 재선임

GS건설, 베이직하우스, 세아제강 등도 실적이 바닥을 치면서 3년 전에 비해 주가는 반 토막이 난 상태지만 사내외이사와 감사의 재선임을 안건에 올렸다. 

IB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적자가 났는데도 경영진을 교체하지 않는다면 책임경영을 담보할 수 없다”며 “주총은 경영진 재선임에 대해 주주들 의견을 묻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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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