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시뮬레이션> 서울 핵폭탄 투하 시나리오

서울시청에 한발만 떨어져도…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남북간 경제와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한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불안 속에 빠져들고 있다. 북한이 감행한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추가도발이 결국 개성공단 전면 폐쇄라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남북간 긴장이 증폭되고 있는 것. <일요시사>가 전문가의 자료를 토대로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진다면’이라는 주제로 가상 시나리오를 정리해봤다.

핵무기가 투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엄청난 양의 열 복사선이 퍼져나가면서 열에 약한 물질들을 일시에 태워 대규모 화재를 일으킨다. 이와 함께 막대한 압력파의 발생으로 폭발 중심지의 반경에 있는 모든 콘크리트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고 이후 불어 닥친 후폭풍으로 가까운 거리의 물체들은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

결국 폭발지점과 가까운 거리의 건물들과 사람은 흔적도 남지 않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방사선과 방사성 낙진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핵무기 사용의 재앙은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그야말로 불바다
건물 완전히 파괴

남북간에 전면전이 벌어지고, 1Mt(메가톤) 규모의 북한 핵폭탄이 서울에서 터졌을 경우의 시나리오를 구상해 봤다. 이 내용은 전문가들이 연구 조사한 한반도 핵전쟁 시 야기될 인적, 물적 피해 시뮬레이션이다. 1Mt 규모로 가정한 것은 1Mt이 일반적인 전략 핵폭탄의 기본 크기이며, 말 그대로 전략 핵폭탄인 만큼 도시들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온한 오후 1시 서울시청 상공서 1Mt 전략 핵폭탄 폭발


▲열복사 = 폭발 직후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약 3km의 모든 생명이 폭발과 동시에 ‘증발’한다. 청와대, 정부종합청사, 조중동, 경복궁, 서울역, 을지로, 종로, 동대문, 연세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용산구청, 북한산 국립공원 일부가 태양의 약 1000배의 열로, 1∼2초간의 빛의 방출로 인해서 불에 타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죽는지도, 핵 폭발이 일어났는지조차도 느낄 수 없다. 핵폭탄이 터졌을 때 제일 ‘운좋은’ 사람들이다. 그냥 밝은 빛이 카메라 플래시 터지듯 반짝한 후 동시에 증발. 그리고 이 지역은 폭발에 의한 화구를 형성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전자장 펄스(EMP)에 의해 서울 및 기타 인근 도시의 모든 전자장비 및 자동차, 심지어 손목 시계까지 모두 작동을 멈춘다. 또한 7∼9km 떨어져 있는 고려대, 서울시립대, 성산대교, 동작대교, 국립묘지, 고속버스 터미널, 미아삼거리, 동덕여대, 서대문 시립병원, 서부시외버스터미널 등의 가연성으로 이뤄진 모든 것이 엄청난 열로 인해 폭발의 중심지가 증발함과 거의 동시에 불타기 시작하며,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같이 타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지역 거주자들은 3도 화상을 입게 되고 노출 부위가 25%가 넘는 사람들은 몇 초 뒤 절명하지만(‘약간 운 좋은’ 사람들) 거의 이 지역의 대부분인 ‘운 나쁜’ 노출 부위 25% 미만의 사람들은 약 1분 뒤 후폭풍이 다가올 때까지 고통 속에서 기다리게 된다.

3km내 모든 생명 플래시 터지듯 증발
6개월 안에 최소 700만명 사망 예상

▲후폭풍 = 폭심지부터 반경 약 3km의 불덩이가 생기며 엄청난 양의 산소를 태운다. 그리고 모자라는 산소를 주위에서 흡수하기 시작하는데 불타고 있는 폭심지 주변의 건물들은 산소를 빨아들이는 속도에 못 견디고 대부분 폭심지 안쪽을 향해 붕괴한다.

롯데호텔, 프라자호텔, 코리아나호텔, 교보빌딩, 정부종합청사 등 고층건물이 단숨에 무너진다. 몇 초 뒤 시속 1000km 속도로 산소를 팽창시키는데 속도는 점점 느려져서 25초 뒤에는 약 시속 400km 속력의 후폭풍이 동대문, 연세대, 숙명여대, 용산구청 등에 도달하게 되고, 1분 뒤에는 시속 350km 속력의 후폭풍이 7∼9km 떨어져 있는 고려대, 서울시립대, 동작대교, 반포 등지에 도달하게 된다.


후폭풍은 진도 7의 지진의 파괴력으로 도시를 덮치는데 지상의 90% 이상의 모든 건물들은 이 충격으로 파괴되고 건물 잔해나 유리 파편은 조각조각 나서 이 부근의 사람들의 몸을 총알처럼 관통하게 된다. 더욱이 파편뿐만 아니라 이 후폭풍에 직접 노출되면 사람이나 동물의 몸도 두 동강이 난다.

또한 엄청난 열을 발산하므로 인근의 아스팔트 도로들이 부글부글 끓게 된다. 약 2∼3분 정도 경과하면 후폭풍은 과천시청, 정부종합청사, 서울랜드, 중부고속도로 입구, 강남성모병원, 김포공항, 도봉산, 광명시청, 송파구, 부천역곡, 태릉선수촌, 구리시, 미금시, 행주산성에까지 도달하며 이 지역들 역시 처음 지역보다는 덜하지만 후폭풍으로 인한 건물붕괴, 화재 등이 일어난다. 겨우겨우 목숨을 건져 건물 밖으로 도망쳐 온 생존자들에겐 화재선풍이라는 또 하나의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죽는 게 낫다?
심각한 후유증

오후 1시로 폭발 시간을 정한 이유는 이 시간대에 일반적으로 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핵폭발 시 더 많은 피해를 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후폭풍의 범위는 일반적으로 반경 약 30km 이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국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후폭풍이 인천, 일산, 의정부, 수원, 분당, 용인까지도 도달해 건물을 파괴할 수도 있다.

▲선낙진 = 엄청난 후폭풍으로 인해 차량, 인간, 건물 파편 등이 공중으로 날아가는데 약 2∼3km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간다. 그 뒤 후폭풍의 영향으로 폭심지 멀리 떨어지는데 피해 예상지역은 인천, 안산, 수원, 용인, 동두천, 심지어 강화도까지 날아간다.

대부분의 선낙진은 눈처럼 떨어지는 뿌연 재인데 앞서 언급한 차량, 인간, 건물 파편 등도 많은 양이 같이 떨어진다. 선낙진들은 엄청난 방사능을 띤 물질들로 처음 열복사 내지 선낙진에 노출된 사람은 2주 내지 길게는 6개월 안에 사망하게 된다. 핵폭발에서는 살아 남았지만 ‘아주 운이 나쁜’ 사람들이다.

▲후낙진 = 작고 가벼운 먼지 크기의 재들은 더 높이 올라가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뿌려지게 된다. 서울에서 핵폭탄이 터졌을 때 후낙진은 한반도 전역은 물론이고 바람에 따라서는 중국, 일본에까지 가게 되어 피해를 더욱 확산시킨다.

물론 북한의 피해도 엄청날 것. 종합해 보면 1차 열복사 및 2차 후폭풍에 의해 서울의 건물 붕괴 80∼90% 및 서울 인구 1000만명 중 약 200만명은 즉사, 약 200만명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사망, 그리고 약 300만명은 2주 내지 6개월 안에 사망하게 될 것이며, 교통마비, 급수 중단, 단전, 의료기관 및 의료요원의 부족 속에서 사망자는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
 

서울시민 1000만명 중 6개월 안에 최소 700만명이 사망한다. 또한 인천, 경기도 주민들도, 열복사 및 후폭풍에 의한 직접피해는 그나마 서울보다는 좀 덜하겠지만 선낙진 및 후낙진 피해로 인해 1200만명 중 약 60% 이상인 700만명이 6개월 안에 사망할 것이다. 대충 계산해도 수도권 인구 2200만명 중에서 1300만명 정도가 사망하는 셈.

“생·화학 테러
가능성도 상존”

방사능 피해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며 핵전쟁 후를 표현한 TTAPS 보고서에서는 이를 두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the quick envy the dead)’이라고 표현했다. 말 그대로 살아 남은 사람들은 살아 남아 있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고통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 2004년 미국이 공개했던 북한의 핵공격 시뮬레이션 동영상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는 북한이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후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때였다. 시뮬레이션은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피해를 예상해 모두에게 경악을 안겼다.


이 시뮬레이션은 히로시마 원폭과 맞먹는 15Kt(킬로톤)의 ‘소형’ 핵탄두를 용산에 투사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폭발 즉시 반경 1.8km 모든 물질이 순식간에 녹아 증발했다. 이 순간 30만명이 즉사하고 10만명이 중상해를 입는다. 눈깜짝할 사이에 용산역, 전쟁기념관 등 주요 건물들이 증발하듯 폭발해 사라진다.

반경 4.5km 내에 위치한 경복궁, 서울역, 시청, 광화문 등은 거대한 폭발력에 의해 찢겨져 나간다. 서쪽의 마포·서교동·여의도, 동쪽의 반포·압구정·청담동 일대, 남쪽의 상도동·동작동 일대도 대부분 파괴된다. 이 같은 직접 피해를 통해 그 자리에서 40만명이 즉사하고 추가 사상도 22만명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이 시뮬레이션의 결론이었다.

뿐만 아니라 낙진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죽거나 사망하는 사람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다. 시간당 200램 이상을 쬔 사람들은 2∼6주 내 사망해 최대 90만명 이상이 희생되며 0.5램 이내의 극소량에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평생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통받는다. 결과적으로 최악의 경우 서울 인구의 10%를 훌쩍 넘는 최대 125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수도권 주민들도 피해 심각
2200만명 중 1300만명 사망

북의 위협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30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문가들은 순차적으로조금씩 대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한반도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화생방 피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서 생·화학 테러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북핵 위협도 엄존하고 있는 상태지만 국가 차원에서 대비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이 안 돼 있는 상태”라며 “유사시를 대비해 사회·경제적 특성에 적합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전략 수립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핵무장에 관한 북한의 능력과 의지가 매우 확고한 것으로 드러나고 좀처럼 단기간 내에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학계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는 판단 아래 ‘비확산 전략을 폐기한 뒤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해 본격적인 억지전략을 추구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과거 한국도 1950년대부터 주한미군 소속으로 다양한 형태의 전술핵이 배치됐다. 1970년대에는 약 700발이나 됐다. 하지만 당시 미군의 전술핵은 북한 단독의 침략보다는 중국까지 참전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외교관계가 개선된 1980년대를 기점으로 주한미군의 전술핵 배치수량이 100∼200발로 크게 감소한 데서 알 수 있다. 1991년에는 북한에 핵개발의 구실을 없앤다는 취지 아래 나머지 전술핵도 철수하게 됐다.

학계·정계의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주장은 1980년대에 미국이 소련의 SS-20 동유럽 배치에 맞서 퍼싱-2 등을 서독에 배치하고 이후 고르바초프와의 INF 조약으로 미소의 동시 전술핵 폐기를 유도했던 전례를 따르자는 논리다.

하지만 미·소 두 초강대국의 입장에서 SS-20과 퍼싱-2는 자신들이 보유한 핵전력의 일부에 불과했으며 폐기해도 전체 핵전력 규모에 큰 변화는 없는 수준이었다. 한 전문가는 “자신들이 보유한 소수의 핵전력 모두를 협상 대상에 걸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단순히 전술핵을 넣고 빼느냐의 여부를 갖고 핵포기를 유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마디로 비교 대상이 잘못 연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술핵 재배치는 주변국의 동의가 필요하고, 정치 외교 경제적 국익의 향배가 걸린 중대 사안인 만큼 치밀한 전략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반대하는 쪽의 입장은 우리나라의 외교적 고립과 동북아시아의 ‘핵 도미노’ 현상을 불러온다는 것. 우리나라가 핵 무장에 나서려면 현재 가입해 있는 국제 핵확산금지조약(NPT)부터 탈퇴해야 하는데 북한이 NPT 탈퇴 이후 국제사회의 공적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가 핵 무장에 나서는 순간 우리도 북한 수준의 외교적 고립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핵 무장은 일본과 대만의 핵 무장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대책 30년 전 수준
전술핵 배치가 답?

한국의 핵 보유는 미국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미국이 반대하는 한, 실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의 핵 보유를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진행되는 핵 보유 찬반 논란은 어떻게 보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감정적 대응보다 차분하게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아가며 미국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핵 보유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는 것이 순서라고 조언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